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4
34
034화 달콤한 맛
“선생님. 그 전에 있었던 일은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일이 바쁘다 보니 학원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갑작스럽게 학원에 찾아온 낯선 사람. 바로 내가 있었던 맥아스터디 분원의 원장이다.
그는 내가 권한 자리에 앉자마자, 간절한 눈빛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돌아와만 주신다면 이번엔 선생님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못 믿으시면 제가 각서라도 쓸 테니까, 다시 한 번 일해 보시죠.”
그는 숫제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이야기했다. 그의 눈빛을 보니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길 자세인 것 같았다.
“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다.
어차피 바지사장에 불과한 분원 원장에게 바랄 것은 없었다.
보아하니 실세인 부원장, 아니면 본원 사람들의 압박을 받고 나선 모양인데, 실권이라곤 하나도 없는 욕받이가 하는 약속 따윈 믿을 수 없었으니까.
‘각서라’
게다가 법적효력도 없는 각서 따위를 믿고 나서기엔 내 등 위에 올려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요즘 몰려드는 학부모와 학생들 상담으로도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으니까.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이번 학원 원장이 행정적인 업무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었을 만큼 학원은 순항 중이었다.
뭐, 그게 아니라도 애초에 분원 강사직에서 바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뻔했으니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나는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에게 종이컵을 내밀었다.
“차나 한 잔 드시죠.”
그러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든다.
진하게 우린 코코아.
전 학원에 있을 때엔 받아 본적 없는 달콤한 맛.
지금 원장처럼 입에 달고 사는 수준은 아니지만, 원체 학원 내에 재고가 하도 많은 터라, 나도 가끔 마시면서 입맛을 들이고 있었다.
피곤할 때 한 잔 진하게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게 꼭 게임에 나오는 힐링포션 같아서 먹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는 맛이었다.
하지만 그는 코코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 모금 마시는 척을 하다가 눈썹을 찡그린다.
아마 그가 좋아하는 맥아(麥芽)의 맛이 아니라서겠지.
하지만 그런 입맛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원 원장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선생님.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조그마한 학원에서 얼마나 크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 분원에서만 일하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희 본원 아시잖아요. 그곳에서도 자리를 마련해 드릴 수 있어요.”
내가 계속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원장도 슬슬 목소리를 크게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들먹이는 것들은 모두 다 예상 안의 이야기들뿐. 전 학원에 있을 때와 같이, 섣부른 공갈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시원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굳는다.
지금까지의 모든 오욕을 쏟아내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연다.
“왜죠?”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보리차를 싫어해서요.”
* * *
‘선생님 혹시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라도 연락 주시죠. 그럼 이만.’
분원 원장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직강도 하지 못하는 대형학원 분원 원장의 뒷모습이 으레 그러하듯, 공허한 모습이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마치 제 궤도를 잊은 위성처럼.
하지만 언제까지 그를 생각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쌤! 안녕하세요!”
“안냐세욤! 오늘 너무 추워요!”
“으 꽃샘추위 너무나 싫은 것. 쌤 오늘 뭐 해요?”
내 앞엔 반짝거리는 어린 별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밝게 인사하는 그들에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뭐가 그리도 좋은지 저들끼리 꺄르르 거리던 그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리면서 투닥거린다.
“준영 쌤이 날 보고 웃었어!”
“기억할게!”
“나 웃는 거 처음 봤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학생들이 속속 학원에 등원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색을 가진 학생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내게 인사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수한과 김연아를 포함해 정말 얼마 안 되는 인원으로 학원을 꾸려 나가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요즘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린 탓에, 아이들의 인적사항과 특성을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게다가 난 이제 대학교 새내기나 마찬가지.
사실 뭐 이제 와서 학력은 별 상관이 없어졌지만, 이미 서율대학교 국교과에 입학해 놓은 상태니 만큼. 졸업장과 교원자격증 정도는 받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간판이 중요하니까.
그래서 요즘은 최소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방송과 학원 수업 전에 대학교 수업을 듣는 중이다.
몸이 여러 개가 아닌 이상 벅찰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통장에 꽂히는 돈을 보니 없던 체력도 솟아난다.
‘당장 이번 달에 들어올 돈이 얼마더라?’
원래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몰렸지만,
나 혼자 수업을 진행하는 만큼, 최대한 세분화해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40명이 한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 학원에서 월급 1~200만 원에 골골대던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책정한 국영수탐 집중관리 학원비는 교재비를 제외하고 인당 150만 원.
