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5
35
035화 갇힌 새의 날갯짓 (1)
기본 테스트.
학생의 기본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판별하는 시험이다.
동네 보습학원 같은 경우, 이 테스트를 건너뛰고 학생들의 학교 성적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지만, 학원 강사가 관심법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학생의 수준을 판별하기 힘들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원들이 원생이 처음 들어올 때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한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될 때의 이야기지만.
“다 풀었는데요?”
내 앞에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 녀석에게는 이 방법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다.
거의 대부분 백지.
국어 문제 그중에서도 문학 지문 몇 개만 쭉 풀어 놨을 뿐, 국어 문법,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문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여느 학생이라면 부끄러워 할 법 하기도 한데 녀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책상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오히려 부득불 우겨 같이 들어와 있던 녀석의 어머니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녀석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
금방이라도 큰소리를 내지를 것 같은 녀석의 어머니를 일별하며,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다 풀었어? 시간 많으니까 다시 천천히 풀어 봐. 지금 하는 건 점수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네 실력 확인하려고 하는 거니까.”
내가 녀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자, 녀석이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입을 연다.
“알아요. 여기 말고도 많이 다녀봐서. 그런데 진짜 모르는 거 잡고 있어 봐야 뭐하겠어요? 뭐 찍기라도 할까요?”
관심이 없다는 투를 넘어, 뭔가를 향한 악의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녀석의 눈이 잠시 제 어머니를 향했다가 다시 책상으로 향한다.
그러자 녀석의 어머니가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선생님 가능할까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니, 그 동안 여러 학원을 거쳐 온 것이 느껴졌다.
약간의 불안과 분노, 기대와 체념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못하는 게 어디 있겠어?
* * *
한산한 교실.
현재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는 중이라, 녀석을 제외한 몇몇 학생들만 교실 안에 앉아 있다.
“으아 쌤 너무 어려워요···”
수업을 진행하는 와중 여학생 하나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머리만 아프고···”
“으 쌤 재미있는 이야기해 주세요!”
“쉬는 시간 일시불로 땡겨요.”
기초 중의 기초반.
기본적으로 수업 자체를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은 반이라, 대체적으로 분위기는 산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만. 다음 주 테스트 때 후회하기 싫으면 지금 좀 고생하는 게 나을걸.”
또래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갈 이들.
정말 기본적인 것을 위주로 가르쳐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수업은 가능한 정도로 만드는 게 이 반의 목표였다.
일단 성적을 올릴 땐 올리더라도, 우선 다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기초 지식을 쌓아야 그 점수의 유지가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들은 나를 무슨 간수 쳐다보듯이 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내가 집중을 시키면 처음 십 몇 분 정도 집중하는 척하다가 이내 책상으로 고꾸라지든가, 소금뿌린 지렁이마냥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학생은 있었다.
바로 박일한
어제 냉소적인 태도로 테스트를 받았던 녀석의 이름이었다.
녀석은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안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녀석이 잠을 잔다거나, 혹은 떠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자세로 의자에 앉아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장장 90분 동안 내내.
“왜요?”
내 시선이 녀석에게서 떠나지 않자, 녀석이 나를 보며 물었다.
“형성평가 1번부터 5번까지 쭉 채워 봐. 이번엔 모르겠다고 손 놓지 말고.”
내가 말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푸는 녀석.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
박일한 이 녀석은 내가 지적할 때마다 군말 없이 그것을 행했지만, 결코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점은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선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성 중 하나였으니, 뭐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내가 한눈을 팔고 있을 때마다, 고요한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 정도?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치 배우들을 바라보는 감독처럼, 차가운 눈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어제 녀석 어머니와의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
.
‘휴 얘 형도 누나도 다 제 속 한 번 안 썩히고 명문대 나와서 번듯하게 컸는데, 이 녀석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테스트가 끝나고 난 교무실. 박일한이 차에 가 있는 사이, 녀석의 어머니가 어두운 낯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께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벌써 이번 학원이 몇 번째인지 몰라요. 그 동안 대형학원도 넣어 보고, 매섭게 가르치는 학원도 넣어 보고 했는데···’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 아무리 학원을 보내도 애 성적이 변하질 않으니, 저희라고 마냥 견딜 수가 있나요? 어떤 분들은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는 분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그냥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는 말밖에 안하시니 어쩔 수 없었죠.’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한숨을 내뱉는다.
