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68
68
068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3)
“꺼억. 어휴 역시 고싯밥은 소화가 안 돼.”
오래간만에 고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박훈은 거나하게 트림을 하며 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이쪽으로 오던 학생들 몇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꺼흑.”
평소에 근처 식당에서만 식사를 해결해 왔던 터라, 고시식당의 음식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깜박했던 게 문제였다.
먹을 때는 제법 괜찮은 것 같았는데, 밥을 먹고 나오자마자 아까부터 계속 트림이 올라오고 있었다.
“젠장 누구는 점심때부터 소고기를 먹던데.”
그는 불만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엊그제 준영과 본부장이 고급 와규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박훈은 회식 때를 제외하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가볍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까 전에 먹었던 불고기가 뱃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김준영한테 속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교무실 문을 열었다.
속이 더부룩하니 화장실이라도 다녀왔으면 좋을 것 같았지만,
오후에 있을 다른 강사들의 수업자료들을 프린트해 놓으려면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찰칵-
그런데.
교무실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점심시간이라 대부분의 강사들이 자리를 비운 시간.
평소 같으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자기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수다를 떨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교무실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뭐지?’
박훈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강사들을 바라보았다.
“저기 무슨 일 있어요?”
박훈은 그나마 친분이 있는 영어강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영어강사가 턱짓으로 교무실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상담실]작은 방 하나를 통째로 개조해, 강사들 전용 상담실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응? 이 시간에 저기 누가 있어요?”
박훈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사실 저 공간은 이름만 상담실이지, 대부분 전날 과음을 한 강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으니까.
영어강사가 떨더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준영 쌤이랑···준영 쌤 반 학생 하나 들어가 있어요.”
그러면서 상담실을 바라보는 표정이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모습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상담실에 상담하러 들어간 게 이상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요? 상담하러 들어간 거 아니에요?”
박훈이 묻자, 영어강사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아니 그게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순간, 박훈의 눈이 빛났다.
상담실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관하지 않았을 테지만, 하필 들어가 있는 사람이 눈엣가시 같은 김준영이었으니까.
그의 머리가 위험한 방향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분위기요?”
박훈이 집요하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목소리부터가 달랐다.
혀 속에 칼날을 숨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자 영어강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게···지금은 좀 잠잠한테 아까 큰 소리도 나고 막 그러더라고요. 같이 들어간 애 아빠가 국회의원이라 잘못하면 큰일 날 텐데. 누가 들어가 봐야 하나?”
그러면서 은근한 눈으로 박훈을 바라보았다.
“제가 슬쩍 한번 보고 올까요?”
박훈이 짙게 웃으며 말했다.
영어교사가 반색을 하면서 박훈을 바라보았다.
“아 맞다 준영 쌤이랑 친하지? 그럼 한번 슬쩍 가 보세요. 별거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그리곤 어여 가 보라는 듯 박훈에게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박훈이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천천히 상담실 쪽으로 다가갔다.
‘제발. 하나만 걸려라 그냥 아주 박살내 줄 테니까.’
그리곤 제발 무슨 일이 벌어졌길 기도하면서 준영의 당황한 얼굴을 상상했다.
‘그러게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지.’
다행히 상담실의 한쪽 면이 커다란 창문으로 되어 있었다.
비록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지만 완전히 가로막힌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박훈은 발소리를 죽인 채 천천히 상담실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가면 상담실 내부가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상담실 창문 앞에 다다른 그 순간.
차륵-
접혀 있던 블라인드가 반쯤 펴지고,
박훈과 준영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차륵-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러자 코코아를 마시고 있던 이아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왜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창문에 벌레 붙어 있어서.”
내가 말하자.
이아린이 정말 있는 대로 인상을 팍 찡그렸다.
“교무실에도 벌레가 있어요? 으 정말 싫다. 원래 교무실은 깨끗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학교든 학원이든 교무실은 깨끗해야만 했다. 그래야 벌레들이 자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벌레들은 생각보다 더 생명력이 끈질긴 것 같았다.
“그러게 없는 줄 알았는데 있네? 제법 큰 놈으로.”
내가 슬쩍 말하자 그녀가 정말 혐오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차는 입에 맞아?”
내가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네. 저 사실 코코아 좋아해요. 커피는 너무 써서,”
그러면서 다시 한 모금 코코아를 마신다.
“그래? 그럼 내가 말한 건 생각해 봤고?”
내가 웃으며 묻자 그녀가 코코아 잔을 내려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 앞에 앉아 내 몫의 잔을 들었다.
그리곤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는 건 너도 잘 알지?”
그러자 이아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렇죠.”
그리곤 한숨을 내쉰다. 흐린 얼굴을 보니 생각이 많은 것 같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에겐 제법 큰 도전일 테니까.
