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7
37
037화 갇힌 새의 날갯짓 (3)
···최근 일본에서는 ‘무연 사회(無緣社會)’가 새로운 사회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부각되고 있다. 무연 사회란 혈연·지연 등을 통한 개인 간의 전통적인 조력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타인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는 사회를 뜻한다······.
···싱글턴은 단순히 독신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애인이나 룸메이트, 부모, 자녀 등과 동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홀로 사는 ‘1인 가구’를 가리키는 용어다. ···중략··· 현대인들에게 ‘혼자 사는 것’과 ‘외롭게 사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고독을 느낀다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간주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편 나홀로 식사는 청년들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실제로 혼자 사는 노인이 74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15% 안팎은 가족이나 이웃과도 만나지 않은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1] 제시문 와 제시문 각각의 관점에서 제시문 의 현상을 설명하고, 이 중 하나의 관점을 선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하시오. (500자 내외 40점)내가 박일한에게 내민 것은 서율대학교의 전년도 논술 시험문제였다.
처음 시험지를 받아들던 박일한의 표정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ㅤㅁㅝㅇ미?’라는 표정.
하지만 일단 써 보라고 한 뒤에 90분 정도 자리를 비우고 나자, 나름 열과 성을 다해서 답을 적어 놓았다.
···는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청년뿐 아니라 노인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증가함을 보여 준다.
는 무연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기술하고 있다.
···중략···
한편 에 나타난 싱글턴 현상은 1인 가구의 긍정적인 전망을 보여 주는데···
시험지를 주면서도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이 녀석에게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준 문제였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만의 답을 적어내길 원했을 뿐이다.
“······.”
내가 말없이 시험지를 내려다보고 있자, 녀석이 긴장어린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왜요? 이상해요?”
녀석은 자신이 써내 답안에 자신이 없는 모양인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펜을 만지작거린다.
“아니. 나름 잘 써서 감탄하던 중이야.”
나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애매하게 변한다. 설마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사실, 처음엔 시험지를 내 주면서도 약간 걱정하기도 했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필력이 좋다고 해서 논술을 잘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녀석이 적어놓은 시험지를 확인하니, 이런 내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녀석은 분명 이런 식의 논술 지문을 처음 보고 처음 문제를 푼 것이 분명했을 텐데, 나름 시험문제의 틀에 벗어나지 않는 답을 적어 놨던 것이다.
논술(論述).
어떤 것에 관하여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논술이라는 말은, 대입전형의 한 방법을 가리키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대학 입시는 정시와 수시로 구분되고, 수시는 다시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세분화.
일반 전형은 다시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논술고사, 적성고사, 실기고사, 특기자 전형 등으로 나눠진다.
하지만 1~2학년 내신도 초토화, 수상실적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사항도 없이 깨끗한 박일한의 학생부로는 그것들 중 아무 것도 시도해 볼 수 없다.
그나마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논술고사와 특기자 논술뿐인데, 특기자 전형 자체가 특목고를 위한 전형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노려볼 수 있는 입시 방법은 논술이 유일했다.
뭐 논술이라고 녀석이 100% 붙을 만큼 마냥 친절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 이것이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원서를 넣는 순간 광탈이겠지만, 이쪽은 그나마 전략을 잘 세우면 비벼볼 곳이 보이기 때문이다.
“······.”
자신이 쓸 글을 바라보며 히죽거리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이 나아가야 할 궤도가 보다 확실해졌다.
* * *
[문제1] 제시문 ~ 제시문 는 ‘행복을 결정하는 보편적 조건의 유무’에 관한 견해를 담고 있다. 이 제시문들을 상반된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 (25점)“오늘은 이거야.”
노트북을 두드리던 박일한의 눈동자가 불퉁하게 변한다.
녀석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팔랑거리면서 나에게 무언의 항의를 날린다.
녀석이 들고 흔드는 종이는 어제 나눠 준 논술 시험지.
빨간색으로 그어진 첨삭의 흔적과 녀석이 다시 쓴 내용으로 빈칸이 없는 종이였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앞에 시험지를 놓을 뿐이다.
“확! 그래서 안 풀 거야?”
장난스런 내 말에 녀석은 한숨을 내쉬며 문제지를 받아든다.
그리곤 풀기 시작하는데, 풀면서도 불퉁한 시선을 계속 보내는 것이 아마 나에게 낚였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머니도 허락하셨으니까. 좀 열심히 해 보자.”
며칠 전, 나는 박일한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학벌에만 신경을 쓰지, 학벌을 위해 수반되어야 할 노력의 종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 돈만 내면 성적이 만들어 졌으니까.
하지만 박일한의 경우에는 그 방법이 먹히지 않으니 이젠 그녀도 그만 포기해 버린 것 같았다.
“다 쓰면 이야기해 첨삭해 줄 테니까.”
내가 말하자 녀석이 방해하지 말라는 듯 고개만 끄덕인다.
