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02
202
202화 추락하는 것에겐 날개가 있다 (5)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
단조로운 디자인의 가구들이 마치 무기처럼 서 있는 그곳 한 가운데,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K에듀의 부이사장이자 실질적인 경영자, 그리고 능력 없는 간부들의 저승사자인 최정순이었다.
[…내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묻지. 그래 이번 일 그 소라게 학원 일 말이야. 이번엔 좀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겠나?]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무거운 목소리. 노회한 대호(大虎)의 숨소리 같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최정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짧은 물음 속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젠장.’
위험했다. 그동안 K에듀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던 그녀였지만. 지금 자신과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심경을 거스르는 순간, 그동안 그녀가 누리던 그 모든 권력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릴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그녀에게 권력을 부여해 준 사람, K에듀의 이사장이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이사장의 불신을 잠재워야만 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동안 그녀가 누려왔던 권력이 역으로 그녀의 목을 옥죄일 것이 분명했다.
“네. 믿어만 주신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흐음, 아니야. 그러지 말고 한동안 좀 쉬는 게 어떤가? 보아하니 요즘 헛스윙을 제법 하는 걸 봐서 자네도 많이 피곤한 것 같은데.]그녀의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너머에선 왠지 마뜩찮아 보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순간, 최정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 났다.’
아무래도 그동안 최정순이 임명했었던 자들. 그러니까 김형로, 최귀화의 처참한 패배가 최정순에 대한 이사장의 신뢰를 흔들리게 만든 것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매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허어, 그러지 말고 내 말 들지. 안 그래도 요즘 주주들 쪽에서 부이사장에 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나오는 모양이니까.]“그건….”
[아, 뭐 나야 부이사장의 말대로 해주고 싶지. 해주고 싶은데…그 조직이라는 게 꼭 내 뜻대로 막 움직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거짓말이었다.
짐짓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다른 사람들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사실 K에듀의 실질적인 지배권은 온전히 이사장의 손에 매여 있었다.
그러니 만약 자신을 죽이고 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허수아비와 마찬가지인 이사진이나 주주들이 아니라 바로 이사장 그 자신이었다.
“…….”
최정순이 초조한 안색으로 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가졌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손안에 모래처럼 사라져 버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그동안 자신에게 당했던 반편이들이 굶주린 아귀처럼 달려들어 자신을 물어뜯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아마 뼛조각 하나 못 남기겠지.’
그러니 그녀가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금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사장의 신뢰를 회복시켜야만 했다.
‘이대로 순순히 목을 내밀 순 없는 법이니까.’
생각을 정리한 최정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허어, 사람 고집하고는 그냥 좀 쉬라니까.]“이대로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닐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 실수는 제가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믿어 주십시오. 이번엔, 이번엔 정말 다를 겁니다.”
[혹시…무슨 방법이 있는 겐가?]순간, 최정순의 눈이 위험한 빛으로 번뜩였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이 사태를 반전시킬 만한 치명적인 무기, 소라게 학원의 역린을 찌를 수 있는 무기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소라게 학원에 대해, 그리고 김준영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내심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잡대 출신 3류 국어강사.
갑작스런 불수능 만점.
창업 4년 만에 연 매출 350억 원 돌파.
사교육 최초 수능 검토 위원 배출.
2020년 교육개혁 사업의 핵심 사업 수주.
그녀의 상식상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소라게 학원의 성장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런데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소라게 학원의 원장인 김준영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특별감사 독고경이 주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로 소라게가 정부의 사업에 참여, 활발하게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러자 자연스레 소라게 학원의 급격한 성장이 이해가 갔다.
‘하긴 그 정도 물주는 되어야 저 정도 속도로 클 수 있었겠지.’
최정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한 이상, 승부의 그녀의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그때부터 그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녀는 소라게 학원에 굴복을 받아내기로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보다는 목줄을 채워 황금알을 받아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으실 생각인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아무래도.’
김준영이 자신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면서 그녀의 계획은 시작조차 해 보지 못한 채 어그러져 버렸다.
‘두렵지 않으세요? 높이 날다가 떨어지면 더 아플 텐데? 그냥 적당히 제 제안을 받아들이고 조금 낮게 나는 게 낮지 않을까요?’
‘전혀요. 그러니까 안녕히 가시죠. 법원에서 뵙겠습니다.’
