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3
33
033화 기회를 찾아서 (4)
타닥타타닥타닥-
신천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사는 시험 문제 내는 것을 미뤘던 과거의 자신을 탓하며, 손가락이 부서질 정도로 격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이 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등 뒤에서 동기인 1학년 영어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어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국어는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후···보면 몰라? 시험 문제 내고 있잖아. 진짜 미치겠다. 이거 좀만 늦으면 부장이 잡아먹으려고 할 건데···”
커피잔을 받아든 국어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죽는 소리를 하자, 영어가 짙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리곤 좀 전까지 국어가 만들던 자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10번이야? 아직 많이 남았는데? 으이그 그러게 나처럼 평소에 좀 해 놓지.”
순간, 국어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국어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억지로 참고 입을 열었다.
“바쁘니까 용건 없으면 그냥 가.”
씹어 삼키듯이 말을 내뱉으며 몸을 돌리는 국어. 영어가 건네준 커피까지 한쪽으로 밀어 넣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영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옆에 앉는다. 그리곤 조심스레 말을 붙인다.
“···좀 있다 교감이 회의한다고 그러던데? 그거 알려 주려고 그랬지.”
‘회의’라는 단어를 들은 국어 귀가 슬쩍 움직였다.
“갑자기 무슨 회의? 이 시간에?”
“잘은 모르겠는데,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도니까 선생님들 한번 조이겠다는 거 아닐까?”
마치 다 아는 이야기 아니겠냐는 표정을 짓는 그녀.
하지만 국어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연다.
“무슨 소문?”
그러자 영어는 설마 몰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어? 못 들었어? 우리 학교보다 일찍 시험 본 학교들 있잖아? 거기 중 몇 군데에서 돈 받고 시험지 유출시켰다던데?”
그러자 국어의 눈을 크게 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교사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자 영어가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한다.
“조용히 좀 해.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나도 그냥 부장이 하는 이야기 살짝 들은 거야.”
“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되는데? 어차피 걸리면 유출한 사람도 뻔하고만 굳이 왜?
“혹시 모르지. 뭐 목돈이 필요했었을 수도 있고. 들어보니 인터넷 방송에 유출시켰다는데. 요즘 스트리머들 돈 많잖아.”
그녀의 말을 들은 그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형학원도 아닌 인터넷 방송에서?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의문이 가득한 국어의 말을 들은 영어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슬쩍 알아보니까. 이게 또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더라고. 일단 적중률··· 유출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될 사이즈더라니까.”
하지만 영어의 말을 들을수록 국어의 의문은 짙어져만 갔다.
“······.”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참동안이나 곰곰이 생각하는 그. 그런 그를 바라보던 영어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오늘 회의 때 또 한참 잔소리 나올 테니까 이 쌤도 그 전에 빨리 작업 마무리해.”
영어는 그 말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국어도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바라본다.
모니터 안에는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오, 그래. 시험 문제도 못 만들었는데 무슨··· 유출이 말이 되나.”
그는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교무실에는 또다시 타닥타닥 소리만 울려 퍼진다.
* * *
신천고 앞 카페.
국어 전문학원에 소속되어 강사 하나가 초조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용자1님 시험 잘 보셨어요? 아 95점 맞으셨다고요. 고생하셨어요. 네? 감귤을 보내 주신다고요? 그건 좀···”
그가 바라보는 노트북 화면 안에선 준영의 인터넷 방송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 연아요? 아직 학생이니까. 학교에 있어야죠. 어 그러고 보니 사용자1님 고딩 아니었나요? 아하 쉬는 시간···”
화면 속 준영은 시청자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용자1 : 우리 집 감귤 맛있는뎅 ㅜㅜ] [이용자20 : 여윽시 탐라국의 기상ㅋㅋㅋ 집에 귤나무가 있음?] [이용자5 : 수학여행 안 가봤냐? 제주도엔 진짜 집집마다 있더라]이제 제법 시청자가 많아진 탓에 사람들이 올린 채팅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 같았지만, 되도록 사람들의 채팅에 반응해 주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애들 올 시간도 얼마 안 남았구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강사의 속은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 감귤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강의나 하라고···’
사실 강사의 목적은 준영과의 대화나 채팅방 사람들과의 잡담이 아니었으니까.
‘젠장. 그저께 신천고 뽑혔다고 해서 방송 가입까지 했는데···’
그의 목적은 내일 있을 신천고 중간고사.
그것도 1학년 중간고사의 국어 기출문제였다. 그러니 지금처럼 웃고 떠드는 분위기는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애들 하교시간 전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그에게 준영의 방송을 알려 준 동료 강사가 호언장담하기론, 학생들이 하교하기 전에 시작해서 학원에 등원할 시간쯤에 방송이 끝난다고 했으니, 지금쯤 시험 문제 강의를 해야 맞았다.
하지만 준영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에 적절한 반응만 해 가고 있을 뿐, 명구가 원하는 저격 강의 같은 건 시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리 충전해 둔 ‘밤풍선’을 장전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후원 버튼을 눌렀다.
