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75
75
075화 역사를 잊은 아이돌에게 미래는 없다 (3)
찰칵찰칵찰칵-
쉴 세 없이 번쩍이는 플래시.
가까이 다가가면 머리칼을 태워 버릴 정도의 강렬한 조명.
티끌하나 묻어있지 않은 순백 공간 속에,
싱그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손나윤이 있었다.
그녀는 심플한 디자인의 책 한 권을 들고서 매력적인 웃음을 띄우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찰칵찰칵-
“나윤 씨 아주 좋아요. 이번엔 은은한 미소 한번 지어 주세요.”
그녀를 찍고 있던 사진작가가 뷰파인더에서 얼굴을 떼고 그녀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피워 올리자.
주변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시선을 돌려 스튜디오 안을 돌아보자.
스텝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이돌들 중에서 비주얼로는 탑이라더니, 가까이서 본 그녀의 모습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이야 그림 죽인다 죽여. 정말 이런 모델만 있으면 내가 진짜 돈 안 받고 찍고 싶어진다니까.”
뷰파인더로 손나윤을 보고 있던 사진작가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거 진짜 책 홍보용으로 쓰기엔 아까울 정돈데. 혹시 화보 낼 생각은 없어요?”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진작가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바로 예술혼을 불태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진 홍보 외에 다른 용도로 이 사진들이 사용될 일은 없었으니까.
일주일 전.
손나윤의 매니저에게 나는 추가금 대신 다른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바로.
‘손나윤이 내 책의 홍보모델로 활동할 것.’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업료 얼마를 더 받는 것보다 손나윤을 내 책의 홍보 모델로 쓰는 것이 더 이득이 것이라 생각해 던진 제안이었다.
돈이야 언제든 벌 수 있지만 손나윤 같은 탑클래스 아이돌을 홍보에 이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비록 요즘 손나윤의 이미지가 약간 안 좋아 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인기나 인지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실력 하나만은 확실하니까.’
거기다 내 책의 주제가 우리나라 고전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니만큼.
손나윤이 한국사 1급을 취득하고 난 이후에 홍보에 사용한다면, 그녀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내 책의 홍보에도 요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 된다고 하면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손나윤에 회사에서는 내 제안 거절하기는커녕, 손나윤이 한국사 1급만 취득할 수 있다면 CF 촬영까지 가능하다며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휴, 뭐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자, 다시 한 번 찍겠습니다. 나윤 씨. 이번엔 도시적인 느낌으로 부탁드려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사진작가가 얼굴가득 아쉬운 기색을 띄운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다시 촬영을 시작한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시험을 보기 전에 손나윤과 CF 촬영까지 마무리해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내가 원고를 넘기기도 전이라 본격적인 광고 영상을 찍을 수는 없었다.
대신.
‘손나윤이라고요!? 바로 표지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내가 손나윤을 섭외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출판사 측에서 사흘 만에 바로 내 책의 표지 도안을 완성해서 가져왔다.
거기다 알아서 기존 계약 비율에서 10%를 더 조정해 주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입안에 사탕이 떨어진 상황.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태도였다.
덕분에 CF는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홍보용으로 사용할 스틸사진은 미리 찍을 수 있었다.
“자자 다시 한 번 갑니다. 나윤 씨 들고 계신 책을 약간 아래로 해 주세요. 그리고 음 이번엔 상큼한 미소 부탁드려요.”
사진작가가 말했다.
그러자 손나윤이 살짝 웃으면서 책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작가의 추상적인 주문에 맞춰 1분에도 몇 번씩 표정을 바꾸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났다.
그러자 스튜디오 한쪽에서 대기하던 손나윤의 매니저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응? 수고?
내가 한 일이라곤 아까 사진을 한 장 찍은 것밖에 없었으니 딱히 수고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수고를 했다면 나보다는 두 시간 내내 수십 개의 포즈를 취해보였던 손나윤이 더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수고는요 무슨. 이제부터 수고해야 할 분도 계신데.”
그리고 스튜디오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촬영을 마치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손나윤이 있었다.
* * *
“야. 대박! 내가 지금 뭐 보고 왔는지 알아?”
학원 수업이 끝난 후.
한창 달달한 것이 땡길 시간.
김연아와 일단의 무리들이 편의점 창가에 앉아 군것질 거리들을 박살내고 있을 때였다.
학원에 놔두고 있어서 잠깐 올라갔다 온 친구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각각 군것질거리에 집중하고 있던 친구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봤는데?”
그들 중 김연아가 대표로 묻자.
호들갑을 떨던 친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학원에···”
그러더니 약간 뜸을 들이다가 말을 잇는다.
“···연예인 왔음!”
그 순간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친구들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야 그게 말이 되냐? 이 시간에 왜 학원에 연예인이 와?”
