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82
182
182화 X-EDU (3)
“후우….”
부이사장실 앞에 도착한 김형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문을 열면, 이제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젠장, 그냥 잠수 탈까?’
마음만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K에듀의 부장 자리, 멧돼지 같은 아내와 여우같은 자식들, 아직 반도 채 갚지 못한 아파트 대출, 은퇴자금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등에 얹어 놓은 것들을 모조리 다 던져 버리고 산으로 들어갈 생각이 아닌 이상,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도 사람인 이상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진짜 들어가기 싫다.’
들어가자마자 뭔가 하나쯤은 날아올 것이 분명했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문밖에서 서성여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 봐야 한 번 먹을 욕을 열 번 먹을 뿐이었다.
‘에휴,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마음을 다잡은 그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곤 아주 조심스럽게 부이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들어와요.”
스산한 빛이 감도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꿀꺽-
마른침이 김형로의 목울대를 훑고 넘어갔다. 최정순의 목소리를 듣는 듣자마자, 아주 작게 피어올랐던 불꽃이 파사삭- 식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여기서 물러서 봐야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은 없었다.
‘돌아선다면 아마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뿐이지.’
김형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노후는 그 옛날의 곽자의(郭子儀)처럼 아름답고 찬란해야 했다. 그러니 절대로 그가 보아 왔던 자들처럼 주저앉거나 뒤돌아 설 수 없었다.
김형로는 이를 악다물며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그러자.
철컥-
아주 작은 소음이 들림과 동시에, 게임 속 마왕성의 문이 열리듯 부이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풍경. 단조로운 색조로 이루어진 벽과 바닥. 그리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가구들.
마치 진시황의 대전(大殿)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어둡고 텅 빈 공간 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어둡고 깊은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지슬라브 백진스키(Zdzislaw Beksinsk)의 음산하고, 창백하며, 일그러진 형상의 그림들뿐이었다.
‘젠장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서늘한 방 안 공기와는 별개로 땀이 배어 나왔다.
이곳은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사람을 갉아 먹는 공간,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진 왕좌 같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데서 생활을 해?’
그러나…….
“왜 그렇게 서 있어요? 앉아요.”
그가 고개를 들어 방 한 가운데 자리한 최정순을 본 순간. 그녀가 어떻게 이 방 같지 않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과 분위기는…이 방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하긴 저 마녀니까 이런 방에 살지.’
김형로는 마녀의 최정순의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최정순의 기분이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아까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이 방안에 자신의 목을 칠 도부수(刀斧手)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으니까.
김형로는 다행이라는 듯 살짝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의자를 찾아 다가갔다.
그런데?
김형로가 막 의자에 앉으려 허리를 숙인 그 순간.
“…뭐하는 거지?”
딱딱하게 굳은 언어가 그의 몸을 찔렀다.
김형로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최정순을 바라보았다.
방금전 그녀의 입으로 분명히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했었으니까.
“네? 방금 제게 앉으라고….”
“누가 의자에 앉으란 말 했어? 바닥에 앉으라고. 무릎 꿇고서.”
순간, 김형로의 가슴 속에 울화(鬱火)가 피어났다.
‘이런 X발 그래도 내가 명색이 부장인데, 한참이나 어린년이….’
하지만…그 마음과 다르게 몸은 비굴했다.
“네…넷! 죄송합니다!”
그는 싸움에 진 개가 제 배를 까고 엎드리듯,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릎 꿇었다.
이 회사 안에서는 힘의 우열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최정순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무래도 1차 경쟁에서 패배한 것을 묻는 것 같았다.
지은 죄가 있는 김형로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쓸데없는 말 듣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니고.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저…그러니까…제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기회를 주시면?”
“…2, 2차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제가,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이길 테니 다시 한 번만 기회를….”
김형로가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한번 무릎을 꿇고 나니 분명 자기보다 10살은 더 어린 여성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리는데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인간과 자본의 관계란 원래 그런 법이었으니까.
그러자.
톡톡-
최정순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김형로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부장님. 올해로 근속 몇 년 째시죠?”
방금 전까지완 궤를 달리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김형로는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지?’
갑작스런 그녀의 변화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날 떠보는 건가?’
김형로는 이마에 배어나온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올해로 21년 찹니다.”
김형로의 말을 들은 최정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생각보다 오래 계셨네요.”
순간, 불길한 상상이 김형로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1차 경쟁의 실패와 근속연수. 그 둘의 상관관계를 떠올리자마자…최정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를…팽(烹)하겠다는…?’
일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면전에서 이렇게 자신을 팽하겠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자신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쾅- 쾅- 쾅-
김형로는 바닥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다.
주인이 자신을 삶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면, 주인 앞에 바짝 엎드려야만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발…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정말 자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글쎄요. 저번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서 뭐 믿을 수가 있어야죠.”
