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86
186
186화 원더랜드 (1)
2020년 교육 개혁 사업의 수주가 마무리 된 뒤.
[수능 만점 김준영의 수능 특강. 선착순 200명]나는 수능 대비 특강에 들어갔다.
D-DAY 15.
수험생과 그들의 부모, 강사들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숫자가 드디어 도래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라게 학원, 소라게 아카데미, 소라게 스쿨, 소라게 아트센터, 2020년 교육 개혁 사업 등 내가 벌려 놓은 사업이 한두 가지가 아닌 이상, 굳이 내가 나서서 원장 직강으로 특강을 진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특강 문의를 전화. 그리고.
‘쌤 혹시 수능 대비 특강 안 하세요?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제발 강의 좀 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원장님 제발 우리 애 이번엔 꼭 합격해야 하는데…제발….’
소라게 학원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 학부모들의 들끓는 바람을 모른척할 수 없었다.
게다가.
‘수업을 하지 않는 강사란 강사가 아닌 법이지.’
뿌리를 잃은 나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썩어 버리는지 아는 만큼, 강의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강의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스윽-
고개를 들자 보이는 수많은 학생들의 모습.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을 가득 메운, 아니 강의실을 메우다 못해 복도에까지 쫙 깔린 학생들. 그들의 간절한 표정을 보자, 새삼 특강을 받아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새삼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서 느껴지는 열기와 그들의 시선이 온몸에 닿는 느낌. 그런 감각에 나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거야.’
나는 임전태세를 갖춘 학생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곤.
탁-
가벼운 착수.
분필을 쥔 오른손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왼손으로는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수업을 시작할 때 가져왔던 1L짜리 녹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와 학생들의 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이번 10월 모의고사 영역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보면 돼. 첫째, 고전 문법 문항이 출제되었다는 점. 둘째, 문법 문제 중 두 문제가 지문 형태의 세트 문항으로 출제된다는 점이야. 이 말은 곳 올해 수능에도 고전 문법이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어차피 이미 대부분의 진도는 다 나가 있는 상황. 내가 해야 할 일은 수능에 나올 고난도, 최저적중률의 문제에 대한 강의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15일 동안 하루 4시간씩 미친 듯이 달릴 테니까 떨어지지 말고 잘 따라와!”
그때부터 폭풍 같은 강의. 이른바 폭강이 시작됐다.
“음운이란?”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로 분절음운과 비분절음운으로….”
“교착어란?”
“어근에 접사를 붙여 단어를 파생시키거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를 말하며 한국어나 일본어, 몽골어, 핀란드어 등이 이에 속하는….”
“소설의 3요소와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소설의 3요소는 주제, 구성, 문체.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으로….”
“개연성과 핍진성의 차이는?”
“개연성이란 독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설정이 갑자기 등장하여 이야기의 중요 요소를 차지하는가 아닌가를 말하는 개념이며, 핍진성이란 작품 속 개연성이 얼마나 현실과 부합하는 가를….”
그리고 학생들도 이런 나의 강의에 맞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D-DAY 14.
D-DAY 13.
.
.
D-DAY 10.
폭강이 5일 째 계속되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이 시의 작자는?”
“이육사. 정확하게는 이원록이요. 참, 필명인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을 때의 수인번호에서 따온 거예요.”
“그럼 이 시 ‘광야’에서 속죄양 모티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라’라는 부분이요. 이 부분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혹한 현실 상황을 극복, 찬란한 미래를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나 있어요.”
“…‘모티프’란?”
“음, 모티프는 여러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 설정요소라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금기’ 모티프 같은 경우 ‘금기가 주어지지만 주인공은 기어코 그 일을 저질러 버린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모티프가 되는 거죠. 모티브랑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다른 개념이니까 조심해야 해요.”
“…그럼 그 ‘금기’ 모티프가 드러나는 작품에는 뭐가 있을까?”
“뭐 많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 상자를 연 판도라, 돌아보지 말라는데 돌아본 오르페우스…더 말씀 드려요?”
…김연아 이 외에 다른 학생들의 대답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자. 불과 5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롱초롱 불타오를 것 같던 학생들의 눈동자가 이제는 에너지가 방전된 토끼인형처럼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동안의 쌓인 육체, 정신적 피로가 그들의 몸을 내리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마라톤 와중에 막판 스퍼트를 올린 격이니까.’
그래도 제법 천천히 달린다고 달린 것이었는데…아무래도 학생들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초반에는 곧잘 따라오더니 이러네?’
아무래도 탈 인간급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페이스메이커 김연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쌤! 문제 더 없어요? 으, 이거 은근히 재미있네?”
마치 어딘가에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어 두고 있기라도 한 듯이 청산유수로 대답을 한 덕분에 강의의 속도가 조금 빨라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 녀석 혹시 산신령이라도 만난 거 아니야?
처음 연아를 만났을 때, 녀석이 ‘음운’이나 ‘품사’가 뭔지 모를 정도로 깨끗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그야말로 천지개벽, 괄목상대, 일취월장,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왜요?”
