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8
28
028화 나의 집 (2)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카페에서 지성 형님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새까맣게 탄 지성 형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형님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타셨어요?”
내가 묻자 지성은 잔잔하게 웃으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전 학원을 그만둔 이후부터 출판사 사업을 하는 친구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같이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니 피부가 하얘질 시간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동안 애들이랑 애들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는데, 뭐 다행이지. 그리고 출판사 일도 하다 보니까 괜찮더라고.”
그는 현재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15년간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하는 일이라선지 소소한 어러움도 있긴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도 나름 보람 있는 일이라며 짙게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독립할거야? 전에 있던 학원은 아예 그만둔 거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그가 의문이 섞인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예. 전에 있던 학원이나 이번 학원이나, 다 비슷하더라고요. 그럴 거면 차라리 조금 고생 하더라도 독립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내가 대답하자, 그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긴 지성 형님도 이 바닥에서만 15년을 굴렀으니, 아마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뭐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지. 그럼 저번에 내가 말 한대로 교실 임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거?”
“‘일단’은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교실의 임대.
2000년대 초반 이후. 출산률의 하락과 고학력자들의 양산, 기업 취업률의 하락으로 학원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질적인 형태의 사업.
경쟁력 약화로 동네 마트나 슈퍼들이 줄어들고 편의점이 점점 많아지듯, 대형학원이나 유명학원의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중소형 학원들이 학생들 수의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타난, 학원 나름의 타개책이었다.
“아무래도요. 처음부터 일을 벌이기엔 무리가 있더라고요.”
내가 말하자 지성 형님도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했어. 사실 이 바닥도 과포화 상태라 웬만한 준비 없이 뛰어들면 그냥 망하는 거거든. 일단 규모가 크던 작던 일단 사업은 사업이니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 형님이 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이 방법을 택하려는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말을 꺼내던 지성이 잠시 주춤거렸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일단 강사 등록은 해야 할 거야. 알고 있어?”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그의 말. 하지만 나는 슬쩍 웃을 뿐이다.
그가 뭘 걱정하는 건지 알 것 같았으니까.
아마도 그는 내가 강사 등록에 대해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많은 사람들이 학원 임대는 알아도 강사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잘 모르고 있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혹시 등록 안 하고 할 생각이야? 뭐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거 나중 생각하면 별로 안 좋은 생각인데······.”
그가 우려 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학원 임대를 할 때 단순 임대차 계약만 맺고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이런 일은 원장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별개로 학원들을 운영하는 강사를 자신의 학원에 등록까지 해가며 신경 쓰고 싶지 않아하고,
강사의 입장에서도 다른 학원에 소속되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학원 내에서 이뤄지는 일이니만큼, 강사 등록을 하지 않고 행해지는 모든 교육 행위가 불법이었다.
대부분 나는 안 걸릴 것이라고 착각하고 넘어가 버리곤 하는데, 모르는 일이다.
‘신고 포상금 50만 원에 눈이 멀어 버린 지인이 배신하기라도 한다면······.’
고로, 잘 키워 놓은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지켜야만 하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당연히 등록해야죠. 등록 안 했다가 잘못되면 영락없이 형님네 집에 얹혀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야 있나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그가 피식 소리를 내며 웃는다.
“네가 우리 아들만 잘 커버할 수 있으면 난 상관없는데··· 뭐 아무튼, 그럼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내가 미리 연락해 뒀으니까, 가서 원장님 뵙고 결정하면 될 거야.”
말을 마친 그가 서두르자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남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내가 가야 할 길 많이 남아있었으니, 이렇게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서 움직여야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벗어 놓았던 코트를 챙겨 들었다.
“가시죠.”
* * *
그리고 현재.
“아 쌤. 저 혼자 듣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할 말이거든?”
내 앞에는 티격태격하는 김연아와 박수한이 앉아 있다.
그들을 바라보니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성 형님의 소개로 임대해서 들어온 학원.
오래된 아파트들로 둘러싸인 상가. 그 상가의 2층 전체를 쓰고 있는 학원이었다.
나로선 쇠락해가는 동네 보습학원을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제법 규모가 있고 깔끔한 곳이라 처음엔 좀 의아했었다.
이 정도로 관리되고 있는 학원이라면 학생들의 수가 적을 이유도 없었고, 그렇다면 굳이 교실을 임대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임대를 주었을까?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여기 한 열 명 다니나? 아마 다 원장 직강일거야. 애들이 다 근처 살아서 차도 운행 안 할걸?’
지성 형님에게 현재 남아 있는 학생의 수를 들었을 때, 풀린 의문은 또 다른 의문으로 변했다.
