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8
38
038화 갇힌 새의 날갯짓 (4)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그 동안 정말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도 공부도 시작하고, 정말 요즘만 같으면 살맛날 것 같아요]수화기 너머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박일한의 어머니. 아들의 성적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연락한 것 같았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다 일한이가 잘 따라 줘서 그런 거죠.”
나는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터져 버릴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진즉에 선생님 같은 분을 모셨어야 했는데, 그 동안 엄한 것에서 시간만 빼앗긴 것 같아서 너무 아까워요. 아니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에 우리 애를···아니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 자식을 내게 맡겼으면서도 그리 큰 믿음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머니라는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무신경한 발언이었지만, 그 동안 그와 일한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야. 전문가니까요.]내가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격렬하게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은 많아 봐야 두세 시간 남짓.
잠자는 시간과 학교,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얼굴만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때문에 학부모가 학생들의 공부성향, 고민, 취향 등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들은 학생들에 대한 문제를 전적으로 학교 선생님들에게 일임하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지도 이외의 기타 과중한 업무로 학생들 하나하나를 케어할 여력이 없다.
“······.”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의 고민이나 취향, 공부 스타일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학생과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묶인 학원 강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강사들은 실제 성과에 따라 학원에서 차등 대우를 받기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그만큼 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학생들 자신보다 더 학생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학생들 하나하나에 맞는 플랜을 짜고, 학생들이 따라 올수 있는 속도로 그 플랜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니까.
‘마치 퀘스트처럼 말이지.’
나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강사는 부모들처럼 저 하늘에 별을 잡으라고 닦달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별에게서 가장 가까운 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사람.
강사의 탈을 쓴 ‘양아치’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언제 시간되시죠? 오늘 괜찮으신가요? 저희 애 대학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어머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저랑 일한이를 믿어 주세요.”
나는 금방이라도 학원에 찾아올 것 같은 그녀를 만류하며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럼 어머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네. 어머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교실 앞에서 전화를 끊고 문을 연다.
끼걱-
녹슨 경첩이 비틀리는 소리.
그러자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박일한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쌤. 통화 다 끝나셨어요?”
녀석이 씨익 웃더니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렸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니 녀석이 쓴 글이 빽빽하게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럼 제 글 좀 봐주세요. 재미있는지 없는지. 이번 화는 약간 좀 걸리는 게 많아서······.”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이 쓴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
시야 사각에서 박일한의 기대감 어린 눈빛이 느껴진다.
녀석의 어머니가 물었던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속된 스트레스로 제 궤도를 잃어버린 돌덩어리를 다시 제 궤도로 올려놓은 방법.
“예전엔 다들 공부하라고 하면서 수학공식이나 영어단어만 주구장창 외우는 게 해서 싫었는데, 요즘엔 공부도 하면서 글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부담이 줄어들어서 그런가 울렁거리는 것도 많이 없어졌고요.”
진솔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해 본 적이 처음인 듯, 녀석은 부끄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그러다 보니까. 옛날엔 신경 쓰지도 않던 모의고사 성적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최저등급이 안 되면 소용없는 거니까. 지금까지 해 온 게 아까워서 라도 공부 좀 하려고요.”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리 강사가 열심히 강의를 하며 학생의 멱살을 잡고 달려가려고 해도, 학생에게 의지가 없으면 나아갈 수 없었다.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학생 스스로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이지.’
학부모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자식이 제 자리를 찾아서 좋고,
학생은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 별을 향해 날아가야만 한다고 닦달하는 부모에게서 벗어나서 좋고.
강사는··· 명예와 금전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 좋다.
“이번 화도 역시 재미있네. 문장력이 점점 좋아지는 거 같은데?”
내가 말하자 녀석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요? 그럼 이대로 올려도 괜찮겠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고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한다.
제 소설을 업로드하는 녀석의 얼굴에선 단 한 줌의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울렁거림을 참으로 애써 냉소적인 표정을 유지하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밝음이다.
게다가 이 방법의 순기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업로드하는 주기가 빠르다?”
내가 묻자 고개를 슬며시 든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연다.
“그게··· 요즘 들어 글 쓰는 속도가 좀 빨라져서요. 예전 같으면 이틀에 한 편 쓰기도 힘들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 편은 꼬박꼬박 쓰고, 컨디션 좋으면 하루에 두 편도 막 나와요.”
그러면서 말을 덧붙인다.
“그래도 쌤이 시킨 건 다 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됨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효과였다.
가독성을 중요시하는 인터넷 소설의 문장과 논술의 문장이 비슷하기 때문에 둘을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 추측하긴 했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내 추측이 맞았던 것 같다.
