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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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화 All 마스터의 길 (2)
서점 안으로 들어서자 책 향기가 나를 맞이했다.
도서관의 낡은 먼지 냄새와는 다른 풋풋한 잉크 향과 맑은 종이 냄새. 서늘한 봄바람에 굳어 있던 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어디 보자······.”
아직 점심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선지 서점 안은 한산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과 서가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공시생으로 보이는 사내 두엇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문제집을 뒤적거리고 있다.
학원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게 봐오던 풍경이다.
‘문제집 코너는 어디 있지?’
사실 오늘 시내에 나온 것은 지성 형님의 미션 해결을 위해서였다.
‘수학.’
지성 형님이 맡고 있는 과목.
국어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사이라 평가받는 학문이기도 했다.
수포자들의 대학입시를 가로막는 통곡의 벽이자 문과의 적.
내게도 수학은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과목이었다.
‘너희들 학원에서 다 배웠지? 그러니까 5번부터 10번까지 나와서 풀어. 10분 줄 테니까. 그 안에 풀이랑 답 다 못 적을 것 같으면 알아서 엎드려뻗치고.’
중학교 때 수학선생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들고 있던 몽둥이와 칠판에 적혀 있던 문제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교실의 풍경.
형광등을 켜도 어둑어둑 하기만 했던 교실 안. 그리고 그 안을 가득 메운 소년들. 무채색의 교복 위로 삐죽삐죽 솟아 있는 솜털머리며, 교탁 옆을 위협적으로 두드리는 수학선생의 손바닥까지 어제 일처럼 확연했다.
그리고 그 교실 안, 혹시라도 제 이름이 불리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던 학생들 속에 어린 시절 내가 있었다.
‘그때부터 수학을 포기했었지.’
매번 나갈 때마다 엎어진 상태 그대로 쏟아지는 매질을 견뎌야 했으니까.
나중엔 오기가 생겨 수학을 하기 싫었다.
생각해 보면 지치지도 않고 내 번호를 부르던 선생도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시험당하는 쪽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험하는 쪽도 아니다.
시험하는 쪽과 시험당하는 쪽의 중간에서 차익을 취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학 문제집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들고 있던 문제집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돌아보자, 고등 자습서 코너 쪽 서가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획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갈색 단발머리에 작은 얼굴.
이 서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알바인 것 같은데··· 내가 뭐 잘못했나?
‘착각이겠지.’
신경을 끄고 보던 책에 집중했다. 매일 국어 지문만 보다가 수학공식을 보려니 괴로웠지만, 참고 계속 보다 보니 나름 재미있었다.
옛날 책들보다 삽화도 많았고, 예시도 쉬운 예시들을 사용해서 문턱을 낮춘 것이 주효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공대개그가 툭툭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휙-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도 갈색 단발이었다.
이번엔 시선을 느끼고 나서 바로 돌아본 것이라 어느 정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하얀 얼굴 가득 당황의 빛을 띄우고 있던 그녀.
작은 몸집에 어울리는 작은 머리, 어깨 바로 위까지 오는 짙은 갈색머리가 어울리는 스물 초반의 여성이다.
처음엔 내가 가르치던 학생일 수도 있겠다 싶어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내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뭐지?’
적당한 문제집 몇 권을 들고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저기···”
등 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그곳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휴대폰을 내밀고 있는 갈색머리 알바가 있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알바는 사슴같이 커다란 눈망울로 수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버···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
제법 크게 외친 소리라 그 소리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바의 얼굴이 더 이상 달아오를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익어 버렸다.
계속 놓아두는 것도 못할 짓인 것 같아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을 받아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본 알바는 아까 짐작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어려 보였다.
갓 스물이나 됐을까? 뭔가 범죄를 저지르는 느낌이다.
“감사한 일이긴 한데 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러자 알바는 고개를 저으며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저, 저도 생각보다 나이 많은데!”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집 사러 와서 이게 지금 무슨 꼴인지.
그때.
갑자기 누군가 팔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온다. 소매치기인 줄 알았지만······.
“오빠 누구야? 아는 사람?”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잔망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김연아가 있었다.
“···너 뭐 하니.”
황당한 마음에 팔을 빼려 하자,
“에이 오빠 왜 그래? 부끄러워서 그래? 언젠 좋다더니.”
녀석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사람들은 교복을 입고 있는 김연아를 바라보곤 아까와는 다른 어조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발목에 이상한 게 채워진다!
심지어 김연아의 학교도 이 근처이거늘···!
한편.
눈앞에 있던 알바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나이가 많다고··· 안 된다고···”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가르치는···”
그러자 알바의 안색이 한층 더 새파랗게 질렸다.