김연아가 예의 그 잔망스러운 눈웃음을 보이며 헤실거리기 시작했다.
뭐 세상에 마음씨 좋은 산신령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 녀석의 대답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태를 그냥 유지할 순 없었다.
올해 수능에 나올 고난도 문제들의 키포인트를 수업 중간 중간에 흘리고 있는 만큼, 나와 연아의 대화만 잘 듣는다고 하더라도 고난이도 문제들을 꽤나 수월하게 풀 수 있을 테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이 특강 자체가 연아의 원맨쇼, 연아만의 독주가 되어 버릴 테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특강을 안 하는 게 낫지.’
때문에 나는 쉬는 시간에 잠깐 김연아를 불러낸 뒤.
“연아 너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당분간 대답 금지야.”
조금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분명 싫다고 방방 뛰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 왜요오오! 대답 열심히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오!”
미리 예상했던 대로 김연아가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열심히 대답한 것은 죄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칭찬할 만한 일이지.’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력을 잃고 수업에 따라오는 것에 급급한 상태가 되고 말 테니까.
나는 마속을 참하는 제갈량의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그런데…너무 빠른 게 문제야. 다른 사람들도 대답할 기회를 줘야지.”
“쳇. 그럼 다른 사람들이 빨리 대답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니가 그럴 시간을 안 줬잖아.”
“그런가? 아니 그래도 아예 말도 못하게 하는 건 너무해요.”
“…아예 말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천천히 대답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에휴, 착한 내가 참아야지. 알았어요. 대신 나중에 청국장 떡볶이 10인분 사 주기 어때요?”
“청국장 떡볶이?”
“응? 쌤 청국장 떡볶이 안 먹어봤어요? 요 학원 앞에서 파는 건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조합이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걸 판다고? 사 먹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녀석은 재미 있다는 듯 헤살거리며 입을 열뿐이다.
“헤, 진짜 안 먹어 봤나 보네요? 아싸! 그럼 약속해요. 조용히 하면 청국장 떡볶이 10인분 ‘같이’ 먹기 어때요?”
그리곤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흐음…뭐 녀석에게 약간 미안하기 했으니…이 정도 고역쯤은 받아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뭐 돈 받고 파는 건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겠지.’
“알았어. 10인분이든 100인분이든 같이 먹어 줄 테니까. 입이 근질근질하더라도 당분간만 참자 알겠지?”
그러자.
“읍! 음음음음음!”
“뭐라고 말하는 거야?”
“넵! 알겠습니다! 헤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주의 영화’란 마치 작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감독이 영화의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전제된 영화로, 영화를 전적으로 감독이 갖고 있는 예술적 의식의 소산으로 간주하는 개념이야. 따라서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은 진지한 주제와 자유로운 양식을 좇아 개성적인 표현과 창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제작이 가능하지. 하지만 이 개념에는 아주 큰 맹점이 있어 그게 뭘까?”
“……음.”
“……오”
“……아.”
그들의 텐션은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영화라는 건 감독 혼자 찍는 게 아니라는 게 그 개념의 맹점…아닐까요?”
그래도 연아가 조용히 하기 시작하자, 몇몇 학생들이 강의에 참여하기 시작했지만…생각했던 것보다 참석률이 저조했다.
“…그래 맞아. 영화는 감독 한 사람의 작업만으로 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게 이 개념이 간과하는 점이야. 영화란 시나리오 작가, 촬영 기사 등 수 많은 사람들의 작업과 여러 제작 기술이 종합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한 편의 영화를 감독의 창작품으로 인정하는 작가주의 영화의 관점이 타당한 것인가하는 문제를….”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 상태인 것 같았다.
‘여기가 강의실이여 던전이여….’
물론 그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보아하니 지금도 하루 24시간 중 4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였으니까.
오히려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그들이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난 12년 동안의 시간과 부모와 사회의 기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마치 짐처럼 매달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이 세상이 게임이라면 [부담감 100%]라는 수치가 표시 될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물론 때론 부담감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이제 남은 기간은 단 10일. 이미 고갈된 육체적, 정신적을 쥐어짜 봐야 나오는 것은 혹사된 두뇌의 기름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지.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이 불안할 테니까.’
그러니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채찍이 아니라 적절한 휴식과 그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정리.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긴장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남은 10일간 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나는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쥐고 있던 분필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탁-
분필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놀란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책 덮어.”
순간.
“……???”
학생들의 얼굴에 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의문을 해소시켜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100번의 설명보다 1번의 경험이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다들 일어나서 10분 뒤까지 학원 주차장으로 모여.”
그러자.
“쌤? 어디 가요?”
연아가 나를 보며 물어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슬쩍 웃어보였다.
단기간에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는 데에는…대상의 눈앞에 대상이 원하는 가장 ‘달콤한 꿈’을 보여 주는 것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때, 학생들의 텅 빈 곳간을 잠시나마 채우기 위해선 그들이 가장 원하는 곳, 그들이 가장 원하는 꿈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더랜드로 갈 거야.”
학생들의 지친 몸에 활력을 심어 줄 마법의 땅.
오늘의 목적지는 강의실이 아니라 바로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