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09
209
209화 물과 물고기 (6)
“유 후보님. 혹시 TV토론회 경험 있으십니까?”
TV 선거 토론회.
대선, 총선, 지방선거의 선거의 후보자들이 선관위 주관 공식 토론회나 언론사가 주관하는 토론회에 참석, 후보 간 정책의 타당성을 겨룸과 동시에 서로의 윤리적 적합성을 공격, 방어하는 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해당 후보들에 정책, 삶, 실력에 대해 판단한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유권자들에겐 선거에 참여한 후보자들이 과연 해당 직위를 수행할 만한 사람인가 판별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나름 재미있는 쇼이기도 하고.’
내가 TV토론회를 입에 담자, 유덕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TV 토론회 말씀이신가요?”
“네. 혹시 경험이 있으신가요?”
“흐음, 아니오. 유감스럽지만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리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공직 선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나로선 약간 의외의 반응이었다.
“실례지만 제가 알기로 저번 교육위원 때도 선거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 데 그때도 토론 기회가 없으셨던 건가요?”
그러자 그가 씁쓸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네. 아무래도 교육의원이라는 게 하는 일에 반해 그리 인지도가 있는 선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땐 그저 일반적인 선거 활동만 하고 바로 선거로 넘어갔었죠.”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가 역임했었던 교육위원직이라는 게 시도교육청의 정책 및 예산을 심의의결하고, 교육감과 산하 기관에 대한 감사조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직책이라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는 직책은 아니니까.
“음, 아쉽군요. 좋은 경험이었을 텐데 말이죠.”
“하하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사실 나름 기대하긴 했었거든요.”
그리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혹시, 제가 TV토론회에 참여하는 걸 생각하셨던 겁니까?”
의문 어린 그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회만큼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공고히 만드는 데 좋은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토론회의 파급력을 생각해 봤을 때, 토론회를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불러올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선거란 이미지 싸움이니까.’
물론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에 비해 교육감 선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낮다는 것이 문제긴 걸리긴 했다.
일반적으로 대선이나 총선 급의 중요 선거의 후보자가 아닌 이상, TV토론회가 열리는 경우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의 관심 또한 상대적으로 적었으니까.
‘일반적인 교육감 선거야 그냥 유야무야 지나가기 일수지.’
하지만 서울 지역의 교육감 선거의 경우 타 지역과는 상황이 달랐다.
서울지역의 교육감 선거란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보여 주는 시금석. 미래 교육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어느 후보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흐름 자체가 달라지니까.’
그러니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국민들과 교육 관련자, 정책입안자들에겐 이보다 더 중요한 선거도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는 보궐 선거. 지방 선거와 같이 다른 선거에 시선을 빼앗길 위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극본을 잘 짠다면, 그리고 유덕현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인생과 그의 정책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양심에 따라 불꽃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 교육위원 재직 중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책을 지켜온 사람이라는 이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휴우….”
정작 그 당사자인 유덕현이 왠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안색을 흐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저희도 대표님이 말씀하긴 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안 그래도 요즘 몇몇 방송사 쪽에서 저의 쪽에 제의를 해 오고 있긴 하니까요. 그런데…대표님도 아시잖습니까. 토론회라는 게 양날의 칼이라는 걸.”
그리곤 어두운 안색으로 밭은 한숨을 내쉰다.
흐음…뭐 그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어떤 토론의 방식을 택할지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긴 하지만, TV토론회라는 건 일단 대중들의 앞에 후보자의 정책과 삶, 실력이 대중들 앞에 실시간으로 까발려지는 자리였다.
그러니 자연히 토론 한 번에 해당 후보의 지지율이 수직상승할 수도 그 반대로 ‘떡락’할 수도 있었다.
‘유력 대선후보도 말 한 마디에 훅 가는 게 TV토론회지.’
때문에 유덕현은 그 양날의 칼을 잡기보다는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지지율을 지키기로 한 것 같았다.
‘아직 지지율 측면에서 우위에 서 있긴 하니까.’
뭐 마음에 드는 대응은 아니지만 나름 이해가 가긴 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이번 선거는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되는 전쟁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레이스에 최선두에 서 있다는 것은 곧 레이스에 참여한 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다는 것. 뒤따라오는 자들의 위협에 등짝을 노출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유덕현이 현재의 지지율에 만족해 소극적인 태도로 움직인다면 곧 물가에 나온 개구리처럼 이곳저곳에서 쪼이고 치여 고사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절대로 막아야 할 일이지.’
