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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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화 나의 집 (3)
[안녕하세용. 서율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새내기 대표입니당. 학교 입학 전에 한 번 모이려고 하는데, 호옥시 오실 수 있나연?]뭐지?
분명 모르는 번호로 날아온 문자인데, 그 말투가 이상하다.
‘요즘은 대학생들은 이렇게 문자를 보내나? 왜 이렇게 어린 것 같지?’
내가 대학교 다닐 때랑은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 내가 꼰대가 되어 버린 건가?
‘뭐 그거랑은 별개로.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아직 1월 중순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모임을 하나? 아직 정시 발표가 나지 않은 대학들도 많은데. 원래 빠르면 1월 초중반, 늦으면 2월까지도 대학교의 합격발표가 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시즌에는 조심해야 하지.’
어디까지나 나 말고, 진짜 새내기들은 말이다.
이쯤이면 세상에 막 나온 순진한 스무 살들을 잡아먹으려는 하이에나들이 도처에 자리한 시즌이다.
그러니 새내기들은 최대한 이런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뭐, 어차피 갈 생각도 없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현역 새내기도 아니고 이미 겪을 만큼 격어 본 몸이니만큼,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행사는 갈 필요가 없지.
‘이 나이에 대학 원서를 쓰고 있는 나는··· 그럼 만렙 새내기인가?’
생각하니 어쩐지 웃음이 난다. 대학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대학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 행사에 쫓아다니던 기억이 났으니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새어나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대학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웃음보단 후회가 먼저 새어 나왔었는데, 이젠 작게나마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쌤 뭐해요?
휴대폰을 집어넣고 앞을 바라본다. 눈앞엔 문제를 풀고 있는 박수한과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김연아가 있다.
녀석은 자기 몫의 문제를 다 푼 모양인지, 보란 듯이 자신의 교재를 펼쳐두고 있다. 헤살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니 뭔가 칭찬을 바라는 모양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 칭찬을 남발하면 나중에 역효과가 난다.
“알 거 없어.”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녀석이 입이 불만스럽게 튀어나온다.
그리고선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혹시 여자친구?”
녀석은 뜬금없는 이야기를 내뱉으며,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아 신성한 수업시간에 그런 사특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누구는 문제 푼다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머리를 슬쩍 두드렸다. 그러자 녀석이 머리를 감싸면서 오버한다.
“아! 폭력 선생! 진짜 너무하다 너무해.”
문제를 풀던 박수한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와 김연아 사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문제를 푸느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눈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틀린 거 있는지 다시 확인해 봐. 모르는 거 있으면 체크해 두고. 수한이는 막히는 거 없어?”
말하면서 박수한에게 다가갔다.
등 뒤에서 김연아가 허, 참-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아. 쌤 뭐 다 풀 만하긴 한데, 요건 좀 헷갈리는데요? 아니 뭐, 못 풀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약간, 아주 약간 헷갈리는 정도?”
녀석, 떨리는 손이나 어떻게 하고 말하지.
박수한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녀석의 안경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 어떤 문제가 그렇게 약간 헷갈리는데?”
내가 슬쩍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녀석이 바로 문제 하나를 가리킨다.
25. 다음 (A), (B), (C)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Marketing’s impact on individual consumer welfare has been criticized for its high prices, deceptive practices, and poor service to disadvantaged consumers. Marketing’s impact on society has been criticized for creating false wants and too much materialism, too (A)[many/few] social goods, and cultural pollution···
“이거요.”
녀석이 가리킨 문제의 지문을 주욱 읽어 내렸다.
“자 보자, 이 지문은 전체적으로는 마케팅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글이잖아? 기본적으로 중심 소재에 대한 부정적 정보와 판단에 근거한 글이라고.”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생각해 봐 공리적 의미의 사회적 재화(social goods) 앞에는 어떤 단어가 와야 할까? 긍정? 부정? 아마도 부정이겠지? 그럼 뭐가 들어가야 할까?”
내가 묻자, 녀석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에이 그럼 당연히 ‘Few’잖아요.”
나는 씩 웃었다.
그러자 녀석의 어깨가 한껏 올라간다.
가만 보면 이 녀석 참, 순진하다.
“그래 맞았어. 일단 국어 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모든 글은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니까, 이 맥락을 읽는 연습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거 명심해.”
내 말을 들은 박수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쌤 저도요! 빨리!”
돌아보니 천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김연아가 있다. 교재 한쪽을 짚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는 문제다 있다는 투다.
천천히 녀석 쪽으로 다가가니, 그새를 못 참은 녀석이 빨리 알려 달라고 성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문제가 너무 쉽다.
20군단에서 탈퇴한 김연아가 충분히 풀 수 있을 정도의 문제.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학생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간단하게 지문을 해석해 주고, 녀석이 답을 체크할 수 있을 정도로 단서를 말해 준다.
“음, 오, 아! 예! 쌤! 이제 알 것 같아요.”
