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
2
002화 내 손 안의 지푸라기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어젯밤 그 이상한 노인이 내 체크카드를 가져갔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서 준비를 해 봐야 더 나을 것도 없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채비를 마쳐 학원으로 향했다.
“아······!”
허둥지둥 나왔던 탓인지,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외장하드를 집에다가 두고 와 버렸다는 사실을 컴퓨터를 킨 후에나 알았다.
“하아, 재수도 없구만······.”
그나마 아침 일찍 온 것이 다행.
미친 듯이 자료를 정리해서 수업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백업은 그 노인이 준 걸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오전 내내 자료를 만들어, 어제 노인에게 받은 USB를 연결하자.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용량 부족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거의 1테라를 넘어가는 용량이 문서파일로 꽉 차 있다.
“······?”
아니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1테라짜리 USB라니······.
불쑥 튀어나오는 의심을 감추며 [중학교] 폴더를 클릭해 보자,
“···이게 뭐야?”
[국어] [수학] [영어].
.
.
그 안에는 각 학교, 모든 교과의 이름이 쓰여 진 폴더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중학교의 이름을 죄다 모아 둔 듯하다.
국어부터 시작해서 영어를 지나 수학, 사회, 심지어 수행평가 같은 자잘한 시험지들까지.
어느 멍청한 학원 강사가 자기 자료를 노인에게 빼앗겼나 싶다.
“어떤 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집증이 있나? 취미가 좀 고약하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학교 시험지들을 여기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이미 한참 전에 지나 쓸모도 없는 기출문제들을 뭐 하러 이렇게 방대하게 수집해 놨지?
나는 본능적 호기심으로 여러 폴더 중 [국어], [OO중학교] 쓰인 폴더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1997년, OO중학교, 국어, 1학기, 중간고사].
.
[2037년, 2027년, OO중학교, 국어, 2학기, 기말고사]폴더 안은 빼곡하게 정리된 시험 문제 파일이 가득했다.
각 년도, 각 학기, 시험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시험 문제지들.
“미친··· 이런 게 가능한가?”
보면서도 안 믿긴다. 말도 안 된다.
그 많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의 모든 내신 시험문제 유형들을 모두 다 정리한다는 것은.
심지어 올해뿐 아니라 미래 연도의 기출문제가 있다니.
이건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곱빼기다.
홀린 듯이 일어나 책상 위, 시험 문제를 정리해 둔 서류철을 찾아보았다.
바로 전 학기의 OO중학교 시험문제.
스륵. 스륵.
시험지를 훑던 내 눈은 점점 커졌다.
“······!”
똑같았다. 선생님이 무심코 넘겼던 지문에 오타부터, 학생들의 이의 제기로 두 개의 답이 인정되었던 19번 문제까지.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문제들이 답안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다.
설마.
혹시나 싶어 가장 오래된 시험문제를 찾기 위해 책상 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시험들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 정도야 인력과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할 일 없지 않고서야 누가 하겠냐만은···
그러나
내가 본 시험문제 폴더 중에는 분명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험문제를 정리해 놓은 폴더가 있었다.
‘만약··· 만약 저 파일들이 모두 진짜라면···’
꿀꺽. 저도 모르게 삼켜지는 침과 떨리는 손.
나는 조심스럽게 아직 오지 않은 날짜의 폴더를 향해 커서를 뻗었다.
그때,
-딩동댕!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 * *
시험대비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다.
정신은 계속 주머니 속 USB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돈 받고 일하는 건데 수업을 대충 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 각 학교 교과서에 맞춰 만들어 놓은 문제지를 천천히 체크해 나가는 아이들 사이로 말랑거리는 목소리 하나가 새어나왔다.
“선생님~ 선생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연아.
이 학원.
아니, 인근에 있는 다른 학원들 사이에서도 김연아는 유명한 학생이었다.
순하게만 보이는 외면과 달리 별로 안 좋은 쪽으로······.
“이 학원 진짜 재미없어요! 휴게실에 자판기 하나 없고, 그치?”
맨 앞자리에 몰려 앉은 여자 아이들 사이로 김연아의 목소리가 스며들자
“네, 쌤. 진짜 재미없어요!”
“첫사랑 얘기나 해 줘요.”
꺄르르-
간신히 잡아 놓았던 분위기가 단숨에 부스러졌다.
“얘들아. 너희 내일 시험이야.”
굳은 목소리로 말해 보지만
“에이 어차피 우리한테는 다른 선생님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뭐, 선생님만 힘들걸요? 그러지 말고~ 제가 엄마한테는 잘 말해 드릴 테니까 그냥 놀아요, 우리!”
씨알도 안 먹힌다.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학생들.
소위 20군단.
모든 과목 평균 20점을 찍고 그 위로는 절대 올라올 생각을 안 하는 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연아는 학생들을 자신의 점수대로 끌어내리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아이였다.
우리 학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원들에서도 모두 다 감당하지 못하고 내보낸, 우리학원에 와서도 난다 긴다 하는 선생들 모두 고개를 저으며 포기한 대단한 강적.
