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28
228
228화 높은 성의 사나이 (7)
나의 말에 김호범이 얼굴을 찡그렸다.
“방법이 있다고?”
“네. 물론이죠.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그러자 내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것 같았다.
“그래 그 방법이란 게 뭐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기초학력 저하라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
김호범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 그 방법은 바로…
“유급제와 졸업제도의 강화.”
현행 고등학교 제도의 변화였다.
내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급제와 졸업제도…?”
김호범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인 유급제도를 확대시켜서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유급제도를 실시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국내에 도입, 그 난이도를 설정한다면 굳이 학교 교육에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강제하지 않아도 대표님이 걱정하시는,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을 학생들 스스로 채워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나 고등학교의 졸업제도는 무한 경쟁에 기초한 제도.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인질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제도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무책임한 제도이기도 했다.
무한경쟁에 기초한 제도라는 말은 곧 학생의 성취도는 오롯이 학생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말. 따라오는 자만 끌고 간다는 말이니까.
‘솔직히 출결만 어느 정도 신경 쓰면 졸업이 가능하지.’
뭐 교사들이 학생들을 관리하기에 그보다 편한 제도는 또 없겠지만, 어떻게 보면 학생들을 죽이는 제도임과 동시에 학생들을 포기하고 있는 제도가 바로 지금의 고등학교 제도였다.
그러니 현행 고등학교 제도에 유급제도와 졸업시험 제도를 추가한다면, 학생들의 자율성 학습활동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소위 말하는 ‘기초학력’ 또한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학교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김호범이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참을 웃던 그가 돌연 웃음을 멈춘 채, 음영이 선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쳤군.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어.”
선연한 그의 말에 유덕현이 표정을 굳혔다.
“…김호범 대표님, 예의를 차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김호범이 순순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만 이거 너무 오래간만에 이런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 나와 버려서.”
사과를 마친 그가 비릿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나를 향한 적개와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의 뱀 같은 시선을 마주했다.
“무슨 의미입니까.”
“무슨 의미는 무슨 의미야. 자네 말이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의미지.”
말을 마친 그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 뭐 유급제도와 졸업시험제도를 이용한다는 생각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 자네 말대로 그 방법이라면 학생들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상식 교육은 가능할 테니까.”
“그런데 자네…설마 다른 사람들이 정말 멍청해서 지금까지 그 방법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 보는 건 아니겠지?”
“그건….”
“쯧쯧,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거야. 두 방법 모두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게 불가능 하니까.”
그리곤 잠시 사람들을 바라본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 말을 꺼낸 순간, 사람들이 그 말을 꺼낸 사람 갈갈이 찢어 버릴 게 분명하거든.”
“…누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겁니까?”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교육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자 김호범이 한심하다는 듯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자네들…만약 학교에서 ‘당신 아이가 공부를 못해 유급시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나?”
순간, 사람들이 ‘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유태인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 그 드높은 교육열은 해외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美 가수, 한국인 교육열을 조롱하는 노래 만들어] [한국인 학부모들, 미국에서도 치맛바람] [한국의 교육열, 또 하나의 군비 경쟁]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자신의 아이가 ‘유급’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노발대발,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학교 교무실로 달려갈 것이 분명했다.
‘아마 교사 멱살부터 잡고 시작할지도 모르지.’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김호범이 슬쩍 웃어보였다.
“게다가 졸업시험이라니. 아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거야 말로 정말 미친 짓이야. 교사들 입장에서 지금까지 배우고 가르쳐 왔던 것들이 모조리 다 폐기 처분되는 것일 텐데 그들이 쉽게 수긍하겠어? 아마 정책 입안자를 화형 시키려 들겠지.”
“거기다 그 정책들을 현실화하는 데 들어갈 돈과 시간까지 생각하면…현실성이 없는 계획이야. 현실성 없는 계획.”
그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급제도라니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맞아. 우리나라에서 유급이라니 학부모들 등쌀에 배겨 나겠어?”
“거기다 바칼로레아? 어휴 수능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걸 어떻게 해?”
아무래도 그들 또한 김호범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뭐 일반적인 경우라면 말이지.’
나는 유덕현을 바라보며 슬쩍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유덕현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상을 두드렸다.
탕-
사람들의 시선이 유덕현에게로 향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김호범의 물음에 유덕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이 지적하신 사항들은 이미 충분히 검토가 끝난 상황이라는 말이죠.”
