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96
196
196화 악의 꽃 (3)
수능이 끝난 후.
2021학년도를 준비하는 K에듀 사업기획부.
올해 초 K에듀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지연은 자신의 사수인 박진석 대리에게 다가가 슬쩍 입을 열었다.
“박진석 선배님.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아니요. 너무 바빠서 그 소문 못 들으셨는데요? 김지연 사원님은 별로 안 바쁘신가 봅니다? 그런 소문이란 것도 다 듣고 다니시고?”
“윽, 물론 저…저도 바쁩니다. 그런데…전 선배님이 소문에 뒤쳐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 되서…그게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게 극존칭을 사용하며 허둥지둥 대는 그녀를 본 박진석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어린다.
“농담이야 인마. 뭘 그런 걸로 허둥대고 있어?”
“아, 농담이셨습니까? 휴, 다행입니다 전 또 화가 나신 줄 알고….”
“야이 그런 걸로 화가 나겠냐.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화만 내는 줄 알겠다?”
“그럼 아니셨습니까? 왜 맨날 식사 때마다 화를 내시는….”
그녀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하자, 박진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야 인마 그건 회사 밥이 더럽게 맛없으니까 그런 거지. 그건 화낸 걸로 카운트 하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아무튼 나도 소문 같은 거 좋아하니까 앞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바로 재깍재깍 보고하도록 해 알았어?”
“넵! 알겠습니다!”
“…다 좋은데 그 극존칭 좀 안 쓰면 안 되겠냐?”
“그건…다른 선배들이….”
“에휴,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그런…아무튼 내 앞에서는 괜찮으니까 앞으로 편하게 말해.”
“네….”
“그래. 그나저나 ‘그 소문’이라는 건 도대체 뭐야?”
“아, 그게…왜 저번에 저희 회사가 국책사업 수주하려하다가 잘 안된 적 있잖습니…아니 있잖아요?”
김지연의 말을 들은 박진석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고생이란 고생은 직살 나게 하고 물만 먹었을 때?”
“네 그때요.”
“뭐 기억나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알아서 이가 갈린다니까? 아니 몇 주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죽어라 일했는데 결국 뭐? 2등? 1억 원 차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리곤 한참동안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였던 것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그의 투덜거림을 지켜보는 김지연의 얼굴에 난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박진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에휴, 됐다. 내가 애 앞에서 뭐하는 짓인지. 근데 그게 왜?”
“그게 그때 그 저희 회사 대신 사업 수주한 회사 있잖아요? 왜 그 소라게 학원이요.”
“아, 거기 알아. 왜 안 그래도 요즘 많이 기사에 나오더만 이번에 수능 23명 만점 나왔다고. 허 참 진짜 보면서도 안 믿기더라. 그런데 거기가 왜?”
“글쎄 이번에 거기 그 회사가 인터넷 댓글 조작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박진석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허 참 별일이네? 아니 만점자만 23명인데 어느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해? 솔직히 타이밍이 너무 안 좋잖아?”
그의 말을 들은 김지연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게…아무래도 저희 회산 것 같아요.”
“뭐?”
박진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김지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식상 그녀가 말한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지연이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입을 열었다.
“그게 정확하게는…최 부장님 쪽 사람들이….”
순간, 박진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쳤네.”
“네?”
“아니 최 과장이 부장 달더니 미친 거 같다고. 허, 지금 이 타이밍에 뭐? 댓글 조작? 지랄 옆차기 하고 자빠졌네. 왜 죽고 싶으면 지 혼자 한강 다리 가서 홍동백서 깔아 놓고 뒤질 것이지 왜 굳이 신성한 회사에서 그 지랄을….”
극렬한 디스.
부서장에 대한 평가치고는 무척이나 강렬한 말들이었다.
박진석에 말을 들은 김지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선배!”
“왜?”
“목소리가 너무 커요!”
그리곤 부장실을 향해 턱짓하며 제 손으로 귀를 가리킨다.
혹여 들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투다.
박진석은 전전긍긍한 김지연의 표정을 보고 슬쩍 미소를 입에 물었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게 기꺼운 것 같았다.
하지만.
“뭐 어때 사실인걸.”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장난기는 짙어질 뿐이었다.
그러자 김지연이 도끼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자꾸 그러시면 다시는 말 안 할 겁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조심할게. 원 후배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네.”
“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가….”
“됐어 인마. 나도 니가 뭔 이야기 하는 건지 아니까. 그나저나 이거 큰일인데?”
“네? 왜요?”
“아니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 회사 규모가 있는데.”
“허허, 김지연 사원님 아직 모르시나 본데 원래 ‘설마?’하는 순간이 마지막 기회에요.”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장난기 하나 없는 그의 표정을 본 김지연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그러면 어떻게 해요? 저 이 회사에서 짤리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짜식 넌 사수 하나 잘 만났다고 생각해라. 안 그래도 요즘 컨택이 오는 데가 하나 있었는데 너도 데려갈 테니까.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사람 속고만 살았나.”
“휴 다행이다. 선배 고마워요. 전 영락없이 집에서 쫓겨나는 줄 알고….”
“대신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뭔데요? 말씀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무조건 할게요!”
“진짜? 후회하지 않겠어?”
“…음…이, 이상한 건 아니겠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슬쩍 몸을 가리는 모습이 자기가 먼저 이상한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별다방 자바칩 프라푸치노.”
“네?”
“커피 사라고.”
“에이 뭐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잠시 뒤, 그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 * *
문 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부장실 안에 있던 사내. K에듀의 사업기획부 부장 최귀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염병, 이놈의 회사는 비밀이 없어요 비밀이. 아니 뭐 사업 하나 하겠다는 데 이렇게나 입들이 많으니. 에잉.”