내가 문제의 맥을 짚어 줄 때마다 어색한 리액션을 던지던 그녀가 해설이 끝나자마자 단숨에 답을 찾아 체크해 버린다. 그러고선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빛내고 있다.
“······.”
아무리 봐도 아는 문제를 물어본 것이 분명한 상황.
흠, 이런 걸 더 두고 볼 수는 없지.
딱!
하고, 김연아의 이마에서 불똥이 튄다.
“으악! 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학생을 정색하고 때려야 하는 심경이란 이렇게도 슬픈 것.
오호라,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
* * *
똑똑똑-
“김 선생님 수업은 어떠세요. 불편한 점은 없나요?”
노크소리에 돌아보니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장님이 보인다.
나는 그에게 인사하며, 덕분에 큰 걱정 없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지그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 선생님의 복이죠. 음 혹시 수업 준비 다 끝나셨으면, 차나 한잔하실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원장실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개량한복을 입은 채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꼭 신선이 구름을 밟고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하얀 머리칼하며, 세속에 욕심을 벗어던진 것 같은 미소. 흐를 것 같은 발걸음까지.
해탈 직전의 노승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의 주변에 흐르고 있었다.
탁-
원장실.
달큰한 향기가 원장실 내를 떠돌았다.
그리고 내 앞엔, 너무 진하게 타서 걸쭉하기까지 한 코코아를 마시는 원장이 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원장.
그를 바라보노라니 외모로 사람의 입맛을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생긴 것만 봐서는 정성들여 우린 엽차(葉茶)만 마실 것 같이 생기신 분인데, 입맛은 인스턴트 코코아 믹스라니.
그렇게 가만히 내 몫의 녹차를 마시고 있을 때, 코코아를 흡입하던 원장이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입맛에 맞으실까 모르겠어요. 제 입맛이 영 이래 놔서 다른 차들은 별로 안 사 놓는지라···”
그는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약간의 걱정이 담겨 있는 눈빛.
“괜찮습니다. 저도 이쪽 입맛이라서요.”
나는 짧게 대답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학원에서는 종이컵에 티백이 제격이었다.
가끔 시간이 긴 수업의 경우 텀블러를 들고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한 시간 안팎의 수업인 경우엔 티백 녹치 한 잔이면 충분했다.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찢어질 정도로 아플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는 차 맛은 학원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다행이네요. 요즘엔 손님들도 거의 안 오시니, 저나 아이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사 놔서 걱정했었는데.”
원장은 슬며시 웃으면서 잔에 남은 코코아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다 마신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혹시 지성이에게 들으셨을진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줄곧 은퇴를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한 것을 이미 지성 형님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 그런데 가르치셨던 분들의 부탁 때문에 아직 못하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그는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건 지성이가 저를 잘 포장해 주려고 하는 말이고, 사실 제 욕심 때문에 못하고 있는 거죠.”
욕심? 그가 뜻 모를 이야기를 내뱉었다. 내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 학원을 보세요. 어떤가요?”
원장은 주변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학원. 현재 다니는 학생 수에 비해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커다란, 한창 때엔 근 백 명의 학생을 넉넉하게 수용했을 정도의 크기.
오래된 학원 특유의 냄새나 틀어진 부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게 관리된 흔적이 역력한 곳이었다.
“음, 크고 넓네요. 그리고 인테리어도 정갈하게 잘되어 있고, 기자재의 정리도 꼼꼼하게 되어 있는 게··· 당장에라도 선생님들을 모시면 금방 학생들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나는 느낀바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그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요. 사실 이곳에서 처음 시작할 땐 여기 반에 반도 안 되는 공간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느새 이 정도 넓이가 되어 있더라고요.”
원장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듯 내 어깨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맑게 빛나던 그의 눈이 흐려지고, 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새 저도 늙어 버렸다는 거죠. 몸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도.”
천천히 씹어 내듯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에게, 세월이란 참으로 야속한 것이죠.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제가 아직도 이 학원을 못 벗어나는 것은.”
원장은 등선 직전의 도사처럼 말을 이어갔다.
“이거 요즘 주역(周易)을 보고 있었더니, 저도 모르게 말투가 고루해졌네요.”
이렇게 말하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던 원장.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잇는다.
“갑자기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당황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 늙은이가 부득불 넋두리를 꺼낼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과연 그가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이 상가 말고도 주변에 여러 건물들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사람이, 자신의 학원을 임대, 그것도 전체가 아닌 부분을 겨우 임대한 사람에게 부탁할 만한 일이 있을까.
“무슨 부탁을 말씀하시는 거죠?”
조심스레 묻는 나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너무 경계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사실 부탁이라기보다는 제안에 가까운 일이니까.”
원장은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한 적 없는 제안이기는 합니다. 심지어 지성이에게도 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잠시 말을 아끼던 그.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연다.
“김 선생님. 학원 한번 맡아 볼 생각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