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83
183
183화 동상이몽 (1)
“원장님 아니, 김준영 대표님. 혹시 이번 사업 저희 K에듀와 같이 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우묵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김형로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롭니다. 이번 2차 공개경쟁입찰에 저희 K에듀와 소라게 학원이 파트너십을 맺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제정신인 건가?’
파트너십(partnership).
비즈니스 파트너 또는 동업자들이 상호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합의를 뜻하는 말로 사업적으로는 둘 이상의 기업이 조인트 벤처나 컨소시엄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뭐 일반적인 기업 관계였다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K에듀와 소라게 학원은 현재 같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사이.
쉽게 말해 경쟁 관계였다.
그러니 지금 김형로가 내게 한 말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뭐 적과의 동침이니, 오월동주니 원수지간에도 잠깐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오나라와 월나라가 협력을 한 적은 없지. 서로를 정복한 적은 있어도 말이야.’
음…이쯤 되니 아까 받았던 명함이 사실인지 아닌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금 당황스럽군요.”
“아, 그러실 만합니다. 아무래도 아직 저희는 경쟁 관계니까요. 하지만 대표님. 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시면 지금 제가 드리는 제안이 절대 대표님께 손해가 될 만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음, 글쎄요…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협력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혹시 저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럴 리가요. 아무리 이번 사업의 규모가 크다고 하더라도 저희 K에듀가 다른 회사에 손을 벌릴 정도의 규모는 아닙니다.”
그는 당치도 않다는 듯 손사레를 치며,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렇다면…이번 2차 공개경쟁에 파트너십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한 곳이 없을 텐데요?”
“네, 물론 일반적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비공식적으로는 한 군데 들어갈 만한 곳이 남아 있습니다.”
“비공식적이요?”
“흐음…대표님 정도의 능력자시라면 이미 알고 계실 텐데…설마 모르는 척 하시는 건가요?”
순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입찰가를 통해 수주사가 결정되는 2차 공개경쟁에서 비공식적인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은…단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설마…담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가 혹시나 하는 목소리로 묻자, 김형로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예 맞습니다. 전 지금 대표님께 소라게 학원과 K에듀의 비공식적인 파트너십. 담합을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그의 말을 들고 나니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담합이라….’
아무래도 그는, 아니 K에듀는 내가 그들을 좇아 그들의 편에 서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
안 그래도 전에 독고경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선생님. 이번 일이 시작되면 아마 허튼 짓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나올 겁니다. 1차 때야 사업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위주로 평가를 하니 그리 눈에 띄지는 않을 테지만…최저입찰가 경쟁이 이뤄지는 2차 경쟁에서는 아무래도…]그래도 그땐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던지라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제 보니 실제로 담합을 획책하는 무리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거 참, 아무리 정부자금이 눈먼 돈이라 불린다고는 하지만…그래도 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물론 정부 측에서 이 같은 일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의 계약이 아닌 공개경쟁계약으로 사업자를 뽑고, 또 그 과정을 모두 대중에게 모조리 공개한 것 자체가 이번 사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채택된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은 방법을 찾지…언제나 그렇듯이.’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업들 간의 담합을 막을 순 없었다.
말마따나 이번 2020년 교육 개혁 프로젝트가 한 가지 사업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니만큼, 각각의 사업에 대한 마지노선을 정해 놓고, 이면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수주하면, 증거도 남지 않을 테니까.
‘합의가 구두로만 이뤄지면 담합 혐의를 입증할 수 없으니….’
하지만 이면합의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합의 당사자들끼리의 신뢰가 없으면 이면 합의는 목에 걸린 가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합의한 당사자들 중 한 명이 약속을 어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닭 쫓던 개꼴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다가…….
‘요즘 같은 때라면 가중처벌도 가능하겠지.’
몇 사람만 입을 잘못 놀려도 곧바로 정부의 철퇴가 머리 위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정부 측에서 이번 사업에 들이는 노력이 각별하다고 알고 있는데 담합이라…. 리스크가 좀 쎈데요?”
하지만.
“눈 먼 양치기가 작대기 좀 들었다고 누가 두려워하겠습니까. 그저…조용히 움직이며 양을 잡아먹으면 그뿐인 거죠. 뭐 이리가 발자국이라도 남기면 소란스러워지겠지만…숙련된 이리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법 아니겠습니까.”
김형로는 공권력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안 된다는 듯 가벼이 웃을 뿐이다.
‘허….’
한 치의 거리낌도 없는 그의 말과 행동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사회의 질서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 안하무인에 가까운 그의 모습이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겠지.’
