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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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높은 성의 사나이 (4)
회의실 문이 열리고 곧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미안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
아무래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것은 초반 기 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는 저쪽의 꼼수였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하나도 미안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아니 약간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 표정으로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겠지.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처음 보는 인물이 수십 명의 원장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 아니, 거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지난 5년 간 학원을 운영해 오면서, 그리고 이번 선거를 준비 하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익혀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학원 원장들 앞에서 대표 행세를 하고 있는 인물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분명 지금 들어온 원장들 중 한 해 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사람들이 두어 명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그런 모습은 더욱 특이해 보였다.
‘뭐 대충 짐작은 가지만.’
하지만 뭐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학원장들이 이 회의, 정확하게 말하면 유덕현과의 첫 랑데부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 그것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했다는 것 그 자체였다.
‘일단 첫 단추는 그럭저럭 잘 끼워진 것이니까.’
나는 직원들을 향해 슬쩍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원장들을 바라보고 있던 직원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원장들이 안내하기 시작했다.
“맥아스터디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종각학원 자리는 왼쪽 입니다.”
“JR어학원 대표님! 거긴 JW학원 원장님 자리라….”
제법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안내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전에 확실히 준비를 해놓은 덕분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찾아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아까 원장들 앞에 서서 주인행세를 하던 사람이 앉은 자리를 확인했다.
[K에듀]‘역시나’
그제서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김호범.
전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마주했었던, 지금의 내 인지도를 만들어 준 대적, K에듀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뭐 저쪽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최정순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는데, 이제 보니 드디어 은거를 깨고 속세로 나온 것 같았다.
‘한번쯤 만나 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그를 뜻하는 용어는 많았다.
‘학원대통령.’
‘사교육부장관’
‘수능교황’
등등.
그를 뜻하는 이름들과 그 이름에 얽힌 둘러싼 전설 같은 일화들을 듣고 있자면, 과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는 군부 독재 치하에서 지금까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사교육 현장의 최전선에서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낸 자였으니까.
때문에 처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삼두육비의 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광목천왕 같이 인상적인 생김새를 가진 사람을 생각했었다.
‘들은 이야기가 워낙 많았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본 그의 모습은…예상외로 무척이나 평범해 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그의 외모만 보았을 땐 그 누구도 그를 K에듀의 주인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
‘아까 들어보니 목소리는 꽤 큰 거 같긴 했지만.’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연히 K에듀의 주인.
그가 가지고 있는 위명의 반만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경계할 만한 사람, 아니 척결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 모두를 가차 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린, 잔인하기로 이름 높은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자식 또한 버렸다지.’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주변 원장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가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가벼운 웃음과 함께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여유 만만한 모습, 아무리 봐도 그 또한 나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긴 모를 리가 없지. 그가 은거를 깨게 된 거에 내 지분이 제일 클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여유로운 태도가 불길해 보였다.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도 적진 한가운데 들어왔을 때에는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그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단 1그램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가 아무리 큰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아무리 많은 학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나와 유덕현이 서울시 시민들과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상 힘의 우열은 명확했으니까.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고 나무는 흙을 떠나 버틸 수 없는 법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김호범 마주 바라보며 슬쩍 웃어 보였다.
그러자 김호범의 눈이 약간 가늘어지며, 그의 입가에 시종일관 맺혀있던 미소가 스르륵 사라졌다.
살짝 비틀린 그의 입 꼬리를 보니, 아무래도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바라던 바다.’
그렇게 원장들의 착석이 다 끝난 후, 유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교육청 직원들, 출입 기자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온 사교육 학원의 원장들까지, 회의실 내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유덕현에게 모였다.
모두들 유덕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앞으로의 교육 시장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사람들의 시선을 삼킨 유덕현이 막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잠시 기다려 주시죠. 아직 안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호범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고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유덕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냐하면 들어온 자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로…
공교육.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시 소재의 유력 사학재단의 구성원들이었다.
‘아니 왜 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직원들이 나서 사람들을 막으려 했다.
“오늘 초청되지 않으신 분들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밀고 들어오셔도 소용없으니까 빨리 나가세요!”
