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95
195
195화 악의 꽃 (2)
“다른 팀 사람들 인적사항. 그리고 그 팀한테 작업 당한 사람들 자료를 나한테 가져오는 거지.”
내가 말을 마친 순간,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다들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 말이긴 하니까.’
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힘들 것 같아?”
그러자.
“그, 그런 건 없어요.”
“맞아요. 그런 자료는 저희가 못 다뤄요.”
“명호 형 개인 자료에서도 못 봤어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듯, 7인의 배신자들이 정신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말로?”
“네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저희가 가져온 자료가 저희가 알고 있는 전부에요.”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거에 제 손모가지도 걸 수 있어요.”
그들의 표정이 얼마나 절절해 보이는지, 웬만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약해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이라도 내게 빈틈이 생긴다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 옆구리를 찔러 버릴 만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얽힌 관계, 두려움으로 맺은 약속이 거의 그렇지.’
그러니 이런 일을 진행할 때는 일정 이상의 감정은 끌어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지금 있는 자료만 가지고 경찰서로 갈 수밖에. 그런데 알고 있지? 지금 내가 이거 들고 가면…너희들 큰일 난다는 거?”
순간, 쥐떼들의 얼굴이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사실 2010년 12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통해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댓글 조작단을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소위 ‘미네르바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 이후 해당 법률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폐지되면서, 댓글 조작단에 대한 규제가 그 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다.
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들이 내게 댓글 조작 정황을 들킨 것에 불과하다면.
그들의 얼굴이 지금처럼 사색이 될 이유가 없었다.
‘증거가 없다면 처벌은 거의 불가능 하니까.’
하지만 그들은…이미 내게 자신들의 목숨 줄을 맡겨 버린 상태였다.
그들이 내게 넘긴 자료들 중.
댓글 조작 견적서와 계약서.
주고받은 이메일.
매크로 이용 내역서.
그리고 일간, 주간, 월간 개별 보고서 같은 자료들만 있다면.
그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법 복잡하긴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물론 그들도 이런 법률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어 실감은 잘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자기 학교 학생증을 고스톱으로 딴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들이 별을 달고 싶어 안달이 난 이상성애자가 아니라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고소미’를 면할 수 있을지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댓글 조작을 해도 할 테니까.’
하지만 돈이라는 놈의 마성이란 본디 이성보다 더 강한 것.
돈에 홀린 사람은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뭐 그게 아니라면 지들 손으로 나한테 이렇게 지들 목줄을 맡기진 않았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마치 꼬리를 만 개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7인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그들은…이미 애저녁에 모든 반항을 포기한 것 같았다.
이렇게 순한 자들이 인터넷 상에서는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상대를 말려 죽였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소름끼쳤다.
나는 솟아오르는 혐오감을 애써 억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택해. 이대로 사이좋게 경찰서 갈래? 아니면…내 말대로 다른 팀까지 자료 찾아올래? 선택은 너희들 몫이야.”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러운 눈으로 서로의 흘끗거리며,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니가 먼저 말해.’
‘아니야 니가 먼저 말해.’
‘내가 왜? 니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잖아.’
‘뭐? 야 니가 언제 형 대우 해 준적 있냐?’
‘하, 형이 형다워야 형이지. 이 기회에 형다운 모습 한번 보여 줘 봐. 그런 내가 오늘부터 형으로 대우해 줄 테니.’
씁쓸하고 또 한심한 모습이었다.
‘이런 사람들한테 당한 사람들이 불쌍해지네.’
하지만 그렇게 몇 분쯤 있다 보니, 어느 순간 그들의 의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누군가 총대를 멜 때까지 조용히 ‘존버’하겠다는 것.
그러나 누구 한 명이라도 총대를 멜 각이 나오면 그 즉시 바로 그에 편승해 움직이겠다는 것.
그렇게 해서 나중에 문제가 될 여지를 남겨 두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었다.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디 가나 조별과제가 문제구만.’
그렇다면 조별과제를 개인과제로 바꿔 줄 필요가 있었다.
“다들 눈 감아.”
그러자 쥐떼들이 떨떠름한 낯으로 눈을 감았다.
“경찰서 가고 싶은 사람은 손 들고, 가기 싫은 사람은 손 내려.”
* * *
“제기랄.”
댓글 조작단 5팀의 핸들러 박명호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혹여 타겟에게 걸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작업을 해 온 것이 무색하게…….
[충격! 올해 수능 합격자 33명 중 ‘23명’ 한 학원 출신!]단 한순간에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X발 23명이 말이나 되냐고.”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소라게 학원에서 자신에게 커다란 엿을 날려 준 덕분에.
‘반명호 이 새끼야!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니가 좀 후딱후딱 처리 했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진 안 왔을 거 아니야!’
아침부터 지금까지 탈탈탈탈 멘탈을 털린 것은 물론.
