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39
39
039화 캣파이트 (1)
“···그럼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우리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도록 하죠.”
“여러분 내일 봐요! 알라븅 뿅뿅뿅.”
방송의 막바지.
방송을 진행하던 나와 김연아가 맺음말을 던지자, 채팅창이 쭈욱 올라갔다.
그리곤 하나둘씩 사람들이 채팅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네, 이용자1님 감귤은 맛있게 먹었어요. 이용자20님 그래요 언제 한번 놀러오세요. 이용자70님 안녕히 가세요.”
나는 마지막 남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방송을 종료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연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어.”
내가 김연아에게 말하자, 마침 물을 마시고 있던 김연아가 다급하게 물을 삼킨다.
그리곤 밝게 웃으면서 말을 받는다.
“넹 쌤도염. 요즘 방송 완전 잘하시는 듯.”
녀석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방송은 끝났지만 할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방송한 것들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일 방송할 것들도 대략적으로 준비해 놔야 했으니까.
미리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당일에 가서 다급하게 준비해야 할 테니, 조금 손이 가더라도 준비해 놓는 게 좋았다.
일단 그날 녹화한 영상을 외장하드로 옮기고 컴퓨터를 종료하고, 오늘 사용했던 자료들을 블로그에 올린 뒤 약간의 설명을 첨부한다.
그렇게 한 이십여 분 정도. 모든 마무리를 마쳤을 때.
“쌤 이거 어디다 놔요?”
김연아가 칠판지우개 하나를 가져와 묻기 시작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배경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약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녀석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냥 있던 데다 놔.”
그러자 녀석이 도도도 달려가 원래 있던 자리에 지우개를 놓고, 심혈을 기울여 각도를 조절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다음부터 계속,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가져와 어디에 놔야 하느냐, 빗자루를 들고 와서 청소할 곳은 없느냐 이런저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
원래 방송 시작 준비나 마무리 정리는 내 손으로 하고 있었다.
배경이 흐트러진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나, 일상적인 청소 같은 것을 학생인 김연아에게 시킬 순 없는 것이었으니까.
김연아도 카메라에 나오는 것 자체는 좋아했지만, 사소한 준비 같은 것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굳이 시킬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웬일인지 일을 도와주겠다고 자청하더니, 오히려 더 일을 만들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내가 묻자 녀석은 애써 어색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도리질 친다.
“아···아뇨 아무 일도 없는데여?”
녀석은 뜨끔한 표정으로 칠판지우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 아닌데 뭘. 그러지 말고 자수해서 광명 찾자. 무슨 일이야? 숙제 안 했어?”
내 추궁에도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보아하니 뭔가 말할 것이 있지만 말하길 주저하는 기색.
녀석의 얼굴이 순간에도 몇 번씩이나 변화하고 있었다.
“······.”
하지만 내가 계속 녀석을 바라보며 계속 압박하니,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연다.
“에휴 쌤. 다른 건 아니고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실직고 하는 녀석.
* * *
체육시간.
“잠깐만! 내가 잡을게!”
석회가루로 울퉁불퉁 그려 놓은 간이 피구 코트 위를 물 만난 물고기처럼 누비는 사람이 있다.
텁-
“흐흐 다들 죽어쓰.”
여고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운동신경으로 막 경계선을 넘어가려는 공을 잡아채는 사람.
다급히 공을 잡으려고 달려오던 상대편 학생을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코트 위의 폭군.
바로 김연아다.
얼굴만 봐선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양떼 속의 사자처럼 상대편을 압살하고 있었다.
퍼억-
그녀가 한 손으로 던진 공이 그녀를 피해 반대편 구석에 모여 있던 여학생 둘을 맞추자.
바로 전 김연아의 앞까지 왔다가 공을 빼앗긴 박현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싸 두 명! 어 거기 공 잡아! 으아 뺏긴다!”
하지만 김연아는 박현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같은 팀 수비수들을 향해 닦달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두 사람을 아웃시키면서 제 할 일을 다한 공이 상대편 코트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
질린 표정을 하고 있던 상대편 학생 하나가 회심의 미소를 띠며 공을 잡아들었다.
상대편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와는 반대로 김연아 팀의 학생들이 구석으로 몸을 빼고 공을 피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드루와 드루와!”
물론, 중앙선 가장 가까이에서 공 받을 준비를 하는 김연아는 빼고.
그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짓을 하며 도발을 하자, 공을 들고 있던 학생의 얼굴에서 급격하게 자신감이 사라졌다.
이미 경기는 후반.
이제 자신의 팀에 남은 사람은 박현선과 자신뿐.
그에 반해 상대편엔 아직 다섯이 넘는 인원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몇 번의 공격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김연아의 감각적인 블로킹에 속절없이 공격기회를 놓쳤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에 섣불리 공을 던질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미희야. 그 공 나한테 줄래?”
중앙선 가까이에 있던 박현선이 입을 열었다.
여학생이 선선히 그녀에게 공을 넘기자, 박현선은 결연한 표정으로 중앙선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김연아의 얼굴에 맺혀 있는 자신감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공을 들고 있는 박현선을 향해 짙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인다.
“빡썬 자신있나 봐?”
김연아의 말을 들은 박현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넌 항상 그런 식이지.’
박현선은 항상 웃고 있는 김연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꼴도 보기 싫었다.
