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89
189
189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1)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그리고.
2020년 11월 20일 목요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수많은 강사들, 들끓는 열기를 눈 안에 가득 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준비되셨습니까?”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강사들이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넵! 준비 끝났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흔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선생이라는 이름을 지키려 점잖을 떠는 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달랐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오늘은 바로, 수능이 있는 날.
지난 1년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물론 수능을 보는 것은 전국 70만의 고3, N수생들이었지만.
‘강사들도 마음 졸이지. 학생들 성적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니까.’
그러니 강사들이 이렇듯 불타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그들의 위상이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열심히 참여해 주시니 원장으로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강사들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각자 팀과 맡으실 학교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아린 팀장님?”
이아린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반듯한 자세로 서서 강사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최OO 선생님, 김OO 선생님, 오OO 선생님.”
“넵!”
“세 분은 강동중학교로 가 주세요.”
“넵!”
“그리고 이OO 선생님, 박OO 선생님, 김OO 선생님.”
“넵.”
“세분은 휘람고등학교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넵”
“다음으로….”
쉴 새 없이 불리는 이름. 강사들이 미묘한 웃음을 입에 걸었다.
하긴 이쯤 되면 대부분 서로 친한 사람들 위주로 같은 학교를 배정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수험생들의 멘탈을 최종적으로 케어하는 것. 학생들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갈 때 학생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원래 학생의 가족들이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 후배들이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학원이라고 못할 건 또 없지.’
사실 시간으로만 따지고 보면 학원 또한 학생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의지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생애 첫 시험을 앞둔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텅 빈 교문을 지나가는 것만큼 아픈 일도 없으니까.’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학생들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것도…아주 어마어마할 정도로, 이번 시험이 끝나고 나면 소라게 학원 원장이 미쳤다는 소문이 사해에 퍼질 정도로 통 크게.
그렇게 내가 이번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때.
“…마지막으로 오OO 선생님, 박OO 선생님은 경안 중학교입니다. 이상입니다.”
호명을 끝낸 이아린이 들고 있던 파일철을 덮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강사들을 빙 둘러보았다.
“각자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숙지하셨죠?”
그러자.
“넵!”
간결하게 대답하는 강사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행정 팀이 학생들의 명단과 사진을 나눠드릴 겁니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드리는 거니까 긴가민가하신 분들은 다시 한 번 확인해 두세요. 되도록이면 해당 반 학생들이 있는 학교로 해 놨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요…그리고 미리 말씀드린 대로 편지들 가져오셨죠?”
대부분의 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중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빨리 작성해 주세요. 아, 그리고 편지 써 오신 분들은…학원 측에서 마련한 선물에 편지를 넣어 주시면 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이아린이 눈치 좋게 일어나 교무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곧 다른 직원들이 학원에서 준비한 선물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선물가방마다 학생들 이름이 써져 있으니까 맞춰서 넣어 주세요.”
그런데?
편지를 넣기 위해 선물가방을 열어 본 강사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희게 웃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이 본 봉투 안에는…….
[벨기에 레오니다스(Leonidas) 초콜릿 소라게 에디션] [정읍 백옥순 명인의 수제 귀리 찹쌀떡 소라게 에디션] [제주도 위미 명품 감귤 황금향 소라게 에디션] [바른손 아날로그 수능시게 소라게 에디션].
.
소라게 학원의 학생들을 위해 특별 주문한 선물들이 정갈하게 포장되어 있을 테니까.
“원장님 이거 설마 분원 학생들한테도 다 돌린 겁니까?”
강사들 중 한명이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학생들은 우리 학원 학생들 아닌가요? 당연히 다 돌려야죠.”
순간, 강사들의 표정이 마치 망치에라도 맞은 듯 멍해진다.
선물 가방에 들어있는 선물들만으로도 제법 많은 금액이 들었을 것이란 것은 알아차린 듯했다.
‘하긴 많이 들긴 했지.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가격은 족히 들어갔으니까.’
사실 원래 이 정도로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이들처럼 초콜릿 몇 상자 사서 돌린 뒤 생색만 낼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난 1년, 기쁨, 슬픔, 고통, 희망을 함께해 온 이들과의 마지막을 그렇게 흐릿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지만…몸이 하나인 이상 전부 갈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이렇게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잠시 후.
강사들이 자신이 준비한 편지들을 선물 가방에 다 넣었을 때쯤.
“아, 맞다. 원장님. 그런데 각자 자차로 움직입니까?”
강사들 중 한명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나는 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 그럼 학원 버스로 움직이나요?”
“아닙니다.”
“그럼…?”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도착할 때가 됐네요. 다들 짐 챙겨서 밖으로 나가시죠.”
“…???”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 * *
널찍한 스타크래프트밴 안.
김연아는 초조한 안색으로 정리노트를 바라보았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정리노트가 필요 없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연아야 초콜릿 좀 줄까?”