“흐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유 후보님.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잃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니까요.”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유덕현이 뭔가를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내 말을 듣고 그의 결심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대표님을 모시기 전에 지금 있는 지지율을 최대한 지키는 쪽으로 전략을 짜 놓고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서…아무래도 그 모든 걸 다 뒤바꿀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의외였다.
내가 파악한 그의 성격이라면 보다 공격적인 대응을 선호 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
‘비록 제자의 죽음이 있었다곤 하지만 철밥통 연금 생활을 박차고 일어설 정도로 성격 있는 사람이니까.’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겁니까? 제가 아는 유 후보님이라면 이런 일에 발을 빼실 분이라 생각하지 않는데요?”
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 그가 흐린 얼굴로 말을 받았다.
“…면목 없습니다. 다만 저도 이유 없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
“그럼…?”
“휴, 고덕승 후보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뿐입니다.”
“그들이라고 하시면…? 누군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모르셨습니까?”
“……?”
“사학재단들 말입니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서야 그의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가 이해가 갔다.
‘사학재단들….’
처음 유덕현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내 나름대로 조사를 했었다.
도대체 얼마나 상황이 안 좋기에 사교육 학원 강사인 나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한 것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바닥권은 아니겠지?’
하지만.
[유덕현 후보 지지율 43%] [고덕승 후보 지지율 28%] [이문기 후보 지지율 15%] [장이후 후보 지지율 9%] [최순용 후보 지지율 5%]확인한 유덕현의 지지율은 의외로 최선두,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친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순항 중이었다.
‘뭐야 지지율도 우위인데? 왜 나한테까지? 설마 얼굴마담이 필요한 건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유덕현이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국민행동본부 등 애국 단체들, 고덕승 후보 지지선언] [경기권 사학재단들, 고덕승 지지선언…‘참된 교육자’는 고 후보뿐!] [강남 3구 학부모 협의회 고덕승 후보 지지선언!]그것은 바로…….
보수 단체들은 물론 사학재단, 강남권 학부모들 모두 고덕승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고 있었다는 것.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어마어마한 화력으로 자신들의 세를 불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유권자운동본부, 고덕승 후보 ‘좋은 후보’로 선정] [사학재단 ‘미르’ 고덕승 후보 후원회 개최, 대성황!] [고덕승 후보 캠프, 연일 늘어나는 자원봉사자로 즐거운 비명] [유덕현 후보 지지율 43% → 39%] [고덕승 후보 지지율 28% → 32%]물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대부분 결집되지 않은 파편들일 뿐이었다.
‘파편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지.’
그러니 유덕현과 그의 캠프 사람들로서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만약 공격적인 전략을 전개하다가 자칫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고덕승 후보 측에서 살포해 둔 지뢰를 밟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독보적인 개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번 정부와 발을 맞추는 것에 실패한다면.
당선 기회가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것은 물론. 유덕현 그가 바라는 세상이 오는 것 또한 요원해지는 것이었으니까.
‘없는 사실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작자들이지.’
그렇게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아끼자, 유덕현이 뭔가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TV토론회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선관위 주관 공식 토론회 일정이 조율되고 나면 그땐 보다 능동적으로 나가야 할 테니까요.”
“다만…일단 저쪽에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나올지. 그리고 그 전에 어떤 네거티브를 시도할지를 일단 먼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 후에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리곤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는…아마 김 대표님의 능력이 필요해질 겁니다. 아무래도 시류를 읽는 눈, 그리고 그 시류를 조율해 나가는 일은 김 대표님이 최고시잖습니까.”
“…흐음.”
“하하 그러니 그때까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가 된다면 설령 대표님께서 말리신다고 하더라도 뿌리치고 토론회 장으로 달려 나갈 테니까요.”
“음, 그때까지 참는 게 힘드시진 않겠습니까?”
“당연히 힘들죠. 가끔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가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버리고 싶기도 하니까요. 하지만…이기기 위해선 참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덕현이 아쉽다는 듯 입을 다시며 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만 알면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이겠지만…하늘이 아닌 이상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곤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기왕 물고기를 품기로 한 것, 내 안에 들어온 물고기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내 역할이니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덕현 후보님.”
그러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덕현이 나를 바라보았다.
“네? 왜 그러시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는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굳이 참으실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
“유 후보님께서 알고 싶어 하신 그 답. 이미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