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60
60
060화 내일을 위한 시간
“선생님. 여기 좀 보세요.”
오래간만에 마트에 온 것이라 신기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내게, 은솔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쇼핑카트를 밀고 은솔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어떤 거요?”
그러자 은솔이 슬쩍 진열대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해체된 아귀 한 마리가 이를 드러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아귀의 헤 벌린 입과 해사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동시에 내 눈에 들어왔다.
“맛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아귀찜이나 뭐 이런 걸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귀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음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펜션에 가는데 아귀라니······.
“음 선생님···맛은 있겠지만 아무래도 조리하기 가 좀···”
내가 슬쩍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자. 그녀가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떠나는 연인을 보는 표정으로 아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외모로만 보면 아귀는커녕 고기에 입도 안 댈 것 같이 생겼는데···정말 의외였다.
“하나···살까요?”
보다 못한 내가 슬쩍 이야기를 꺼내자.
시무룩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녀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든다.
“정말요?”
그녀는 정말 기쁘다는 듯 맑게 미소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순간, 달콤한 향기가 내게 닿았다. 그러자 갑자기 입속에 침이 고였다. 나는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다른 재료들도 사 가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러자 그녀가 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 아귀탕 할 줄 알아요. 콩나물이랑 미나리 팍팍 넣으면 국물이 정말···아 혹시 아귀 간도 따로 팔까요?”
그러더니 능숙하게 직원과 이야기한다. 그러자 입을 헤벌쭉하게 벌린 직원이 냉장고에 따로 빼 두었던 아귀 간까지 따로 꺼내서 포장해 준다.
“······.”
직원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그녀가 내게 포장된 아귀를 들이밀었다.
멍하니 풀어진 아귀의 눈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내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자. 그녀가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재료들 사러 갈까요?”
그리곤 한 손으로 카트를 잡고 마트를 누비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그곳이 그곳인 것만 같은 마트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자, 새삼 내가 은솔 그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 학원에 있었던 몇 년보다.
근래 몇 달이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았다.
“음 아귀탕에는 역시 청양고추가 들어가야···”
앞으로 워크샵 갈 일이 있으면 은솔과 같이 가면 될 것 같았다.
“······.”
사실 오늘은 학원 사람들끼리 워크샵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워크샵이지 그냥 엠티라고 보는 게 더 빨랐다.
그 동안 여러모로 바쁜 상황이라 마음 놓고 회식 한번 한 적이 없던 데다 이제 곧 내가 다른 학원 출강을 나가면, 지금보다 더 얼굴보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잡은 일정이었다.
어쨌든 내가 출강을 간 이후에 내 빈자리를 메꿔줄 사람은 바로 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삼촌 모시고 내가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장은 젊은 사람들끼리 보면 되겠다. 김 쌤 차도 2인승이니까. 딱 좋잖아 안 그래?’
지성형님이 의뭉스럽게 웃으면서 싱글싱글 웃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원장님도.
‘그래. 내가 요즘 허리가 아파 와서 오랫동안 서 있질 못해요. 그러니 미안하지만 장은 두 분이서 보셔야 할 것 같은데···괜찮죠?’
그러면서 동시에 씨익 웃어 보였다. 누가 친척 아니랄까 봐 웃는 모습도 비슷했다.
나야 상관없었지만. 전전 학원에서부터 은솔이 남성을 싫어하던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은솔이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됐었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기우였다.
‘저는 괜찮아요. 원장님 허리도 안 좋으신데 당연히 저희가 해야죠.’
그녀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지성 형님이 씨익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은솔 쌤은 됐고···준영 쌤도 괜찮지? 내가 차만 안 팔았어도 같이 갈 텐데, 하필 차를 팔아 버려서.’
그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원장님에게 장을 같이 보자고 강권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선생님!”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은솔이 저만치 앞쪽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주류코너 앞에서 무슨 술을 살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냥 막걸리로 사시죠?”
그러자 은솔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 그 선생님이 원하시면 그래야죠.”
* * *
만두- 만두만두만두-
양평 어느 펜션 안에서 기묘한 모양새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 차롄가요?”
평균 연령 40대.
그중에서도 가장 연령이 높은 사람이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오므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너무 긴장들 하지 마세요. 아무렴 제가···만두!”
그러자.
긴장을 풀고 있던 사람들이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을 포함한 3명 모두 손가락을 오므린 채 멈춰서 있었다.
그러자 원장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뭐 하세요. 다들 한 잔씩 하셔야죠?”
나머지 사람들은 불신의 눈으로 원장을 바라보았다. 벌써 3번째 원장이 반복된 일이었으니까.
