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08
208
208화 물과 물고기 (5)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작은 사무실.
군데군데 박혀 있는 [기호 2번 유덕현] 선거 포스터와 짤막한 구호들이 붙어 있는 그곳에 나는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김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한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과 크게 벌어진 붉은 입이 인상적인, 마치 지국천왕(持國天王)을 연상케 하는 사내. 장관운이 내게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후원회장님. 그리고 이쪽은 선거대책위원장님, 이쪽은 상황본부장님…아, 그리고 저쪽에 오시는 분은 선거정책위원장님이십니다.”
장관운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남녀노소 얼핏 보면 공통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후보님 편에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후원회장 이OO이라고 합니다.”
“와, TV로 보던 것보다 더 동안이시네요. 저는 상황본부장 최OO이에요.”
“저는 선거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OO이라고 합니다. 하하 김준영 대표님 환영합니다.”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유덕현 선거 캠프에 새로 들어온 컨설턴트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엊그제.
‘아니요. 대표님은 거절하시지 않을 겁니다. 대표님께도 절대 손해되는 거래가 아닐 테니까요.’
학생들과 같이 갔던 디저트 카페에서 유덕현 후보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전, 그가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와 확연히 다른 그의 때문이었다.
‘네? 그게 무슨?’
자신만만한 태도,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한 그의 태도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그가 다 알고 있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어떤 것을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저의 정책이 대표님 사업에 부담이 되는 것 아닙니까?’
순간, 나는 쉬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한 것이 바로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한 진짜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
일반적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이야기는 곧, 사교육의 축소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공교육이 제 가치를 잃음으로서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사교육, 그를 통해 덩치를 불리는 것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덕현의 기치. 유덕현이 들고 일어선 구호는 사실 사교육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독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고, 공교육이 교란될수록 사교육 시장엔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었으니까.
‘마치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경제 특수를 누리던 일본의 경우 말이야.’
물론 내가 공교육의 정상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전에 있었던 독고경의 협업도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독고경과 유덕현은 경우는 달랐다.
독고경은 정부의 대변인으로서 실제 시장과 적절한 조율이 가능한 상대였던데 반해, 내가 아는 유덕현이란 사람은…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사람.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기치를 걸고 일로매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굳이 적이 될 것이 뻔한 이에게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없었다.
‘굳이 나서서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집어넣을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살피자, 그가 단정한 자세로 나를 보았다.
‘대표님 아까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어디까지나 문을 여는 사람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선…넘어야 하는 산들이 제법 많겠죠.’
맞는 말이었다. 분명 그가 이번에 선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눈앞에는 복지부동한 교육청, 부패한 재단, 단단히 굳어 버린 학교 조직사회 등 선거보다 더 어려운 상대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당분간은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만 해도 벅차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자,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저는 그 모든 산을 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그것이 가시덤불 위에서 쓸개를 핥는 일이든, 모든 지 말이죠.’
그리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을 멈춘 그가, 이내 생각을 끝낸 듯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캠프의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컨설턴트로 이름만 올리시는 게 아니라, 제 모든 것을 대표님께 맡기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대표님. 대표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그리고…제가 당선된다면, 그 공은 온전히 대표님의 것이 될 겁니다.’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에 담은 말은 곧 자신의 목숨줄을 나에게 맡기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 사람. 내가 뭔 짓을 할 줄 알고?’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선득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꺼냈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내 능력을 믿는다는 의미기도 했으니까.
‘…진심이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입니다. 그러니…그러니 부디 저를 이용하십시오. 아니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제가 대표님의 물고기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곤 염화가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결국.
‘알겠습니다. 후보님의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의 제안이 주는 이익, 교육감을 만들어 냈다는 이름이 가지는 위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더 큰 힘이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 눈앞에 방금 전 인사를 마친 후원회장, 선거대책위원장, 선거정책위원장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의 인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장관운의 소개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나갔다.
어떻게 보면 나는 굴러들어 온 돌. 그들의 믿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최대한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해야만 했으니까.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유덕현 캠프 조직총괄본부장 김OO입니다.”
“아, 총괄본부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번에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쿠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우리 유 후보님 교육감 만들어 주실 분이니. 하하”
다행히 그들의 첫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쌓아 올린 것들, 그 중에서도 K에듀와의 일이 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 것 같았다.
‘하긴 적폐척결을 기치로 일어선 사람들이니까.’