김연서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김연아에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손을 덜덜 떨고 있는 동생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야, 언니. 난 괜찮아.”
김연아는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김연서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김연서의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수능이라는 이름의 주는 압박감에 소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휴우….”
김연아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그녀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예전 20군단 때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설치던 때였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웃고 떠들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절대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에 그녀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이번 시험에 좋은 점수를 맞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니 그녀의 상태는 자연 긴장 오브 긴장.
손발이 달달 떨리고 속이 울렁거리는 상태 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오늘 시험을 망친다면, 그래서 시험 성적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낮게 나온다면, 자신의 목표가 너무나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김연아 정신 차려!’
가족들은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수능이란 본디 자신과의 싸움.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가 시험이 잘 끝마치길 바라며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카톡-
김연아의 휴대폰이 잘게 울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죽상을 하고 있던 김연아가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빠르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순간, 김연아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가족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시를 곧추세운 고슴도치 같던 그녀가지금의…어미의 품에서 막 벗어난 배넷 강아지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대폰을 확인한 김연아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표변에 김연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연아야 벌써 가려고? 아직 시간 넉넉한데 좀 더 있다가 들어가지?”
“놉, 아직 안 들어가!”
“그럼?”
“쌤 도착했대!”
“…학교 선생님?”
“아아니. 준영 쌤! 엄마아빠언니! 나 거기 있다가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계세요!”
그리곤 누가 잡을 새라 빠르게 차 밖으로 튀어 나가버렸다.
“……”
그렇게 김연아가 차 밖으로 나가고 난 뒤, 잠시 서로의 얼굴을 살피던 연아의 아버지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나가 볼까?”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김연아를 시험장에 들여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연아는 아마 안 돌아올 모양이니까.”
다른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뒤.
끼익-
차 밖으로 나온 그들의 앞에.
[소라게]라는 이름이 크게 쓰여진, 리무진 버스가 멈춰 섰다.
“…….”
연아의 말을 들었을 때 기껏해야 학원 버스 정도를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버스를 올려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수능 날 아침 볼 것이라 생각해 보지 못한 광경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이 멍한 표정으로 버스를 올려다보고 있던 그때.
치익-
버스 문의 유압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그 안에서 김준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쌤! 이거 먹어도 됨요?”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안마 의자에 앉아 정리 노트를 보고 있던 김연아가 초코 푸딩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초코 푸딩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뭐 다른 사람 같았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걸 물어본 사람이 김연아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 옆에 있는 협탁에 그녀가 해치운 초콜릿들의 잔해가 마치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
음…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평소 김연아의 먹는 양을 생각하면 저 정도까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같은 날 당이 땡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흠…설마 초콜릿 좀 먹는 다고 큰일 나지는 않겠지?’
내가 적당히 먹으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아싸!”
김연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초콜릿을 아작 내기 시작했다.
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긴 하지만…….
‘괜찮겠지. 연아도 생각이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안마 의자에 주욱 누워 있는 학생들과 칸막이 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바로 대형 리무진 버스를 개조해 만든 휴게버스. 일명 ‘소라게 수능버스’ 안이었다.
처음 학생들을 케어하기로 했을 때 몇 가지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건강하게 시험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머릿속에 수능이라는 날이 고통스러운 날이 아닌 즐겁고 달콤한 날로 기억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나는 학생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아니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즐겁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
학생들의 피로를 풀어 줄 안마의자와 간단한 세면시설, 간단한 식사 및 간식거리, 호텔에서 제조한 최고급 도시락 등, 거의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는 버스를 준비했다.
교실 안에서 덜덜 떨며 차가운 귤을 까먹는 것보다, 편안한 안마 의자에 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집에서 나올 때 못 씻어서 찝찝했는데 개운하네요.”
“쌤! 으어 이 안마기 얼마에요? 우리 집에도 하나 놓고 싶다.”
“으아 초콜렛인데 별로 안 달아. 그런데 맛있어! 이게 무슨 맛이지?”
학생들의 즐거운 얼굴과.
“원장님 덕분에 푹 쉬네요. 감사합니다.”
“허허, 수능 날 이런 곳에서 쉬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역시 다들 소라게 학원, 소라게 학원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학부모들의 만족스러운 웃음, 둘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과분한 정도의 투자를 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지금 들은 돈은 내가 얻을 것에 비하면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들인 돈보다 훨씬 더 큰 것들이 곧 내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학생들의 편의에 신경을 쓰는 것이 옳았다.
올해의 파란은 그들에게서 시작될 테니까.
‘얼마 남지 않았어.’
* * *
그리고 잠시 뒤.
[8시 00분]입실 시간 마감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다녀오겠습니다!”
“으아, 만점 맞아 올게요!”
“쌤! 화이팅 해 주세요!”
학생들이 개운한 얼굴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화이팅! 다들 절대 포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