“설마 너 은솔 쌤 보고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럴 수도 있겠다. 은솔 쌤이면 착각할 만하니까.”
모두들 믿어 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호들갑을 떨던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진짜라니까? 학원 앞에 그 연예인 차도 있었다니까? 그 큰 차 있잖아 그 뭐라더라?”
그리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아 그 스··· 뭐로 시작하는 차 있었다니까? 그거 뭐지?”
그때 편의점 한쪽에서 조용하게 휴대폰을 하고 있던 친구가 슬쩍 말을 던졌다.
“스타크래프트 말하는 거야?”
그러자 호들갑을 떨던 친구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게임 아님?”
누군가 말하자.
차의 이름을 알려 준 친구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왜 그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거 있잖아. 큰 거. 그게 스타크래프트라는 데? 머신건청년단 오빠들도 그 차타고 다닌 다더라.”
그녀의 입에서 머신건청년단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김연아를 제외한 친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진짜? 머신건청년단도 그 차 타고 다녀?
“어, 응 그렇다는데?”
그러자 순식간에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소녀들은 머신건 청년단의 멤버들을 입에 올리면서 연신 꺅꺅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학원에 연예인 왔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연아만은 달랐다.
“확실하게 본 거야?”
김연아가 호들갑을 떨던 친구에게 물었다.
하지만 한창 머신건청년단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그녀는 김연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의아한 눈으로 김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뭘?”
김연아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 그 연예인. 확실하게 올라가는 거 보고 온 거냐고.”
친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보진 않았는데, 거기 학원 앞에 준영 쌤 차 세우는데, 거기에 그 스타크래프트가 스윽 들어가더라고. 그러니까 맞지 않을까?”
그러자 머신건청년단으로 흐르던 대화의 흐름이 다시 준영에게로 돌아갔다.
“혹시 준영 쌤 연예인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친구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
하지만 말을 꺼낸 친구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혹시 몰라. 왜 요즘 방송 많이 나가잖아. 그러니까···”
* * *
짝-
내가 박수를 치자.
“엄마야!”
깜짝 놀란 손나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녀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나윤 씨 집중 안 하실 건가요?”
그러자 손나윤이 헤헤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었을 테니까.
“죄송해요오. 이제 안 졸게요!”
그러면서 나를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는데.
글쎄, 벌써 저 이야기만 3번째 듣는 것이라 그리 신용이 가지는 않았다.
학원에 있는 소형 교실.
빔 프로젝터의 빛을 맞으며 그녀와 1대1 강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손나윤 측에서 먼저 약속을 지킨 만큼 나도 손나윤을 합격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켜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채 20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아무리 그녀가 청소년기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다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안타까울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지금의 수준은 딱 중학생 정도의 집중력이다.
중학생들은 평균 15분 정도는 수업에 집중을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때.
똑똑똑-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내가 말하자.
손나윤의 매니저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어 오빠! 벌써 시간 됐어?”
내 앞에 앉아 있던 손나윤이 반색을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매니저의 입에서 강의시간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교실 안으로 들어온 매니저는 그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수업시간이 다 끝나기는커녕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밝게 빛나던 손나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수업 중에는 되도록 방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데요.”
그러자 그가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그러면서 말을 숨기는 모습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까 손나윤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그의 팔불출 끼가 또다시 분출된 것 같았다.
하긴 11시가 넘은 시간.
작은 학원 교실에 한창 때의 남녀 둘이 수업을 진행한다면 한 번쯤 걱정할 만했으니까.
하지만.
“그거 제가 박수친 소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앞으로는 걱정되시더라도 좀 자제해 주세요. 수업에 방해되니까.”
이유야 어쨌든 지금은 수업을 중이었다.
이렇게 한 번씩 누군가 들어올 때마다 수업의 흐름이 딱딱 끊기는 만큼, 속 이런 식이라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매니저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아마 자기 스스로도 잘못된 행위라는 걸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럼 좀 있다가 뵙죠.”
찰칵-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손나윤이 구세주를 잃어버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이 시간은 고통스런 시간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처음 몇 분쯤은 집중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젠 그나마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10월 한국사는커녕 그때까지 진도도 맞추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사전에 매니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선생님. 저희 나윤이가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할 텐데, 혹시···이런 경우에 사용하시는 방법 같은 게 있나요?’
방법.
물론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갓 올라온 학생들의 경우 학원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때문에 강사가 흥미로운 수업자료를 활용하거나 위트와 유머로 학생들의 집중을 끌어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모두 학기 초나 방학 같이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었다.
그러니 손나윤처럼 시험을 2달 남짓 남겨 놓은 시점에서는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나는 손나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잠깐 사이 다시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손나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