지역에서 매우 저렴한 편이었던 전전 학원의 학원비 100만 원, 약간 비싼 편이었던 전 학원의 180만 원을 절충한 가격이다.
일단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등부 기준 한 과목당 30~45만 원 정도로 시세가 책정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니만큼, 큰 문제가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뭐 학원에 따라서는 과목별 횟수별 학원비를 책정하는 학원도 있는 것 같지만, 혼자 학원을 꾸려나가는 만큼 번거로운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한달 평균 3,000~4,500만 원 정도 들어온다.
모든 학생들이 국영수탐을 다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계산을 했을 때 그 정도의 금액이 학원비로 들어왔다.
거기다 학원 유지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내 경우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 원장에게 달마다 납입하고 있는 200만 원 정도의 임대료나 세금이나 기타 지지한 지출들을 제외하면, 학원비의 거의 대부분 내 통장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할 맛나네.’
학원에 붙잡혀 고정급여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기만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성취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마 저격방송과 수능만점이라는 네임밸류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성과.
연아 어머니 같은 상류층 인맥들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는 방송과 수능이라는 두 가지 준마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확실했다.
그 두 가지를 통해 전국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익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 선생님 서류 정리는 제가 좀 도와드릴 테니, 다른 일 보시죠. 오늘 새로 온 애들도 많을 텐데, 수업 준비도 하셔야 될 테니까.”
학원 원장이 허허로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예의 신선 같은 모습으로 뜨거운 코코아가 가득 든 텀블러를 홀짝이면서.
“아니 그래도 매번 부탁드리기가 너무 죄송해서···”
내가 미안한 기색으로 말을 꺼내자, 원장은 괜찮다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기본적인 얼개만 제가 할 테니까. 자세한 것만 나중에 정리하시면 될 거에요.”
계속되는 그의 권유에 내가 자리를 옮기자, 그가 내 자리에 앉더니 엄청난 속도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탁-
키보드가 만들어 내는 화음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속도였다.
“허허 간만에 하니까 손가락이 좀 굳은 것 같긴 하군요. 예전엔 2천타 정도는 나왔었는데.”
그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분명 생긴 거만 봐서는 곰방대를 들고 수기로 원고지를 찍을 것 같은데···
“······.”
이런 일은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마구 몰려든 이후부터 원장이 부쩍 학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자기가 맡고 있는 학생들 시간이 끝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에게 간식을 사 주거나, 이 동네 학부모들이 찾아오면 몸소 상담도 진행하는 등, 안 보이는 곳에서 학원 일을 거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내가 바쁠 때마다, 이렇게 엄청난 능력으로 내 일을 도와주고 있다.
“허허 어여 가서 일 보셔도 됩니다. 제가 조심해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볼일을 보라는 듯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곤 다른 자리에 앉아 수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수업준비.
사실 학생들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만큼 가장 주의해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이것이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같으면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진행했으니, 거의 그룹 과외 형식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지만, 학생 수가 많아진 지금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배 가까이 늘어난 거니까.’
일단 학생 수가 늘어난 만큼,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그만큼 수업을 밀도를 높여야 한다.
‘USB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문제겠지.’
그 전까지 의도적으로 가감해서 USB의 사용해 왔었다. 하지만 이젠 그 사용의 비율을 조금 늘여야 한다.
물론 내 능력을 휘발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전 학원들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간의 수정만 들어간 시험자료들을 사용했었지만,
현재 내가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짓은 제살 깎아 먹기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꽃이 무성한 나무라도 뿌리나 줄기가 굳건하지 못하면, 아주 약한 바람에도 쉽게 부러질 수 있었으니까.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학생들의 뿌리를 굳건히 세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그 와중에 꽃을 피우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꽃을 틔워 주는 역할이다.
타닥타닥-
그런 생각을 기본으로 수업 자료를 만들어 간다.
전에 내가 만들었던 자료들이 드러난 칼이라면, 이번에 만드는 자료들은 숨겨진 칼처럼 차근차근 자료를 벼려 나갔다.
그렇게 수업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찰칵-
조심스럽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
교무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두 사람.
한 명은 온몸으로 부를 과시하는 듯, 온갖 명품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중년 여성.
다른 한 명은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이었다.
교무실에 들어온 중년 여인은 나와 원장을 번갈아 보다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그 학원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