* * *
그렇게 잠시 대변인, 조직총괄본부장, 홍보단장, 상황본부장 등 선거 캠프의 핵심 인사들과 어느 정도 인사를 나누고 난 뒤.
“하하 그럼 김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번호니 언제라도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이만….”
“아 맞다. 저도…여기 제 번홉니다.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도….”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각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리 작은 사무실 두 칸을 이어 만든 선거 사무실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기자님! 언제 시간되세요? 네? 오늘이요? 그럼 점심 때? 오케이 당장 나갈게요!’
‘허허 아니 대표님. 대표님이 저흴 안 도와주시면 누가 저흴 도와주시겠습니다. 이거 섭섭합니다?’
‘오, 전화 받았구나. 야 그래 나 김OO이야. 그래 다른 건 아니고 이번에 내가 선거를….’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 생각보다 더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선거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매스컴을 통해 봤었던 대선이나 총선의 선거 캠프는 이것보다 규모도 크고, 사람들도 훨씬 많았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본 선거 캠프의 모습은…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저 오가는 사람들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특이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생각보다 좀…작죠?”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이 사무실의 주인 유덕현이 반가운 빛을 얼굴에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사무실을 주욱 둘러보고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캠프가 상당히 작군요. 음…그리고 그 체계도 상당히 혼란스럽고요.”
애초에 그가 내게 바란 일은 이 캠프의 승리. 그것을 위해서라면 입에 발린 말 따위는 나중으로 미뤄 둘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하 역시 솔직하시군요. 맞습니다. 사실 다른 사무실에 비해 저희 사무실이 조금 작긴 하죠. 하지만 의욕만은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분들 모두 저와 제 정책 하나만 보고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분들이니까요.”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유덕현 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선거 캠프의 운영 자금 모두가 선거 펀드를 통해 충당되고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호응이 깊고 넓다는 거지.’
하지만…문제는 전쟁이라는 것은 의지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니, 수행할 수는 있겠지만 승리는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승리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으니까.
‘천에 하나 만에 하나에 맡기기에는 달린 것이 너무나 많다.’
때문에 의지와 열정만으로 움직이는 이 캠프의 모습이 내겐 아주 위태로워 보였다.
[유덕현 39%] [고덕승 32%] [이문기 15%] [장이후 8%] [최순용 6%]지지율이야 자칫 잘못하면 금방 흔들리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평소라면 상관없었다. 보수정책을 표방한 저번 정부와 저저번 정부 실책으로 보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들이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웬만하면 낙승이지.’
하지만 이번 교육감 선거만은 달랐다.
[이OO 진보 교육감. 잇따른 정책 실패로 연일 구설수] [이OO 서울시교육감 뇌물수수. 징역 8년, 벌금 3억, 4억 2천 추징] [서울시민사회단체연대, 이OO 교육감 사퇴 촉구]사람들의 기대 속에 선출된 전임 교육감이 잇따른 정책 실패와 위법행위로 사퇴한 지금, ‘진보’라는 이름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선명한 주홍글씨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선 원래 진보를 표방했던 후보들마저 중도와 보수의 탈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의 정책에서 전임자의 색채를 지우고자 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에 나온 총 5명의 후보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자.
[1978년 대학 2학년 재학 중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1979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외무고시 차석 합격 [1978년 대학 4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 수석 합격] [1989년 미국의 세계 최대 로펌인 ‘베이커 & 맥킨지’ 입사] [1992년 서울시 고문 변호사 취임] [2008년 18대 보수정당 출신 국회의원] [2005년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겸임 교수]고등고시 삼관왕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존재.
입시위주 교육 체제하에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완벽한 롤 모델.
입시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
바로 고덕승 후보가 정면으로 유덕현 후보의 정책에 정면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는 상태였다.
[고덕승 서울시교육감 후보 유덕현 후보에 맞대결 선포! ‘유 후보의 진보 정책은 우습다’] [고덕승 서울시교육감 후보 유덕현 후보의 입시 개편안 강력 비판! ‘내가 다 해 봐서 안다’] [고덕승 서울시교육감 후보 ‘유덕현 후보의 학력, 고교평준화는 사기’ 강도 높은 비판]그러니 자칫 잘못하다간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지지율 순위가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선거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이번 전쟁을, 아니 이번 선거를 유덕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 어항 속에 들어 있는 물고기를 아주 비싼 값에 팔 수 있겠지.’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유덕현 후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 후보님. 혹시 TV토론회 경험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