주인의 목소리가 마치 그를 떠보듯 가벼워졌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것이 마지막 순간임을.
“이…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해내겠습니다!”
그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최정순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의 고개가 살짝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이번 계약을 따 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정순이 차가운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흐음…뭐 좋아요. 20년 간 고생해 주신 분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법이니…‘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김 부장님을 믿어 보도록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김형로가 고개를 조아렸다.
“대신 오늘 이후로 ‘소라게’라는 이름이 내 눈에 띄는 일은 없어야 할 거예요. 사실 계약도 계약이지만 소라게라는 이름이 K에듀 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 뭉치를 김형로에게 던졌다.
“…그 학원 들리는 소문이 아주 좋지 않아요.”
그녀의 말을 들은 김형로가 무릎걸음으로 서류가 떨어진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류를 확인했다.
.
.
그녀가 던진 서류에는 소라게 학원의 지난 행보와 그 영향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김형로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최정순을 올려다보자. 최정순이 단단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암세포 같은 놈들이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처리하셔야 할 거예요.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저도 더 이상 김 부장님을 봐드릴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제 말… 무슨 말인지 잘 아시죠?”
“…무…물론입니다.”
“좋아요. 그런데 방법은 있나요?”
말을 마친 최정순이 합당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목을 치겠다는 표정으로 김형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형로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않아서 마지막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K에듀가 2차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소라게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라….’
1초, 2초, 3초, 4초…
마치 몇 초가 몇 년인 것처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의 머릿속에 음허한 상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방법…있습니다.”
김형로의 입에서 자신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사락-
손에 들린 종이를 넘긴다.
그러자.
.
.
‘소라게 테스크포스’의 피, 땀, 눈물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자료들을 천천히 훑어 내려 갔다.
‘2차 공개경쟁입찰’
1차 공개입찰경쟁이 사업에 지원한 학원의 계획과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의 방향성이 얼마나 합치되는지. 또 그 계획의 실현 가능성 얼마나 되는지, 그 계획의 적합성과 학원의 능력을 파악하는 개별 테스트라면.
2차 공개경쟁입찰은 말 그대로 칼과 칼이 마주치는 진검 승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진정한 입찰 경쟁은 사실 1차 경쟁이 끝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봐야 했다.
1차 경쟁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은 곳이라도 2차 경쟁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적어 낼 경우. 그 계획이 얼마나 효과적이든 탈락을 면할 수 없으니까.
‘아차 했다가는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겠지.’
때문에 요즘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2차 경쟁 준비에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렴 준비란 원래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것이 나은 법이었으니까.
그렇게 2차 공개경쟁입찰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고 있던 그때.
똑똑-
누군가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원장실 문에 붙어 있는 불투명 유리에 익숙한 인영(人影)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흐음, 아린이네…아직 남은 자료가 있었나?’
아무래도 테스크 포스 팀 쪽에서 또 다른 자료를 보내온 듯싶었다.
나는 보고 있던 서류들을 한쪽에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곧 문이 열리며 이아린이 원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처음 뵙겠습니다. 김준영 원장님.”
원장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아린 혼자가 아니었다.
‘누구지?’
나는 내게 인사를 하는 사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혹시나 아는 사람인가 싶어 자세히 뜯어 봤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누구시죠?”
내가 묻자.
“아,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K에듀 사업기획부 부장을 맡고 있는 김형로라고 합니다.”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내게 명함을 건넸다.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확인했다.
[사학법인 K에듀 사업기획부 부장 김형로]흐음…K에듀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 1차 경쟁에서 소라게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회사라 눈여겨보고 있었으니까.
‘매출만으로 따지면…업계 1위였지?’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왜 지금 K에듀의 사람이 그것도 나를 찾아온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나와 K에듀의 관계는 1조 원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노리는 경쟁자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갈무리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 김형로 부장님이시군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리곤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이아린에게 차를 부탁했다.
잠시 뒤.
“어떠신가요?”
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묻자.
눈을 반쯤 감은 채 향긋한 다향(茶香)을 만끽하던 김형로가 서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정말…좋군요. 근래에 마셔 본 차 중에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서호용정(西湖龍井)이라고 이번에 선물로 들어온 차인데, 요즘 입맛을 붙이고 있는 찹니다.”
“아…그랬군요. 저도 풍문으로 들어보기는 했지만…직접 마셔 보기는 처음이라…이거 오늘 제가 귀한 경험을 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찻잔을 들어 남은 다향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차가 그의 취향에 꼭 들어맞은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차도 다 마셨으니 이만 용건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요즘 일이 좀 많아서요.”
그러자.
“아, 이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 향기에 빠져 버렸군요. 이거 면목 없습니다.”
김형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잠시 우묵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장님 아니, 김준영 대표님. 혹시 이번 사업 저희 K에듀와 같이 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