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2
22
022화 정식 계약 (3)
[은솔 : 1]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은솔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저번에 편의점에서 은솔의 취향을 엿본 다음부터, 그녀가 가끔 이렇게 연락을 해 오곤 했다.
뭐 연락이라고 해 봐야 하루에 카톡 몇 통 오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전 학원에 다닐 땐 서로 번호만 알고 있을 뿐, 단 한 번도 사적인 연락을 해 본 적이 없던 사이라, 처음엔 무척 어색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좀 지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물론.
[김준영 선생님. 댁엔 잘 들어가셨어요? (=^_^=)a]그녀가 보내는 이 딱딱한 문장과 꼬박꼬박 붙어있는 어색한 이모티콘이 아직도 좀 신경 쓰였지만.
천천히 답장을 적어 나갔다.
[네 퇴근했어요. 선생님은 잘 들어가셨나요?]톡을 보내고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머리도 말려야하고, 스킨이나 로션도 좀 발라야 했으니까.
하지만.
까똑까똑-
그 잠깐 사이에 휴대폰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뭔가 싶어 내려놓았던 휴대폰을 확인하자,
[네! 저도 이제 막 집에 들어와서 쉬는 중이었어요! ( ̄∇ ̄)b]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0^ )~]은솔의 답장이었다.
도대체 저런 이모티콘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 걸까? 폴더폰 시절에 유행했던 것들 같은데.
이모티콘을 검색하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 발랄한 이모티콘과 그녀의 평소 모습이 잘 매치되지 않았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키패드를 눌러나갔다.
[그럼 오늘도 한 잔 하시는 건가요?]편의점 막걸리를 생각하면서 발송 버튼을 눌렀다.
마침 톡방을 보던 중이었는지 금방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
그런데 머리를 다 말리고, 스킨로션을 다 바른 이후에도, 한참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내가 연락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일주일 정도. 그것도 처음 며칠은 정말 단답형의 안부 인사가 다였다.
게다가 평소 그녀는 차가운 도시 여성의 표본.
역시 아직 농담을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혀를 차며 휴대폰을 소파 위에 던져두었다.
그런데.
카톡카톡카톡카톡-
뭐지?
평소 은솔의 카톡 패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확인했다.
[김연아 님께서 당신을 에 초대하셨습니다.] [ 프렌즈 모블 5레벨만 달성하면···] [쌤! 하트주세요 하트!] [아 진짜 왜캐 느려요ㅋㅋㅋ]김연아였다. 어쩐지 쉬지 않고 보낸다 했다. 녀석이 보낸 게임 초대 톡과 하트를 달라는 톡을 읽자 헛웃음만 튀어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녀석의 톡방을 나왔다.
그러자.
카톡-
[아 왜 읽씹해요!!!]또 다시 김연아였다. 녀석은 내가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자 골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굳이 답장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한 번 답장을 해주면 주구장창 보내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알림창에 떠오른 녀석의 톡 내용만 확인하고 폰을 내려놓았다.
카톡-
하지만 녀석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끈기 하나는 알아줄 만한 녀석이다.
녀석의 톡을 무음으로 설정하기 위해 폰을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또 다른 알림음이 핸드폰 화면에 떠올랐다.
[저 술 잘 안 마셔요. 그땐 친구들이··· (ㅠ ㅠ )]* * *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즌.
학생들이 수능이나 대입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오는 시기였다.
때문에 학생들의 생각도 보고 입시에 필요한 정보도 얻을 겸, 입시전문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님들 제가 지방대 1학년인데 반수해서 경휘대 가능할까요?] [재수학원 좋은데 추천한다. 형만 따라와라.] [3등급으로 한웅대 가능한가요?]단순한 입시 질문부터, 반수, 재수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들까지. 여러 가지 분야의 글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열되어 있었다.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리다 보니, 어렸을 적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예전과 달라진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 계속 보게 됐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던 순간.
특이한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 연대생이 고대생에게 침을 뱉자, 고대생이 연대생의 아구창을 날려버렸다. 다음 중 제일 잘못한 사람은?]1번 : 침을 뱉은 연상대학교 학생.