바비큐를 다 먹고 나서 장난삼아 시작한 게임이었다.
다들 대학을 졸업 한 이후에 게임이라는 걸 접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 나름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빨리 안 드시면 벌주 추가 됩니다?”
원장은 은근한 어조로 그들이 빨리 벌칙을 수행하기를 재촉했다.
그러자 벌칙에 걸린 사람들은 술사발 하나씩을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은솔 선생님이 제일 빠르시네요?”
도수가 제법 높은 막걸리라 제법 술이 강하다는 지성과 준영도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한데 벌써 3번째, 벌칙에 걸릴 때마다 은솔은 싫은 기색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보다 목 넘김이 좋아서요.”
그녀가 슬쩍 편육 하나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술을 다 마신 준영과 지성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목 넘김이 좋다고 넘길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번엔 은솔 선생님이 한 번 하시죠? 자꾸 저만 하니까 재미가 없네요.”
원장이 은솔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들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네 번 연속 술을 마실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성과 준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두- 만두만두만두-
그리고 다음 순간.
은솔의 입이 열렸다.
“백.”
순간, 은솔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모두 합쳐 봐야 오십 개뿐이었으니까.
그러자.
은솔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졌네요?”
그러더니 한 사발 가득 따라 놓은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킨다.
그녀의 가녀린 목선을 따라 막걸리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 내렸다.
“너무 쓰다.”
막걸리 사발을 내린 그녀가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준영과 지성이 동시에 생각했다.
‘누가 봐도 먹고 싶어서 걸린 거구만.’
* * *
게임이 끝난 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준영이가 원장한테 뭐라고 말했냐하면요?”
지성 형님이 은솔에게 뭔가 이야기 하며 슬쩍 내 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전전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뭐 이제 와서 거리낄 것도 없으니 마음대로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지성 형님이 쾌활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장님과 은솔이 지성 형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음료수를 쭈욱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즐겁게 술을 마신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전전 학원에 있을 때는 술이야 많이 마셨었지만 언제나 고통스러웠던 데다, 학원을 떠난 이후엔 너무 바빠서 술을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
‘앞으론 이런 기회가 흔치 않겠지만.’
사실, 이젠 이런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는 게 맞는 이야기였다.
당장 다음 주부터 내가 재수생 강의에 출강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정말 눈코 뜰 세 없이 바쁜 나날이 지속될 예정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이제 곧 2학기 중간고사 시즌이기 때문에, 학원에 있는 학생들의 내신준비나 방송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만 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여유는 당분간 꿈도 꾸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뭐 그래도 그만큼 들어오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 바쁜 스케줄이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기대가 됐다.
내 몸이 바빠진다는 것은 곧 내 가치와 자산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탕-
갑자기 뭔가 큰소리가 났다.
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막걸리 병을 잡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은솔이 있었다.
보아하니 빈 막걸리 병으로 바닥을 내려친 것이라 그렇게 큰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런데···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기세가 여간 심상치 않았다.
잠시 동안 대화에서 벗어나 있었던 참이라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녀 주변에 있는 지성과 원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 또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은솔 선생님?”
내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자.
“······.”
그녀는 왠지 더 화가 난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황스러웠다. 아니 내가 한 일이라곤 구석에서 혼자 음료수 마셨던 것밖에 없는데?
하지만 취한 사람한테 화를 낼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를 달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려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반쯤 풀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야.”
야?
내가 들은 게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
주변에 있던 지성 형님과 원장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너. 너···왜 나 기억 못하냐?”
원망이 짙게 베인 목소리.
“······??”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털썩-
그녀가 말을 마치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지성형님과 원장님이 당황하다는 표정으로 은솔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말 갑작스럽고 황당한 기분이었다.
* * *
카톡-
누군가에게서 카톡이 왔다.
확인하니.
[은솔 : 선생님. 워크샵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저희 또 가죠.٩(ˊᗜˋ* )]
···은솔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워크샵 때가 생각났다.
설마하니 그녀에게서 반말을 들을 줄 몰랐던 터라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녀가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그녀는 전날 있었던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은솔 : 그럼 오늘 첫 출근하시는 건가요?]그렇게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에게 또 다른 카톡이 날아왔다.
내가 그렇다는 대답을 보내자, 몇 분 뒤 그녀의 답장이 날아왔다.
[은솔 : 선생님 화이팅! (•̀ ᴗ •́)و]언제 봐도 재미있는 이모티콘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고 나섰다.
내 눈앞에는.
시험의 땅 ‘노량진’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