“심지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
이내, 알바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방금 전까지 수줍게 웃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절대 영도였다.
‘···쓰레기.’
사람들의 눈동자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단골 서점 하나를 잃는 순간이었다.
* * *
타닥타닥-
쉴 새 없이 키보드 버튼을 누른다. 한 문제를 끝낼 때마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
적당한 기온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옆자리에서 종알거리는 김연아만 없다면.
“선생님, 여기 좀 봐 봐요. 그래 서점까지 가서 알바 언니 꼬일 시간은 있고 자기 학생 얼굴 볼 시간은 없어요?”
······.
일의 능률이 0.5퍼센트 정도 저하되는 느낌이다.
“아까 그 언니 귀엽던데 그런 취향이었어요? 에이, 쌤 취향 은솔 쌤 아니었음?”
“조용히 해라. 선생님 바쁘다.”
타닥-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던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만들어 나간다.
모니터 안에 나열된 수백 개의 문제들. 아직 가공이 덜 끝난 따끈따끈한 것들이다.
100원의 가치도 지니지 않은, 학원이나 기출사이트에서 미끼용으로 던지는 문제들.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시험공부를 하게 되면 신나게 시험을 망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아무런 전략 없이 해당 범위의 문제를 인해전술로 쏟아놓은 것에 불과하니까.
‘백 문제 중에서 한 문제라도 시험에 나오면 다행이지.’
하지만 이 안에 USB에서 뽑아 온 진주를 자알 숨긴다면?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 아니 누군가에겐 값어치를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가치를 지닌 문제들로 탈바꿈한다.
“어 쌤? 이거 국어 문제가 아닌데요? 뭐야 x 제곱근? 쌤 수학도 할 줄 알아요?”
옆에 앉아 있던 김연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긴 신기할 만도 하다.
김연아의 입장에서 보면 소가 고기를 씹고 있는 광경일 테니까.
그것도 많이 먹어 본 듯, 매우 능숙하게.
“내가 못하는 게 어디 있겠니?”
내 말을 들은 김연아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리곤 이내 영악하게 구부러진다.
“헐 진짜요? 대박. 그럼 나 수학도···”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움직인다.
“바쁘니까 나중에.”
새로운 문제를 복사하고 붙여 넣은 뒤 세부 사항을 수정한다.
1. 다음을 만족하는 유리수 a, b에 대하여 a+b의 값을 구하여라. [2점]
4√5/2 × √32/15 = a, 2√10 × 3√4 × √5 = b
USB에 있는 이런 문제들을 유형별로 정리해 놓은 다음 문제들 사이에 배치하고.
4√5/4 × √32/10 = a, 2√5 × 3√2 × √10 = b
이렇게 숫자만 바꿔 수정하는 식으로.
USB에 있는 여러 문제들을 유형별로 정리해 놓은 다른 문제들 사이에 배치하고.
숫자만 바꿔 수정하는 식으로.
몇 차례 수정을 거치니 오히려 국어 보다 더 간단하고 깔끔하게 숲속에 나무를 숨길 수 있다.
‘쉬운데.’
이런 식으로 USB에서 추린 문제들을 기본으로 하되, 그것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도 다수 엮어서 하나의 시험대비 문제집을 만든다면 아무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수십 개의 문제들 중 하나인 것을.
자,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반복하는 것. 또 숫자를 바꾼 문제들의 답과 풀이를 작성하는 것이다.
문제의 양이 제법 많은 편이라 옮기고 정리하는 일만 해도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의 작업량.
이걸 다 풀어서 해답지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뭐, 그 점은 지성 형님께서 하셔야 할 몫이지만.
USB의 문제들은 어색하게 변환하면 오히려 가만히 둔 것보다 못한 상태로 변하니 단순 반복 작업이라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다.
타닥타닥-
같은 자세로 계속 작업을 하느라 뭉친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며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신다.
시계를 보니 선생들이 출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리를 마치고 인쇄할 시간을 고려하면 오히려 촉박한 시간.
국어 시험에 나올 문제들을 체크해 두기도 해야 할 테니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타닥-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문제.
[OO중학교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문제, 수학] [박지성]“끝났다.”
표지까지 마무리하고 문서 파일 상 인쇄 버튼을 클릭한다.
제2교무실 구석에 배치된 인쇄기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온다.
위잉-
쉴 새 없이 튀어 나오는 하얀 종이들.
잠시 뒤 내 손엔 제법 묵직한 무게의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지성 형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마법의 조미료이자, 내 발길의 초석.
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른다.
비록 지금은 친한 형님을 돕는 것뿐이지만, 언젠가는 먼 미래의 청사진을 보강해 줄 작업.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원가의 절대자.
국 영 수 사 과.
올 마스터의 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