[‘이용자9501님’이 ‘밤풍선 5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피 같은 돈이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 잡고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용자9501 : ㅜㅜ 신천고 학생인데요··· 오늘 시험 대비 안 해주시나요? 분명 그저께 신천고 1학년 국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후원금과 채팅을 연타로 투척한 보람이 있었는지, 다른 이들과 잡담을 하던 준영의 눈이 채팅방을 향했다.
“아 이용자9501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천고 학생이신가요? 음 후원금이 좀 많은데? 에고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시작하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아차’
순간의 실수로 현금 5만 원이 날아가 버린 것에 슬퍼하는 강사.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이 낄낄거리면서 강사를 애도하자, 강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 시간 보니 이제 슬슬 진행해도 상관은 없겠네요.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사실 이 학교 중간고사는 조금 특이한 편이에요. 원래 한글창제 원리 같은 경우는 2학기 때 다루는데 이 학교 선생님은 음운론 하실 때 조금 곁들여서 문제를 내시더라고요. 아 물론 심화 내용은 들어가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마지막 문제까지 마무리하고 나자 채팅창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대체로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 한글창제원리를 집어넣는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들이었다.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 선생님의 기출 스타일을 보면 충분히 추측 가능한 부분이에요. 그리고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믿든 안 믿든 개인의 자윱니다. 대신 나중에 후회는 누구 몫이다?”
간혹 보이는 불신의 싹들을 향해 짙은 미소로 대답한다.
“자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제가 했던 강의들은 따로 녹화해서 블로그에 올려놓을 테니까 필요한 분들은 방문하셔서 보세요.”
마무리하고, 정리를 시작한다. 그러자.
[이용자1 : 어? 오늘은 저격 안 하세요? 그러고 보니 연아님도 안보이네? 헐ㅤㅋㅢㅤ? 모지?]채팅방 사람들이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매일 이 시간쯤에 다음 학교를 뽑았던 터라, 사람들도 으레 하던 데로 하겠거니 생각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오늘은 저격 안 합니다. 방송은 여기까지예요.”
[이용자1 : 왜욤???]“중간고사 기간도 거의 끝나 가니까 이제 마무리해야죠.”
내가 채팅방을 보며 말하자, 의문으로 가득하던 채팅방이 순간 터질 것처럼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용자1 : 아니 왜열 ㅜㅜ 이제 안 하는 것임?] [이용자770 : 연아야···한 번만 한 번만 더 나와줘] [이용자5 : 힝 서울가면 한 번 놀러가고 싶었는데···] [이용자999 : 가지 말즈아!]이런 귀여운 반응에서부터.
[이용자503 : 돈 좀 벌었다고 배가 불렀나보네? 왜 밑천 떨어졌냐?] [이용자444 : ㅋㅋㅋ이제 속 시원하게 욕이나 한 번 싸보자 쉬바.] [이용자666 : 아놔 우리학교 나오라고 쥰나 빌었는데 결국 안 나왔어. 스트리머 양반 내가 후원한 돈 다시 뱉어내쇼.]순식간에 안면몰수하고 채팅창 물을 흐리기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완전히 방송을 그만두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방송을 접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중간고사 대비 저격 방송’을 마치겠다는 말이었어요. 다음 ‘기말고사’ 때까지 다시 시작할 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러자 방송이 끝나는 줄 알고 아쉬워하던 사람들은 환호를, 물을 흐리던 미꾸라지들은 ‘탈룰라’급 태세전환을 보여 주었다.
[이용자503 : 여윽시 준영 쌤! 화수분 같은 분이라니까! 사랑합니다!] [이용자444 : 저희 집안은 선비 집안이라 원래 욕 같은 걸 못해요~] [이용자666 : 에이 위에 한 말 다 농담인거 아시죠?^^]방금 전까지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던 이들이 잠수를 타던가, 아니면 장난이었다는 식으로 물타려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저희 방송은 유교 방송을 지향한다고 누누이 말씀 드렸었죠? 캡쳐 다 해 놨으니까.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방금 욕한 분들! 조심히 가세요. 다른 분들은 앞으로도 제 방송을 즐겨 주시고요.”
예고했던 것처럼 욕한 시청자들을 칼같이 강퇴했다.
[관리자에 의해 이용자503님이 강퇴당했습니다.] [관리자에 의해 이용자444님이 강퇴당했습니다.] [관리자에 의해 이용자666님이 강퇴당했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방송을 종료한다.
그리곤 따로 설치해 놓은 카메라로 영상을 따 편집해서 블로그에 옮겨 놓고, 시험 자료들을 정리해서 업로드한다.
그렇게 하고 나니, 평소보다 일찍 마무리가 됐다.
평소대로였다면 곧 있을 강의를 준비하며, 자료를 정리하면 딱 좋을 시간.
······.
하지만 오늘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쌤! 밖에 사람들 엄청 많이 왔던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놀란 표정으로 들어온 김연아를 바라보며, 미리 인쇄해 놓은 자료를 들고 일어섰다.
오늘은 바로 내 학원에 들어오겠다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만나는 날!
그렇다.
이제부터가 진짜인 것이다.
본게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