나는 내심 솟아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좋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득 될 만한 게 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 그냥 귀사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하며 그만인 걸요.”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그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회를 좀 먹는 좀벌레.
오랜 시간 독기가 쌓이고 쌓여 이젠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고독(蠱毒).
그런 그들의 배를 불리는 일에 협력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자.
“글쎄요. 뭐 선택인 언제나 대표님 몫이긴 하지만…대표님도 아시잖습니까. 일이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요.”
김형로가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내게 선택을 맡긴다는 듯했지만 풍기는 뉘앙스를 보니…….
‘알아서 기어라. 괜히 나대지 말고.’
아무래도 자신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의미죠?”
“무슨 의미는요. 그저…욕심 부리다 빵 한 조각 손에 쥐지 못하는 것보다는 여러 지인들과 함께 배불리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채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종전까지의 보여 줬던 그의 예의바른 모습이 마치 내 착각인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다른 소라게 학원을 제외한 다른 학원들과는 이미 말을 맞춘 상태라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정부에 알린다고 하더라도 무마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 보구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 저렇게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 줄 수 없을 테니까.
“말씀을 들어보니 다른 분들과는 다 이야기가 끝나신 모양입니다?”
내가 묻자, 김형로는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다행히 다른 분들과는 전에 여러 번 발을 맞춰 본 적이 있던 터라 이야기가 빨리 끝났거든요.”
흠…평범한 사오십 대 부장처럼 보이는 것 치곤 의외로 수완이 좋은 것 같았다.
하긴 그랬으니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곳에 왔겠지.
“자, 그러니 대표님께서도 부담 가지시지 마시고 저희 계획에 참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솔직히 이번 경쟁 가지고 저희끼리 피 터지게 싸워 봐야 정부한테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일 텐데, 설마 그런 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이젠 뭐 거의 다 넘어 온 물고기 취급이었다.
하지만.
“일이 언제나 사람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방금 전 들은 김형로의 대사를 그대로 돌려 주었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조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편, 자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김형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분명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 정말로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전 아주 아쉬운 마음을 갖고 회사에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그 안타까운 소식을 저희 학원의 윗분들께도 말씀드려야 할 테고요.”
그래도 끝까지 대놓고 협박은 하지 않는 김형로였다.
“흐음….”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업계 1위의 회유.
이면합의.
다른 회사들의 동조.
미약한 증거.
파이에 대한 약속.
만약 내가 일반적인 사업자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상황이었다.
이면 합의를 통한 입찰가 담합이라는 것만 빼면, 안전한 방법으로 회사의 이익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먹음직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게 이번 사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닌, 앞으로의 교육 사업을 위한 밑거름이다.
그리고 K에듀의 더러운 협잡질에 어울려주지 않고서도 충분히 이번 2차 경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자신도 있었다.
‘…신뢰의 문제도 있지. 의심스러운 사람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법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때.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차 공개경쟁에 대표님 저희 K에듀의 자본과 영향력 그리고 소라게 학원의 능력을 힘을 합치시겠습니까 아니면…그 반대입니까?”
김형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결정을 요구해 왔다.
흐음, 뭐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법에는 몇 가지 바리에이션이 있었다.
적어도 악의를 가지고 다가온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구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였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인데…그것이라면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만약 제가 K에듀와 파트너십을 체결한다면…제게 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드릴 수 있죠.”
“좋습니다. 그럼…그 계약의 수주를 위해 얼마 정도의 금액을 써야 할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김형로가 주저하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쉬이 대답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먹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입찰금의 정확한 액수가 아니었다. 의도를 파악하는 것만이라면 대략적인 금액을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략적인 금액이라도 말씀해 주시죠.”
그러자 김형로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곧 나오겠구만.’
나는 식은 차를 마시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이번 입찰 경쟁을 준비하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USB 내에 있는 자료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2차 공개경쟁에 참여하는 회사들이 어떤 사업에 사활을 걸었는지, 그리고 또 입찰금으로 얼마를 제시할지 그 내밀한 사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1. K에듀 350억 원] [2. M스터디 370억 원] [3. J학원 380억 원].
.
그러니 이를 잘 이용한다면 박형로, 나아가 K에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내게 양보할 생각이 있다면…아마 350억보다 낮은 금액을 부를 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그의 입에서 350억보다 높은 금액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뭐 그렇게 된다면…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서고금 전래의 방식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나는 나를 엿 먹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까지 용서하는 대인배는 아니었으니까.
잠시 뒤.
굳게 닫혀 있던 김형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360억 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결정되었다.
K에듀에 대한 나의 처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