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17
217
217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3)
왜 그런 말이 있다.
정계에서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금기시된다고.
정치인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패배한 것이라고.
때문에 정치인들은 ‘송구하다’, ‘면목없다’ 이런 말을 할지언정,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러니.
“못난 아버지를 둔 딸아 정말 미안하다!!!”
오늘 궁지에 몰린 고덕승이 ‘미안하다!’를 외친 순간.
[댓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댓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랏ㅋㅋㅋㅋ] [댓글 : 가즈아아아! 떡락 가즈아아아아!]고덕승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덕승의 말이 끝난 그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그의 지지율마저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1. 유덕현 ⇑ 75%] [2. 고덕승 ⇓ 25%]무서울 정도로 ‘떡락’하는 고덕승의 지지율.
전에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그의 지지율에 전문가들은 앞 다퉈 답을 내놓았다.
“에, 수사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에 크게 세 가지 방향이 있다고 봤습니다. 첫째, 말하는 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토스 Ethos), 둘째, 말하는 자가 얼마나 감정을 잘 전달하는가(파토스 Pthos), 셋째, 말하는 자의 논리가 얼마나 논리적인가(로고스 logos).”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어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논리, 로고스는 사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10%정도의 영향밖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말이에요.”
“그렇게 봤을 때 이번 자넷 고 씨의 폭로는 고덕승 후보의 에토스를 완전히 추락시켜 버린, 사실상의 사형선고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무리 고덕승 씨가 유권자들에게 감정적 호소를 하려고 해도 이미 고덕승이라는 인물의 에토스가 훼손된 이상, 고덕승 씨의 말은 유권자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는 말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러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공감, 고덕승과 다른 정치인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댓글 : 하긴 자기 자식도 버리는 사람한테 자기 자식 맡기는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ㅋㅋㅋ] [댓글 : 우리나라 정치하는 놈들 왜 다들 이 모양 이 꼴이야ㅠㅠ] [댓글 : 헬도선특. 이상할 정도로 스펙이 빵빵한데 정치 출마한다?→자기 배 불리려고 출마함] [댓글 : 아무튼 정치하는 놈들은…하여간 스펙보다는 인생보고 뽑아야 한다니까ㅋㅋ 뭐 사장이니 변호사니 하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들이 없어ㅋㅋㅋ] [댓글 : 헌혈 한번 해 본적 없는 의사, 알바 한번 안 해본 판검사, 노조 없는 회사의 CEO 출신들이 뭘 알겠어 ㅋㅋㅋ]그나마 있던 믿음조차 모조리 날려 버린 듯 차가운 반응들이었다.
한편.
같은 날 유덕현의 캠프.
고덕승의 단일화 이후,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감돌던 이곳에 전에 없이 훈훈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고덕승이 유세현장에서 ‘미안하다!’를 외친 순간, 이번 선거의 향방이 완전히 유덕현의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거 저 양반 저래도 되나? 아니 저러면 큰일 난다는 걸 모를지 않을 텐데??”
“하하, 이거 고 후보 지지율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요?”
“저기 캠프 사람들은 저거 안 말리고 뭐 한대? 다들 포기한 건가?”
강 건너 불구경. 그것도 강 건너에 있는 원수의 집이 활활 불타는 모습을 구경하는 듯한 태도였다.
“뭐 이유야 어찌됐건 저희야 반길 일이죠. 알아서 나락으로 기어들어 가는 거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그동안 고 후보 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어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쌤통이다 쌤통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동안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하면, 승리가 확실시된 이 순간 사람들이 마음을 놓는 것도 이해가 갔다.
고덕승이 단일화에 성공한 이후 매일매일 떨어지는 지지율을 방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이야 지지율 떨어지는 것 좀 봐라. 이럴 줄 알았으면 선거 안무 외운다고 날 밤 새지도 않았을 텐데. 허 참.”
“하하 그러게요. 저도 노래 부르다가 목 다 쉬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쉬엄쉬엄 할 걸 그랬어요.”
그러나 그들 중 단 한 사람. 이번 선거의 주인공인 유덕현만은…어쩐지 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음,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 가장 기뻐할 만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이번 일로 유덕현의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된 것이나 다음 없었으니까.
