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63
63
063화 아이스 브레이킹 (1)
노량진의 주인은 누구일까.
길거리에서 컵밥을 파는 컵밥 아줌마? 밀린 방값을 독촉하는 고시원 총무?
그도 아니면 학원? 아니면 학원 강사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노량진이라는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이 땅의 주인인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들만이 남아 있는 노량진은 노량진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량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전봇대 옆에 쓰러져 있는 9급 준비생일까?
아니면 눈을 뜨자마자 피시방으로 직행하는 재수생이나, 고시식당에서 싸구려 불고기를 씹고 있는 소방준비생일까?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 주인이 아니다.
노량진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피 땀을 흘려 번 돈으로 수험생들을 뒷바라지 하는 수험생들의 부모이니까.
‘적어도 학원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나는 교탁 앞에 선 채 생각했다.
강사란 수험생들에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부모의 희생이라는 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라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라는 배가 가라앉기 전에 수험생을 마른 땅으로 인도하려면 강사와 수험생간의 신뢰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수능까지 반년도 채 안 남은 상황.
그 전까지 길을 인도하던 사람이 ‘이 길이 아닌가 봐···’를 시전하고 사라진 만큼.
단기간에 학생들과 나 사이에 신뢰관계를 만들어 내기 힘들 것이다.
“···힘들지도 모르겠네.”
원래대로라면 이때쯤 강의실은 6월 모평을 마친 사람들의 열기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야 하는 시즌이다.
하지만 전임 강사가 6월 모의고사를 망친 만큼 그 정도의 인원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강의실의 반 정도나 차 있으면 많이 차 있는 게 아닐까?
일단 학원 측에서 학생들의 명부를 받고 나름의 준비를 마쳐 놓았지만 그래도 살짝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그 동안 여러 학생들을 겪어봤다고 해도 재수생을 케어 하는 것은 처음이니까.
그런데.
찰칵-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강의실 자체는 제법 평범했다.
천장 곳곳에는 강의용 모니터가 띄엄띄엄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등학교의 교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강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문을 열자마자 이쪽을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
순간이지만 살짝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사람이나.
피곤에 절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이의 음울한 눈빛.
깔끔하게 차려입은, 앳된 여학생들의 도전적인 시선까지.
그들은 마치 일주일 정도 물을 마시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학원 측에서 나에 대한 설명을 어마어마하게 해 놓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번 모의 평가에서 그렇게 죽을 쑤고도 이 정도의 인원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
물론 강의실에 저 인원들이 모두다 원래 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아마 학원에서 잡아놓은 원래 인원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6월 모의평가를 망친 이들이 대거 들어온 것 같았다.
아무튼.
예상외로 수강생들이 많은 만큼,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렴 원래 없는 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있는 인원을 유지하는 것이 쉬울 테니까.
그러니 이제 남은 문제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내 사람들로 만드는 일 뿐이다.
“자, 우리 시간 없죠. 바로 수업 들어갑니다. 편의상 반말로 할 테니까 기분 나쁜 분들은 지금 나가세요.”
기선제압 같은 것을 할 시간도, 필요도 없다.
결과로 말해야 할 때다.
* * *
“6월 모평 성적가지고 일희일비 하지 말고 모평한테 맞았을 때 어디가 제일 아팠는지 정리해 놔. 앞으론 그 부분을 어떻게 보강할지 걱정하는 것만 해도 벅찰 테니까.
인사말을 대신해 간단한 말을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반년도 채 안남은 시간.
한가롭게 웃고 떠들 시간이 없었으니까.
“자, 교재 5페이지 펴.”
수업을 진행한다.
“일단 어휘, 어법, 쓰기 위주로 나간다. 다들 알다시피 쓰기는 7문제, 어휘 어법은 5문제 정도 출제되니까. 확실하게 잡고 넘어 갈 거야. 먼저 쓰기부터···”
어차피 지금 와서 고등학생들 수업 진행하듯이 하나하나 기초부터 쌓아올릴 시간은 없었다.
지금 내 수업을 듣는 이들 중 대다수가 1회독 이상 진도를 나간 만큼, 지엽적인 것들은 차지하고 넘어가고 중요한 개념들 위주로 정리한다.
게다가 이들이 언어 한 과목만 파는 게 아니니만큼.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둬야만 했다.
“자, 그럼 교재 15페이지 펴서 4번, 8번 문제 풀어. 다 풀면 확인하고 넘어갈 테니까.”
개념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범위에 맞는 수능 문제나 모의고사 문제를 풀게 했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푸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빙글빙글 웃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면서 문제를 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줄 중간쯤에 앉은 친구. 너 문제 다 풀었어?”