‘관리비나 나오나?’
도무지 그 학생 수로는 도저히 수익이 날 수 없는 규모였으니까. 그나마 학생 수가 열 명쯤 되니 한 달, 한 달 관리비 정도는 될까?
내가 학원 규모나 관리 정도에 비해 너무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민망한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여기 원장님 내 삼촌이야. 삼촌이 젊었을 땐 이 일대에서 유명하셨거든. 어렸을 땐 나도 여기서 배웠고 말이야. 그런데 이젠 나이도 좀 있으시니 쉬엄쉬엄하시고 싶으신가 봐. 애들이랑 정도 있고.’
그가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슬쩍 들어보니까 그나마 지금 있는 애들도 다 옛날에 가르치셨던 학생들의 자식들이더라. 원래는 은퇴하시려고 했었는데, 옛날 학생들이 해 달라고 하니 그냥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시더라고.’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럼 그분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의 부탁을 들어 주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지성 형님이 천천히 말을 더했다.
‘뭐 그것도 다 이 건물이 삼촌 건물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
아, 납득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강남 한복판 같은 어마어마한 곳에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동인구가 제법 있는 곳에 자리한 상가다.
1층에 있는 상가들의 임대료만 받아도 이 정도 학원의 유지비용은 충분할 정도.
그러니 내게 받는 임대료 정도는 그냥 학원 관리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 지성 형님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임대를 내 줄 생각도 하지 않으셨겠지.
아무튼, 그 결과 내 앞엔 아웅다웅거리고 있는 두 학생이 앉아 있다.
“그런데 너 왜 반말이냐? 내가 너보다 오빠거든?”
“헹, 오빠는 무슨. 으, 오글.”
마치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는 그들.
“아 쌤! 왜 학년도 안 맞는데 얘랑 저랑 같이 들어요?”
올해 고2가 되는 박수한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이제 예비 고1인 김연아도 내심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녀석들의 불만스런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듣기 싫어?”
그러자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럴 거 아니면 그냥 같이해. 어차피 아직 너희 둘뿐인데 뭘 또 나눠.”
그러자 녀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다.
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잘게 웃었다.
사실 이유라면 있었다.
국어 영역의 경우 녀석들 정도의 성적이라면 배우는 내용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까.
다만 허세 하나로 먹고 사는 녀석인데 일부러 그걸 짓밟을 필요는 없으니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박수한.
김연아야 전전 학원, 20군단장 시절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것이었으니 내가 일부로 연락을 해서 데려온 것이라 쳐도, 박수한까지 따라온 것은 좀 의외였다.
물론 강사들이 학원을 옮길 때 학생들이 따라 나서는 것 정도는 의외로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의 경우는 강사들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모들보다 학생들의 성격이나 수업스타일을 더 빠삭하게 꿰고 있을 정도의 관계.
그 정도 관계가 되어야만, 학생들이 그 강사를 따라 학원을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녀석과 내가 얼굴을 마주한 기간은 길어야 삼 개월 정도. 강사에게 모든 것 믿고 맡기기엔 애매한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안전한 대형학원을 버리고 나를 따라 온 것이었다.
기특했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강사란 느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한 존재.
새하얀 칠판에 등을 기대며, 학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한다. 먼저 음운론부터···”
그러자 녀석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 * *
수업을 끝내고 학생들과 야식을 먹은 뒤.
교실 정리를 하며 내일 사용할 수업 자료들을 뽑고 있을 때,
카톡카톡-
은솔의 카톡이 도착했다.
[김준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네요. 이번에 공부방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혹시 나중에 한번 찾아가도 괜찮을까요?] [물론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요. 집들이 삼아··· ๑´‸`๑)]그녀의 카톡을 보니 저번보다는 세련된 이모티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그 동안 장족의 발전을 한 모습이었다. 물론 아직도 문어체를 벗어나지 못한 카톡 내용은 여전했지만.
그러고 보니 학원을 그만두고 좀 정신이 없었던지라. 은솔의 카톡을 읽고 답장을 하지 못했었다.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키패드를 눌러 나갔다.
‘그럼요. 안 그래도 한번 오시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연락이 너무 늦었네요. 나중에 식사라도 하러 오시죠.’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보고 있었는지 바로 연락이 날아왔다.
[정말요? 와아 그럼 언제가 괜찮으세요? (*´∀`*)]나는 빠르게 답장을 적어 내렸다.
‘음 아무래도 주중엔 바쁘실 테니 주말엔 어떠세요? 그때라면 지성 형님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
카톡을 보냈다.
카톡-
이번 답장이 오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네 다 같이 보는 것도 좋네요. 뭐, 그럼 그때 봬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