“글 쓰는 게 빨라지니 연참도 할 수 있고 좋네요. 논술 모의고사 풀 때도 시간이 약간 남고.”
학생들은 알까?
강사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는 학부모들이 입금하는 돈도, 시험지 위의 숫자도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학생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기쁨의 말보다 값진 것이 어디 있을까?
꽤나 보람찬 일이다.
* * *
학원 강의가 모든 끝난 후의 교무실.
홀로 앉아 학생들의 기록을 정리한다. 학생들의 수가 제법 늘어난 터라, 하루 수업기록의 정리일 뿐인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람을 좀 뽑아야 하나?’
나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밤늦도록 퇴근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학생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니, 힘들다고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직접 케어하지 않으면 안 될 학생들도 있었으니, 아직 인력을 확충하기엔 꺼려졌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뽑는 게 낫겠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진하게 타 놓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정리를 계속해 나갔다.
먼저 오늘 모의고사를 본 학생들의 성적을 확인한다.
원래 모의고사 성적은 내신 성적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내신은 약간만 소홀해도 등락이 심하지만 모의고사는 평소의 피지컬이 중요하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의 저번 모의고사와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점수를 받아 왔다.
하지만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있었다.
그 학생은 바로 박일한.
녀석의 경우는 정말 의외의 신장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나조차 녀석의 대학입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실력의 향상이 이뤄질지는 몰랐었으니까.
‘언어 3등급. 수리 6등급. 외국어 5등급. 탐구 4등급.’
상위권 학생들이 보기엔 볼품없는 점수지만, 얼마 전까지 언어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슬롯머신마냥 777로 채웠던 녀석의 점수라곤 믿을 수 없는 등급이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학생 수준의 문제도 어려워하던 녀석이었으니, 이 점수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박일한은 정말 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적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좀 바꿔야겠는데?’
처음 예상은 울렁증이 허락하는 하에 녀석의 기본 실력을 향상시키면서 전력으로 논술 대비를 시키고, 그 점수를 바탕으로 논술 최저점수를 맞춰 보려고 했었다.
물론 끝까지 녀석의 울렁증이 고쳐지지 않아 점수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으면 내신, 수능 최저 점수를 완전히 폐지해 버린 한량대학교를 지원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까진 없겠네.’
오히려 이젠 녀석을 대학에 보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고, 녀석이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까지 생각해 가며 시험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 * *
학교.
쉬는 시간.
김연아와 그 무리들이 한 책상에 모여 빵을 먹고 있다.
교내 매점은 물론 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핫한 제품들을 모조리 쓸어 온 참.
간식 좀 제법 먹어 봤다 하는 여고생이라면 연아의 테이블을 지나치지 못하고, 은근슬쩍 끼어들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쪼개고 쪼개 사 온 간식을 남들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할 만도 한데,
연아를 비롯한 구(舊) 20군단의 잔존세력들은 그런 무임승차자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그룹으로 포섭하며 제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영자! 딸기듬뿍 좀 줘 봐. 내꺼 줄 테니까. 이거 존맛탱임.”
“ㅇㄱㄹㅇ ㅂㅂㅂㄱ? 으 그 티라미수 넘 달아···그런데 연아 너 다이어트한다고 하지 않았음?”
“내가? 난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라 괜찮음”
그런데 그때 왁자지껄하게 간식들을 쓸어 담고 있던 연아들 곁으로 한 여학생이 지나가며 말을 흘린다.
“아닐걸. 연아 너 요새 좀 찐 거 같은데?”
그러자 입속으로 큼지막한 티라미수를 집어넣던 연아의 동작이 정지했다.
달콤함에 한껏 풀어져 있던 연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먼 솔?”
연아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주변에 있는 무리들이 일순 정지하고, 연아에게 말을 흘린 여학생을 바라본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여학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는다.
여학생의 이름은 박현선.
제법 이쁘장한 외모와 준수한 성적으로 학교 사람들의 이쁨을 독차지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급격하게 성적을 올린 연아에게 외모에서도 성적에서도 밀려, 찬밥이 된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뭐 별말은 아니고, 좀 찐 거 같으니까 조심하라고. 요튜브 방송 나오는데 돼지처럼 나오면 안 되잖아? 다트걸인지 뭔지 한다며~”
연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박현선이 살짝 웃으면서 말하자, 김연아의 눈이 날카롭게 변한다.
“야 빡썬, 말에 가시가 있다?”
김연아가 한 글자, 한 글자 땅에 새기듯 말하자, 박현선이 과장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 미안. 방송 끝났지? 어? 아직 안 끝났어? 의외네 그 강사 잘생기긴 했던데···실력은 없어 보였거든.”
순간 주변에 있는 이들은 보았다.
연아의 눈에서 서늘한 청광이 번뜩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