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66
66
066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펄럭-
모의고사 시험지의 귀퉁이를 잡고 천천히 넘겼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왠지 새로웠다.
오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십 장의 모의고사 시험지를 풀어 봤지만, 요즘처럼 시험지를 넘기는 순간이 기쁜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 전까진 정답율이 극히 낮은 고난이도급의 문제라도 나오면, 한참을 끙끙 앓다가 간신히 문제를 풀고 안도하던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5. 다음 중, 밑줄 친 부분의 띄어쓰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방 안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② 노력한 만큼 반드시 대가를 얻을 것이다.
③ 나도 당신만큼은 얼마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④ 까다롭게 검사하는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⑤ 어른이 심하게 다그친 만큼 그의 행동도 달라져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틀리기 쉬운 이런 문제들도.
‘4번이네.’
답이 눈에 빤히 보였다.
USB로 인한 현상인 걸까?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서 답을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이, 헷갈릴 수 있는 문제들이 너무나 쉽게 슥슥 풀려 나갔다.
그렇게 1번부터 45번까지 문제를 다 풀고 마킹까지 마치고 나자, 시험시간이 약 40분 정도 남았다.
‘다음엔 30분 안에 볼 수도 있겠는데?’
나는 시험지를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인상을 쓰며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들이 모습이 보였다.
‘다들 아직 한참 남았구만.’
나는 어깨를 풀며 생각했다.
이제 시험도 다 봤으니 감독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였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평소보다 약간 책상을 벌린 채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에서라면 수능 시험장마냥 책상 간격을 벌리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재수학원에서의 모의고사 풍경은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다소 자유로운 분위기.
아니 자유롭기보단 방임에 가까워 보이는 분위기가 강의실 안에 감돌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고등학교 경우 모의고사 성적으로 학생들의 성적과 등수를 판별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 사이의 간격을 떨어뜨려 놓고 철저하게 감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수생에게 모의고사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모의고사란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는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그들이라고 모의고사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등학교 때처럼 모의고사를 잘 보기 위해 컨닝을 하는 바보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재수학원에서 모의고사를 감독하는 것은 정말 편한 일이었다.
감독관이 보든 안 보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시험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러니 나처럼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면서 80분을 견뎌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할 필요가 없지만.’
문제도 풀 겸,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모습도 관찰할 겸해서 지원한 자리였다.
어차피 수능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거라면 나 혼자 교무실에서 문제를 푸는 것보다 학생들과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이 좋았으니까.
그런데 그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강의실의 중간쯤에 앉은 앳된 외모의 여학생이었다.
시험 종료까지 20분 정도 남은 때라 학생들이 정신없이 지문을 읽고 작품을 해석하고 있을 시간.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변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그 학생 하나만 시험지에 집중하지 않고 연신 딴짓을 하고 있었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며 옷을 펄럭이거나 책상 위에 올려 둔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눈에 띄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눈이 거슬렸다.
일단 그녀의 표정 자체가 시험을 풀기 위해 고심하는 표정이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었으니까.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학생들 사이에 숨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가 왜 아까부터 계속 눈에 거슬렸는지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바보네?’
컨닝을 하고 있었다.
* * *
톡톡-
갑자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슬쩍 돌아보니 옆자리 영어 강사였다.
“김 선생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파티션 위로 고개를 내민 그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아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고요.”
내가 대답하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그럼 좀 이따 회의 있다는 소식도 못 들으셨겠네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마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온 이야기인 듯싶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어교사가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좀 이따 본부장님 주재로 회의실에서 모인다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보아하니 이번 모의고사 때문에 모이는 것 같던데 선생님이 안 오시면 안 되잖아요.”
그리곤 슬쩍 웃으며 ‘주인공이 안 나오면 안 된다느니.’, ‘벌써 학원가에 눈도장을 떡하니 찍었다느니’ 하는 소리를 내뱉고선 옆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
덕분에 조금 전까지 생각하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좀 전까지 생각하던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7월 모의고사 가채점 및 총평(인문계열)] [이름 : 이아린]모의고사 시간에 컨닝을 하던 학생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 학생의 이름이 적힌 가채점 표에는 이번 모의고사에서 그 학생이 맞은 점수가 적혀 있었다.