나는 고덕승의 유세 장면을 바라보는 유덕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보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러자 유덕현이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 김 대표님. 허허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냥 고 후보 유세를 보다보니 새삼 사람일 참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쌉싸래한 열매를 입에 문 듯한 그의 표정을 보니, 자신과 경합을 벌이던 상대가 저런 식으로 몰락한 것이 내심 걸리는 것 같았다.
하긴 만약 그의 상대가 고덕승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고덕승이 버티지 못했다면, 유덕현 자신 또한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유덕현이 씁쓸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 그렇죠 그런 법이죠. 허허 고덕승 저 사람도 그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곤 씁쓸한 낯으로 TV에 나온 고덕승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으신 것 같네.’
그렇게 잠시 고덕승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덕현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김 대표님 어떻게 보십니까. 과연 저 방법이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고덕승 후보의 행위가 흔치 않은 일이니 만큼 이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같았다.
‘하긴 어떤 암초가 도사리고 있을지 선장은 계속을 확인해야 할 테니까.’
나는 답을 기다리는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분명 선거판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퍼포먼스란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자와 다르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보다 더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식의 퍼포먼스가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저런 식의 퍼포먼스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선 사람들이 고덕승에 대해 연민이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글쎄? 아마 지금 타이밍이면 사람들에게 연민과 부채의식은커녕 빡침과 폭력 의식만이 가득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랄한다.]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고덕승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부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싶을 정도로 무섭고도 아주 극렬한 반응이었다.
[맞아! 제 자식도 버린 놈이 이제 와서 무슨 교육감을 한다고!] [뽑아 놔 봐야 또 제 살림이나 신경 쓰겠지. 뻔하다 뻔해.]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카메라가 있던 없던 상관없다는 투로 자신들의 속마음을 쏟아 내며, 고덕승을 성토했다.
[에라이 못난 인간아! 진짜 딸한테 미안하면 전화를 하든 직접 가서 사과를 하든 해! 괜히 여기 와서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정말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강도 높은 비난들.
그 비난들을 목도한 고덕승과 그의 선거캠프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잡혔다.
처참한 몰락이었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소홀한 인간이 평천하(平天下)를 시도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고덕승의 모습을 본 유덕현 후보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저건 좀….”
얼마 전까지 우리를 갈아 마시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자에게 보여 주기에는 제법 아까운 표정이었다.
‘뭐 유 후보의 그런 면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 힘이기도 하니까.’
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덕현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고덕승 후보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저러 거겠죠. 믿었던 만큼 그 실망 또한 클 테니까요.”
그러자 유덕현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 물론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저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런 일은 좀….”
그리곤 저런 일은 사양하고 싶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유덕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있는 한 유덕현이 저렇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그전에 후보님을 말릴 테니까요.”
“하하 그런 면에선 김 대표님이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그럼 김 대표님. 제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한다 싶으면 바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게 뭐 던 간에 바로 고칠 테니까요.”
나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시죠.”
그런데?
한참 방송을 모니터링 하던 유덕현이 갑자기 잘게 한숨을 내쉬며 자기 휴대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나요?”
내가 묻자, 유덕현이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제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아, 별일 아닙니다. 그냥 근래 들어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아무래도 요즘 연락이 제법 많이 오는 것 같았다.
‘하긴 아까 전만 해도 미친 듯이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덕현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후보님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죠. 그래도 지금 이 타이밍에 연락 한 통 없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가 수긍하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이런 때 전화 한 통 없는 것도 꽤나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니….”
그리곤 잠시 내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기 위해 캠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유덕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내가 한참동안이나 전화를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캠프에 도착한 이후로 한 번도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었지.’
아무래도 캠프에 들어와 있을 때는 캠프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전화를 다 받는 것도 못할 짓이니까.’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그래도 제법 중요한 연락이 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서둘러 전화를 꺼내 전원을 넣었다.
그러자.
띵동- 띵동- 띵동-
[부재 중 통화 +500] [미확인 문자메시지 +300]곧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이는 메시지는 바로 김연아.
내 첫 번째 제자의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