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06
206
206화 물과 물고기 (3)
샤랑샤랑 흔들리는 순백의 레이스.
테이블 위를 가득 메운 화려한 꾸밈의 디저트.
그리고.
“어머, 그래서 계속 나갈 거야?”
“응? 어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아. 내가 가르치던 애가 ‘누나 언제 와요? 또 올 거죠?’라고 그러던 게 계속 생각나서….”
“그래? 으 그런데 애들 가르치는 거 어렵지 않아? 난 쌤들이 우리 가르치는 것만 봐도 가끔 대단하다 싶던데. 솔직히 우리가 얌전하진 않았잖아?”
“그런가? 음, 하긴 나 어렸을 때 같았으면 조금 힘들긴 했겠다. 그런데 애들이 착하고 또 말도 잘 따라서 괜찮더라고.”
“그래? 으, 그럼 나도 담 주에는 한번 나가 볼까?
그 테이블에 앉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일단의 소녀들.
나는 지금 소녀소녀한 분위기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 와 있는 상태였다.
“…….”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꽃송이와 건드리면 톡-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 화려한 색상의 다기 세트까지. 내겐 낯설기만 한 것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후우….”
35년 평생 이런 공간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터라 온몸의 세포가 이 공간의 공기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이번에 졸업한 예비 대학생 제자들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쌤 오늘은 저희가 쏠게요!’
물론 그렇다고 녀석들이 순수한 의도로 이곳을 예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녀석들에게 내가 이런 분위기의 카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했었으니까.
‘하, 아무래도 날 골탕 먹이려는 생각이었겠지.’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일. 절대 당하지 않을 잔망이었다.
하지만.
‘휴, 알면서 속는다 알면서 속아.’
오늘만은 알면서도 당해 줄 생각이었다.
이제 몇 주 뒤. 녀석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엔 이런 만남을, 이런 잔망을 당하고 싶어도 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쯧, 그래 오늘 하루 정도야….’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해도 이런 류의 항마력이라는 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휴….”
나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잘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있어도 지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혹시 나만 그런가 싶어 주변을 돌아보자,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들 또한 나처럼 이곳에 원치 않게 끌려와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왠지 모를 전우애를 느끼며 천천히 쓰디쓴 커피를 흡입해 나갔다.
‘다들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그런데 그때.
“준영 쌤.”
누군가 나를 불렀다.
슬쩍 고개를 들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연아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그게…저기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요.”
그리곤 매장 바깥 쪽 테이블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무슨 말인가 하여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딱딱하기 그지없는 무채색 정장.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썬그라스.
샤방샤방한 디저트 카페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 셋이 딸기가 듬뿍 올라간 파르페를 앞에 둔 채, 무슨 역적모의를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그러자 내 표정을 본 연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 그때 봤던 그 사람 맞죠? 그 교육감 후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자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학생 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야? 저 사람이 교육감 후보?”
“응. 저번에 우리 학원에도 찾아왔었을 때 그렇게 소개하는 거 들었거든.”
“그래? 그런데 교육감 후보가 왜 우리 학원에 와?”
“글쎄? 아무래도 준영 쌤한테 좀 도와 달라고 그런 거 아닐까?”
“진짜? 헐 대박.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준영 쌤 이름만 보고 찍을 사람도 어마어마하니까. 음…그럼 혹시 저 사람들 준영쌤 만나려고 온 거야?”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만약 그랬으면 바로 와서 말하지 왜 저기서 저러고 있겠어?”
“아니야. 봐 봐. 저기 저 사람들 분위기 보면 여기 디저트 먹으러 온 거 아니란 게 딱 티 나잖아. 안 그래?”
그리곤 슬쩍 유덕현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러자 샤방샤방한 카페 분위기와는 3만 광년정도 떨어져 있는 듯한 그들의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그렇게 말하니 그런 거 같기는 한데?”
“그렇지? 연아야 혹시 그 이후로 학원에는 안 찾아왔어?”
“아니, 학원에는 안 찾아온 것 같았는데…아,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봉사하러 갔을 때도 잠깐 마주친 적 있었어.”
