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8
18
018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
– 딩동댕동 댕동딩동
수업 종이 치면.
우리는 잘 사육된 양떼처럼 터벅터벅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그 뒤를 교사들이 쫓는다.
그들이 박자에 맞춰 벽을 두드릴 때마다 겁에 질린 얼굴로, 우리는 각자의 등급에 따라 걷는 속도를 조절해 나갔다.
1등급은 교사들과 농담을 하며 천천히, 9등급은 허둥지둥 교사들을 피하면서.
탁-
문이 닫혔다.
교실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모두 지친 표정.
1등급들은 맨 앞자리에, 9등급들은 맨 뒷자리에 홀린 것처럼 앉아. 멍하니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약간이라도 한눈을 팔라치면.
팍-
지금처럼 누군가가 던진 분필이 머리에 부딪치곤 했다.
“박수한. 너 수업 시간에 또 딴 짓하지?”
영어 교사다.
하는 짓만 보면 교사라는 호칭이 너무 과분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이 학교의 터줏대감이라 아무도 터치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수업 시작하니까 정신들 차려.”
얼굴색을 보니 오늘도 술 한 잔을 걸치고 들어온 것 같다.
그나마 오늘은 수업 시작한 지 5분 만에 들어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어제 시험 정산은 하고 가야지.”
그가 말하자, 아이들이 긴장한다.
“밑에서부터 계산한다. 일단 박수한.”
순간 움찔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일 뻔했다.
“박수한 안 나와? 빨리하고 수업해야지.”
영어가 내 이름을 다시 부르자, 1등급 몇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태도.
날마다 매를 견디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관중의 모습이었다.
그래. 너희들은 쪽지 시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총애를 받는 이들에게는 누구보다 더 친절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교실 뒤쪽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저번 시험의 성적이 좋지 않을수록.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옅을수록 더.
평소라면 나도 군말 않고 나갔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제가 왜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자. 영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왜요? 이 자식이 어른한테 말버릇 보게? 싫으면 시험을 잘 봤어야지.”
그는 자신이 들고 온 종이 하나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어제 본 시험 결과가 기록된 종이.
얇디얇은 저 종이 한 장으로 그는 우리를 마음대로 체벌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인권이다 뭐다 해도 아직까진 성적을 우선시 하는 부모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그래도 어제 시험에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틀린 것 같았다.
“······.”
주위를 돌아보자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어두운 얼굴로.
그들은 표정으로 ‘왜 안 나가고 버티고 있느냐’, ‘너 때문에 피해 받기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1등급들은 물론 9등급들까지도. 이 교실 안에 내 편은 없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 나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끄덕거리면서 몽둥이를 휘휘 휘두르는 그.
영어선생에게선 옅은 술 냄새가 났다.
“앞으로는 점수 안 된다 싶으면 알아서 착착 나와 있어. 그래야 선생님도 편하고 너도 덜 아프고.”
익숙한 자세로 엎드리자,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발끝이 보였다.
까딱까딱 흔들리는 발끝.
피식거리며 비웃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 익숙했다.
하루에 두 번씩. 영어와 국어 시간마다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나마 국어 시간엔 장난스럽게 발바닥 몇 대 맞고 끝나곤 했지만, 영어시간은 달랐다.
“자, 히프 빡 올리고. 그래. 힘 줘라 안 그러면 꼬리뼈 나간다? 뭐 숙련된 조교니까 잘 알지?”
영어 선생의 목소리는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매번 진지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곧이어 올 통증을 생각하면서.
“그러게···”
빡-
“공부를···”
빡-
“했었으면···”
빡-
“안 맞을 것 아냐.”
빠악-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몇 대 남았냐?”
아니 얼마나 맞았는지 때리는 그가 제일 잘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도 민망한지 시선을 돌린다.
엉덩이가 타오를 듯 쓰라렸다.
“선생님 저번에 다섯 대 때리셨으니까. 앞으로 한 대 더 남았어요.”
그때 맨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내 눈 앞에서 발을 흔들어 대던 녀석이었다.
50점 이하는 다섯 대, 70점 이하는 세 대씩. 우리는 매 시간마다 시험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오늘은 성적 확인도 안하고 맞기 시작한 것이라 몇 대를 맞아야 하는지 애매했다.
“뭐 단골이니까 한 대 빼 줄게. 얘들아 이해하지.”
영어의 말에 아이들 몇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보다 한 대를 덜 맞은 상황. 어제였다면 예기치 않은 행운을 곱씹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맞을 때도 떨리지 않던 몸이 이제야 덜덜 떨려왔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나는 분명 어제 나온 시험 문제들의 답을 다 적어 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 다 틀렸다고?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
자리에서 일어나 영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영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연다.
“왜 부족해?”
그러고선 다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이름들. 나와 같은 몽둥이찜질방 단골손님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소처럼 물러서기는 아쉬운 노릇. 최소한 점수라도 알아가야겠다.
그래야 학원으로 가서 어제 그 자신만만했던 강사한테 항의라도 할 것이 아닌가?
“···제 점수. 몇 점인데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하자, 영어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 점수야 맨날 똑같잖아?”
하지만 난 물러설 수 없었다.
나에겐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몇 점이냐고요. 알려 줘야 공부를 더 하던가 하죠.”
다시 한 번 강하게 묻자, 영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허 이놈 보게.”
그제야 영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성적표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 버렸다.
“···어?”
영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몇 점?”
영어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90점.”
순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어제의 그 학원 강사였다. 이 마음을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생애 첫 신뢰 관계가 막 싹텄을 때의 그 묵직한 마음을.
