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0
30
030화 기회를 찾아서 (1)
“김 선생님. 학원 한번 맡아 볼 생각 없으신가요?”
순간, 들고 있던 종이컵을 놓칠 뻔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원장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뜬금없는 제안.
쉽사리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었다.
“······.”
내가 이 학원에 들어온 지 이제 막 한 달.
그 동안 거의 매일 원장과 얼굴을 마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눈에 띄게 친분을 쌓는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원장의 제안은 내게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얼굴 가득 의문을 담고 그를 바라봤다.
“진심이신가요?
그러자 원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진심입니다.”
한 치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다는 듯한 얼굴과 담백한 어조.
나는 잠시 말을 아끼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원장의 제안이 진심이라면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지금이야 다른 학원의 한쪽 교실을 빌려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중에는 온전히 내가 운영하는 학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원장님.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 학원을 인수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요.”
내가 말하자, 그가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연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학원을 다시 예전처럼, 5년 안에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실 수만 있다면, 제가 아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이 학원을 넘겨드릴 테니까요. 물론 매입에 필요한 돈도 제가 빌려드리는 것으로 하고요.”
말을 마친 원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드리리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표정이다.
하긴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건물을 매입해서 주겠다고 하는데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그걸 마다하겠는가.
오히려 절을 하며 감사하면 감사했지.
하지만 ‘알겠다’고 대답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일단 원장이 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보여 주는지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데다가, 나중에 원장의 마음이 바뀌면 닭 쫓던 개꼴이 되고 말 것이 뻔히 보였으니까.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망설이자, 내 표정을 살피던 원장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저 욕심 많은 늙은이가 고집 부린다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평생 아이들 목소리를 듣다가 못 들으니까 요즘 너무 적적해서 드리는 제안이에요.”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거기다 1층 상가 분들이 요즘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제가 학원을 운영하던 때보다는 손님 수가 많이 줄었을 테니, 저도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말을 마친 그가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나도 그가 어떤 이유로 내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일평생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하자, 원장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선 얼굴 가득 의문을 담아 나를 바라봤다.
“아니 선생님 왜···”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5년은 너무 긴 것 같아서요. 1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자 점점 굳어 가던 원장의 표정이 봄눈 녹듯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허 김준영 선생님. 역시 범상치 않은 상(相)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군요. 좋아요. 젊다는 게 그런 거죠.”
원장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 표정. 생기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 모습이 정말 만족한 모습이다.
* * *
[···선생님. 저희 애랑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지금 바로 결정하긴 좀 힘들 것 같아서···]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힘이 빠졌다.
이십분 정도 간을 보다가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가 고작 저거라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예 어머님 그러면 생각해 보시고 연락주세요. 아니면 자녀분이랑 한번 방문해 주셔도 좋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 담담한 어조로 전화를 마무리 하고 휴대폰을 내렸다.
“후-”
요즘 들어 이런 전화만 계속 걸려오고 있었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학생들의 성적과 성격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의 문제점들을 구구절절하게 나열하다가, 어떤 식으로 했으면 좋겠는지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들.
그러다 적당히 이야기가 좀 진전된다 싶으면, 순식간에 발을 빼는 전화들이 하루에 한 통씩은 꼬박꼬박 걸려오고 있었다.
“······.”
물론 그들의 전화가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전화가 연결됐다는 것 자체에 순수하게 감사하며,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쳐 달라는 전화들도 제법 많았었다.
하지만 요즘엔 입원을 차일피일 미루며 정보만 요구하는 이런 전화들만 계속 걸려오고 있었다.
“······.”
그들이 학원에 등록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에 있던 학원은 대형학원이라 믿음이 갔는데 지금 있는 학원은 작은 학원이라 일단 믿음이 가지 않고.
나 혼자 학원 전체를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이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전에 있던 학원을 나온 것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달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생들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휑한 교실. 원장님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도 강의실 하나를 채우기 어려워 보이는 인원이었다.
‘김 선생님. 학원 한번 맡아 볼 생각 없으신가요?’
순간, 원장의 말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분명 원장과 대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1년이 아니라 6개월 안에 이 학원을 학생들이 가득 차게 만들 자신이 있었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물론 그 동안 가만히 앉아 학생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대형학원의 분원들이야 입시설명회 하나만 개최해도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지만, 나처럼 막 시작하는 소규모 학원의 경우 보다 다양한 방법들을 복합적으로 시도해야만 그나마 원생들이 모이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것인 전단지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끼상품 광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걸어 놓은 플랜카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권 이벤트, 인터넷 키워드 광고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도했다.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몇 차례 전화 걸려오긴 했지만 입원으로 이어진 것은 한두 명뿐.
이대로는 학원을 꽉 채우기는커녕, 적자를 면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생들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49페이지. 이청준의 ‘소문의 벽’ 펴자.”
.
.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드는 학생들.
한 시간 동안이나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슬프다는 듯, 가열차게 휴대폰을 손으로 부빈다.
톡톡톡-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 동안 못한 연락을 하는지 쉴 새 없이 엄지를 움직이고, 몇몇 학생들은 휴대폰을 가로로 세운 채 부서져라 액정을 두드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 일상적인 쉬는 시간의 풍경이다.