영업부 과장이었던 그가 사업기획부의 부장으로 폭풍 영전한지 오늘로 딱 3개월 째.
가뜩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와중에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나마 있던 의욕마저 팍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최귀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만큼, 지금이 사업을 진행하기에 좋지 않은 타이밍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때문에 점점 자신에 대한 부서내 사람들의 평가가 안 좋아 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원래 있던 부서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하겠지.’
그를 부장자리에 올려놓은 사람,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후, 그때 부장 자리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숨을 내쉰 최귀화는 자신이 처음 부장 직함을 달고 이곳에 온 날을 기억을 떠올렸다.
3개월 전.
[지금 당장 사업기획부 부장실로 올 것. 부이사장]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이곳에 왔을 때. 그는 최정순 부이사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
‘최귀화 과장님. 사업기획부 부장 자리 어때요? 생각 있어요?’
만년 과장에 머물러 있던 그에게 K에듀의 사업기획부 부장 자리 주겠다는 것. 그것이었다.
꿀꺽-
제안을 받은 그 순간, 그는 입 속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최정순이 제안한 자리가 그가 지금까지 근무한 영업부의 부장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음직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부장소리 듣는 날이 오는구나.’
문제는…최정순 부이사장이 제안을 한 그 자리에 전임자인 김형로 부장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
김형로 부장의 텅 빈 눈동자를 본 순간, 쉽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그게….’
그러나 애초부터 그의 의지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흐음,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그 사람은 오늘부터 외근직으로 일하기로 했으니까.’
최정순 부이사장의 말.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였으니까.
그녀는 반론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때문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해서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자신과 같은 만년 과장의 목숨 따위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부장 모가지도 날아가는 판국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약간 기대가 되기도 했다.
비록 최정순 부이사장의 말 한마디에 바로 날아가는 자리이긴 했지만…어찌 됐건 부장은 부장.
자기보다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만 조심한다면 자신의 부서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박 차장 너 이 새끼 죽었다고 복창해라.’
그러자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도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럼 최 부장님. 첫 번째 과제를 드릴게요. 무슨 방법을 사용해도 좋으니 소라게 학원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제 귀에 들리지 않게 하세요. 대신 실패는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정신 단단히 차리시고요.’
최정순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목덜미가 선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 깃들어 있는 독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불명예 퇴직. 외근직으로 좌천.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퇴사.’
역대 부장들의 말로가 차츰차츰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왜 그런 짓을…차라리 만년 과장으로 썩는 게 낫지.’
미몽에서 깨어난 그는 최정순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가 막 입을 열기 위해 고개를 든 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내려다보던 최정순의 눈빛.
마치 보도블록 사이에 웃자란 잡초를 바라보는 것 같은 무미건조한.
그동안 수족처럼 움직이던 사람을 쳐낸 이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본 순간.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그물에 걸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후….’
그렇게 부장직을 받아들인 그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소라게 학원을 몰락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이 날아가고 만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댓글 조작단’
종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던 댓글 조작을 체계화시켜, 여론조작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자들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댓글 조작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김형로 부장이 소라게 학원을 견제, 공격하려 했을 때에도 그 나름의 댓글 조작을 사용했었으니까.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인력’
‘업계 1위라는 네임밸류’
자신이 찾아낸 댓글조작단의 실력에 비한다면, 김형로 부장이 끌어들인 댓글조작 인력들의 실력은 갓난아기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 실력이 어느 정도냐면…….
[소라게 아카데미 8월 시장 점유율 55%] [소라게 아카데미 9월 시장 점유율 56%] [소라게 아카데미 10월 시장 점유율 48%].
.
그동안 끝을 모르고 올라가던 소라게 학원의 시장 점유율이 주춤거릴 정도?
덕분에 한동안 최귀화의 입가에선 웃음이 마를 날이 없었다.
‘역시 업계 1위는 다르구만.’
분명 실패했을 때의 위험성이 크긴 했지만, 그만큼 성공했을 때의 급부도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말했었던가.
[충격! 올해 수능 합격자 33명 중 ‘23명’ 한 학원 출신!]예기치 못한 상황이 터져 버리면서 최귀화의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렸다.
만점자만 23명.
소라게 학원이라는 이라는 거대한 적이 그의 눈앞에서 폭렙을 해 버린 것이었다.
때문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실정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동안의 공(功)이 모조리 과(過)로 치환될 상황이었으니까.
‘해외로 튀어야 하나…?’
하지만 그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부장님. 저희 믿으십시오. 저희가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겠습니까? 그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불가능 한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염려 놓으시고 저희의 연락을 기다리십시오’
댓글 조작단 사람들의 호언장담.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 그동안 돈을 얼마나 처들였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는 거지. 좋아. 믿어 보자.’
그러나.
“빌어먹을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그 믿음은 오래지 않아 흔들렸다.
그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들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오늘만 해도 벌써 여러 차례 댓글 조작단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전화 연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만큼, 그의 불안과 초조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이 불길한 상상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혹시 이놈들…배신 때리고 먹튀 하려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 역사와 전통이 오래됐다고 하더라도 ‘댓글 조작단’의 정체성은 범죄자 집단. 애초부터 큰 신뢰를 줄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생각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어…어떻게 하지?’
그렇게 최귀화가 댓글 조작단에 대한 신뢰를 잃어 가고 있던 그때.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귀화는 떨리는 눈으로 휴대폰 액정을 확인했다.
그러자.
[반명호 팀장]그가 바라마지 않던 이의 이름이 액정 위에 떠 있었다.
순간, 차귀화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괜히 의심했구만.’
그는 가벼운 미소를 입에 문 채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이고 부장님 죄송합니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 제가 잠깐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죽을죄를…]수화 너머에서 마치 간이라도 빼어 줄 것 같은 비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