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26
226
226화 높은 성의 사나이 (5)
사람들의 시선이 김호범에게 향한 순간,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죠. 저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유덕현이 차가운 눈으로 김호범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김호범에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김호범이 지금 한 말은 그 전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부정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러자 김호범이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 입을 열었다.
“교육감님. 아니 여러분. 저희가 어떤 사람들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김호범의 질문에 사람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교육에 대한 평가. 그것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교육을 하는 사람이라 하면, 학부모의 피와 살을 발라 제 살을 채우는 자. 약삭빠른 장사치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흐음….”
하지만 그렇다고 당사자 앞에서 그 말을 할 정도의 철면을 지닌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쓰레기, 아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좀 먹는 좀 벌레.”
김호범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호범을 바라보았다.
다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에서 뱉지 못했던 것들의 이름이 김호범, 당사자의 입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김호범이 다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에 사람들이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흠.”
그것은 무언의 긍정.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들켰다는 부끄러움. 이상한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혐오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김호범이 기이할 크게 입을 벌리며 웃었다.
“하하, 다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습니다. 다들 한참 잘못 알아도 잘못 알고 계신 거니까요.”
그리곤 뱀이 혀를 놀리듯 서서히 입술을 움직여나갔다.
“사실 저희는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더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순간 ‘풋’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교육청 직원들 중 한 명. 이제 막 임용된 신규 직원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적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태도는 무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그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김호범은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시군요. 뭐 좋습니다. 그럼 증거를 보여드리죠.”
말을 마친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맥아스터디 대표 도경영. Y대 출신. 1985년 교내 시위 주동으로 동년 강제 징집. 대학 졸업 후 일반 기업 취업에서 배제됨. 지인의 추천으로 강사 생활 시작.”
“이OO논술학원 원장 이OO. K대 출신. 1987년 전대협 임원으로 활동 중 구속. 이때의 기록 때문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취업까지 불가능해짐. 호구지책으로 강사 생활 시작.”
“JR어학원 대표 최OO. S대 출신. 대학 졸업 후 교사 재직 중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강사 생활 시작.”
.
.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설마?’라는 표정으로 해당 원장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름이 불린 원장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누구보다 더 이 나라와 시민들을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저희가 교육청 사람들을 건드리고 사람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겨 고혈을 빨아 먹는다니요.”
사람들의 시선이 살짝 흐려졌다. 그저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인 줄 알았던 이들이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큰일인데?’
분명 과거 원장들이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그 사실은 술자리의 안주, 혹은 자신을 지켜 주는 방패에 불과했다.
‘아마 기억조차 희미하겠지.’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시대를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 단순한 교육을 통해 그 시대를 접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다간 그 자신도 모르게 저들 쪽에 심정적인 동조를 할 수도 있었다.
‘분별없는 낭만이란 원래 위험한 것이니까.’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만큼, 그런 일은 사전에 방지해야만 했다.
내가 유덕현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지금 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유덕현이 단호한 표정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이군요.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하셨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저는 그리고 저희 교육청은 지금 여러분들이 현재 어떤 모습을 취하고, 또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서울시의 미래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에 대해 묻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여러분들이 그동안 잘못을 저질러 온 것은 사실 아닙니까.”
유덕현의 말에 김호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희가 교육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광고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누구 때문입니까?”
뻔뻔한 대답이었다.
김호범의 철면에 유덕현이 어이없다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그게 저희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처럼 저희가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누굽니까. 바로 정부.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국적인 식견 없이 때에 따라 교육 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인들과 줏대 없는 교육전문가들 그리고…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 아닙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선명하고 극렬하며, 일방적인 비판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체가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은 일견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근거 따윈 하나도 없는 사람들의 통념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정부가 칭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런 비판을 받았을 때,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아무리 논리적인 자료들을 가져와 들이밀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이었다.
본디 인간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김호범이 사람들을 훑어보자,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슬금슬금 그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흑과 백이 선명한 눈동자, 자신의 말에 한 점의 거짓도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호도된 것이었다.
‘무슨 스톡홀름 신드롬이냐….’
사람들의 반응이 변한 것을 확인한 그가 때는 이때라는 듯,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곤 그저 정신없는 교육 정책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당신들의 말을 따르면 시민들,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보다 더 나은 길을 제시해 준 것밖에 없습니다.”
극렬한 비판 뒤 보여 주는 인간적인 면모. 능수능란한 그의 언변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볼 유덕현이 아니었다.
