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46
46
046화 백인지적(百人之敵) (3)
“손나윤 씨가 8단계에서 아쉽게 탈락해 버린 관계로, 9단계에서부터는 도전자 간의 대결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남은 분들을 응원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C가 1번 카메라를 보면서 천천히 멘트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손나윤을 향해 세팅되어 있던 카메라들까지 모두 다 도전자석을 향한다.
카메라 렌즈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본 도전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자, 그럼 이제부터 2,365만 원의 상금과 백인지적의 자리를 건 도전자들 간의 치열한 사투를 시작하겠습니다.”
MC가 도전자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자, 요란한 효과음과 방청객들의 박수소리가 세트장 가득 메운다.
“자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기 보이시나요?”
MC가 세트장 위쪽에 설치된 전광판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전광판에는 지금까지 적립된 상금의 액수가 적혀 있다.
전광판을 바라본 도전자들의 얼굴에 기대가 서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총 상금 2,365만 원이 적립되었습니다. 이거 제가 방송진행을 맡고 나서 최고 점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과연 어느 분이 최후까지 살아남아 백인지적의 자리를 차지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여기까지 말한 MC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도전자 석을 한 번 쓱 훑어본다. 마치 물 좋은 생선을 고르는 것 같다.
그러다 괜찮은 생선을 골랐는지 씨익 웃으면서 입을 연다.
“자 그럼 대결을 시작하기에 앞서 남아 있는 분들의 각오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MC가 뜸을 들이자 도전자들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제일 먼저 인터뷰를 진행하기엔 부담된다는 표정들이다.
“14번 도전자 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교롭게도 준영의 열에 있는 사람이다. 남아 있는 도전자들과 탈락한 사람들 전부 그를 쳐다본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차갑게 웃는다.
“아, 저부터군요.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백인지적에 참가한 조민수라고 합니다.”
그러자 MC가 눈에 이채를 띠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직업이 의사라고 하시던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보아하니 작가들이 사전에 연락해 섭외한 인물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전자의 정보를 MC가 숙지하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MC의 말을 들은 조민수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현재 종로 쪽에 있는 병원에서 ‘Thoracic surgeon’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방청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조민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러자 언제 웅성거렸냐는 듯 방청객들이 감탄을 터뜨린다. 얼굴만 봐서는 이제 막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을 것 같이 젊어 보였는데, 전문의라니 놀란 것 같다.
조민수의 대답을 들은 MC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아 흉부외과··· 제가 듣기론 의사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바쁜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어떻게 나오시게 된 건가요? 혹시 상금 때문에?”
MC의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굳힌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을 지탄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MC의 말을 들은 조민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오늘 ’off’니까요.”
차가운 대답이었다. MC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굳는다.
“아···비번···”
그때 조민수가 슬쩍 웃으면서 말한다.
“농담이고요. 사실 상금은 별 관심 없습니다. 오늘 나온 것도 손나윤 씨 나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결정한 거니까요. 손나윤 씨 공약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신청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오늘 어떻게 해서든 우승할 겁니다.”
단호하게 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그가 세트장 한쪽에서 쉬고 있는 손나윤을 바라보며 슬쩍 웃는다.
그러자 손나윤이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네 그러시군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음 2번열에는 유독 잘생긴 분들이 많네요. 그럼···조민수 선생님 옆 옆자리에 있는 16번 도전자 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시간관계상 되도록 짧게 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C가 말하자, 16번 도전자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이형탭니다. 현재 광화문 쪽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고요. 조민수 선생님처럼 저도 상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도 조민수와 똑같이 상금 따윈 관심 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MC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변호사님도 혹시?”
“네, 맞아요. 저도 손나윤 씨 팬입니다.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손나윤 씨를 향한 순수한 팬심으로 나온 겁니다.”
그가 느릿한 어조로 이야기 하자, MC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 * *
따란-
스크린에 10단계 문제의 답이 표시되는 순간. 도전자들의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떠오른다.
“아, 10단계 문제. ‘기존의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하여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일’의 답은 3번 ‘짜깁기’였습니다. 아쉽습니다.”
순간, 떨어진 도전자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온다.
가뿐하게 문제를 통과한 의사 조민수는 떨어진 사람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 문제도 못 푸나?’
경멸을 담아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변호사 이형태와 김준영이 들어온다. 그들은 이형태와 같이 10단계 문제를 통과한 상태다.
‘그래도 저 두 명은 그럭저럭 쓸 만하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하며 남은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아 10단계 문제에서 대거 탈락하는 군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자 방청객 여러분 지금까지 고생하신 도전자 분들을 향해 응원의 박수 한번 주세요!”
MC가 방청석을 바라보며 말하자, 방청객들이 도전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그러자 떨어진 사람들도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박수를 친다.
어느 정도 박수가 잦아들자, MC가 다시 진행을 시작한다.
“자, 이렇게 해서 9단계에 5명. 10단계 2명의 도전자가 탈락한 현재. 남은 도전자의 수는 단 3명입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도전자석 쪽으로 다가온다.
