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50
50
050화 큰아버지의 부름 (2)
큰아버지네 집에 도착해 막 현관문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였다.
“이게 뭐야! 국이 왜 이렇게 짜!”
문 안쪽에서 큰아버지가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목소리가 컸던지 문 밖에서도 확연히 들릴 정도였다.
“아니,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날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어?”
마당에 세워져 있는 차의 수를 보니 분명 집 안에 친척들이 가득 할 텐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내뱉는 모양이었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잠자코 있어요!”
계속되는 잔소리에 큰어머니가 발끈하신 듯 뭐라 대꾸해 보지만.
“아니 내가 우리 어머니 제사상에 이런 소리도 못해?”
오히려 큰아버지의 목소리만 더 크게 올라간다.
“······.”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나서 처음 이 집에 왔었을 때도 저 성격 그대로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큰일에 정신이 없던 나는 큰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참지 못하고 바로 그길로 바로 서울로 올라가 버렸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저 목소리, 저 성격은 변하지 않은 듯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발길을 돌려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때.
툭툭-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왔으면 들어가지 왜 그러고 서 있어?”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막내삼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만,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터라 어릴 때부터 삼촌이라고 불러 왔던 게 입에 붙어 버렸다.
분명 오랜만에 본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어제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처럼 살가운 태도다.
“큰아버지랑 큰어머니 한바탕하시던데요?”
내가 슬쩍 웃으며 말하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또? 그놈의 성질머리는 왜 나이가 들어도 안 바뀐다냐. 에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어. 들어가야지.”
그러더니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나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형님! 준영이 왔어요. 다른 사람들도 인사해.”
막내삼촌이 집안으로 들어가며 말하자. 거실에 모여 있던 친척들이 이쪽을 힐끗 바라본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어서 와라.”
“오랜만이야.”
그렇게 서로 어색한 인사가 몇 마디 오고간다.
어렸을 때야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씩 얼굴을 보던 친척들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론 처음 보는 것이라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
하지만 짧은 이사 이후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서로 아는 게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자 먼저 말을 꺼낸 막내삼촌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런데 그때.
“인마 빨리빨리 내려와서 음식도 좀 하고 일손도 거들고 그래야 할 것 아니야.”
거실에 놓인 소파 하나를 거의 다 차지하고 앉아 있던 큰아버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요새 일이 좀 바빠서요.”
그러자 큰아버지의 표정이 뭔가 마뜩치 않게 구겨진다.
“바쁘긴 무슨. 그놈의 일은 5년 동안 바쁘냐? 그래, 요즘은 서울에서 인제까지 길이 잘 뚫려 있어서 두 시간이면 온다는데, 그 두 시간 왔다 갔다 할 시간이 없어?”
그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주변에 있던 친척들이 ‘또 시작이야?’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벌어졌던 것은 아닌 듯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큰아버지는 살가운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차 있는 사람들 이야기죠···그리고 여기가 뭐 시내도 아니고···차 막히면 3시간을 걸릴 텐데···”
큰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막내 삼촌이 슬쩍 끼어들었다.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큰아버지는 삼촌의 말에 수긍하기는커녕,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그러게 서른 넘도록 차 한 대 못 사고 뭘 했냐. 느이 누나 봐라 공무원 시험에 딱 하니 합격해서 차도 뽑고 결혼도 하고 얼마나 좋으냐.”
그러더니 누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토해 낸다.
아마 7년 동안 공부해서 간신히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첫째 이야기인 듯했다.
그 기간 동안 큰아버지가 팔아치운 땅만 몇 백 평이 된다고 들었는데, 그건 별로 자랑스럽지 않나 보다.
“내가 그래서 느이 아버지 살아 있을 때 그렇게 너 기술이나 가르치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거 봐라 내 말 안 듣고 없는 돈에 굳이 대학 보내더니. 으이그.”
한번 열리기 시작한 큰아버지의 입은 도무지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막내삼촌이 조심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에이 그래도 온 게 어디에요. 말마따나 제사 챙기는 것도 저희 때뿐이지··· 초롱이도 오늘 못 왔잖아요······.”
막내삼촌의 말을 들은 큰아버지가 불퉁한 눈으로 막내삼촌 바라본다.
“우리 초롱이 이야기는 왜 꺼내! 학원 강사랑 공무원이랑 같아? 나랏일 하는 사람이야. 공직에 메여 있으니 오기 어려울 수도 있지! 그리고 인마 너는 형이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 끊게 되어 있냐? 이게 어리다고 오냐오냐 봐줬더니만.”
그러면서 제 분에 못 이겨 볼 살을 푸들푸들 떤다.
그러자 막내삼촌이 얼른 말을 돌린다.
“준영아. 여기 서 있지 말고 저쪽에 짐이나 풀어. 옷 갈아입고 좀 쉬어야지.”
막내삼촌의 말을 듣고 거실 한쪽에 가져온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건 다 뭐야? 하루 저녁 지낼 건데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어?”
내가 가져온 캐리어 크기가 신경 쓰였던지, 막내 삼촌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영 엉뚱한 곳에서 튀어 왔다.
