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58
58
058화 가난의 가격 (3)
“싫어요.”
김자영이 말했다.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은 태도였다.
“제가 여길 왜 다녀요?”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들 뒤에 서 있던 박수한이 긴장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자신이 김자영을 준영에게 데려온 것이니만큼 김자영의 이런 태도가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박수한에게서 김자영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그녀를 데려오라는 말을 꺼냈던 준영으로서는 약간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래? 정말로 싫어? 그럼 뭐 상관하지 않을게.”
준영이 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거절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뒤쪽에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던 박수한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입을 소리칠 뿐이었다.
“쌤!”
간절한 눈빛이었다.
박수한이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준영이 안심하라는 듯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마디만 묻자. 다니기 싫다면서 왜 수한이 따라 온 거야?”
준영이 정말 의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김자영의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아까와 달리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점이 이상했으니까.
평소에 말 한마디 나눠 보지 않은 박수한이 학원이나 공부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 했다고 홀린 듯 따라왔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대답을 궁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준영이 짙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온 거 아니야?”
순간, 발끈하려던 김자영이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숙였다.
“······.”
그러자 준영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공부하고 싶다며? 그러니까 공부하자니까?”
그가 타이르듯 말하자. 고개를 든 그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전 거지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거지’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 그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듯 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영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리곤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내가 언제 공짜로 해 준다 그런 적 있어?”
그러자 김자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준영이 자신에게 내일부터 나와서 수업을 들으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준영이 자신을 동정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었어요?”
한참 멍하니 준영을 바라보던 김자영이 준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준영이 돈을 받을 것이라는 투로 이야기를 하자. 본능적으로 자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김준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받을 거야.”
그리곤 슬쩍 웃는다.
“내가 네 이야기를 살 테니까.”
그의 말을 들은 김자영과 박수한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들을 바라보는 준영의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거래를 하자는 거야.”
* * *
삭삭-
김자영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책상을 한번 오갈 때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청소용 물티슈가 새까맣게 변해 갔다.
그러자 찌든 때와 먼지로 가득하던 책상이 본래의 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으로 부족하다는 듯, 희석한 알콜을 담아 놓은 분무기를 들고 닦았던 곳을 다시 한 번 닦아 냈다.
그리곤 마른 수건으로 남을 물기를 훔쳐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좋았어.’
김자영은 깔끔하게 변한 책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낙서로 어지러웠던 책상이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깨끗해졌기 때문이었다.
‘자 다음은···’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엔 아직 제물이 부족했다.
그녀는 굶주린 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다음 타겟을 찾아보았다.
그녀의 눈에 뿌옇게 먼지가 쌓인 모니터나 책장, 기타 기자재들이 들어왔다.
씨익-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딱 먹음직스러운 크기의 사냥감이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 킨 다음, 또다시 청소에 돌입했다.
그런데 그 순간.
멈칫-
한창 바쁘게 손을 놀리던 그녀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굳었다.
그녀의 안색을 굳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키보드와 마우스.
좁은 틈이 많은 기기의 특성상 청소하기 힘든 기기들이었다.
그녀는 마우스와 키보드 사이에 쌓여 있는 먼지들을 보며, 생사의 대적을 바라보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의 걸레질을 거쳐 살아남은 먼지들이 그녀를 조롱하듯 좁은 틈 사이에 뭉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면봉.
그것도 잘 부러지지 않는 플라스틱 면봉이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세심한 손길로 마우스 사이사이에 묻은 손때와 먼지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최후의 먼지 한 톨까지 다 닦아 낸 그녀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반듯하게 책상에 고정시킨다.
“끝!”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 기기들의 각을 잡은 그녀가 개운한 얼굴로 허리를 폈다.
그러자.
“저기···뭘 그렇게 열심히 해? 그럴 필요 없어······.”
아까부터 그녀를 보고 있던 박수한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자영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박수한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하는 거 아닌데? 원래 청소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말에 박수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그녀가 청소해 놓은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교실 바닥과 낙서하나 없는 책걸상.
그리고 바로 막 포장을 푼 것처럼 번쩍거리는 기자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그렇겐 안 할걸? 아니 어차피 수업 한 번 하면 똑같아질 거 왜 그렇게 열심히 해? 힘 안 들어?”
그러자 그녀가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연다.
“그래? 이게 이상한가?”
그녀의 말에 박수한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너무 과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김자영의 이마가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힘들면 그냥 가. 어차피 나 혼자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칠판을 닦아 내리기 시작했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박수한이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녀가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아니! 내 말 뜻은 그게 아니고! 그 뭐냐 어차피 준영 쌤도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바라지 않을 거라니까?”
