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6
36
036화 갇힌 새의 날갯짓 (2)
카톡-
[은솔 : 김 선생님. 수업 준비 하시나요? o(*’▽’*)/]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은솔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전히 발랄한 이모티콘을 대동하고 있다.
“아니요. 수업준비는 다 했고 지금은 소설을 좀 보고 있어요.”
내가 답장을 보내자, 바로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 답장이 날아온다.
[은솔 : 소설 보세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소설 보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 까요? (❛ᴗ❛。)]갑작스런 은솔의 요구.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키패드를 두드렸다.
“구(舊) 무림(武林)이라는 사이트의 ‘미래의 강화무기로 인생승천!’이라는 작품이에요.”
내가 간단히 대답하자, 한참 동안 은솔의 답장이 없다.
······.
뭐 계속 기다릴 것도 아니니 그 동안 소설을 마저 읽는다.
그렇게 한 30분쯤 소설을 읽고 있었을까? 은솔에게서 온 카톡이 화면에 뜬다.
[은솔 : ^^ 말씀해주신 소설 저도 한 번 읽어 봤는데, 정말 재미있네요. 작가님 필력도 좋고 댓글들도 클린해서 좋아요!]······?
예상외의 반응.
유혈이 낭자하는 건 기본.
주인공이 좀비나 드래곤 같은 기괴한 괴수들 사이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하드보일드 생존물인데?
아무리 봐도 은솔이 재미있게 볼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의 취향은 외모만 보고 판별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소설 좋아하시나 봐요?”
떨떠름한 느낌 반, 신기한 느낌 반으로 카톡을 보낸다.
그러자 바로 답장이 온다.
[은솔 : 네 정말 좋아해요. (๑ơ ₃ ơ)♥]뭐 취존이다.
어차피 나도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쪽이니까.
일단 답장하는 것을 뒤로하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린다.
지금 연재된 부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저 다 읽고 나서 답장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보고 있던 소설의 작가는 ‘불타는 소라게’
바로 박일한의 필명이다.
담배를 피우는 줄 알고 습격했던 녀석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처음엔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보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나름 재미있었다.
약간 늘어지는 초중반 전개나 살짝 러프한 문장을 제외한다면, 기성 작가가 썼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였다.
일단 탄탄한 설정과 그 설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까.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연재분 밑에 달린 댓글들도 대부분은 호의적이다.
[고알라 : 으따 여윽시 요번 화도 자미가 출중허구마잉. 건필!] [중팔 : 잘 봤습니다···] [koelove : 재미있네요! 연참은 안 될까요?] [꼬마별들 : 작가님 잘 보고 가요^^ 건필하세요.] [KH드래곤 : 주모! 여기 소라 한 사발 땃땃하게 잘 말아서 주오!] [은솔 : 잘 봤습니다. ∑(^ _ ^ )/]댓글들을 확인할수록 점점 윤곽이 잡혀 갔다.
* * *
보충학습시간.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시간이다.
그리고 현재 보충을 듣고 있는 학생은 단 한명.
바로 박일한이다.
“소설 잘 봤어. 재미있더라.”
내가 슬쩍 말을 꺼내자, 지문을 읽고 있던 녀석의 머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녀석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냉소적인 표정을 취한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한 치의 기대도 가지지 않는다는 표정.
설마 정말 봤을까? 싶은 눈치다.
녀석은 다시 문제를 풀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말을 던졌다.
“주인공이 힘을 얻기 전까지의 내면묘사가 좋더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으면 나오지 못했을 건데. 고생했겠어.”
녀석은 못들은 척 묵묵히 문제지를 끄적거린다.
하지만 시험지의 빈칸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설정 오류가 하나 보이던데, 나중에 설명하려고 놔 둔거야?”
그러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약간의 불안과 불만이 뒤섞여 있는 눈빛이다.
“설마요. 제가 얼마나 꼼꼼하게 확인했는데? 진짜 읽어 보신 거 맞아요?”
녀석이 가시를 곧게 세우며 말했다. 나는 녀석의 번뜩이는 눈빛을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네 소설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나오는 신세현이라는 인물 있잖아? 분명 34화에서 자기는 생존구역 밖에서 기다리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는데, 30화에선 분명 결혼해서 딸이 있다는 말을 했었단 말이야. 이거 설정오류 아니니?”
내 말을 들은 녀석의 표정이 일변한다.
그리곤 다급한 표정으로 허둥대기 시작한다.
“헉 진짜요? ···잠깐만 폰 써도 돼요?”
평소에는 목석같던 녀석이 소설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할 정도로 쉽게 제 속을 드러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바쁘게 휴대폰을 꺼내 제 소설을 찾아본다.
그리곤 십년감수 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헐 진짜네요. 학교랑 학원 때문에 독자들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 못하다 보니······.”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소설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부분에 대해 입을 열었다.
“거 봐. 그건 그렇고 나중에 신세현이라는 인물이 그냥 탈락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녀석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받는다.
“네. 일단 주인공이 생존지대에서 탈출할 때까지 살아남아요. 중요한 조력자 중에 하나라서 캐릭터 설정 잡을 때도 많이 고민했어요.”
녀석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만 봐도 캐릭터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럼 비중이 제법 있는 편인데, 그런데 이 인물의 행동 동기가 밖에 있는 아내와 딸이잖아?”
“그렇죠. 일단은.”
“결혼도 안 해 본 녀석이 어떻게 기혼자들 심리 묘사를 하려고?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 놓은 게 있어?”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연다.
