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93
193
193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5)
‘수능 만점자’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과학/직업탐구, 제2외국어로 이루어져 있는 대학수학능력 시험 중.
제2외국어 영역을 제외한 4가지 과목.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과학/직업탐구 영역의 모든 문제(총 190문제)를,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맞힌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뭐 단순하게 보면 수능만점자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시험을 잘 본사람. 혹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민국’이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대학의 당락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수능만점자라는 이름이 가지는 위상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위상이 어느 정도냐 하면.
[2010년 수능 만점자 ‘오OO’을 키워 낸 학원, XX학원! 입시설명회] [2011년 수능 만점자가 사용한 독서실 자리(15만원 추가)] [2012년 수능 만점자 최OO의 엄마가 만드는 수능 만점 김밥!]수능에 만점자가 다녔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만점자가 나온 초, 중, 고등학교, 학원, 독서실 모두에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물론.
[2013년 수능 만점자. 최OO양 서율대 법대 ‘수석’ 합격] [2014년 수능 만점자의 과외, 과목당 300만원 O1O-XXXX-0192] [2015년 수능 만점자 김OO 씨 국내 대기업 10곳 모두 합격]만점자 자신은 다른 수험생들과는 차별화된 타이틀을 획득.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우리나라의 3연 주의 조차 가볍게 씹어 먹어버리며 성공행 특급열차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수능 만점이 뭐라고…‘만점자’ 결국 거짓으로 밝혀져 ]지난 2002년 11월 6일 실시된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채점 결과 대전 한밭고 3년 김치국(18)군이 이과에서 만점을 얻어 인터넷 상에서 연일 화제가 되었다.
…(중략)…그러나 김군의 이 같은 성적이 사실 성적표를 고의로 조작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만점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수능 만점자의 삶을 동경, 거짓으로 수능 성적표를 위조해 자기만족에 빠지는 사람들마저 나왔을까.
그러나.
‘0.075%’
수능 만점자라는 타이틀을 따고 싶다고 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역대급 물수능(만점자 66명)이라는 칭해지는 2001학년도 수능에서 조차 전체 수험생의 0.075%(총 인원 87만 2천 297명)만이 수능 만점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을 정도로 수능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잘 나가는 학원이라고 할지라도 한 자릿수 이상의 수능 만점자를 배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매해 한두 명의 수능 만점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니까.’
하지만 올해.
[언어영역 100] [수리영역 100] [외국어 영역 100] [한국사영역 50] [사회탐구영역 100]
[언어영역 100] [수리영역 100] [외국어 영역 100] [한국사영역 50] [사회탐구영역 100]
[언어영역 100] [수리영역 100] [외국어 영역 100] [한국사영역 50] [과학탐구영역 100]
.
.
소라게 학원에서 20명이 넘는 만점자들이 나오면서 그 오래된 불문율은 깨지고 말았다.
‘소라게 학원 수능 만점자 23명 배출!’
그리고 그 반응은 놀라웠다.
[충격! 올해 수능 합격자 33명 중 ‘23명’ 한 학원 출신!] [S학원, 23명의 만점자를 만들어 낸 비결은 과연?] [33명의 합격자 전원 ‘S 아카데미의 강의 도움이 됐다’고 밝혀!]신문사들은 연일 소라게 학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대서특필. 소라게 학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키워 나가고.
‘소라게 학원이죠? 혹시 지금 자리 있나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초등학교 3학년도 받아 주시면 안될까요?’
‘거기 다니면 우리 애도 수능 만점 맞을 수 있을까요?’
학원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통씩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덕분에…
[모착사 : 허…이게 말이 됨?] [팅커벨 : 보고서도 안 믿겨진다…] [사랑읭 요정 : 미친…]그동안 지속적으로 소라게 학원을 깎아내리던 댓글 조작단의 공격 또한 마치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버린 듯 잠잠해 졌다.
물론.
[모착사 : 수능 만점 23명? 이거 정말 사실인가요? 정확하게 팩트 체크된 자료들만 가져오시길.] [팅커벨 : ㅇㅇ 이번 만점자 모두가 소라게 아카데미 강의를 들어 본 적 있다는 건 기사 뇌피셜일듯 ] [사랑읭 요정 : 솔직히 23명 전체가 한 문제도 틀리지 않은 게 확실한지 한번 확인해 봐야함. 가끔 한두 문제 틀려 놓고도 만점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음]아주 가끔씩 그들이 올린 것으로 판단되는 댓글들이 보이긴 했지만…확실히 그 이전과 같은 화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수능 만점자 23명이라는 것이 주는 충격이 제법 큰 것 같았다.
‘하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해봐야 자기들만 욕먹고 만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났을 때 그 동안 고생을 한 학생들을 모아 간단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경축! 소라게 학원 3학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소라게 학원만의 졸업식이었다.
하지만 이 졸업식에는 한 가지 특별한 요소가 숨어 있었다.