‘뭐 그럼 본사로 영전은 못하는 거냐고? 야 이 새끼야 지금 그게 문제야? 잘못하면 회사가 터지게 생겼는데? 너 이번 일 확실하게 처리 못하면 영전은 고사하고 핸들러 자리도 유지 못할 테니까 그리 알아!’
자신의 처분에 대한 본사의 최후 고지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X발, 내가 뭐 하느님도 아니고 학생들이 시험 잘 봐서 만점 맞은 걸 어떻게 하라고!”
마음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너 이번 일 똑바로 책임지기 전까지는 못 움직이는 거 알지? 그러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이번 일 확실하게 끝내!’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이 안전장치 격으로 본사에 묶여 있는 만큼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욕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모든 걸 다 벗어던지고 야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좀 널널하게 지낼걸.”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다 소라게 학원, 아니 김준영의 탓이었다.
만약 김준영이 다른 사람들처럼 조용히 작업을 당했다면.
그래서 어느 정도 타격을 입고 찌그러졌다면.
그랬다면.
그는 이번 일을 끝으로 본사로의 영전, 해피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을 테니까.
“후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팀 사람들과 합동으로 김준영을 공격하는 것.
보다 더 넓고 깊은 그물을 쳐 소라게 학원이라는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
그것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 살풀이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려면, 잔뜩 풀어진 멤버들을 한번 쯤 조여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내 화도 풀고 말이야.’
그러나.
“야, 다들 집합해!”
그가 패기롭게 외치며 사무실 문을 연 순간.
“…….”
그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그의 눈앞에…텅 비어 있는 사무실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놈들이 다 어디 갔어?”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멤버가 다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요즘 분위기가 안 좋은 걸 그들도 알고 있는 만큼, 반 이상은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염병….’
그런데 그때.
“……어, 형 오셨어요?”
사무실 구석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댓글 조작단 5팀의 공인 오타쿠인 박오후였다.
순간, 정신을 차린 반명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야, 다들 어디 갔어?”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박오후가 가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게…진철이는 아까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나갔고…정수랑 영호는 피시방 갔어요. 그리고…대현이는 뭐라더라? 아 맞다 소개팅 어플에서 만난 여자애 만나러 간다고….”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보아하니 다들 자신이 나가자마자 이때다 싶어서 튀어나간 듯 했으니까.
‘젠장, 어이가 없구만.’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녀석, 박오후는 왜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박오후라면 시키는 일 이외의 일은 잘 하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넌 왜 안 나갔어?”
“저요? 전 뭐 약속도 없고…아직 다 못 본 애니도 있어서요. 그리고 뭐 나가 봐야 돈밖에 더 쓰겠어요?”
“…그러냐.”
반명호는 한심한 눈으로 박오후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런 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런 이들이 나았다.
‘적어도 이런 일로 속 썩이지는 않으니까.’
“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젠 정말 진심으로 멤버들을 한번 단도리를 쳐야 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소라게 학원을 작업하기는커녕 이 사무실이 먼저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
‘이번에 확실하게 잡아 놔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그는 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비상연락망을 가동한다면 30분 이내에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지금은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지금은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이 새끼들이 정말 미쳤나….”
사무실을 나간 멤버들 중 단 한 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 그와 멤버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곧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고 전화기를 쥔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박오후가 겁에 질린 얼굴로 쿰척쿰척 뒤로 물러섰다.
금방이라도 반명호의 입에서 일갈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박오후가 걱정했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참자…참자…참자.’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반명호는 멤버들의 전화에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리곤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들 짐도 그대로 있는 상태. 언젠가는 다들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시간.
‘개새끼들 다 죽었어.’
1시간 30분.
‘다들 빠따 10대씩은 쳐야지.’
2시간.
‘…왜 아직도 안 와?’
2시간 30분.
‘좆됐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순간, 짙은 불안이 그를 엄습했다.
‘혹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그가 갑자기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의 컴퓨터를 뒤졌다.
그러자 곧 충격적인 진실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소라게 학원 견적서 (2020/12/20/10:12 자료 복사)] [이메일 내역 압축 파일 (2020/12/20/10:12 자료 복사)] [일간 개별 보고서 압축파일 (2020/12/20/10:12 자료 복사)].
.
“…….”
그는 잠시 말을 잊은 표정으로 자신의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가자마자 복사된 중요 파일들, 그리고 사라진 멤버들.
그것이 뜻하는 바로 단 한 가지뿐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배신’
그로서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말. 피하고 싶었던 말, 끝까지 거부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 X발.”
반명호는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만약 그와 박오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배신을 한 것이 맞다면…그런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 끝났다…다 끝났다고!’
그런데?
그렇게 그가 절망 속에 허덕이고 있던 그때.
덜컥-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차진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차진철의 얼굴을 확인한 반명호의 얼굴에 반가움과 분노가 뒤섞였다.
‘혹시…?’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차진철! 야 이 새끼야!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온….”
하지만 그는 미처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형. 살고 싶으면 우리 말 들어요.”
위협적인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차진철과 그 외 다른 멤버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