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64
64
064화 아이스 브레이킹 (2)
“어···구판인데요?”
교재를 뒤집어 본 남학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렇지. 혹시 여기 ‘양선지 국어’ 신판 있는 사람? 2017년 9월 22일에 출판된 거.”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중에 예의 그 여학생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마치 자신을 지목해 달라는 듯 손을 흔든다.
“확인 좀 해 줄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문제를 확인한다.
잠시 뒤, 그 여학생은 얼굴 가득 감탄을 띄운 채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맞아요.”
그녀가 말하자. 학생들이 헛웃음을 짓는다. 이젠 더 놀랄 것도 없다는 눈치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학생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신판 나오면 빨리 바꾸든가 업데이트 해. 매해 조금씩 바뀌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 놓치고 싶지 않으면 추록도 바로바로 추가하고.”
내가 말하자 남학생을 비롯한 강의실 내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나에 대한 믿음을 심은 것 같았다.
“자 그럼 계속 수업 진행 합시다. 궁금한 거 있으면 수업 끝날 때쯤에 물어볼 시간 줄 테니까. 그때까지 전력으로 달릴게.”
굴러온 돌이라고 해도 날카로우면 팍 하고 박히는 법이다.
학생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을 기세로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할 때만해도 미미하게 남아 있었던 의심의 싹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색이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지난 기간 동안의 노력이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의 신뢰.
이번에는 USB에만 기대지 않아선지 그 달콤함이 더 했다.
사실 학원 측의 제안을 수락할 생각을 했을 때부터 준비했다.
USB의 능력만 믿고 있기엔 노량진이라는 곳이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혹시나 해서 USB에 학생들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USB내에서 학생들 하나하나가 던질 법한 질문들이 두세 개씩 검색되었다.
설마 이런 것까지 검색이 될까 싶었었는데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더 USB의 범위가 넓은 것 같았다.
그 뒤엔 노력뿐이었다.
학생들의 수도 만만치 않고 한 사람당 한 문제씩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지난 며칠간 잠도 줄여가면서 학생들에게 나올만한 문제들을 정리하고 외우는 일상이었다.
다행히 내 그런 시도가 생각보다 학생들에게 생각보다 더 잘 먹힌 것 같았다.
과연 학원 강사는 퍼포먼스로 먹고 산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자 그럼 집중.”
내가 말하자.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분필을 들고 칠판에 강의 내용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확실하게 인지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수능은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문법이면 문법 문학이면 문학, 지엽적인 것들 하나하나 외우는 건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이지.”
내가 말하자. 학생들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을 마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트 필기준비를 하거나,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언제 봐도 그렇다.
나는 차근차근, 칠판을 채워 가기 시작했다.
* * *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학생들의 얼굴에서 미련과 의심이 사라진 이후 맹목적일 정도로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하고 짙어져 갔다.
‘내가 메주로 죽을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까?’
하지만 그 믿음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간혹.
“다들 피곤하죠? 기지개 한 번씩 펴고 합시다.”
내가 수업 중간에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할 때나.
“어, 오늘은 수업이 좀 받는데? 다음 수업 없는 사람들만 모여서 한 시간씩 더 할까?”
따위의 농담을 던질 때마저 그들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니까.
“······.”
내가 기지개를 펴라고 하니 무표정한 얼굴로 기지개만 켜고 다시 나를 바라보거나, 가벼운 농담에도 휴대폰을 들어 진지하게 시간표를 확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나자 농담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일 것이란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
그래도 쉬는 시간에는 곧잘 웃던 사람들이 수업 시간만 되면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 것 마냥 진지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들이 내 수업을, 그리고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여기에 출강 오기를 잘했어.’
나의 학원과는 완전히 딴판인,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당초 목적대로 대형학원의 노하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로운 편이다.
일단 내 강의의 경우 중간에 이탈하는 학생도 거의 없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아파서 강의에 들어올 수 없다거나 아예 재수를 접고 다른 길로 옮기는 경우가 아닌 이상, 중간 이탈자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오히려 그 사이 학생들 사이에 내 소문이 퍼졌는지.
입시 후반부인데도 불구하고, 학원에 내 수업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는 당연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학원에도 긍정적인 여파를 미쳤다.
대형학원의 브랜드에 낙수효과를 받고 있는 것이다.