“뭐긴 뭐야 딱 보니까 반찬통이구만. 우리 사위는 내려올 때마다 ‘시바스리갈’ 한 병씩은 꼬박꼬박 사 오는데. 누구는 지 먹을 반찬통이나 가져오고 에잉.”
큰아버지가 자기 예상이 틀림없다는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곤 보라는 듯 턱짓으로 거실에 있는 진열장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시바스리갈 12년과 18년들이 오와 열을 맞춰 주욱 전시되어 있었다.
“어, 그런데 형님 18년 이상은 없어요?”
진열장 바라보던 막내삼촌 말하자, 큰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아무리 봐도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부려 놓은 캐리어를 열어 그 안에서 있는 짐들을 꺼내 놓았다.
“간만에 선물 좀 사 왔어요. 뭐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가 알아서 샀으니까.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두셔도 돼요.”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쏠린다.
순간 사람들의 표정에 궁금함과 기대가 서렸다. 하지만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상자 하나를 꺼내 막내 삼촌에게 건넸다. 그러자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든 막내삼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사 오고 그래. 이거 내가 받아도 되냐.”
아무래도 손아랫사람에게 선물을 받기가 좀 껄끄러운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5년 치 세뱃돈이라 생각해 주세요.”
그러자 그가 씨익 웃으면서 선물을 푼다.
“그래? 그럼 염치 불구하고···”
주섬주섬 선물을 푼 삼촌이 곧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야 이게 뭐야 지갑이잖아? 준영아 너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내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이 정도야 뭐. 괜찮아요.”
그러자 그때까지 눈치만 보던 친척들이 우르르 달려와 쌓아 놓은 선물들은 가져가기 시작했다.
“어머 이거 샤넬 가브리엘 아니야?”
“대박 지갑도 프라다야.”
“대박대박!”
“오빠 고마워요!”
“형님 사랑합니다. 충성충성충성”
개당 가격은 약 40만 원 정도.
개인이 사지 못할 정도의 가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생각할 정도의 가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뭘 좋아할지 몰랐기에 백화점에서 추천하는 상품으로 일괄 구매해 온 건데,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무관심하게 나를 바라보던 친척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커험. 음. 음.”
소파에 앉아 있던 큰아버지가 갑자기 밭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선물에 빠진 사람들은 큰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내던 신경도 쓰지 않았다.
“큰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내가 말하자 큰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흐음. 아니다. 뭐 그냥 뭐가 걸려서. 그런데 영준아. 큰아버지는 뭐 없나?”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그의 눈을 보며 슬쩍 웃었다.
“큰아버지 것도 있죠. 당연히.”
내가 말하자. 큰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역시 영준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도 잘 챙기고 그랬었지. 내가 다 기억하고 있다니까? 그래 내꺼는 뭐냐? 혹시 로얄살루트 38년? 아니야 38년은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21년 정도면···”
그는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의 바람을 주절주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며시 웃으면서 가방에서 묵직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렸다. 큰아버지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다른 분들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제 마음대로 샀는데. 큰아버지 선물을 그렇게 할 수야 있나요. 당연히 큰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걸로 사 왔죠.”
그러자 큰아버지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하게 웃어 보인다.
“그래? 역시 조카가 제일이구나 고맙다. 영준··· 아, 아니 준영아.”
선물을 받은 큰아버지가 바로 선물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물포장지를 뜯은 큰아버지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자 막내삼촌이 슬쩍 선물의 이름을 살펴본다.
“어? 시바스리갈 25년이네요? 이야 이 비싸고 좋은 술을.”
막내삼촌의 말을 들은 큰아버지가 한숨을 푸욱 내 쉬더니 소파 한쪽에 술병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리모컨을 들고 TV채널을 돌리기 시작한다. 누가 봐도 내가 준 선물에 실망을 금치 못한 모습이다.
그러자.
“아니, 당신 오랜만에 본 조카가 선물을 줬으면 고맙다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불만이 많아요. 준영아 신경 쓰지 말고 쉬고 있으렴. 큰어머니가 금방 과일 깎아 줄게.”
큰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보며 말한다. 그러자 큰아버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헛기침을 내뱉는다. 계속해서 TV 채널을 돌리는 폼이 뭔가 꽁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준 선물에 만족하는지 휴대폰으로 찍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형 그런데 지금 서울 어디에 있어요? 가끔 놀러가도 돼요?”
“오빠. 내가 아는 언니 있는데 소개시켜 줄까?”
그리고 몇몇은 살갑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어···어? 형!”
선물을 끌어안고 TV를 보던 친척 동생 하나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왜 그래?”
막내삼촌이 이상하다는 듯 묻자, 친척 동생이 나를 바라보다가 TV 쪽을 손가락질 한다.
“저거 준영이 형 맞죠?”
사람들의 시선이 친척동생의 손가락을 따라 TV로 모인다.
그러자 그곳엔.
[네. 17번 도전자 분 자기소개 좀 해 주시죠?]MC의 요청에 따라 입을 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현재 학원 강사이자 요튜브에서 공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준영이라고 합니다.]친척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친척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큰아버지만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 좋다고 저런 데를 기어나갔냐. 생쑈를 해도 금방 떨어질 걸··· 저런 거 다 미리 짜고 하는 거야. 나가 봐야 소용도 없어.”
나는 그저 대답 없이 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