박수한이 김준영의 이름을 꺼내자. 거세게 칠판을 닦아 내리던 김자영의 손이 굳었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박수한을 바라본다.
“정말?”
그녀의 물음에 박수한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김자영은 들고 있던 물티슈를 슬쩍 내려다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이상한가? 우리 집에선 맨날 이렇게 했는데?”
그녀는 집에서 청소를 하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병중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선 깨끗한 환경이 필수였다.
때문에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집안 청소에 제법 많은 공을 들였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이 정도의 깔끔함은 당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생활비와 자신의 학비를 위해 공장에 나간 이후부턴, 자신이 어머니 대신 집안 청소를 맡아왔던 만큼.
이 정도의 청소는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박수한이 볼을 긁적이며 말을 골랐다.
“아···그건 아무래도 집이니까 그렇지. 여긴 학원이잖아. 안 그래?”
그러자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학원을 다녀 본 것이 처음인 만큼 박수한이 하는 이야기가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대로 그만두기엔 좀 아쉬웠다. 왠지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마무리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럼 이것만 하고 그만하지 뭐.”
그리고선 엄청난 속도로 칠판을 닦아 내리기 시작했다.
박수한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대편부터 칠판을 닦아 내렸다.
제법 높은 칠판이라서 키가 작은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찰칵-
“니들 뭐하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수한과 김자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쌤. 그게···”
들어온 사람은 바로 김준영이었다.
박수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자영을 바라보자. 김준영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데이트? 야 학원에서는 좀 자제해라 응?”
박수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그에 반대로 김자영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굳는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는 박수한을 힐끗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려 김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어제 했던 약속 지키고 있었어요.”
그녀가 차가운 어조로 말하자. 김준영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인마. 그냥 농담 좀 한 거야. 그런데···”
말을 하던 준영이 슬쩍 주변을 돌아보며 눈에 이채를 띠운다.
“야 이건 뭐 청소 수준이 아닌데? 돈 받고 맡겨도 되겠다.”
그가 말하자 그녀의 눈에 살짝 만족의 기운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
약간 즐거운 표정. 입가에 살폿 미소가 고인다.
그러자 박수한이 경계어린 눈으로 준영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준영은 시계를 보면서 입을 열 뿐이다.
“수고했어. 그런데 남은 약속은 좀 나중에 지키고 시계 좀 보는 게 어때?”
그러면서 김자영을 바라본다.
“이제 수업 시작해야 하는데 첫날부터 늦을 거야?”
김자영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 * *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린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모니터에 떠올라 있는 이름은 바로 김자영.
오늘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한 학생이었다. 그러자 김자영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흙수저 출신인데 누가 누굴 동정하니. 오히려 너한테 동질감을 느꼈으면 느꼈지.’
‘난 그냥 너에게서 이야기를 사려는 거야. 너의 성공담을.’
‘그러니까 빡세게 공부해서 꼭 성공해. 안 그러면 이자까지 쳐서 학원비 다 받아낼 테니까.’
‘정 미안하다면 가끔 청소라도 해 주고.’
내 말을 듣고 그녀가 짓던 표정이 생각났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하던 그녀.
내가 재차 이야기한 연후에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처음 박수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도와줄 수만은 없었다.
나부터가 흙수저 출신인 만큼.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자존심.
자존감은 다 무너진 상태로 자존심 하나로 버텨 가는 그들에게 섣부른 호의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와 나와의 관계는 무언 갈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한 관계여야만 했다.
때문에 고민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
비록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질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나중에 가서는 나에게 보다 더 큰 이익이 될 만한 계약이었다.
어차피 나야 원래 하던 수업에서 약간의 노력을 더할 뿐이니까.
타닥타닥-
그렇게 김자영의 파일을 마무리 하고 다른 학생들의 파일을 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빽빽하게 들어찬 학생들의 이름이 쭈욱 나타났다.
그 전까진 나 혼자 학생들의 수업을 모두 주관했기에 꿈도 꿀 수 없었던 인원.
지성형님과 은솔이 들어온 이후 학생들이 대거 받아들인 덕분에 채울 수 있었던 숫자였다.
“······.”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분명 한두 달만 더 이대로 유지한다면 교실이 부족할 상황인 건 맞았다.
그렇게 된다면 전에 원장과 약속 했던 것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뿐이었다.
여기서 학생 수가 더 많아지면 주변에 빈 건물을 알아보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바라기 힘들어 보였다.
때문에 요즘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이 정도에서 머무르기엔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가 너무나 아까웠으니까.
그런데 그때.
띠링-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창이 화면에 떠올랐다.
메일 창으로 들어가 확인한다.
그러자.
[종각학원 본원에서 연락드립니···]운명의 장난처럼 새로운 길이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