[언어 1등급, 수리 2등급, 외국어 2등급, 사탐1등급]가채점 점수만 보면 좋은 점수였다.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상위권 정도는 되는 점수.
그러나 나는 저 점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점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컨닝으로 만든 점수일 테니까.’
어제, 그녀가 컨닝을 하고 있다는 확신했을 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컨닝을 멈출지 아니면 그녀가 컨닝을 하든 말든 방조할지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녀의 컨닝을 제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굳이 그녀가 컨닝하는 것을 막겠다고 다른 학생들의 시험을 방해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
그러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컨닝을 해서 자기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녀가 23살이고 올해로 4년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뿐이었으니까.
‘4수 정도면 빨리 벗어나고 싶을 텐데’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른다면 잘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영어강사가 보였다.
아무래도 이 학원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니만큼 나보다 학생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내가 부르자 빈 커피 잔을 할짝이던 영어강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아린이라는 학생 아시나요?”
그러자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걔요? 걔 또 무슨 짓 했어요?
들어보니 안 좋은 쪽으로 제법 유명한 학생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얘가 커닝을 해서요’라고 말하긴 좀 그랬다.
“아니요. 가채점 점수랑 6월 모의고사 점수랑 차이가 많이 나서요.”
내가 슬쩍 돌려 말하자 그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걔 점수 믿지 마세요. 가채점이나 모의고사 점수나 다. 걔 성적 가지고 맨날 장난치는 걸로 유명하니까.”
그러면서 고개를 젓는 폼을 보니 아마 그녀의 이전 전적이 화려했던 모양이다.
“혹시 왜 그러는지 좀 아시나요?”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모르죠 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니까 급할 것도 없겠다. 인생 재미있게 살고 싶은가 보죠. 남들이야 1년 1년이 힘들겠지만, 걔야 뭐 그런 거 신경이나 쓰나?”
뜻밖에 이야기였다.
제법 귀여운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많이 튀는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 학생이 여기서 왜?’
라는 의문이었다.
아니 말마따나 국회의원 자녀씩이나 되는 학생이 여기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들어보니까 다른데 서도 분위기 흐린다고 정리된 거 같더라고요. 아무튼 걔 매년 공부는 안하고 맨날 이상한 짓만 하는 애라서 다른 선생님들도 포기한 애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걔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니 자신에 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저희 학원 들어와 있는 거 보면 대학갈 생각은 있는 거 아닌가요?”
내가 묻자 영어강사가 딱하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걔가 대학을요? 못 가요 걔.”
그리곤 슬쩍 웃으며 말을 잇는다.
“갈 수는 있죠. 그런데 걔가 상담할 때마다 어디 가고 싶다고 말하는지 아세요? 서율대에요 서율대. 거기 말고는 못 간다고 버티는데 맨날 성적 가지고 장난질하는 애가 어떻게 서율대를 가겠어요.”
그러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뭐 아깝기는 하죠. 걔 대학 보내기만 하면 진짜 대박일 텐데. 말마따나 중진 의원 딸을 대학 보낸 건데 그게 어디 보통일이겠어요? 그런데 뭐 방법이 있어야 보내던가 하죠. 학생부도 막장에 성적도 애매하고 옛날처럼 기부입학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여기까지 말한 그가 살짝 숨을 돌린 뒤 나를 돌아본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그냥 신경 끄시고 걔는 그냥 없는 사람이다 생각하세요. 그래도 애가 착하기는 해서 선생님 속 썩이는 짓은 안 하니까. 그나마 다행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무래도 그에게선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알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뭐 별로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어쨌든 간에 그녀는 내가 맡고 있는 반의 학생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원래 그런 애야’라고 넘기고 싶지 않았다.
다른 강사들은 그녀의 실력을 ‘노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창의력만 보면 정말 대단했으니까.’
컨닝이라고 하면 으레 간단한 종이에 수학 공식 같은 걸 써 놓은 걸 생각했던 나에게, 그녀의 컨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거기다 언어영역이 컨닝페이퍼를 만들기 힘든 과목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아주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말마따나 정말 모르면 컨닝페이퍼도 못 만드는 법이니까.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떠올랐다.
나와 부딪쳤을 때 그녀가 짓던 표정.
그리고 내가 그녀를 몰라봤을 때 변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대로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