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7
27
027화 나의 집 (1)
음파음파-
틴트를 바르고 입술을 맞부딪치며 점검하는 소리.
10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통칭 ‘음파음파’로 통하는 소리를 내며 화장을 하고 있는 김연아다.
방년 17세. 입술에 분홍빛 틴트를 바르던 김연아가 갑자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그리곤 제 얼굴을 거울에 슬쩍슬쩍 비춰보며 생각한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얀 얼굴에 연분홍색 입술. 눈가에 살짝 뿌려진 펄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 살짝 컬이 들어간 단발머리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렸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처음 해 보는 화장.
평소 기초화장 외엔 잘 하지 않았던 터라 내심 걱정했는데 나름 화장이 잘 먹었다.
‘헤헤 준영 쌤, 몰라보는 거 아니야?’
내일 있을 약속을 위해 언니의 신상 틴트까지 몰래 빌려온 참이었다. 그녀는 내심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만약 들킨다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만큼 도발적인 발색이었지만, 내일 약속을 위해 이 정도는 과감하게 감수하기로 했다.
‘으 그런데 정말 가도 되나? 약간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김연아가 김준영을 믿고 따르고 있다고 해도, 남자 혼자 있는 집에 혼자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어쩌지 내일 화장은 하지 말까?’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섣부른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혹시 자신 때문에 김준영이 범죄의 길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그래도 안 하면 오늘 연습한 게 너무 아까운데.’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가며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일 화장을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남겨 놓으리라는 듯, 가열차게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무려 삼십분 동안 셀카를 찍어 대던 그녀가 가까스로 마음에 드는 사진 두 장을 건졌을 때였다.
띵동-
아까 올려 놓았던 뇌입어 지식인 알림음이 들렸다.
그러자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질문을 확인한다.
[비공개 : 17살입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갈건데요, 선물 뭐 사 가는 게 좋을까요? 내공 50드림!]요즘 뇌입어 지식인이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터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답변이 달려 있다.
김연아는 내심 기대하는 표정으로 답변을 클릭했다.
그런데.
[연수동개백정 : 남자? 여자? 남자면 술과 고기! 여자라면 와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이렇게 장난치는 듯한 답변들만 수두룩하게 달려있었다.
그 외에도 말장난 하는 답변들만 주루룩 달려 있는 것이, 정작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나오는 조언이라는 것이.
[레드진표 : 남자 자취방? 그라믄 당연히 크리넥스지.] [검열왕김검열: 어린,,,놈으 자식이,,,벌써부터,,,발라당,,,까져서는~~~요오즘 것들은,,,당최,,,!!]이런 것들이다. 김연아는 이런 정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응? 집들이도 아닌데 휴지를 사 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추천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추천한 덴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리스트에 크리넥스를 추가한다.
그리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려간다.
그러다 중간쯤에 드디어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을 발견했다.
[소라게 : 음. 아무래도 디퓨저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요? 남자 혼자 사는 집이면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홀아비 냄새가 나요.]“오? 홀아비 냄새? 그게 뭐지?”
인터넷 창에 홀아비 냄새 검색해 본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방에서 나는 냄새. 매우 쾌쾌한 향이라는 설명이다.
그러자 김연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곤 김준영의 냄새를 떠올린다.
그를 생각하니 달콤한 영귤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그런 냄새 안 나던데?”
그녀가 의문 섞인 눈으로 나머지 설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지문의 마지막 단락.
유전자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상대의 체취를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설명이 보였다.
“으···”
천천히 가져갈 목록에 디퓨저를 체크하고 다음 답변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 * *
다음날.
김연아는 전달받은 주소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1층엔 여러 업종의 상가들이 입주해 있고 2층은 피아노 학원과 소규모 보습학원 간판 하나만 보이는, 전형적인 2층 상가 건물의 모습.
김준영이 옥상에 있는 옥탑방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은 김준영의 집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디퓨저며, 크리넥스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김연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상가 건물만 바라보다가 재차 주소를 확인하고, 김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쌤. 저 도착했는데 잘못 온 것 같아요. 여기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김준영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맞아 잠깐만 기다려.]어딘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 보았다.
그런데 그때.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상가 건물에서 김준영이 터벅터벅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쪽을 향해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김준영의 모습을 보며, 김연아는 속에서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교실.
전형적인 소규모 학원의 교실이다. 시트지를 붙인 벽과 이런 저런 낙서가 되어 있는 책상. 화이트보드 위에는 거뭇거뭇한 마커 얼룩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가 집이에요?”