그는 눈을 빛나며 마지막으로 남은 3명을 도전자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오늘은 유독 도전자 분들의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다른 때라면 벌써 우승자가 결정되고도 남았을 단계인데, 아직도 3명의 도전자들이 남아 있다니···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곤 큐시트를 살짝 바라보다가, 스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들과 뭔가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제작진과 협의를 마친 MC가 다시 진행을 시작한다.
“사실 저희가 준비한 문제는 1~10단계까지였습니다. 그래서 11단계부터는 연장전으로 예비 문제들을 통해 최후의 1인을 가리는데요. 저희도 도전자 분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던 만큼. 시간이 지체되는 점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문제가 준비되는 동안 마지막으로 남은 도전자들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MC가 조민수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 14번 도전자님.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의사 조민수는 자신에게 소감을 묻는 MC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소감이라.
사실 소감 따윈 없었다. 있다면 그저 손나윤에게 향하는 과정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것 정도?
당연히 맞춰야 하는 문제를 맞췄다고 색다른 감흥이 드는 것은 아니었으니, 굳이 소감을 묻는다고 하면 글쎄, 이거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 정도에 색다른 감정을 느끼느냐 하면···그것 또한 아니었다.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시 어린 시선은 질리도록 봐 왔던 것이었으니까.
남들보다 부유한 집안.
남들보다 명석한 머리
남들보다 뛰어난 외모.
이런 그에게 사실 이 정도 시선 따위는 약간의 흥미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저열한 것이었다.
다만. 그가 문제를 풀 때마다 손나윤이라는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손나윤.’
어렸을 때부터 자극적인 경험에 익숙해진 그에게 작은 파문을 만들어내는 존재.
흔하디흔한 걸그룹 멤버 따위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그도 알 수 없었다.
‘세상에 내가 덕질을 하게 되다니···’
때문에 그에게 이 프로그램은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인맥을 이용한다면 당장에라도 손나윤과의 접점을 만들 수는 있을 테지만, 그녀에게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소감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제 소감은···어려운 수술의 끝이 이제야 보이는 느낌입니다.”
그의 대답이 제법 그럴 듯했는지, MC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아···수술이요 역시 의사 선생님다우시네요. 그럼 여기서 좀 위험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솔직히 다른 두 분 중에서 누가 더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세요? 단 한 분만 경쟁자로 꼽는다면?”
MC의 말대로 위험한 질문이었다.
그는 남아 있는 도전자들을 슬쩍 돌아보았다. 공교롭게도 그와 같은 열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비슷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쟁자?’
그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한 명은 그와 같이 손나윤의 팬클럽을 자처했던 변호사 이형태.
다른 한 명은 무슨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학원 강사 나부랭이였다.
‘그나마 위협이 된다면···변호사 정도?’
아무리 생각해도 학원에서 애들이나 가르치는 사람에게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글쎄요. 아무래도 변호사님이 위협적이지 않을까요?
그러자 MC가 걸려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변호사를 바라본다.
“의사 선생님은 그렇다는데 변호사님은 어떠세요?”
그러자 변호사 이형태가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변호사 이형태의 대답에 MC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야 이거 어쩌다 보니 문과 대 이과의 대결이 된 거 같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기대해 주세요. 이제 곧 흉부외과 전문의 조민수 도전자와 로펌 소속 변호사 이형태 도전자의 불타는 대결이 시작됩니다.”
이제 보니 제작진이 대놓고 자신과 변호사 이형태를 라이벌화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조민수는 슬쩍 김준영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준영은 자신이 방송에서 소외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조금 모자란 사람인가?’
보통사람이라면 대놓고 화를 내진 못하더라도 표정이 굳어질 상황.
하지만 준영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작위적인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뭐 저렇게 웃기라도 해야지.’
그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 발자국 멀어진 준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제작진 측에서 문제가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것을 본 MC가 자연스럽게 진행을 시작한다.
“네 드디어 문제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다른 분의 인터뷰는 시간관계상 넘어가기로 하고 바로 문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준영의 인터뷰는 은근슬쩍 넘어가 버린다.
“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11단계 문제. 과연 백인지적의 자리는 누가 차지할 것인가. 엘리트 흉부외과? 아니면 대형로펌 소속의 변호사. 그것도 아니면 인기 스트리머이자 학원 강사?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이 이제 곧 시작합니다.”
떠돌이 약장수처럼 말을 하던 MC가 스크린을 바라보며 팔을 뻗는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자 그럼 11단계 문제 주세요.”
MC가 소리치자. 스크린에 문제가 떠오른다.
[11단계. 원자번호 83번인 는 우리말로 ‘창연(蒼鉛)’이라 불린다. 다음 중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대해 강력한 항균제로서 작용하기도 하는 의 이름은?]1. 아스타틴
2. 비스무트
3. 아이오딘
스크린에 떠오른 것은 의학 문제.
그것을 본 순간 조민수는 생각했다.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