빵빵한 재력, 귀여운 외모, 그리고 자신의 턱밑까지 따라온 성적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연아야 이거 마실래?’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이 연아에게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경기가 시작하기 전.
스탠드에 대기하고 있던 김연아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던 승우.
자신에게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던 그가, 연아에게 포카레스웩을 건네는 장면 보았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남아 있던 끈이 끊어졌다.
이제 그녀와 김연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피어오른 분노가 팔을 타고 내려갔다.
박현선은 김연아의 얼굴을 향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공을 던졌다.
그러나.
텀-
“나이스 패스!”
여지없이 김연아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
“가즈아!”
정체불명의 기합을 넣으면서, 아주 약간의 주저함도 없이, 김연아가 공을 던진다.
그렇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공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박현선을 맞추고, 뒤에 숨어 있던 학생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삐이익-
경기가 끝났다.
박현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여자 화장실.
일단의 여학생들이 세면대 거울을 바라보며 본격적인 화장을 하고 있다.
체육시간 내내 흘린 땀으로 흐트러진 화장을 재건하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학생들 사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박현선이 있다.
‘김연아.’
박현선은 연아의 이름을 되뇌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못나 보였다.
객관적으로 봐서 나이 또래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김연아를 생각하다 바라보니 이상하게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선지 화장을 고치면서도 만족이 되지 않았다. 그저 고쳤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인상을 찡그릴 뿐이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진짜.’
그때 그녀와 같이 화장을 하던 여학생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땀은 연아가 제일 많이 흘렸을 텐데, 연아는 화장 안 한데?”
그러자, 틴트를 바르면서 음파음파를 하고 있던 학생이 말을 받았다.
“걔 원래 안 하잖아. 몰랐어? 그냥 기초에다가 비비만 바르던데?”
질문했던 여학생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
“미친. 그게 됨?”
“내 말이. 그런데 걔는 그게 되더라. 레알 개부러움.”
“아 쉬바. 누구는 한 시간을 찍어 발라야 겨우 사람 구실하는데.”
“그러게. 넌 진짜 힘들겠다. 매일매일 전쟁일 거 아니야.”
“이뇬이 디질라고···야 이뇬아 너도 도긴개긴이거든?”
“응. 아니야.”
여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박현선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상하게 오늘은 어디를 가도 김연아에 대한 소리만 듣는 것 같았다.
‘걔가 뭐 그리 잘났는데.’
더 이상 굳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박현선은 하던 화장을 대충 마무리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더 이상 김연아에 대한 소리를 들으면 자신도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교실에 가서 쉬자.’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하게 간식파티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처음엔 김연아와 그녀와 친한 여학생 몇 명이 시작한 주전부리 파티였지만, 박현선이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동네잔치로 탈바꿈한 것이다.
“영자! 딸기듬뿍 좀 줘 봐. 내꺼 줄 테니까. 이거 존맛탱임.”
“ㅇㄱㄹㅇ ㅂㅂㅂㄱ? 으 그 티라미수 넘 달아···그런데 연아 너 다이어트 한다고 하지 않았음?”
“내가? 난 먹어도 안찌는 체질이라 괜찮음”
학생 용돈으로 사 먹기 부담스러운 가격의 간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주는 김연아를 바라보며, 박현선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재수 없어.’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입이 열린 것은.
“아닐걸? 연아 너 요새 좀 찐 거 같은데?”
그녀가 김연아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말을 내뱉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꽂혀 들었다.
부지불식간에 나온 말이었다.
말을 한 그녀도 아차한 표정으로 입을 손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잠자던 사자가 일어나 버렸다.
“먼 솔?”
김연아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박현선은 내심 당황했지만, 김연아에게만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응수했다.
“아니 뭐 별말은 아니고, 요즘 좀 찐 거 같으니까 조심하라고. 요튜브 방송 나오는데 돼지처럼 나오면 안 되잖아? 다트걸인지 뭔지 한다며~”
애써 담담한 척 이야기하는 박현선.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주위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야 빡썬, 말에 가시가 있다?”
김연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현선은 내심 이쯤에서 일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하지만 야속한 그녀의 입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 미안. 방송 끝났지? 어? 아직 안 끝났어? 의외네 그 강사 잘생기긴 했던데···실력은 없어 보였거든.”
박현선 딴에는 최대한 여유로워 보이려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김연아의 얼굴이 이상했다.
마치 안타까운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다.
“우리 쌤이 실력이 없어 보여? 푸흐흡. 야 빡선 니가 왜 시비를 거는진 모르겠는데, 웃겼으니까 한번 봐준다.”
헛웃음을 흘리면서 저리 가라는 듯 손짓하는 김연아.
주변에 있는 20군단 멤버들도 피식피식 웃으면서 박현선을 바라본다.
그리곤 다시 간식들을 작살내기 시작한다.
완전한 무시.
박현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녀는 원수의 살을 씹어 삼키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실력 있는 사람이 왜 자기 학생 성적은 못 올려?”
그러자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한다.
“빡선 부정사 안 배웠어? 못 올리는 게 아니라 안 올리는 거야.”
하지만 박현선은 물러설 수 없었다. 저 멀리서 승우가,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번 모의고사는 한번 ‘안’ 올리지 말고, 좀 올려 달라고 해 봐. 그럼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할 테니까.”
그녀가 말하자 김연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곤 천천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연다.
“나한텐 할 것 없어. 대신 그 사과 준영쌤한테 해야 할 거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