“진짜? 헐, 그럼 빼박이네.”
“그런데 같은 곳에서 봉사를 한 건 아니고…그냥 우리 갔던 곳 근처에서 연탄 봉사하다가 마주친 거라서….”
“그래? 흐음 그럼 좀 애매하긴 한데…에이 쌤! 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사자니까 잘 알거 아니에요?”
“맞아요 쌤. 진짜로 저 사람들 쌤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예요?”
그리곤 기대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할 이 말은 형주 땅에 은거한 제갈량과 그를 등용하려던 유비의 일화를 담고 있는 고사성어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두고 초야의 묻혀 사는 재능 있는 선비와 그 선비의 능력을 중히 여긴 군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요즘 같아선 제갈량도 사실 유비의 스토킹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왜냐하면…요즘 내가 딱 그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김 대표님. 저와 함께 일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유덕현이 처음 학원에 찾아와 내게 자신과 함께할 것을 청해왔을 때.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분명 그가 걸어온 인생과 그의 열정, 그리고 의지는 높이 사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그와 손을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직 K에듀와의 일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 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국책 사업을 시작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이 가지는 가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휴…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럼 가끔씩 뵙는 건 어떻습니까. 설마 그것마저 싫다고 하시진 않으시겠죠?’
그가 내게 아쉬움이 가득한 말을 남겼을 때. 흔쾌히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언제라도 괜찮으니 자주 찾아오시죠.’
비록 그의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와의 연결고리마저 끊어 버릴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손해를 끼칠 만한 인물은 아니니까.’
그런데?
‘대표님 여기서 또 뵙는군요. 하하 이거 세상 참 좁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요즘은 내가 가는 곳 마다…….
[입시 설명회]“…특목/자사고를 무턱대고 선택하기보다는 신중해야 합니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안과 함께 발표된 ‘고교 교육혁신 방안’을 보면, 학생부 기재 내역에 수상 경력 개수 제한, 자율동아리 개수 제한, 소논문 미기재 등이 반영될 예정….”
“하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김 대표님 말씀에 적극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혹시….”
[방송 촬영장]“…….”
“어이쿠 김 대표님. 이거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 무슨 일로 왔냐고요? 하하 저 이래봬도 교육감 후봅니다. 당연히 토론회 준비 때문에 왔죠.”
[도서 사인회]“…….”
“하하 김 대표님.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여기 저도 싸인 좀 해 주시죠. 아들, 손자, 며느리 것까지 해서 총 33권입니다.”
[결식아동 후원회]“…….”
“어라 여기서 또 만나 뵙는군요? 하하 이야 정말 세상 참 좁은 것 같습니다. 안 그런가요?”
언제 어디서나 그와 그의 수행원들이 출몰. 저번에 교육봉사를 갔을 때 마주친 후로 계속,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주 그와 마주치고 있었다.
“…….”
나는 고개를 저으며 유덕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있는 파르페를 고문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쯤 되면 좀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도대체 내가 어디 갈지 어떻게 알고 오는 거야? 그리고 이 사람 선거 안 해?’
내가 알기로 그들은 분명,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태. 나 한 사람한테 이렇게 신경을 쏟을 시간이 없었으니까.
“…휴.”
뭐 나도 사람인 이상 이 정도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무릇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하여 화장을 하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애매한 관계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하는 일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사실 가끔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모르는 척 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으니까.
‘오늘 자리가 끝나면 연락을 해 봐야겠어.’
그런데 그때.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상품 나왔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김준영 대표님. 35번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새겨진 커다란 케이크였다.
순간.
“헐 대박, 겁나 커.”
“와 이거 거의 연아 몸통만 한데?”
“헐, 이거 뭐예요? 우리 이런 거 안 시켰는데?”
학생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케이크를 들고 온 서버가 예상했다는 듯, 유덕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쪽 신사분이 주문하신 겁니다.”
어이없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유덕현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자.
유덕현이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벙 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쌤, 이 정도면 한번 다녀와야 겠는 데요?”
“맞아요. 이 정도 정성이면 한 번쯤은 좀….”
“이야. 이건 정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쯤 되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결착을 봐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잠깐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