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40
40
040화 캣파이트 (2)
하교 후.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방금 전까지 정리하고 있던 학원 가방도 내던져 놓은 채, 액정이 뚫어져라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
바로 박현선이다.
김연아와 모의고사 점수로 내기를 붙은 그녀는 생전 보지 않던 요튜브를 켜 놓고 준영의 방송을 ‘눈팅’하고 있다.
“이용자1님 중세국어가 어렵다고요? 그래도 제주도 사시는 분이 다른 곳 사시는 분들보다는 좀 나을 텐데? 아닌가요?”
“쌤 왜요? 제주도 말이랑 중세국어랑 비슷해요?”
“음 그러니까 비슷하긴 한데···”
영상 속에서는 준영과 연아가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준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하고, 김연아는 채팅창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가, 가끔씩 톡톡 터지는 반응을 보여 주면서 방송을 진행한다.
그 모습이 제법 잘 어울려서일까. 시험기간이 아니라 저격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채팅방에 상주하고 있었다.
[이용자50 : 준영쌤은 오늘도 잘생김ㅋㅋ 목소리도 완전 꿀ㅋㅋㅋ] [이용자5 : 연아도 완전 귀여움ㅋㅋㅋ] [이용자1 : 힝 연아랑 나랑 같은 동갑인데 너무 차이 난다ㅜ] [이용자770 : 하앍 연아야!] [이용자999 : 이용자770 철컹철컹 가즈아!] [이용자20 : 둘이 잘 어울리는 데 ㅋㅋㅋ]그만큼 미남미녀가 넘쳐나는 인터넷 방송가에서도 준영과 연아의 비주얼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둘이 만들어 내는 케미까지 더 해지니, 방송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몰려와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김연아와 이미 척을 진 박현선의 눈에는 그런 둘의 모습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조명 빨이야. 저 정도 조명 받고 화장하면 못생기게 나올 사람이 어디 있어.’
그녀는 애써 자위해 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자괴감만 커져 갔다.
김연아가 방송용 메이크업은커녕 기초적인 화장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아? 걔 화장 잘 못해. 요즘 중딩들이 걔 보다 더 잘할걸?’
연아와 내기를 하기로 한 뒤, 친구들에게 들은 말이었다.
기초화장만 한 맨얼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연아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비단 외모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 자체가 달랐다.
같은 나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차이.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간극이 그녀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키패드를 두드렸다.
[이용자119 : 연아가 이쁨? 난 모르겠는데? 저 정도는 흔하지 않나?]그녀는 내심 찔리긴 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적어 놓은 말을 채팅방에 올렸다.
한두 사람쯤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줄 것이라 하면서.
그러나.
[이용자5 : ㅋㅋㅋ모르면 좀 배워요 언냐ㅋㅋㅋ] [이용자1 : ㅋㅋㅋㅋ아니 이건 안 배워도 다 아는 거라고ㅋㅋㅋ] [이용자20 : 에구 인생이 불쌍하다 불쌍해 ㅋㅋㅋ] [이용자70 : 이런 쒸이불 우리 연아를 감히!] [이용자50 : ㅋㅋㅋ이번 어그로는 좀 약했다ㅋㅋㅋ]순식간에 채팅방 전체가 그녀를 비웃는 글로 가득 찼다.
그녀의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깜짝 놀란 그녀가 휴대폰을 떨어뜨리자, 떨어진 휴대폰에서 준영과 연아가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미친 듯이 갱신되던 채팅방 조금 조용해 졌다.
“······.”
잠시 떨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는 그녀.
팔을 뻗으면 금방 손에 잡힐 듯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그녀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곤 자조적인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휴.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눈 주위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에서 계속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어선지 눈이 시렸다.
그녀는 뻑뻑해진 눈을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사실 오늘 김연아에게 내기를 하자는 말을 던질 때만 해도 그녀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내기 자체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나온 말이었지만, 김연아의 점수가 자신보다 낮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녀의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단 김연아의 성적이 자신에 비해서 낮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기에 응하는 김연아의 태도가 이상하게 자신만만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찾아온 방송이었다.
일단 준영이 하는 ‘저격’이라는 것이 사실일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것이 있으니 자신의 눈으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김연아의 믿음처럼 준영이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시험문제를 족집게처럼 집을 수 있다면 시험문제를 확인할 겸.
박현선 그녀의 예상처럼 준영의 실력이 허황된 것이었다면, 그것대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확인은 해야 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들어 준영의 방송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까처럼 섣부른 채팅은 하지 않고 눈으로만.
“여러분. 기본적으로 방언을 나누는 기준에는···”
일상 이야기는 끝나고 준영이 간단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잘생기긴 잘생겼네.”
칠판에 중요 키워드릴 적어 가며 강의를 하고 있는 준영을 바라보며
박현선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영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준영의 외면이 그녀의 눈에 들 정도로 준수했을 뿐.
같이 방송을 진행하는 연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만큼, 준영이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분명 저 얼굴로 사람들을 낚는 거겠지.’
