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43
43
043화 상위 1%의 민낯 (2)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 아까 분명 교과서 위주로 예습복습만 했다며······.’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의 입에 술병을 꽂아 버리고만 싶었다.
‘이 나이에 대학교 엠티 따라와서 당황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녀석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 내가 막 녀석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오빠!”
갑자기 누군가 내 오른쪽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돌아보니 18학번 과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제 얼굴보다 커다란 육포를 하나 쥐고, 한손에는 온더록 잔 하나를 내게 들이민다.
내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과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연다.
“오빠! 그러니까 맨날 수업만 듣고! 도망가지 말라고여! 내가 과대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다들 알아주지도 않고! 오빠 내 이름 알아여? 모르죠? 모르면 마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술잔에 술을 콸콸 따르기 시작하는데···
안 마신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라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이킨다.
독한 술기운이 목구멍을 긁으면서 넘어갔다.
그러자.
녀석의 구구절절한 넋두리가 시작됐다.
“꺼이- 꺼이- 여중 여고 나와서 지금까지 1분 1초도 안 쉬고 하루에 20시간씩 공부했는데 남자친구 한번 못 사귀어 봤단 말이야! 엄마가 대학 오면 남자친구는 저절로 생긴다고 했는데, 맘에 드는 사람 한 명두 없고! 유일하게 관심 가는 사람은 학교 잘 나오지도 않고! 생기긴 뭐가 생겨! 다 구라뽕이야! 돌려줘 내 10대!”
그리고선 내 손을 잡고 눈물 콧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차수지가 첫 스타트를 끊자. 엠티 장소 곳곳에서 이런저런 울분들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화기애애하기만 했던 엠티 장소가 통곡의 벽으로 변해 버렸다.
상황을 정리해야 할 집행부원들이나 선배들도 한두 잔씩 받아먹다 보니 다들 비슷하게 취한 상태라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나는 기숙학원에서 한 달에 250만 원씩 들여가면서 3년간 공부했는데! 나는 기생충이야! 졸업하려면 이제 어무니 퇴직금 들이부어야 하는데! 아부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 줘!”
“허리디스크, 다크서클 낙인, 손목 터널 증후군, 엉덩이 종기 자국 더덕더덕, 공부하느라 잠 못 자서 키도 안 크고, 스무 살에 탈모 오고! 진짜 입시제도 만든 사람들 다 죽여야 해!”
총체적 난국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까.
이곳저곳 술 취한 꽐라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구석에는 전사한 자들의 시체가 한가득 쌓여있다.
그리고 가끔 그 시체 틈바구니에서 좀비처럼 일어난 이들이 다시 술자리에 끼어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에휴······.”
오랜만에 오는 대학교 엠티라서 기분을 좀 낸 게 잘못이었다.
내가 20살일 때만 해도 싸구려 양주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 생각나 양주들을 몇 종류 기부했던 것이 문제였다.
대학 입학 전까지 알콜을 접해 보지 못한 새내기들의 청정한 간담췌가 높은 도수의 알콜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점점 아비규환으로 치닫고 있는 엠티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카메라를 돌려 내 쪽으로 향하게 했다.
다행히 20살 때부터 술을 못 마신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 몸인지라 제법 많은 술을 받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서 티가 나지 않았다.
물론 마신 양이 양인지라 살짝 혀가 굳은 것 같긴 했지만.
“음, 시청자 여러분. 이분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전체 학생들의 경우와 의견은 아니니 참조하시고요······.”
내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말하자. 미친 듯이 올라가던 채팅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 갔다.
[이용자12 : 나···방금 뭘 본 거지···] [이용자35 : 뭐긴 뭐야 사교육계 최전선 풍경이지ㅋㅋㅋ] [이용자23 : 우리 집은 돈 없는데···그럼 명문대 못 가는 건가요?] [이용자14 : ↑님아ㅋㅋㅋ뭘 새삼 물어봐요 당연한 걸ㅋㅋㅋ] [이용자55 : 급식이는 어여 나가길ㅋㅋ정신 건강에 안 좋다ㅋㅋ] [이용자4 : 하긴 어지간하면 집안 재력 수준 맞춰 가는 게 대학이지]보아하니 다들 조금씩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부모님 아이디를 빌려 몰래 들어와 있던 학생들은 멘붕에 빠진 듯, 활발하던 채팅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흠······.’
그나마 녹화불가 설정을 해 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정보 보안이 취약한 플랫폼을 이용했었다면, 2차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장면이었으니까.
일단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사람들이 없는 야외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나서 휴대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충격을 받았을 학생들의 멘탈을 치료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여러분. 절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약간의 노력과 노하우만 있으면 세상 어떤 것보다 올리기 쉬운 게 성적이에요. 진짜 나중에 취업해서 일하고 돈 버는 것보다 제일 쉬운 게 공부니까, 정말 지금부터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몇몇 시청자들은 동감한다.
