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30
230
230화 총력전 (2)
진루각(塵累閣).
과거 밀실 정치의 산실로 이용되던 곳이자, 현재 서울시 대형학원 협회 회원들의 회합장소로 애용되는 곳. 여성들의 교태로운 웃음과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향그러운 가야금 산조 선율이 흐르던 이곳이…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김호범 대표님!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십시오!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그것은 바로…서울시대형학원협회 소속 회원들.
정확하게는 이번 ‘서울시 교육청 규탄 집회’ 사건으로 인해 손해를 본 학원의 원장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저희 학원에서만 10명 넘는 강사들이 나갔어요!”
“저희 학원은 강사 15명에 원생만 100명입니다! 이거 어쩌실 거예요! 예?”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가시려고 하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책임지세요!”
그들은 분노한 이리떼처럼 각자의 불만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들의 비난 한가운데 있는 사람.
이번 일의 시작이 된 ‘교육청 규탄 집회’를 기획한 장본인.
김호범.
그는 그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눈을 감은 채 이 자리에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사람들, 이번 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원장들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상을 내려치면서 그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말을 좀 해 보십시오!”
“허허! 이제 와 책임을 회피하시는 겁니까?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러자 상 위에 있던 술잔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겁에 질린 여성들이 몸을 움츠렸다.
개판이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김호범의 위명과 K에듀의 규모, 영향력에 눌려 그가 한 마디 숨죽인 채 그의 눈치를 보던 것이 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
오늘의 김호범은 더 이상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오늘 그들에 눈에 비친 김호범의 모습은.
‘이빨 빠진 호랑이 ’
전성기를 지난 먹음직스러운 먹이에 불과했다.
“아니, 책임질 능력이 없으면 그만 물러나시던가. 아니면 피해를 보상을 하시던가. 아니 이건 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허허, 그렇게 말입니다. 그동안 협회장 대우를 받았으면 능력을 보여 줘야지. 이건 뭐 맨땅에 헤딩하는 것도 아니고. 쯧쯧.”
“그러지 말고 그냥 속 시원하게 사과하고 사퇴하세요. 이쯤에서 교육청에 사과하고 사퇴하시면 저쪽에서도 받아 줄 겁니다.”
그 모습을 본 M스터디의 대표, 도경영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사실 얼마 전 김호범이 휘하 학원들에 총동원령을 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협회 내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500여개가 넘는 중대형 학원.
수십 개의 사학 재단.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유명 강사들.
수천 명의 일반 강사들.
그리고 각 학원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까지.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자, ‘이 정도면 안 될 것은 없다’는 자심감이 원장들 사이에 싹텄기 때문이었다.
‘이야, 학원가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그러게 이 정도 인원이면 대통령이라도 하야시키겠는데?’
‘하하, 그럼 우리 그날 촛불이라도 좀 들까요?’
‘어?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역시 시위하면 촛불이니까.’
그러나…그들이 사람들을 총동원해 집회를 열기 바로 몇 시간 전.
교육청 쪽에서 그들의 뱃속에 커다란 칼을 찔러 넣으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학원 및 사학 비리 포상금 최고 5억! 깨어 있는 강사, 교사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내부고발자 보호 프로그램 및 재취업 기회 제공!]교육청에서 내건 짧은 글귀에, 그전까지 순한 양 같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적군으로 돌변, 지휘관의 수급을 베어 교육청으로 투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K에듀 비리 고발하러 왔습니다. 자료들도 다 가져왔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OO학원 탈세 정확 증거 가져왔는데 이걸로 보상금 얼마나 받을 수 있죠?’
‘저는 포상금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원장 그 새끼 하나만 확실하게 보내 주세요.’
그러자 가까스로 모아 놨던 사람들이 동요,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져 내렸다.
‘어 부원장 나야. 그래 학원에 별일 없지? 어? 김OO이 안 보인다고? 찾아! 찾아서 무조건 달래!’
‘아이고 김 선생. 왜 그래. 우리 사이 나쁘지 않았잖아. 내가 앞으로 잘 할 테니까 나쁜 생각하지 말고. 응, 알았지?’
‘뭐? 시위는 어떻게 하느냐고? 아니 이 상황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지금 본진이 털리기 직전이라고!’
그간 K에듀와 발을 맞춰 왔던 사람치고 비리 한두 가지쯤 안 저질러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표님…OO학원 측에서 오늘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동춘 사학에서도….’
‘좋은 어머니 협의회에서도 참여 못할 것 같다고….’
결국.
[오늘 오후 1시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서울시 학원 협의회의 교육청 규탄 시위가 학원 협의회 내부의 사정으로 인하여 돌연 취소되었습니다. 이번…]거창하고 거대했던 김호범의 계획은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끝나 버렸다.
‘허…어쩌다 일이 이렇게….’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학원들의 진군을 막아 낸 교육청은…
[서울시 교육청, 허위, 과장 광고한 입시학원 수십 곳 적발] [서울시 교육청, 입시학원 학생과 학교 이름 넣은 홍보물 단속] [서울시 교육청, 학원 입시설명회 D외고 조사 착수] [서울시 교육청, 선행학습 및 불법광고 입시학원 277곳 적발] [서울시 교육청, 심야교습 단속 강화] [서울시 교육청, 학원 초고액컨설팅 집중단속].
.
학원들이 정신 차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 댔다.
마치 학원가를 석기시대로 돌려 버리겠다는 듯이.