하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약간 뒤로 미루자.
나는 영어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쩌실 거예요, 제 엉덩이. 아직도 겁나 아픈데.”
그러자 영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선생님이 미안하긴 한데, 어쩌겠냐······. 네가 이해 좀 해야지. 대신 다음 맞을 때 오늘 맞은 거 빼 줄게.”
“···앞으로는 맞을 일 없을 것 같은데요.”
내 대답을 들은 영어는 머뭇거린다. 슬쩍 교실을 돌아보니 아이들의 이목이 이쪽으로 확 쏠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은근슬쩍 넘어갈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아니면 네가 한 대 때릴래?”
그는 장난스런 얼굴로 자신의 몽둥이를 내밀었다.
교실 안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
내가 말이 없자.
“그럼 오늘만 특별하게 친구들 몫까지 수한이가 다 맞은 걸로 하자. 이야. 수한이가 오늘 다른 친구들한테 음덕 쌓는다. 귀인이야 귀인.”
그는 웃는 낯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자기 실수를 그냥 꽁으로 덮기는 뭐했는지 불려 나왔던 아이들까지 다시 들어가란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내가 부르자 영어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음, 왜?”
나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엎드리셔야죠.”
* * *
복합기가 말썽이다.
어쩐지 그제부터 복합기를 혹사시킨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부터 계속 종이가 씹히고, 롤러가 헛돌았다.
그나마 단면 인쇄는 그럭저럭 잘 나왔지만, 양면 인쇄는 4장에 한 번 꼴로 씹혀 버리는 터라 준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
뭐 그래도 필수적인 지문은 어제 다 뽑아 놓은 상태라 다행이었지만, 응용문제들은 이대로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천천히 취소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복합기가 인쇄를 멈추고 잠잠해졌다.
철컥-
그런데 그 와중에 종이가 하나 걸려 버렸다.
종이를 빼내기 위해 후면커버를 열었을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 쌤. 왜요 프린터가 잘 안 돼요?”
김원용이었다.
또다시 어마어마한 부피의 프린트를 들고서, 자못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쪽 프린트로 시도하다 실패해서 옆 교무실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아직 한 장도 못 뽑으셨네? 김 쌤네 전 직장에는 이런 프린터가 없었나 봐요?”
그는 나 보라는 듯 프린트 뭉치를 슬쩍 내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제법 무거운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걸 내려놓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러게 최신 기기는 센서티브하니까 조심조심 다뤄야죠. 싸구려 프린터처럼 막 다루면 저렇게 망가져요.”
싱글싱글 웃는 표정이다.
김원용의 어깨 너머. 강사들이 어이없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 프린터 쟁탈전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걸린 종이를 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누가 막 다뤄서 망가졌나 보네요.”
그렇게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어차피 시험 문제 몇 장 없다고 수업을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자 등 뒤에서 김원용이 뭐라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컴퓨터를 켜고 자료들을 확인했다. 미리 집에서 옮겨 놓은 수업자료들이다.
각 학교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 쪽지 시험부터 내신시험, 모의고사 문제들까지 정리한 뒤 살을 붙여 놓은 자료들.
문제지 몇 장 뽑았다고 흔들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차피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출제될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
적중률 100%. 여기에 눈속임용 위장을 위해 추린 다른 문제들.
하지만 이 문제들 역시 실제로 나올 문제들에서 유형만 조금씩 바꾼 것들이다. 단순히 정답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을 학생들의 진짜 실력으로 커버하기 위한.
이러니 교재 한 권만 가져가도 다른 강사들보다 더 탄탄한 수업이 가능할 수밖에.
그때였다.
끼익-
모니터 너머로 박수한이 슬며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잠시 교무실 분위기를 살피다가 내 얼굴을 보곤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마치 처자식을 베고 전장으로 향하는 장군처럼 비장한 표정이다.
박수한을 본 김원용이 뭐라 한 마디 하려는 것 같았지만, 녀석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보부도 당당하게 다가온 녀석은 내 앞에 서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국어책을 읽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원용이 벙찐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뜬금없이. 지금도 수업 듣잖아 너.”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개를 젓는 폼도엄청나게 진지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거 말고요. 정식으로 과외를 신청하겠습니다. 엄마한테 허락도 다 받고 왔어요.”
아무래도 쪽지 시험 대비 수업을 잠깐 해 준 것 때문인 것 같다.
녀석은 받아주지 않으면 석고대죄라도 할 자세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벌써 부모님 허락까지 받아 왔다니 녀석의 결심이 제법 단단해 보였다.
“······.”
생각해보니 이 녀석 하나 정도는 과외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내가 맡고 있는 반의 성적을 올리려고 마음을 먹은 만큼.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경우보다, 이 녀석처럼 몇 과목만 성적이 안 나오는 케이스로 시작하는 것이 수월할 테니까.
게다가 녀석의 의지도 제법 강경해 보이고.
“뭐 그럼 그러자. 대신 지금 받는 수업은 그대로 받고, 거기에 국어 과외만 추가해서 하는 걸로.”
하지만 녀석의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녀석이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 국어만 말고요 영어도 해 주세요. 저 학원 영어는 끊을 거예요.”
응?
뜻하지 못한 말이었다.
녀석의 얼굴은 의외로 담담했다.
하지만 돌아본 영어 담당 김원용의 표정이 정말 가관이다.
입을 헤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얼굴.
얕보던 작은 꿀벌에게 코를 쏘인 듯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