그것은 이 졸업식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가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
평소에는 차마 시도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신한 채 졸업식을 진행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내 앞에는…….
보노보노처럼 얼굴을 파랗게 물들인 사람.
알파카 분장을 하고 사족보행을 하고 있는 사람.
하얀 속옷을 입은 채 피를 뚝뚝 흘리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분장을 한 학생들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은솔쌤 저랑 사진 찍어요!”
“저랑도요! 찍어 주세요!”
“으, 저 먼저 찍으면 안 될까요?”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특이한 방법으로 고3 수험생들의 졸업을 축하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는 그저 학원에 모여 간단하게 기념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을 앨범화한다는, 아주 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졸업을 축하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으 노잼.’
‘뭐?’
내 계획을 들은 김연아가 졸업식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아…아니 쌤 생각도 나쁜 건 아닌데…음, 솔직히 말해서 넘 평범할 것 같아서요.’
‘그런가?’
‘넹. 아무리 그래도 소라게 학원에서의 마지막인데 넘 평범한 건 좀 그렇죠…흐음 쌤 그러지 말고 이러는 건 어떨까요?’
‘어떤?’
‘그러니까 심심하게 그냥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좀 재미있게 찍어보는 거죠. 예를 들어…의정부 고등학교 애들처럼?’
‘의정부 고등학교?’
‘넹! 아 왜 그 학교 애들 졸업 사진 찍을 때마다 웃긴 컨셉으로 많이 찍잖아요. 어때요? 나름 괜찮은 생각 아니에요?’
‘흐음….’
그리고 그 결과.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현재 소라게 학원 안에는.
알파카 3마리.
보노보노 2마리.
조현신 골키퍼 8명.
국정 농간하신 분 7명.
캡틴 조선 5명.
오크전사 7명.
윗동네 지도자 10명 등.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이나 귀여운 동물들, 그리고 각종 매체에 나오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말 그대로 던전과 같은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 단연 압권은…….
“다들 비켜! 준영 쌤 나랑 같이 사진 찍어요!”
구미호 복장을 한 채 내게 달려들고 있는 김연아였다.
“…….”
그녀의 서슬에 내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어맛! 뜨거라’ 하는 표정으로 분분히 물러섰다.
아무래도 그녀의 저돌적인 돌격을 받아낼 만한 사람은 없어보였다.
“헥헥, 쌤! 아직 아무랑도 사진 안 찍었죠? 만약에 찍었으면 배신이에요.”
나는 말없이 내 앞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아홉 개의 꼬리.
머리 위에 솟아 있는 탐스러운 두 귀.
제법 정성들여 제작한 것이 분명한 옛 의복 등.
‘혹시 평소에도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고퀄리티의 코스프레, 아니 단순한 코스프레의 층위를 넘어 ‘본인등판’에 한없이 가까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이래서 하자고 그랬구만.’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왜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못견디겠어요?”
김연아가 잔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녀 나이 또래 학생들에겐 제법 인지도가 있는 캐릭터인듯 싶었다.
하지만 김연아가 꼬꼬마 시절인 때부터 그녀를 봐온 나였다.
이 정도의 잔망은 이제 귀여운 정도였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뭘로 변장한 건지 궁금해서.”
그러자 내 표정을 본 김연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헐 아니 쌤! 딱 보면 몰라요? 구미호잖아요 구미호!”
“아, 그게 꼬리였어? 난 또 무슨 총채를 아홉 개나 걸어놨나 했지.”
“으…어제 하루 종일 꼬리 만드느라 힘들어 죽을 뻔 했다구요!”
그리곤 평소의 모습 그대로 방방 뛰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그녀가 달려들어 내 옆구리를 꼬집는 것을 받아 주었다.
‘이제 마지막일 테니까….’
* * *
잠시 뒤.
“자, 만점자들만 모여 봐! 단체사진 하나 찍을 테니까!”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강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으앗! 쌤 그럼 갔다 올게요!”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학생들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일어나, 각자의 성적표를 손에 든 채 교무실 한쪽으로 다가갔다.
“자, 사람이 많으니까 최대한 밀집해서 서. 그래. 프랑켄슈타인 너 좀 옆으로 가.”
“저요?”
“아니, 너 말고 니 앞에 있는 녹색 프랑켄말이야. 그래 너. 옆으로 좀 더 가 봐.”
“이렇게요?”
“오케이 스탑. 좋아. 자, 그럼 찍을 테니까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들 있어.”
“네.”
“자, 그럼 찍는다. 하나, 둘, 셋! 김치!”
“김치!”
찰칵-
그렇게 내가 잠시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때.
띵동-
커뮤니티 사이트의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뭐지?’
나는 가벼운 기대를 가지고 쪽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곧.
[모착사 : 저…원장님.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요?]내가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내용의 메시지, 반격의 서막이 되어 줄 무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제 준비한 칼을 빼 들어 나를 공격한 적들을 단죄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