하지만.
“오진다 오져. 진짜 와.”
이어폰을 낀 채 금방이라도 휴대폰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휴대폰 액정에 머리를 박고 있는 김연아나,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박수한은 예외였다.
아무리 쉬는 시간이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 해도 그 한계가 있었다.
천천히 박수한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녀석은 뭔가에 엄청나게 집중한 모양.
내가 가까이 다가간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휴대폰 액정만 바라보고 있다.
어이가 없어 좀 놀래켜 주기로 했다. 녀석에게 바싹 다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하니?”
내가 묻자 화들짝 놀라는 박수한. 엉겁결에 휴대폰을 놓쳐 버린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바닥에 떨어져 버릴 상황이라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올, 쌤.”
그 갑작스런 상황을 연아도 봤는지, 나를 보며 엄지를 세웠다.
박수한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도둑질을 하다 들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뭐지 싶어 녀석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여러부운! 여기 이 부분이 중요해요! 꼭 시험에 나오니까 복습하시고요. 아셨죠?]이쁘장한 여성 스트리머가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었다.
화려한 한복을 걸치고 화이트보드와 카메라를 오가며 수업을 하는 그녀.
가끔씩 귀여운 표정으로 애교를 부릴 때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밤풍선’. 이것이 박수한이 보고 있던 것의 정체였다.
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박수한을 내려다보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 쌤. 왜 남에 휴대폰을 봐요. 그리고 그거 그냥 잠깐 본 거에요. 카톡방 애들이 하도 재미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녀석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레 찔려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의 변명 중 귀가 번쩍 뜨이는 부분이 있었다.
‘애들이 하도 재미있다고 해서‘.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강의. 요튜브. 학생들. 인기.
인터넷 방송.
이 난국을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 * *
아무도 없는 방 안.
인터넷 검색창에 ‘인터넷 방송을 시작할 때 필요한 것.’을 검색하면서, TV에 요튜브 방송 창을 띄운다.
그러자 한 사내가 화면에 나오더니 산더미처럼 쌓인 곱창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1만 3천 명의 요튜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반쯔가 성북동에서 제일루다가 유명한 곱창 집에서 곱창전골 10인 분을 포장해 왔습니다. 아 핑크드래곤 님! 50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좀 적은 것 아니냐고요? 자! 여기 보십시오. 제가 그럴 줄 알고 막국수도 5인 분 더 포장해 왔습니다!]그리고 나서 곱창전골을 흡입하기 시작하는데,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올리는 것 마냥 쑥쑥 들어간다.
그렇게 곱창전골 10인 분과 막국수 5인 분을 미친 듯이 흡입한 스트리머가 약간 출출하다는 말을 남기며 밥을 가지러 가자, 시청자들이 미친 듯이 ‘밤풍선’을 쏴 대기 시작했다.
“······.”
도저히 사람이 먹을 양이 아니었는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음식을 삼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마 나보고 먹으라고 한다면 반에 반도 먹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뭐, 내가 저렇게 먹방을 할 것도 아니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방송을 틀어 놓은 것도 어떤 식으로 방송이 진행되는 가를 파악하기 위해서지, 뭔가를 따라하려고 틀어놓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일단 방송의 볼륨을 좀 줄이고 인터넷 검색에 집중했다.
검색 결과, 인터넷 방송에 대한 질문들과 답변들이 몇 십 페이지에 걸쳐서 나타났다.
차근차근 여러 사람들의 정보를 취합하여, 최적의 세팅이 무엇일지 정리해 나갔다.
CPU의 경우 총알이 허락하는 대로 고사양의 것을 체크.
RAM은 게임을 할 게 아니니, 가성비의 마지노선인 8기가 정도로 만족하고.
그밖에 메인보드나 파워, 그래픽 카드 같은 것들은 최대한 소음이 적은 제품으로,
마지막으로 오디오카드는 외장형으로 주문한다.
그리고 나서 콘덴서 마이크, 오디오, 인터페이스 믹서 등의 사운드 시스템을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담고 나니,
인터넷 방송의 삼종신기 중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바로 ‘카메라’
하지만 카메라을 고르는 데는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인터넷 추천을 믿기 사기엔 뭔가 애매했고, 그렇다고 직접 매장에 직접 가서 고르기에는 ‘호구’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이럴 때는 전문가의 추천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카메라에 관한 한 일반인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바로 [은솔].
은솔의 카톡을 터치하니,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풍경 사진들이 보였다.
하나 같이 장인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진들.
같이 일하던 때 그녀가 주말마자 출사를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으니, 아마 이 사진들도 그녀가 찍은 것들일 것이다.
셀카도 잘 못 찍는 나 같은 사람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다.
[은솔 쌤. 혹시 지금 시간 좀 있으세요]은솔에게 카톡을 전송하고 나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할 때의 주의점 같은 것들을 읽어 본다.
그리고 나서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나 컨텐츠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나.
카톡-
은솔의 답장이 도착했다.
[네. 괜찮아요. ∑(> _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