그리곤 묵직한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능력 향상 계획]그것은 바로 내가 말한 정책들의 세부적인 계획.
그 안에는 김호범이 지적했던 사항들에 대한 자료와 그 해결 방법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자료였다.
유덕현이 들어 올린 자료를 본 김호범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신이 나갔군.”
유덕현의 단단한 태도를 견지하며 대답했다.
“만사불여튼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자네가 생각하고 있다는 그 정책. 실패할 테니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근거?”
그가 짙은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그럼 허무맹랑한 정책들 보다 지금과 같은 체계가 더 잘 어울리는 법이야. 원래 거친 흙에서 자란 나무가 오래가는 법이거든.”
“그 거친 흙 때문에 자라지도 못한 채 말라죽는 나무들이 있다는 건 생각지 않으십니까?”
“물론. 게을러빠진 것들에게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될 성 싶은 나무들에게 물을 주는 게 낫지.”
이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완고한 태도였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속적인 평가와 대입시험을 거치면서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적당한 경쟁은 사람의 향상심을 자극,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경쟁이라는 형식이 사회의 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손쉽게 전환한다는 점이다.
‘바로 지금처럼.’
“대표님.”
“왜?”
“우리나라에서 한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의 수가 얼마나 되는 지 아십니까?”
그러자 김호범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그건 갑자기 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려 700명입니다. 700명.”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살자 수가 그렇게나 많았나?”
“글쎄? 십년 전에는 그저 200~300명 정도였던 거 같은데….”
대부분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굳이 찾아볼 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김호범의 저 강고한 태도를 깨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자살 위험군 학생들의 수와 관심군 학생들의 수가 2배씩 늘어 가고 있는 판국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수치를 보시고서도 학생들에게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미래에 올지 안 올지 모를 ‘돈의 행복’을 위해 버티고 또 버티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그러자 김호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만 봐서는 금방이라도 내게 고함을 뽑아내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지금 이 상황에선.’
나는 그가 막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그 순간, 그가 말할 타이밍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 잡는 교육입니다. 사람 잡는 교육.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 만드는 교육이라 이 말씀입니다. 이걸 누가 만들었습니까?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바로 당신과 같은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현실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을 도구화시켜 사람답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 냈다는 말입니다.
그리곤 잠시 휴지를 준 뒤,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낸 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까?”
그러자 그가 분기탱천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럼 자네에게는 책임이 없나?”
“물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꾸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비록 오래 걸리겠지만 그 오랜 시간을 우리가 줄여나가겠다는 겁니다.”
물론 그 변화는 힘겨울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쌓여 온 퇴적층을 걷어내는 것이니만큼 살을 뜯어 내는 고통과 소음이 함께할 수도, 오류가 있을 수도,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가 두려워 과거로 돌아가 버릴 것인가?
미래가 두렵다고 변화의 기회를 걷어 차 버리고 암굴 속에 몸을 숨길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와 우리의 주변 환경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데?
빠르게 죽어 갈 것이다.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서서히 죽지 않고 빠르게 고사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바뀌어야만 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변하지 못한다면 단단한 화석이 되어 반면교사가 될 뿐이니까.
“자 이제 결정하십시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의 제안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거절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김호범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수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절하도록 하지. 어차피 붙어 온 싸움이라면 피한 적이 없거든.’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라…. 뭐 열심히 해 봐. 어차피 우리들 사이에 풀어야 할 은원도 있으니까.
으르렁거리듯 대답한 그는 자신을 따르는 원장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떠나 버렸다.
“우리들 사이에 은원이라….”
나는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려 보였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K에듀와 소라게 학원 사이의 은원, 최정순과 만들어 온 그것을 이번 기회에 풀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방법으로 말이야.’
하긴 이쯤에서 결착을 내야 하긴 했다.
어차피 나와 그는 학원 운영 스타일은 물론 인간과 교육을 바라보는 눈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양립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내가 김호범과의 일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유덕현이 내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어왔다.
최대한 온건하게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그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고 회의장을 벗어난 이상.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한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전면전(全面戰).
상대방의 무조건 항복을 전제로 한 총력전이었다.
나는 유덕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준비한 것들을 진행해야겠습니다.”
“언제부터?”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이제 말의 시간은 끝났다. 힘의 시간이 도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