그러자.
탈주하는 강사들과 자리를 옮기는 학생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불신과 빠르게 줄어드는 주머니.
가까스로 진정되고 있던 학원가 분위기가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어 버렸다.
어마어마한 손실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수십 년을 이어 온 서울시 대형학원 협회가 갈기갈기 찢어져 버릴 테니까.
“…휴.”
도경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굶주린 짐승의 시선으로 김호범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김호범을 제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도경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손해를 본 것으로 치면 업계 1위인 김호범과 자신이 가장 큰 손해를 봤었다.
그러니 손해액으로만 보면 자신이 가장 먼저 나서서 김호범을 탄핵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김호범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님을.
또 그렇게 쉽게 원한을 잊는 사람이 아님을.
그리고 그 복수는 제법 두려울 것임을.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대부분이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마치 범의 아가리를 향해 앞발을 내미는 하룻강아지처럼 짖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멍청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마음만 같아서는 나중에 어떻게 되든 그들을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좋든 싫든 십 수 년을 함께해 온 이상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만 했다.
‘협회가 온존해야 지금의 사태를 해결해 나가는데 수월할 테니까.’
결심을 굳힌 도경영이 자신과 비슷한 위치, 비슷한 연배의 원장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들이 자신과 함께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힌다면, 그렇게 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지금의 소란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듣겠지.’
그러나…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 버렸다.
“흐음….”
“허어….”
“크흠….”
그의 눈짓을 받은 사람들 모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뭐….’
아무래도 그들 또한 이번 기회를 빌어 김호범이라는 대호를 끌어내려 하는 것 같았다.
이쯤 되자 그의 머릿속에도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학생들과 점점 수사망을 조여 오는 공권력.
악화일로를 걸어가는 수익과 분열되어 가는 사람들.
거기다.
“흐음….”
딱히 말이 없는 김호범의 모습까지. 모든 것들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거 지금이라도 갈아타야 하나?’
그런데 그때.
드르르륵-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때까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을 보아지 않던 김호범이 일순,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곤 바로.
쿵-
손바닥으로 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놀란 토끼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뭐야?”
“갑자기 왜?”
“무슨?”
그 모습을 본 김호범이 단단한 표정으로 지금껏 자신을 성토하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제야 쭉정이들이 구분되는구만.”
순간, 김호범에게 지목당한 사람들. 이른바 쭉정이들이 눈을 파르르 떨며 김호범을 노려보았다.
“하, 지, 지금 저희한테 하시는 말입니까?”
“아니 지금껏 대답도 못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책임이나 제대로 좀 지시죠.”
그들의 말을 들은 김호범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김 원장, 이 원장, 최 원장.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아가리 닥쳐.”
그리곤 바로 문 앞으로 다가가 드륵- 문을 열어 버렸다.
그러자.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 밖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누구기에….”
순간, 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의 모습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냐하면 지금 문 앞에 있는 사람은…그들이 절대로 봐서는 안 될 사람. 가까이 해선 안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분이 이곳에….”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김호범이 비릿한 웃음을 입에 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지는 게임 따윈 하지 않으니까.”
* * *
[숙영재단, 교무부장 쌍동이 자녀 내신 비리] [환영유치원 국고지원금 회계부정 비리] [낭인재단 교사 채용비리].
.
오늘 올라온 고발 자료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내 등에 쿵- 머리를 박았다.
깜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눈가에 진한 다크써클을 달고 있는 김연아가 촉촉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휴…. 쌤 일이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요즘, 학원들과의 전쟁을 진행하면서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일이 그렇게 많이 남았어?”
내가 묻자, 김연아가 힘없는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마세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그리곤 씁쓸한 표정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느니, 같이 일하는 행정직원들은 라꾸라꾸 침대에서 자고 있다느니, 이대로 가다간 공무원으로 전직할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처음보다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하루 수십, 수백 건에 달하는 고발들을 접수되고 있었다.
때문에 현재 교육청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김연아처럼 다크써클을 상시 장착하고 다니고 있었다.
접수되는 고발 건마다 그 타당성을 확인하고 관련 부서와 연계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많은 인력이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진짜 요즘 같으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쪽쪽 빠진다니까요?”
나는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만 더 힘내. 아마 이번에 사람들 좀 들어오고 그러면 좀 나아질 테니까. 정 힘든 일이다 싶으면 나한테 바로 말하고.”
“오? 진짜요? 그럼 쌤 지금 바로….”
그런데 그때.
카톡카톡카톡-
띵동띵동띵동-
따르릉-
갑자기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순간, 김연아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쌤 뭐에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의아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은솔 : 선생님! 지금 큰일나ㅆ어요!] [은솔 : 지금 구ㄱㅅㅔ청에서 사람드리 나와서] [지성형님 : 준영아 지금 학원에 난리 났어! 문자 보면 빨리 연락 줘].
.
액정 위에 떠 있는 십 수 개의 문자 메시지와 카톡.
그리고.
[이아린]내게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연락을 본 순간, 나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왜요, 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김연아가 걱정 어린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하지만 나도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잘게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선생님 큰일 났어요! 사람들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요!]수화기 너머에서 이아린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린아 진정하고 말해 봐. 지금 어떤 상황인 거야?”
[국세청이에요! 국세청! 갑자기 국세청에서 사람들이 나왔어요!]순간, 김호범의 비릿한 미소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