그러나 김연아가 무서운 점은 절대 혼자 행동하지 않는 다는 점.
언제나 분위기를 몰아갈 뿐. 총알받이가 되는 것은 다른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학원에서 대놓고 기피하기도 애매했다.
더군다나 김연아의 아버지는 이 지역 토박이 출신의 시의원이고, 어머니는 인천 시내에만 십 수 개의 유치원을 경영하는 지역 유지였으니까.
하지만 워낙 까다로운 성격 탓에 은연중에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학원계의 계륵이었다.
원장은 항상 이런 아이들을 나에게 배정하고는 했다.
“에휴. 그래 쉬자. 사람이 먼저니 쉬고 싶으면 쉬어야지.”
내가 받아주겠다는 뉘앙스로 말하자, 대화에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아이들도 고개를 들고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어 진짜요 쌤? 아 진짜 대박! 뭐 하고 놀까요? 폰 써도 되죠??”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진하게 웃었다.
“물론이지!”
라고 입을 열기가 무섭게 애들은 저마다 주머니에 손을 향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나눠 준 시험지 다 풀고 나서. 마음껏!”
순간 터지는 분노의 목소리들. 하지만 난 흔들리지 않았다.
탁탁탁!
칠판을 쳤다.
“조용! 계속 시끄럽게 굴면 수업 안 끝내고 보충까지 빡세게 달린다! 어차피 풀 문제는 많으니까.”
아-
소란이 잦아들고, 아이들이 한숨을 쉬며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김연아만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수업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드르륵.
“김 선생? 나 좀 보죠?”
교실 앞문이 열리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원장이었다.
순간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이들에게 시험문제를 풀라고 말하고 난 뒤 교실 밖으로 나가자,
“진짜 일을 이런 식으로밖에 못 하겠어요?”
원장의 매서운 질책이 쏟아져 내렸다.
“원장님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당황한 나는 힐끗 교실을 한번 돌아보고 원장을 바라보았다.
원장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라면 좀 충격인데요?”
“예, 죄송하지만···”
“후··· 수업 중에 김연아 학생의 부모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부모님한테 연락을 했겠어!”
“네? 연아네 부모님이요? 아니 분명 좀 전까지 수업에 잘 참여하고 있었는데···”
원장은 짜증을 쏟아냈다.
“그럼 아니에요? 원장이 이런 전화나 받아야 합니까?”
“······.”
“더군다나 김연아 학생 부모님이 뭐하는 분들인지 잘 아는 사람이 그래요? 후, 됐고.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내일 시험에서 김연아 학생 성적을 못 올릴 것 같으면 짐 싸서 나가 주세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네?”
“이젠 귀까지 안 좋은 겁니까? 김연아 학생 부모님이 말씀하셨어요. 내일 시험에서 자신 없으면 각오하라고.”
나를 제물로 삼아 위기를 넘어가려는 것일까?
5년이었다. 내가 이 학원에 바친 시간이. 막 개원할 때 한창 인력이 모자랄 시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날 꼬이던 저 치가 이젠 날 팽하려 한다.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만약 올리면, 제가 올리면 어쩌실 겁니까?”
그러자 원장은 헛웃음을 지을 뿐이다.
“맨날 20점 받아오는 애 성적을 올리면 얼마나 올리겠다는 겁니까? 25점 만들게요?”
“······.”
“정신 차리고, 짐이나 챙겨 놔요. 퇴직금 얘기는 이따 합시다.”
그때 원장의 등 뒤로 박훈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는 이쪽을 신경 안 쓰는 척 교재를 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제가 올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묻자, 원장은 미간을 짚은 채 한숨을 쉰다.
“어쭙잖게 올리는 거야 잘 찍어도 되는 거고.”
“그럼 얼마나 올려야 합니까?”
“···이 학원에 계속 붙어 있으려면, 60점은 넘게 해야 하지 않을까?”
20점 받는 학생을 하루만에 60점으로 올리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중요한 국어 과목에서는 더더욱.
“점 60점 넘기면 뭐, 이렇게 갈구는 것은 꿈도 못 꿨겠지 내가. 연봉협상도 아예 새로 해서 모셔야지. 그게 됐다면 진작에 하셨겠지만 말야.”
원장은 자신이 질 것은 전혀 생각지 않았는지,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아무 말이나 주워 던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
열기가 조금 가시고 나자 조금씩 걱정이 몰려들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빌어볼까 나약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쏘아진 살이었다.
“김연아라······.”
승부는 이미 시작됐다.
창 밖에서 김연아를 바라보자, 방금 전까지 휴대폰만 바라보며 깔깔거리던 그 녀석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의 표정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맑고 깨끗하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답이 없었다. 내일까지 무려 30점이라는 점수를 올려야 한다. 그것도 굉장히 적대적인 녀석을 대상으로.
상식적으로, 이런 식의 교육, 이런 식의 성적 상승은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
그러니까 나도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숨이 막히고 양 어깨가 무겁다. 마치 물속에 빠진 듯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주머니 속에 든 것이 떠올랐다.
“···USB.”
손에 지푸라기가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