그녀의 상식상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김준영과 정부의 이합을 고발한다면 순식간에 여론이 반전, 어마어마한 철퇴를 맞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설마? 그 정도 생각도 못하는 건가?’
하지만 이미 자신이 건넨 잔을 뿌리친 이에게 다시 잔을 권할 생각은 없었다.
주제를 모르고 주인을 물려하는 가축은 가차 없이 도태시키는 것이 고래의 방법이었으니까.
‘갈기갈기 찢어 삼켜주마.’
그때부터 그녀는 소라게 학원과의 총력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획팀.’
‘예.’
‘소라게 타겟으로 해서 그림 좀 그려봐. 목표는 소라게의 완전한 멸절. 알겠지?’
‘예!’
‘홍보팀.’
‘예’
‘언론에 흘려, 소라게 학원이랑 정부랑 배 맞은 사이라고. 그 전까지 있었던 모든 것들이 다 불법이었다고.’
‘예!’
‘영업팀.’
‘예.’
‘사람들 기름칠 좀 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확실하게. 기름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알겠어?’
‘예!’
‘법무팀.’
‘예.’
‘일단 전부 다 고소해.’
‘예? 누구를…?’
‘전부 다. 기자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말고 죄다 고소 넣으라고. 지들도 시달리다 보면 손가락 잘못 놀린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마지막 협상이 결렬된 이상 이제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죽느냐 죽이느냐만 남아있을 뿐이지.’
그러니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그동안 준비했었던 무기들을 총 동원해 소라게라는 적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최정순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기필코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하지만.
[음….]수화기 너머에선 아직도 애매한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동안 쌓인 그녀에 대한 불신이 제법 깊은 모양이었다.
‘젠장,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데 고작 두 번 실패 했다고….’
그녀로서는 열불이 터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밥이 다되어 뜸이 들기를 기다리는 상태에서, 집밖으로 쫓겨나게 생긴 것이었으니까.
순간, 최정순의 얼굴에 독기가 서렸다.
‘이렇게 된 이상 내 모든 걸 건다.’
그녀는 제 입술을 짓씹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목을 걸겠습니다.”
그러자.
[무슨 소리야?]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거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자신의 판단에 반발하는 최정순의 말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꿀꺽-
순간, 마른 침이 그의 목울대를 넘어 지나갔다.
이사장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약간 두렵기는 했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만둔다면 이제 다시는 이사장의 신뢰를 얻을 수도, 부이사장이라는 자리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확실하게 마무리지어야 한다.’
결심을 굳힌 그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만약 실패한다면 제가 그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리곤 그녀가 초조한 안색으로 이사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뭐 좋아. 우리 부이사장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내 믿어야지.]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순간, 최정순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됐어!’
기회만 주어진다면, 준비한 무기들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기필코 이번 임무를 완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명심하도록 해. 만약에 이번 일도 실패하면 그땐…나도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거. 알지?]“네!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허허 그래. 그럼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보고 하도록 해. 조만간 개각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울 테니까 그 전까지.]“네 알겠습니다.”
뚝-
그렇게 짧지만 긴 통화가 끝난 뒤.
“휴우….”
최정순은 입에서 긴 한숨을 새어나왔다.
이사장과의 대화 내내 쌓여 있던 긴장이 한순간 풀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풀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둘러 이번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이사장의 압박이 시작될지 몰랐으니까.
‘이런 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지.’
최정순은 테이블 위에 놓인 인터폰을 눌렀다.
삑-
그러자 작은 비프음이 들림과 동시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비서실 김OO입니다.]“각 부 부장, 차장, 과장들한테 전해. 준비한 자료들 가지고 부이사장실로 모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모이라고 할까요?]“지금 당장.”
통보를 마친 뒤, 그녀는 잘게 웃어보였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이제 그녀의 고통이 끝나는 것은 물론.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자의 고통이 시작될 것이었으니까.
‘건방진 놈. 어디 한번 당해 봐라.’
* * *
하지만 며칠 뒤.
“이…이럴 리가 없어…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그녀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 버렸다.
소라게 학원의 몰락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켠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S사와 정부의 야합…진실은 ‘증거 없음!’] [‘정부’의 현명한 대응. 모든 정보 공개하겠다.] [유언비어의 출처는…역시나 ‘K사’] [‘K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질타 쇄도 ‘적폐청산’ 요구 심화] [‘S사’의 대표, ‘유언비어’ 강경 대응하겠다.].
.
그녀가 준비한 무기가 모조리 부러져 버린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