김연아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이 가져온 것들이 한쪽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일터가 곧 집이지.”
내 말에 녀석의 표정이 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쓰러지듯 달라붙어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뭐 그림만 보면 제 발로 학원에 끌려온 모양새였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수업 안 들을 거야?”
그러자 녀석이 고개를 들고 거세게 도리질 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뭔가 속은 기분이잖아요. 애초에 이런 덴 줄 모르고 선물도 사 왔는데!”
녀석이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이 있는 옆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을 치켜뜬 모양새가 제 딴에는 위협적으로 보이고픈 모양새지만, 내겐 그 모습이 그저 웃길 뿐이다.
녀석이 가져온 물건들을 슬쩍 돌아보았다. 디퓨저 같이 그럴듯한 물건부터 여러 레토르트 음식들, 크리넥스 같은 소모품들까지.
집에 있는 것들을 싹 다 긁어 온 모양새였다.
분명 집이었다면 쓸모가 있을 것들이지만, 학원에서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 물품들이다.
“고마워. 그런데 다시 가져가야겠네.”
내가 말하자 김연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니 왜요? 선생님 홀아비 냄새··· 아, 아니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필요하지 않아요? 보니까 꼭 필요한 것들이라던데?”
녀석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을 이었지만, 나는 담담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차피 학생들에게 뭔가를 받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학생과 강사의 관계 사이에 한 치의 미혹도 존재해선 안 되는 만큼, 학생에게는 껌 한 조각 받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요즘 강사들 중엔 그런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학생들이 주는 것들을 좋다고 받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았다.
‘뒷말이 나오기가 쉽지. 그리고 강사의 주관도 흔들리고.’
강사라면 정해진 급여 이외의 것들은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마음도 몸도 편한 길이었다. 사소한 것에 발목 잡히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니까.
‘뭐, 개인적인 신념이기도 하고.’
나는 낙담해 있는 김연아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음만 받을게. 자 그러니까 이제 공부 시작하자.”
김연아의 표정이 한층 더 뾰로통해졌다.
.
.
김연아가 지친 표정으로 학원 문을 나선다. 그녀의 손에는 그녀가 가져왔던 물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한 번에 가져가기 힘들 정도의 양이라서 학원에 맡겨 놓았다가 천천히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재 이 학원을 온전히 나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 김 선생님. 아까 그 학생이 첫 학생인가요? 아주 똘똘해 보이던데요.”
계단을 올라가자,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하얗게 눈이 내린 머리, 입가엔 허허로운 웃음을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 수업하는 데 불편한 건 없으시죠?”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마시며 내게 말을 거는 그.
내가 교실을 빌린 이 학원의 원장이었다.
나는 그에게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네.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신선 같은 웃음 지으면서, 코코아 잔을 내밀었다.
사실 처음 전 학원을 그만두었을 때, 학원 설립에 필요한 자금이나 자격요건들을 살펴보았었다.
‘···지금 당장 학원을 차리는 것은 좀 어렵겠네.’
일단 기본적으로 학원을 설립하기 위해선 순수 강의실 면적 90㎡ 이상의 공간이 필요했고.
거기다 추가적인 학원 내의 인테리어 비용이나 기타 기자재들을 구비하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물론 학원 운용비용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건비가 내 경우에는 아예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였지만,
교재비용이나 학원 차 운용비용 등 학원을 운영하면서 고정적으로 들어갈 비용까지 생각하니, 아무리 봐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는 안정적인 학원 운영이 힘들어 보였다.
‘거기다······.’
학원을 설립할 때의 필요한 서류들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학원등록신청서, 학원내부평면도, 임대차계약서 원본, 졸업증명서 원본신분증, 성범죄 및 아동학대 조회 신청서, 등록기준지를 알 수 있는 기본증명서, 위치도, 건축물대장 등이 필요했다.
학원이 어려워 보이자, 다음에 생각한 것이 개인 주택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공부방’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전혀 다른 문제점이 발목을 잡았다.
바로 여학생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
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업이 쉬운 공부방이었지만, 나 같은 남자 강사들 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패널티를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강사가 아무리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학부모의 입장에선 남자 강사가 가르치는 공간에 여학생을 보내기 쉽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학원과 공부방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락한 지성 형님은 내 고민을 듣자마자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럼 다른 학원에서 교실을 빌리지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래, 그 수가 있었네.”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착착 서기 시작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1년 안에 나는 학원가의 중심에 서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