불현듯 아까의 일이 생각났다.
강의가 끝나고 난 뒤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가 깜짝 놀라던 표정이.
그리고 상담실에 와서 내가 입을 열었을 때의 말이.
‘너 제대로 한번 해 보지 않을래?’
처음 상담실에 들어와 내가 말했을 때.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뭘요?’
‘뭐긴 뭐겠어. 공부지.’
그러자 그녀가 짓던 표정이 생각났다.
분명 무언가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을 한 걸까 싶었지만, 설마.
지금까지 그녀에게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이 나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모의고사 점수만 놓고 보면 그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 따윈 손쉬운 일이라고 착각할 만하니까.
그러니 모의고사 점수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배경이나 돈을 노리고 그녀에게 이런 제안을 했을 법했다.
‘···저 과외 할 만한 돈 없는데요?’
한참 만에 그녀가 대답했다.
맹랑한 거짓말.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과외를 제안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마음이 급한 학생들이 한 시간당 30만 원에서 많게는 70만 원을 호가하는 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녀의 추측이 영 뜬금없는 이야기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네 실력을 전체적으로 다잡자는 말이야.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자.
그녀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성적 잘 나와요.’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확신이 없어 보였다.
‘정말?’
내가 다시 한 번 물자.
‘네. 제 성적 보셔서 아시잖아요. 좀만 더 하면 서율대 낮은 과는 가능할걸요?’
그녀의 눈동자가 정처를 잃고 떠돌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러자 그녀가 약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수능은 컨닝하기 힘들 텐데?’
순간,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언제까지 널 속이면서 살 거야? 남들은 속여도 너는 못 속이는데.’
탁-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그럼 이만 나가 보고, 결심이 생기면 그때 알려 줄래? 선생님이 다음 강의도 있어서 말이야.”
내가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님.”
“응?”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23살이면 ‘꽃’ 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보아하니 내가 수업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곱씹고 있던 모양이었다.
슬쩍 오글거렸지만.
그녀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 티를 낼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결심했다.
한 번만 더 손발이 오그라든 오징어가 되기로.
“무슨 소리야. 넌 이미 ‘꽃’인데. 아직 피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곳 말고 ‘우리’ 학원에서 한번 피워 보자. 어때?”
그러자.
천천히 이아린의 입이 열렸다.
* * *
[선생님. 학원 그만뒀어요. 언제부터 가면 될까요?]수화기 너머에서 이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목소리였다.
하긴 근 3년 만에 재수학원을 그만둔 것이니 홀가분해할 만도 하다.
“그래 그럼 내일이라도 우리 학원으로 올래? 내가 주소 보내 줄 테니까. 찾기 힘들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하고.”
그러자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에요. 요즘에 누가 길을 잃어요. 어플 보고 찾아가면 되니까. 괜찮아요. 내일 봬요!]통화를 종료한다.
어쩌다 보니 재수학원 내에서 학생을 빼돌린 셈이 됐지만, 그 문제는 학원 사람들과 잘 협의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그들로서도 장수생을 데리고 있는 것은 부담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녀의 아버지가 중진 국회의원이라고 할지라도 이아린이 서율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 솔직히 학원 입장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다르겠지만.’
그러니 재수학원 측에서는 장수생 한 사람을 정리하는 셈치고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기에 내가 이룬 실적도 인정되었고.
물론 그 덕분에 학원에서 계약서를 쓰자는 이야기를 거절하기 어려워졌지만, 아직 수능도 채 끝나지 않은 시기라는 핑계로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아린과의 통화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가자.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성형님과 은솔, 원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지성 쌤, 은솔 쌤, 원장 쌤 그리고 준영 쌤 안녕하세요!”
내 뒤를 따라 들어와 인사를 하는 김연아와.
“안녕하세요.”
김연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일한이 보였다.
조용하게 인사를 하고 슬쩍 교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박일한에게 지성 형님이 말을 걸었다.
“어, 일한아 유료화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잘되면 선생님 소고기 좀 사 주는 거야?”
“아 쌤! 아직 몰라요! 나와 봐야 안다니까요? 그냥 독자님들만 믿어야죠!”
“그래 열심히 하고. 연참도 팍팍 좀 하고 인마 알았지?”
그러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일한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봐 왔던 광경이지만 이상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쌤! 이제 기말고산데 혹시 안 해요?”
“뭘?”
“아니 저격방송이요! 이제 기말고사니까. 막 해야 하지 않아요? 어제 보니까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던데?”
정말 오랜만에 저격 방송 시기가 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김연아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해야지.”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대부분 내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 진짜요? 그럼 저번이랑 똑같이 해요? 다트 막 던지고?”
김연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달라야지 시즌2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