“어? 그거 대충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소설들 보니까 대충 막 하던데?”
녀석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모른다기 보다는 알면서 슬쩍 넘어가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는 녀석의 머리에 딱밤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인마. 네 소설은 진지한 분위기라고. 그렇게 날림으로 쓰면 독자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니까. 그러지 말고 나한테 결혼하고 군대 간 사람들 수기 있으니까. 그거 보면서 좀 잘 써 봐.”
그리고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문장 같은 경우는 조금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더라. 물론 너 특유의 문체니까.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고, 가독성을 좋게 하는 방향으로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너처럼 감각으로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스킬들을 연마하는 것도 필요하니까”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장 어플에 내가 한 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 내가 알던 박일한이 맞나 싶어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문제를 풀 때와는 다른 능동적인 모습.
뜨거울 정도의 열의였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닉네임이 웃기더라. 어쩌다 나온 거야?”
그러자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지었어요. 제가 전문 작가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쓰는 건데요 뭐. 어차피 아무도 관심 없고···”
녀석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이글거리던 열기가 아까울 정도로 낮은 자존감이다.
차라리 평소처럼 냉소적인 모습이 더 나을 정도로, 급격한 태도 변화였다.
“왜 관심이 없어. 네 소설에 얼마나 댓글이 많은데. 보니까 선호작 수도 꽤 높더만.”
내가 인터넷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군대 가기 전 경험으로 미뤄 보면 녀석의 소설은 나름 선방하고 있는 소설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약 50회 정도 진행된 녀석의 소설을 봤을 때 조회수의 급락도 없었고, 부정적인 댓글이나 비추천 세례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선호작의 추이를 보면 분명, 녀석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녀석은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았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그럼 뭐하겠어요.”
녀석은 들고 있던 휴대폰도 내려놓고, 의욕 없는 표정으로 시험지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녀석의 얼굴에 어린 짙은 수심이, 금방이라도 녀석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녀석의 얼굴과 녀석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진다.
말하지 않아도 녀석의 수심이 어디에 근원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쓸 데 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해.’
녀석의 어머니가 지르는 쨍쨍한 목소리가 벌써 귓가에 선하다.
“···많이 힘드냐?”
내가 묻자 녀석은 고개를 젓는다.
그리곤 자조 섞인 웃음을 내보였다.
“아뇨. 제가 뭐가 힘들겠어요. 제 입장에서 힘들다고 하면 그건 진짜 복에 겨운 소리죠. 저도 알아요. 남들처럼 돈이 없어서 다니고 싶은 학원에 못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점심값이 없어서 편의점 빵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말을 내뱉던 녀석의 표정이 급격하게 흐려진다.
말을 내뱉는 녀석의 목소리에 짙은 떨림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저도 안 되는 걸 어쩌겠어요. 저도 집중해서 형이나 누나처럼 명문대 가고 싶은데, 수업만 들어가면 토할 거 같은 걸 저더러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녀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하지만 녀석의 말 속에 심상치 않은 말이 담겨 있었다.
“토할 것 같다고?”
내가 묻자 녀석이 ‘아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포기한 듯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사실···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수업만 들어가면 속이 울렁거리고 막 토할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요즘엔 많이 익숙해져서 그럭저럭 버틸 만해요.”
녀석의 증상을 보니,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부모님한테는 말해 봤어?”
내가 걱정 어린 어조로 묻자 녀석은 냉소하며 말을 받는다.
“부모님이요? 아빠는 얼굴 본 지 오래됐고, 엄마는 제 말이라면 다 거짓말인 줄 알아요. 그리고···형한테도 말해 봤는데···괜히 욕만 처먹었죠 뭐.”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십대 후반의 청소년이 지어서는 안 되는 웃음이었다.
“선생님이 제 소설 봐 주시고 그런 거 진짜 감사하기는 한데, 너무 큰 기대 가지지 마세요. 엄마랑 무슨 약속을 하셨던 간에 아마 안 될 테니까. 그래도 뭐 조용히 학교랑 학원만 다니면 쫓겨나지는 않을 테니까 저로선 다행이죠.”
그때 불현듯 시 하나가 생각났다.
부모는 멀리보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앞서 가라고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나는 녀석의 의기소침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나랑 수업 하나 같이 하자.”
‘너 나랑 영화 하나 같이 하자’라고 말하는 마피아 대부의 어조.
그런데 내가 그만큼 카리스마가 있을지 모르겠다.
뭐 아무튼.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다른 과목 더 할 게 있나요? 탐구? 제 2외국어?”
나는 녀석의 말에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대학 입시에 있어서, 꼭 OMR에만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
이어진 같은 타입에게 있어서 OMR에 컴퓨터용 사인펜을 끄적이는 것은 로또 추첨이나 다름없는 공허한 확률놀이일 뿐.
조금 더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대학 입시가 있다. 그리고 그 역시 내가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영역.
탁-
나는 녀석이 풀고 있던 시험지를 덮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험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거 말고 이거 한번 풀어 볼래?”
그러자, 시험지를 받은 박일한 눈에 호기심과 이채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죽어 있던 눈동자에는 미약한 생기가 깃들어 빛나고 있었다.
[2018학년도 서율대학교 논술(사회계열) 입학시험 문제지].
.
작가의 말
위에 인용된 시는 김영수(가명) 군의 시입니다.
공익광고 협회 캠페인 : 참된교육편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093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