[이용자25 : 맞아···공부가 제일 쉽지···] [이용자68 : 고등학교 중퇴 후 노가다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지금은 검정고시 공부 중인데···공부가 훨씬 나아요. 진짜.] [이용자55 : 에고 나도 후회된다. 그러니까 급식들아 포기하지 말고 공부해 진짜. 사회 진짜 엿 같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성인들이 공감해 준 덕분에 이야기하기가 많이 편해졌다.
“문제가 되는 건 ‘약간의 노하우’인데···이걸 위해 수백, 수천만 원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죠. 저도 현실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그런 세태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용히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들을 향해,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제가 여러분께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제 학원이나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가정 사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제가 최선을 다할 거라는 점입니다.”
나는 말하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전까지완 좀 다른 내용의 채팅들이 주르륵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용자25 : 이 사람 학원이 저렴한 편이야? 좀 비싼 거 같던데?] [이용자37 : ㄴㄴ 지역 내에선 좀 저렴한 편임ㅋ 거기다 적중률이나 학생들 성적 올라가는 거 보면, 절대 비싸다고 못할 가격임ㅋㅋㅋ] [이용자76 : 하긴 애초에 방송도 전부 무료로 하시니까···] [이용자987 : 거 학원 주소 좀 알려주씨오···] [이용자59 : 성적 올라가는 것만 확실하다면야···꼬박꼬박 애들 학원비나 축내는 곳보단 낫겠지···] [이용자37 : 이쯤에서 이분 학원 전화번호 올리겠음ㅋㅋㅋ]의외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몇몇 시청자들은 내가 섭외한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에 대한 긍정적인 말들을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직접 블로그에 게재된 학원 전화번호를 채팅창에 올리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있었던 서율대학교 학생들의 주사가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카메라를 들고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러분 아쉽지만 오늘 방송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방송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방송을 종료했다. 더 이상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 명약관화했다.
좀 더 일찍 방송을 끊었어야 했는데, 서율대학교의 내밀한 모습이 궁금하다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져버리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방송을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오빠 좀 같이 마시자니까 계속 어디로 도망가요! 진짜 정말 못됐어!!!”
아까보다 더 취한 것 같은 과대표. 차수지였다.
아직 밤이 많이 남은 것이 한스러웠다.
* * *
카톡-
방송을 마치고 블로그에 자료와 영상 편집본을 올리던 중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18학번] 단톡방에 엠티 때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가평역을 배경으로 18학번 동기들만 모여 찍은 사진 한가운데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허허롭게 웃으며 사진을 저장하고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뭐 이제 다시 경험할 일은 없는 일이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몸서리 쳐지는 날이었다.
그렇게 잠시 엠티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갑자기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창이 떴다.
“······.”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이런 알림창을 많이 보고 있었다.
방송 시작 전이라면 스팸메일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시했겠지만, 방송을 시작한 이후에는 짧게나마 답장을 해 주고 있었다.
알림창을 클릭하자 화면이 이동한다.
그리고 그곳엔.
‘NEW’ 표시가 달린 쪽지 하나가 어서 나를 클릭해 달라는 듯 쉴 세 없이 깜박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준영 선생님. KSB 방송사 예능국에서 ‘백인지적(百人之敵)’ 담당하고 있는 작가 김선영입니다.]쪽지의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백인지적(百人之敵).
옛날부터 즐겨보고 있던 퀴즈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다.
1인의 유명인과 사회 각층의 100인이 사회, 정치, 예술, 과학 등의 여러 분야에 대한 상식을 다루는 프로그램.
최후의 일인이 최대 1억 원까지의 상금을 받는 퀴즈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장수해 온 예능 방송 중 하나였다.
언젠가 한 번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먼저 섭외 요청이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는, 대형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내가 벌써 이렇게 유명해졌나?”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이런 곳에 나오는 유명인들은 대부분 누구나 이름을 아는, 정말로 유명한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유명 가수나 아이돌, 배우, 운동선수, 요리사 등등.
내가 아무리 요 근래 요툽에서 반짝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갑자기 이런 유명세는 좀······.
“약간 부담스러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클릭했다.
그러자.
[···김준영 선생님을 100인의 대적자 중 한 명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캐릭터성을 고려하면 좋은 캐릭터가 만들어 질 것으로···회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그러면 그렇지.
보니까 막내작가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기껏해야 2만 원밖에 되지 않는 출연료지만, 그래도 일상에 있어 꽤 재미있는 활력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나 아나? 우승하게 되어서 상금을 받으면··· 어쩌면 정말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순간.
“혹시···이런 것도 문제가 있으려나?”
나는 USB에 생각이 미쳤다.
인간의 급을 재고 나누고 평가하는 모든 문제가 들어있다는 역대급 USB.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폴더의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프로그램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백인지···적···”
그리고.
“···세상에.”
결국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야 말았다.
이건 정말 사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