“어허, 아실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그 모습을 본 김호범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유덕현 교육감님, 서울 시민들이 회의에 참여하겠다는데 못 들어오게 막는 겁니까? 허허, 그렇다면 정말 실망입니다. 아니 그쪽에서는 전례에 없는 일을 버젓이 저질러 놓고 이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그 순간, 원장들의 성토가 시작됐다.
“맞습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왜 막으려는 겁니까!”
“어서 저분들을 들어오시게 하세요! 안 그러면 저희는 회의 참여 안 합니다!”
사람들이 난색을 표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서울시 교육청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서울 시민이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권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저들을 이곳에 들이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 이 회의의 일차적인 목적이 바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같은 시기에 공교육 적폐의 상징과 같은 자들을 이곳에 들이는 행위는, 제 집에 원수를 들이는 일과 같았다.
‘최악의 경우엔 사교육과 공교육계 양쪽에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들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들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시겠다면 그 책임은 모두 교육청 측에 있는 겁니다!”
그것을 빌미로 이번 회의를 보이콧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자 김호범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영악한 양반이구만.’
김호범을 바라보자 그가 여유로운 표정을 유덕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의 낙승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웬만한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단점이 명확했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이 정도는 변수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다.
나는 유덕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내 신호를 받은 유덕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도록 하죠.”
학원 원장들의 얼굴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전초전에서 그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말은 언제나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들의 득의만만한 미소를 본 유덕현이 짙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단 어디까지나 참관인으로 들어오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회의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시면 바로 나가셔야 될 겁니다. 아시겠죠. 시민 여러분?”
순간, 원장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방어할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해 놓은 말도 있으니 유덕현의 말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쫓겨날 테니까.
그렇게 간단히 사태가 일단락되자. 김연아를 위시한 사람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세팅했다.
그러자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사학재단 사람들이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본격적인 회의,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격적인 사교육 길들이기가 시작됐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유덕현이라고 합니다. 여기 저를 처음 보신 분도 있고 또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자 사학재단 쪽 사람들이 표정이 마치 와락 일그러졌다.
다들 유덕현에게 그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긴 그가 교육 위원으로 칼춤을 출 때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이들이 그들일 테니까.
‘저 사람들이 또 언제 그런 일을 겪어 봤겠어.’
하지만 지금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사학재단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유덕현 피식 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진즉에 이렇게 모셨어야 했는데 그 동안 교육청 내에 일이 많아서 여러분들을 모시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 점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례적인 사과 멘트. 하지만 웬일인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영 떨떠름하기만 하다.
뭐 그도 그럴 것이 교육청이 그동안 시끄러웠던 건 그들이 교육청 안에 심어 놨던 세포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러니 지금 유덕현의 사과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과가 아닌 그들에 대한 선언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선언.
더 이상 당신들의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때문에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엷은 웃음을 띠운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예상 밖의 행위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유리한 것은 우리였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유덕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죠.”
간결한 언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 유덕현이 곧,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여러분. 교육청은 이제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육청 내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 놓는 것도,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경쟁을 심화시켜 그들의 고혈 쥐어짜는 것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육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행동하신다면, 그를 통해 바람직한 교육문화 확립에 이바지 하신다면 교육청에서는 여러분들의 사업에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와 동반자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적이 되시겠습니까?”
그것은 일체의 수사가 가미되지 않은 말.
정치적으로 봤을 때 빵점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날 것이 주는 선연함이 살아 있는 말이기도 했다.
수사적 표현에 익숙한 자들에게 들이닥친 직관적인 언어만큼, 확실한 충격을 주는 것도 없는 법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유덕현의 말이 끝나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정확하게 말해 학원 원장들과 사학재단 사람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유덕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허….”
“거 참….”
“흐음….”
그러나 유덕현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선전포고 이후, 간단한 언어만으로도 전선에 포화가 집중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굳이 먼저 나서서 공격을 맞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
때문에 자연히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업계 1위인 K에듀의 수장이자.
전설 같은 위명의 소유자.
이 중 유일하게 교육청과 맞상대가 가능한 존재.
김호범이었다.
“흐음….”
회의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의 그의 입을 향했다.
이제 곧 그의 입에서 나올 말에 따라. 앞으로의 사교육 판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의 숨 쉬는 소리마저 잠잠해질 무렵.
김호범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거절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