“…말에 어폐가 있으십니다. 대표님의 말씀은 다른 선량한 학원장님들의 삶을 조롱하는 것일 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여러분이 행했던 불법행위를 행하지 않고 떳떳하게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다는 겁니다.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어려분이 저질러 온 불법 행위들은 순전히 여러분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방책에 지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궤변으로 진실을 호도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가 아무리 자신과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를 포장하려 한다 해도,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정도를 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자 김호범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그리며 천천히, 사람들에게 가장 깊게 다가갈 만한 목소리,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말 표정 연기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효력이 제법 약해 보였다.
그의 말에 유덕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김호범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하, 뭐 신사답게 끝내 볼까 했는데 그도 재미 없구만. 그래 좋아 어울리지 않는 존댓말은 이제 그만두지.”
그가 눈을 뜨며 지금까지완 전혀 다른 표정, 전혀 다른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한 그의 태도에 사람들이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제부터 왜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 아주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해 주겠다는 말이지.”
그리곤 공격적인 태도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당신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없었다면. 우리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 이 자리에 다 머저리들밖에 없었을 거라는 말이야.”
사람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그가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래, 알고 있을 거야. 모를 리가 없지. 해가 가면 갈수록 학교에 다니는 애새끼들이 급격히 멍청해지고 실력 또한 하향평준화 되고 있으니까.”
그리곤 슬쩍 사람들을 돌아보다가 종국엔 유덕현에게 시선을 맞췄다.
“뭐 해마다 교육 평등이니 기회의 균등이니 하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들이미니 계집애들은 화장이랑 연예인에 미쳐 있고 남자애들은 게임에 미쳐서 공부 따윈 뒷전에 두는 건 당연한 거겠지.”
그것은 분명히 유덕현으로 대표되는 교육감들, 교육의 변화를 노리고 기존의 교육 정책을 바꾸려 했던 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실 내가 아직 한창 현장에 있을 때에도 노는 애들은 있었어. 사람이란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애들이 아주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애새끼들은? 어디 그런 거 신경이나 쓰나?”
“…….”
“더 문제가 뭔지 알아? 이 사회는 열심히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라는 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해, 어? 그럼 이 새끼 잘못됐다. 끌어내리자. 끌어내리지 못하면? 반동이다, 죽여라. 그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지?”
그는 마치 자신이 그 무대에 서 있다는 듯, 강한 적개가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공기가 살을 에듯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자 대가 약한 사람들 몇이 몸을 떨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야, 이 모양 이 꼴. 중학생들은 자유학기제다 뭐다 해서 학력수준 개판. 꼴에 고등학생이라는 것들은 임진왜란이 언제 일어났는지. 우리나라가 언제 독립했는지도 몰라. 허허, 아니 그 정도는 양반이지. 공대 입학했다는 것들이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도 못 구하는 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니까.”
그의 말에 동조하듯 학원 원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시, 학종, 생기부 다 좋은 이야기야 다 좋은 이야긴데. 당신들. 그런 것들 시도해서 한 번이라도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있나?”
“뭐 공교육의 몰락? 그게 다 사교육 때문이라고? 지랄. 지금 이 환장을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신랄한 비난을 쏟아 내던 그가 천천히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노호(老虎)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그 소리에 사람들이 긴장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야기 하지. 지금 이 나라 그리고 이 사회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 지금처럼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기회의 균등이 아니라 결과의 균등을 원하고 있다고. 아니 이제 와서 사회주의 실험을 다시 해 보고 싶은 건가? 그도 아니면…다들 우리나라에서 스푸트니크 쇼크가 오길 기대하고 있는 건가?”
그리곤 피식 웃으며 유덕현을 향했다.
“그러니까 남을 매도하고 욕 하려면 일단 거울이나 한번 보고 이야기 하란 말이야. 지금 이 사회를 만들어 낸 게 누군지 확인하고 나서 우리한테 선택을 하라 말라 말을 하라고.”
잘게 한숨을 내쉰 그가 한심하다는 듯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그나마 이 나라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게 우리 같은 사교육 종사자들 덕분인 것도 모르고. 쯧쯧.”
사람들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당신들이 5시 땡 치면 퇴근해서 치킨 뜯을 때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뼈가 부서져라 자료를 만드는 게 바로 우리 회사 강사들이고, 그 사람들 월급 주는 게 우리야. 아니 그런 우리가 당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실로 믿고 있는 건가?”
그가 말을 마치자, 주변에 고요했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모두가 그의 기세에 눌린 것 같았다.
그러자 김호범과 원장들의 표정에 여유로운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왜 대답들이 없지?”
하지만 모두가 그 기세에 눌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우세는 단순한 쇼에 불과한 것, 쇼맨쉽을 통해 사람들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김호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답해 드리죠. 당신의 말은 근저부터 잘못되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