‘김 선생님! 오늘이야말로 계약서 아예 새로 쓰시죠!?’
학원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요즘은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언제 전속 계약을 할 거냐는 농담을 던진다.
덕분에 요즘은 수능이 기다려질 지경.
“······.”
그렇게 지난 일을 생각하며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강의 첫날 내게 문제가 틀렸다고 말을 했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쉽게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학생들 수가 워낙 많고 진도가 바쁘다 보니 일반 학원에서와 다르게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학원이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노량진에서는 전혀 문제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어 왜?”
내가 너를 알고 있다는 표시만 하면 되니까.
내가 그에게 대답하자. 나를 부른 학생이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반가워서요.”
그러면서 볼을 긁적이는 모습이 나를 부를 생각은 하고 미처 할 말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교실 밖에서까지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일반적으로 학생과 강사가 너무 가까운 것도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저 적당한 정도.
수업을 진행할 때 방해를 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과 학생과의 사이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일 년에도 몇 번씩 사건 사고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곤 했으니까.
그저 적당한 정도. 이게 말이 쉽지 참 어려운 거리다.
그러니 강사와 학생의 거리란, 지금 이 학생처럼 그저 적당히 길을 가다 마주쳤을 때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그때.
나를 부른 학생에게서 위험한 냄새가 났다.
타르와 니코틴이 수년간 쪄들었을 때 나는 냄새.
그리고 그 외에 온갖 주전부리의 냄새가 동시에 섞인 오묘한 냄새가 그에게서 나고 있었다.
담배 한두 대 피웠다고 날 만한 냄새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나는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 어디 갔다 왔어? 피시방?”
그러자 학생이 깜짝 놀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 주변에서 저 정도로 살짝 담배 냄새를 달고 올 만한 곳은 학원 앞에 있는 피시방과 당구장뿐이었으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간만에 친구들이 와서 롤 딱 한 판 한 건 데? 그런데 오랜만이라 잘 못할 줄 알았는데 간만에 했더니 오히려 더 잘되더라고요. 막 쿼드라 킬도 따고 바론도 따고, 잘못했으면 한 판 더 할 뻔했었다니까요?”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곤 오랜만에 쳐서 재미있었다는 둥. 가끔은 이렇게 머리를 식혀 줘야 하다는 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곧 프로 데뷔를 하겠다는 말까지 나올 기세였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1,920만 원 버리고 한 건데 이기기라도 해야지.”
순간, 나를 바라보던 학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감수하고 한 거 아니야?”
내가 말하자 그가 불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의 얼굴이 자괴감으로 물들었다.
스스로 게임을 하면서 여유를 부릴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후,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그는 후회하는 낯빛으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는 그의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 그런데 정신 차려야 할 때 아니야?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거지상 하지 말고. 오늘 놀았으니까 더 빡세게 공부해. 알았지?”
그러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는 모습이 아까보단 나아 보였다.
“네···내일 뵐게요.”
그는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곤 독서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학생들과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면서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기고 있었다.
이제 막 7월에 접어든 기간.
지금까지 달려오던 재수생들의 마음이 한창 싱숭생숭할 시기였다.
이쯤 되면 재수 생활도 거의 6개월 정도 지났으니 한창 외로울 때다.
이런 때에 대학생이 된 친구들의 근황은 치명적인 독.
동년배 친구들이 여행을 가거나 연애를 하는 모습을 SNS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멘탈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대학생 친구들이 재수생을 응원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술자리에 불러내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재수생의 온전한 재수 생활은 물 건너 간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가끔 이런 일이 생길 때면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미봉책에 불과 했다. 시간이 지나 의지가 무뎌지면 또다시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 테니까.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학생들을 재수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재수생들에게 내년에는 기필코 재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올해를 끝으로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믿음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했다.
“···힘내라.”
나는 멀어져 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심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위로의 말은 그저 공허한 것일 뿐.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뭔가 위로가 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이나 술 같은 것 말고, 공부에 도움이 되면서도 의지와 믿음이 생기는 것.
그런 게 있다면 수험생들에게 참 좋을 텐데.
다년간의 강사 짬밥을 한계까지 쥐어짜 본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이내.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위잉- 위잉-
눈앞에 있는 복합기에서 쉴 새 없이 뽑아져 나오는 프린트들.
그래.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