박현선은 잠시 흔들릴 뻔했던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준영의 강의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준영 강의 내용 어디에서 그녀가 생각했던 잘못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준영의 강의로 고쳐나가면서, 빽빽하게 필기를 해 나갈 뿐이었다.
“···그럼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우리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도록 하죠.”
결국 마지막까지 모의고사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십 분짜리 수업을 들은 것이 되어 버린 박현선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방송을 종료했다.
‘역시 모의고사는 안 하나 보네.’
내팽개쳐 놓았던 학원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한 그녀.
모의고사가 나오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준영의 저격방송을 보지 못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뭐 한 번쯤 보고는 싶었는데. 저격이라는 거.’
.
.
.
외국어 영역 시간.
지문을 읽어 내리는 박현선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긴다.
분명 읽었던 지문인데 해석이 안 되는 탓에 다시 한 번 지문을 읽어 보지만, 여전히 어렴풋하게 해석이 될 뿐. 시원하게 이거다 하는 선지가 보이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난이도였다. 전년도 수능 난이도를 바람직하게 따라가고 있는 문제들이 대거 출제되었다.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시간이 모자를 수도 있었기에 그녀는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지문을 읽어 나갔다.
‘혹시 나만 어려운가?’
슬쩍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자,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떤 학생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억눌린 신음을 흘리고 있고,
어떤 학생들은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모습으로 영어 지문 해석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불안으로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러면 그렇지. 나만 어려울 리가 없지.’
그녀는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잘 풀리지 않는 지문들을 읽어 나갔다.
조금 전보다 더 해석이 잘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지문해석은 잘되고 있었지만 아주 작은 가시가 박힌 듯 뭔가가 자꾸 신경 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김연아.’
박현선은 김연아가 어떤 모습으로 시험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김연아의 모습을 살피지 못하면 불안할 것 같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김연아가 있는 방향을 향하자.
잔뜩 굳은 얼굴로 지문을 읽어가는 김연아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지문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표정이다.
박현선의 불안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박현선은 입가의 미소를 띠며, 시험 시작 전에 있었던 일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
.
“공부 많이 했어?”
박현선이 가벼운 어조로 묻자, 노트를 보고 있던 김연아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확인했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명백한 무시.
박현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내가 이겼을 때는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소리를 들은 김연아가 고개를 들더니 피식 웃는다.
그리곤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입을 연다.
“네가 이기면 내가 너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게.”
한 치의 불안도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
김연아의 말을 들은 박현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성질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죄다 그녀와 김연아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진짜? 후회하지 않겠어? 괜히 객기부리다가 울지 말고.”
그러자 김연아가 콧웃음을 치며 대답한다.
“후회는 네가 하겠지. 아무튼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네 자리 가서 공부나 하셔.”
그리고선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노트를 내려다본다.
“그래 알았어~ 공부 열심히 해.”
박현선은 부글거리는 속을 내리 누르며 말을 내뱉곤 뒤돌아섰다.
.
.
회상을 마친 박현선이 김연아를 바라본다.
시험문제가 어려운지 눈을 찡그리고 있는 김연아의 얼굴이 보인다.
‘지도 별다를 것 없으면서 허세는···’
박현선은 콧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데 그때.
“박현선. 집중 안 해? 자꾸 그러면 컨닝으로 간주한다.”
김연아를 계속 보고 있던 것을 들켰는지, 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이 날카로운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박현선을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푸는 시늉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지 만면 짙은 미소를 띠면서.
* * *
며칠 전.
프린트를 마친 준영이 막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던 차였다.
“쌤! 한 번만 더 해 주시면 안돼요?”
그의 등 뒤에서 김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김연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준영을 올려다보고 있다.
다소곳하게 모은 두 손을 꼼지락 거리는 그녀. 마치 장화신은 고양이 같다.
“제발요······.”
웬만한 강철심장이라도 단숨에 녹여 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애원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준영은 영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야. 안 어울려. 하지 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하는 준영.
그러자 김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한다.
“쳇, 이거 안 통하네.”
뚱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김연아를 바라보며, 준영이 입을 연다.
“뭘 더 해 달라는 거야. 뜬금없이.”
그러자 연아가 투덜거리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쌤 그러니까 이번엔 ‘모의고사’ 저격을 해 보는 게 어떨까 해서요. 저번 중간고사 때처럼.”
김연아의 말을 들은 준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 방송에서?”
그러자 김연아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방 뛰기 시작한다.
마치 김준영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이.
“넹! 사람들 겁나 좋아하지 않겠음요? 겸사겸사 저희도 공부를 좀 하고··· 헷. 저번엔 너무 방심해서 성적이 잘 안 나온 것도 있고···”
그녀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은글슬쩍 자신의 욕망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준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너 뭔가 크게 착각하는 거 아니야?”
준영의 무거운 목소리가 방방 뜨던 김연아의 어깨를 내리 눌렀다.
순간 김연아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아···죄송···”
김연아가 떨리는 모습으로 말하려는 그때.
준영이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연다.
“모의고사는 우리 학원 애들만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