2번 : 아구창을 날린 고리대학교 학생.
3번 : 집에서 어머니 어깨를 주물러드리던 어진대학교 학생.
[댓글1 : 333333] [댓글2 : 뭐 당연한 걸 물어, 당연히 어진대생이지 ㅋㅋㅋ] [댓글3 : 엌 ㅋㅋㅋ 3번 ㅋㅋㅋㅋ] [댓글4 : 다들 너무한다. 어진대학교 다니는 게 죄는 아니잖아.] [댓글5 : ㄴㄴ 죄 맞음. 부모 등골 브레이킹하는 극악무도한 죄인임] [댓글6 : 댓글4 딱 보니까 어진대생이구만. 인생 막장 새끼] [댓글7 : 빼박. 내 아들새끼가 어진대 간다고 하면 다리몽댕이를 조사 버릴거임]“···”
아주 저열한 조롱이었다.
실제 그 대학에 가보지도 않고 날리는 조롱. 어디까지나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던질 수 있는 말이었다.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사이로 이질적인 의견 하나가 눈에 띄었지만, 그 뿐이었다. 사람들의 매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보였으니까.
“···”
입시 포탈의 특성상 대학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예비 대학생들이 올린 글이라는 한계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언제나 자신은 1등급을 맞을 것 같고 명문대만 갈 것이라는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 현실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누군가 내 가슴을 큰 칼로 찌르는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날카로운 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유유상종이죠. 일반적으로 성실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이 명문대를 가는 거고, 그 안에서 경쟁하다보면 그만큼 능력도 함양되니 나중에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가 쉬운 거죠.그에 반해 다소 불성실하고 부족한 친구들은 일반 대학 가서 점점 나태하게 변하는 거구요. 그러니까 한 해라도 더 살아본 사람의 조언이라 생각하시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참고로 저는 서앙대 공대 나왔구요. 대기업 다니다 외국 명문대 유학해서 박사 따고 현재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 중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 할 자격은 충분히 될 겁니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아렸다. 포탈 메인에 올라와 있는 글들 중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글이었다.
입시 포탈에 왜 장년층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문제는 이 글을 읽고 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댓글1 : 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여윽시 명문대를 가야한다.] [댓글2 : 인생 선배님···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3 : 지방대라도 갈까 생각했었는데 재수 준비해야겠네요.]댓글들은 하나같이 찬양 일색. 몇몇 반박하는 글들은 뭇 사람들의 반대에 밀려 글이 삭제되거나 블라인드 처리 되어있었다.
후우-
포탈에 있는 학력 관련된 글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학력이 곧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준다는 식으로 글. 일부 그렇지 않은 글들은 루저들의 생각이라고 폄하되고 상황이다.
물론 글을 쓴 그들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런 생각이 깊게 박힌다는 것이다.
이래서 성공한 자들의 조언이 사람들의 인생을 좀 먹는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노력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인간성과 능력,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선생님이 최소한 수도권 대학이라도 됐으면 이런 말도 안 드리는 건데···”
새삼 저번에 있었던 부원장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한 줌의 가책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
누가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는 거대한 그물. 하지만 우리는 그 그물을 점점 성기게 만들기는 커녕 점점 더 그물코를 촘촘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달칵-
포탈 창을 닫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본다.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복합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
.
.
조용한 방.
오래된 잉크젯 프린터에서 문제지들이 쉴 세 없이 뽑혀 나오고 있다.
한 해 치러지는 시험들 중 파급력이 가장 큰 시험.
응시자 수만 60만 명이 넘어가는 그 시험의 문제지를 손에 들고,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 제 1 교시 언어영역 (홀수형)]가벼운 종이 몇 장. 하지만 그 종이 몇 장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이 시험 때문에 사람들이 흘린 눈물만으로도, 한강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문제지를 넘겨 지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45문제.
고전소설, 현대소설, 현대시, 고전시가, 비문학 지문까지 다 확인하고 나자, 프린터에서 인쇄 완료를 알리는 비프음이 들려왔다.
나머지 과목들.
[수리, 영어, 사회탐구 영역]까지.모든 수능 문제가 내 손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