내가 차를 한 잔 건네자 한 모금 들이키곤 다시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제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서성한 정도야 우습게 들어가고, 해외 명문 대학도 입학하곤 하던데, 우리 애는 이러다가 이상한 대학이나 간다고 하는 게 아닐지···’
그녀의 목소리 가득 원망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한 원망일까.
성적을 못 올린 강사들을 향한 원망일까 아니면··· 자신의 체면을 갉아 내린 자식에 대한 원망일까.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앞으로는 좋아질 겁니다.’
그녀를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는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연다.
‘모르는 말씀 마세요. 요즘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방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컴퓨터로 이상한 거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되는데, 방문이라도 두드리면 신경질을 부리니 알아볼 수가 있나요. 휴, 밖에선 얌전하니 참고 견디는 거죠. 휴지는 어찌나 많이 쓰는지······.’
그녀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차를 홀짝거린다.
씁쓸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녀석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결국 그녀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결국 자식보다는 자신에게 더 가까이 있었으니까.
‘선생님. 저희 애 성적만 올려 주시면 진짜 선생님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서울 내에 있는 대학 보내 주시면···’
그러면서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부동산 거래를 통해 단기간에 부를 축적했다는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며, 만약 녀석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마 나한테만 던졌던 제안은 아니겠지.’
이미 여러 번 써먹었던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본 나에게 막 던질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내게 하나의 기회였다.
학원 일을 하다 보면 별의별 학생들을 다 겪어 내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경지로 올라서는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
게다가.
‘진짜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으면 외국 유학이라도 보내 버려야지 어쩌겠어요. 외국 가서 고생 좀 해 봐야 한국 좋은 줄 알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개인적으로 녀석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했고.
사실 학생 하나를 대학에 보내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USB의 힘을 생각하면, 오히려 못 보내는 것이 이상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진짜 마음만 먹으면 수능 만점자를 수두룩하게 양성해 내는 것도 가능한 것이 내가 가진 능력이었으니까.
“······.”
하지만 USB의 능력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다 한들, 그들이 버티지 못하고 방황한다면 결국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경우라도 견뎌 낼 수 있는 실력과 경험, 그리고 USB의 조화였다.
“쌤 다 풀었는데요?”
녀석의 말을 듣고 내려다보니 풀라고 시킨 부분을 다 푼 모양이다.
그나마 국어는 잘 따라오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국어도 문법 같은 수학이나 영어처럼 손도 못 대는 것 같았지만, 일단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그나마 약간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다 맞았죠? 이제 쉬어도 되죠?”
답을 확인하고 있는 내게 녀석이 살짝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간을 보니 이제 막 쉬는 시간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 모두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된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내 살을 씹어 먹을 것 같은 눈치다.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일한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휴대폰을 꺼내들고 미친 듯이 키패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아마 공부를 저 반만 했었어도 전교 10등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을 꺼낸 박일한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들고 슬쩍 자리를 뜬다.
문 밖을 나서기 전에 슬쩍 눈치를 살피는 녀석을 보니 뭔가 기분이 싸했다.
“······.”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쉬는 시간에 뭘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주의였지만,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녀석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간혹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학생들도 왕왕 존재했었으니까.
기호식품이니 뭐니 해서, 성적만 올릴 수 있다면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담배를 싫어하기도 했고, 또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녀석을 가만 둘 수는 없었다.
녀석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시간을 두고 발소리를 죽이며 학원 계단을 내려오니, 어둑어둑한 1층 상가 구석에서 엷은 푸른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
보아하니 어두운 곳에서 담배를 태우기는 어려웠는지, 휴대폰 액정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색대대를 나온 기억을 떠올려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단번에 녀석이 있으리라 생각 되는 곳을 덥쳤다.
그러자.
“으어억!”
복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던 녀석이, 들고 있던 것을 내던지며, 비명을 지른다.
푸른빛을 흩뿌리며 허공을 나는 그것을 잡아내자,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뭐지?
내 손에 잡힌 것은 작은 태블릿PC.
키보드까지 연결되어 있는 본격적인 녀석이다.
“아 쌤!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요!”
어느새 녀석은 정신을 차렸는지 내 손에 들린 태블릿을 가져가려 한다.
평소의 냉막한 표정은 어디로 던져 버렸는지, 제법 당황한 얼굴이다.
수상했다.
나는 달려드는 녀석을 다른 손으로 가로 막으며, 녀석이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어 이건···”
[구(舊) 무림(武林)]녀석의 태블릿PC 안에 있는 사이트 인터페이스가 이상하게 낯익었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상주하던 웹소설 사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