벌써 며칠째 녀석과의 수련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한 문제씩 녀석이 문제 유형에 따라 논술 지문을 완성하면 내가 첨삭을 가하고, 그 첨삭을 기준으로 녀석이 다시 한 번 글을 쓴 이후에 전에 쓴 글과 비교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녀석을 대학에 보낸다는 목표를 위해선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논술을 글을 잘 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논술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뛰어들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쉬울 거라고 대충 생각하고 뛰어들면 피를 보기 십상이지.’
대체로 논술에서 제시되는 주제들은 쟁점이 분명한 것들이 대부분.
때문에 기본적인 논리 전개 방법을 숙지한 이후엔 실제 문제를 통해, 논지 전개 방식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녀석과 한 가지 거래를 했다.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군말 없이 내 지도를 따라올 것‘
그 결과, 녀석은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곧잘 내 지도에 따라오고 있었다.
“······.”
맹렬하게 글을 써 내려 가는 녀석을 바라보면서 나도 앞으로의 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녀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논술 형식에 익숙해지면, 천천히 다른 교과 과목의 기초들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갈 예정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교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고 있는 만큼, 적절한 조절을 통해 녀석이 압박감을 받지 않는 선을 조절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종일관 압박을 받아 왔던 녀석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줬으니, 머지않아 녀석도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지금은 잠겨 있는 [논술]폴더의 잠금도 해제될 게 확실했다.
때문에 USB를 사용해서 녀석이 갈 수 있는 학교의 논술 고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풀게 만들면, 아마도 안정적으로 녀석의 대학입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거 봐봐 너 또 멋 부리고 있다니까? 내가 말 했잖아. 일단 입시 논술이라는 건 글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단 지금은 최대한 글에 힘을 빼고 써.”
뭐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 * *
[파란유리: 작가님 요즘 글이 더 재미있는데요? 오잉?] [무안산인: 으 잘보고 갑니다^^ 문장이 좋아지셨네요.] [늑대몰이: 좋아요~! 연참은 안하시나요?] [소라게: 글이 참 깔끔해요. 가독성이 진짜 좋아요. 레알 추강합니다^^] [tkstlsfud: 잘 보고 갑니다.]자신의 소설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는 일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일한은 자신의 소설에 달린 댓글 하나하나에 답변을 달면서, 요즘처럼 즐겁게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평소 일한은 습관처럼 글을 써 오긴 했지만, 그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서 도망가고자 하는 도피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지, 진짜 즐겁기 때문에 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글쓰기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이 쌓이고, 그럴수록 자신의 글을 봐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쌓여 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가 한 사람을 만나면서 이뤄진 것이란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1년 동안 네가 얼마나 나를 잘 따라와 주느냐에 따라 갈수 있는 학교가 다를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긴장 늦추지 말고 잘 따라와.’
‘그럼 내가 멱살을 잡고서라도 점수를 끌어올려 줄 테니까.’
‘어허 무리하지 마, 아직 갈 길이 먼데 함부로 뛰다가 넘어지면 아파서 못 뛰어.’
언제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슬렁슬렁 돌아다니는 그.
바로 일한이 있는 학원의 강사이자 원장인 준영이다.
처음엔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준영이 불수능으로 유명했던 올해 수능의 유일한 만점자라는 것과, 수능 이후 요튜뷰 방송을 통해 족집게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는 엄마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별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준영을 만나기 이전까지 모든 강사들이 그러했듯이, 준영 또한 견뎌 나가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본 준영은 여느 강사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구(舊) 무림(武林)? 이 사이트 나 군대 가기 전에 상주하던 곳인데?’
일단, 살면서 처음으로 일한이 소설을 쓴다는 것을 들킨 사람이기도 했고,
‘요즘 네 소설 재미나더라 그러니까 얼른 연참 좀 해 봐’
가장 먼저 자신의 글이 재미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람이었다.
‘어때 교과 수업도 할 만하지?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그래서 연참은 언제할 거니?’
그리고 앞으로 달리라고 채찍질하기만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힘들면 가끔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 목표는 논술 최저 점수다. 그 점수까지만 가면 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마. 1년이면 충분해.’
덕분에 요즘은 논술지문 풀이 이외에 국영수탐 기본 강의도 천천히 듣고 있는데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다.
아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전보다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준영이 일한에게 준 것 중 제일 큰 것은 입시에 대한 조언이나, 글을 쓰는 방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잘만 쓰는구만 뭘 그렇게 걱정을 해.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거야.’
준영이 그에게 준 것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것.
그것은 자신의 가족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믿음과 안식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잃어버렸던 그 두 가지를 다 찾은 결과.
똑똑-
“일한아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어머니의 태도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
그것은 그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체적으로 고른 성적을 맞은 뒤부터 일어난 변화였다.
“좀 있다가요. 금방 마무리하고 나갈게요.”
“그래 얼른 준비하고 나와. 뭐 먹을지 생각해 놓고.”
비록 어머니 스스로의 심경변화를 통한 태도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일한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해지던 압박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었다.
‘야 그래도 잘 봤네. 너 논술 볼 때쯤이면, 장난 아니겠는데?’
이제 일 년간 준영을 따라 가기만 하면, 언젠가 어머니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