내가 말하자 다른 학생들을 구경하던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 이 문제들 다 아는 것들이라서요. 저번에 다른 선생님 수업 듣다가 푼 문제들이라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곤 슬쩍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마치 ‘별 다를 것 없네?’라는 듯한 시선이다.
보아하니 다른 강사의 강의를 듣다가 내 수업으로 넘어온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강사의 수업에서 내 교재에 나온 문제와 같은 문제가 나온 듯싶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수능 대비 교재에는 수능이나 모의고사 문제, 아니면 그 변형들이 들어가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태도를 인정하는 건 아니었다.
푼 것과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으니까.
“정말 다 기억나?”
저벅. 저벅.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학생들이 긴장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네.”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교재를 슬쩍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무슨 짓이냐는 듯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 기억난다는 문제, 지문하고 선지 한번 말해 봐. 그리고 어느 교재, 몇 페이지, 몇 번 문제인지도.”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변 학생들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지금까지 제가 한두 문제 푼 것도 아닌데.”
그녀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수험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하루에 푸는 문제만 수십, 수백 개가 넘어가는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럼 내가 한번 맞춰 볼까?
내가 말하자.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중에 ‘양선지 언어’ 문법 교재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말하자. 저쪽에서 한 사람이 두꺼운 책 한 권을 들어보였다.
몇 년간 1타 자리를 놓치지 않는 사람의 책이라 한 사람쯤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있네. 그럼 그 책 25페이지에 있는 4번 문제 확인 좀 해 줄래? 옆에 2016년 6월 모의평가라고 쓰여 있는 문제.”
그러자 교재를 들어보였던 학생이 빠르게 교재를 넘기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그 학생을 향했다.
잠시 뒤.
교재를 넘기던 학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맞지?”
내가 묻자 학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웃음을 치던 여학생은 아직도 불만에 가득 차 있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만든 교재이다 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얼굴이다.
나는 슬쩍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리곤 칠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쓰기나 어휘 문제라면 다른 교재에 있는 것도 상관없으니까 지문만 말해 봐. 어디서 나온 문젠지 몇 번 문젠지 바로 불러 줄게.”
그러자 어수선했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몇몇 학생들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문제의 지문을 읊기 시작했다.
나는 지문을 다 듣고 바로 문제를 맞혀 나갔다.
“그 문제는 마이스토리 11페이지 6번 문제, 답은 2번, 2015년 수능 기출 변형문제 맞지?”
“그리고 다음 건 김갑근 선생님 문학 교재, 22페이지 7번 문제, 답은 2번.
“음 마지막 거는 이연지 선생님 교재, 75페이지 3번 문제, 답은 4번이라고 하셨을 텐데···그거 틀렸어. 그 문제 답 없으니까 체크해 놔.”
그렇게.
학생들이 던진 문제를 연달아 맞히자, 더 이상 아무도 나에게 문제를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서서 여학생에게 말했다.
“이게 기억한다는 거야. 네가 했던 거는 ‘기억’한 게 아니라 ‘추억’한 거고. 뭐 너희들한테 이 정도까진 바라지 않겠지만, 그래도 문제를 풀 때 좀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 대충 한번 풀어 보고 슥슥 넘어가면 그게 뭐하는 짓이야? 종이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여학생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조금 잔인한 짓일 수도 있지만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었다.
만약 지금이 2월이나 3월 정도였다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학생들을 이끌어 갈 수 있겠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약 5개월 남짓.
그 짧은 시간 안에 강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려면, 나에 대한 학생들의 의심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지금이야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당황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가면 또 뒤에서 지지부지한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내 능력을 더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하는 김에 다 하고 가자. 이번에는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상관없으니까 자유롭게 물어봐.”
내가 말하자. 학생들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나마 쓰기나 어휘 문제는 지금 나가고 있는 부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이상은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내가 범위를 막론하고 학생들이 던진 문제를 맞혀 나가자.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위험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사이비 교주를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오죽했으면 처음 말을 꺼냈던 여학생마저 불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 선생님. 방금 말씀하신 문제. 틀렸는데요?”
맨 뒤쪽에 있던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기이한 열기에 휩싸여 있던 교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져 버렸다.
“응? 어떤 문제?”
내가 묻자.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이 동시에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의문을 제기한 학생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방금 말씀하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문제요. 이거 답이 2번이 아니라 5번인데요? 그리고 답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묘사’가 맞긴 한데, 선지들도 말씀하신 거랑 좀 달라요.”
그러면서 책을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교재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내가 말하자 의문을 제기한 학생이 짙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유일하게 틀린 문제가 자신이 낸 문제라 제법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너무 빠른 감이 있었다.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너 그거 ‘양선지 국어’지?”
그러자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거 구판이야 신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