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78
78
078화 수확의 계절 (1)
“두 분 다 필요한 서류 가져오셨죠?”
내 앞에 앉아 있던 교육청 직원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학원 인수인계에 필요한 서류들을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잠시 서류를 살펴보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음, 학원설립 운영 등록증, 학원 매매계약서 원본, 기본증명서, 건축물 대장까지 다 맞게 가져오셨네요.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하죠.”
그리곤 나와 원장님에게 서류 몇 장을 들이밀었다.
“자, 그럼 여기 학원변경등록 신청서랑 학원인계인수서, 성범죄 조회동의서 작성해 주시고 서명 란에 도장까지 찍어 주시면 돼요.”
나는 직원이 준 서류를 들어 한 번 쭉 살펴보았다.
서류의 이름들은 제법 번지르르 해 보였지만, 천천히 내용을 살펴보니 의외로 별다른 건 없었다.
‘학원을 인수함에 있어 현재 학원의 비치장부 및 학원원칙을 인수하였고, 시설실비 현황을 확인해 본 결과 대장과 일치함을 확인···’
대부분 내가 학원을 인수인계할 때 학원에 대한 사항들을 모두 다 숙지했는지. 그로 인한 책임을 온전히 내게 있는 것을 인정하는 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 외에는 인수인인 나와 인계인인 원장님의 인적사항을 요구하는 것들뿐이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켓 안주머니에서 일한이가 준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원장님도 똑같은 만년필을 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일한이 이 녀석 선물 살 때 똑같은 걸로 통일한 것 같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천천히 서류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나와 원장님이 서명을 다 마치자 서류들을 확인한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들을 갈무리했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변경되면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드릴 거예요. 빠르면 한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좀 더 걸릴 수도 있으니까. 유념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교육청에서도 행정적인 처리를 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서류를 정리하던 직원이 갑자기 깜짝 놀란 듯 ‘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참 이거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저희 쪽에서 연락이 가면 구청 가셔서 등록면허세 납부하시고 다시 교육청에 방문해 주셔야 해요. 그때 학원 설립 운영등록 증명서 작성까지 해 주셔야 하니까.”
이제 보니 제법 중요한 사실을 말해 주지 않고 넘어갈 뻔한 것 같았다.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직원이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미안한 표정을 짓던 직원이 서류를 챙겨들고 상담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교육청에서의 업무가 끝나자.
“김준영 선생님. 아니 이젠 김준영 원장님이라고 불러 드려야겠네요. 축하드려요. 전 적어도 1년은 넘게 걸릴 줄 알았는데. 올 해가 가기 전에 약속을 지키셨어요.”
원장님이 웃는 얼굴로 내게 악수를 청해 왔다.
나는 웃는 얼굴로 그와 악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오늘.
원장님에게서 학원을 인수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행정적인 업무가 남았지만 사실상 오늘부로 원장님 소유의 학원이 온전히 내 학원이 된 것이다.
그러자.
심장어림이 간질거렸다.
그전까진 학원에서 원장 업무를 맡고 있긴 했지만, ‘나의 학원’이라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식 계약을 마친 지금은 달랐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학원’이라는 생각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시 감회에 빠져 있던 그때.
“그나저나 학원 이름은 정말 그걸로 하실 건가요?”
원장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내가 선택한 학원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서류를 확인하던 직원이 학원 이름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았다.
하긴 흔한 이름은 아니긴 하지.
나는 슬쩍 웃으면서 원장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 이름이 제일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 * *
“‘준영학원’은 어때요?”
“내 이름이잖아. 안 돼.”
“‘JY스쿨’은?”
“똑같은 이유로 기각.”
“최강학원!”
“이미 있어.”
“공부천국!”
“김밥집 같아.”
내가 아까 학원 이름을 생각 중이라는 말을 던진 다음부터, 김연아가 쉴 새 없이 학원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던진 이름들 중 하나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연아가 던진 이름들 중 대다수가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에 ‘학원’이나 ‘스쿨’을 붙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질보다 양이라는 건가?’
하지만 내가 계속 김연아가 던진 이름들을 ‘탈락’시키자 녀석도 느끼는 게 있었던지 잠시 입을 멈추고 고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나와 김연아의 만담을 지켜보고 있던 교무실 사람들이 귀엽다는 듯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짝-
“쌤! 이건 어때요?”
김연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김연아에게 향했다.
“뭔데? 이번에도 또 이상한 거?”
내가 말하자 김연아가 코웃음을 치며 내게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훗, 뭘 모르는 말씀. 이번에는 확실하니까. 깜짝 놀랄 준비나 하시라고요!”
그러더니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봐 주길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름이기에 이리 뜸을 들이나 싶어, 슬쩍 웃으면서 녀석에게 물었다.
“뭔데?”
그러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격학원’이요!”
말을 마친 녀석이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때요? 이번엔 괜찮죠?”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기각.”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김연아의 표정이 불퉁해졌다.
“아 왜요. 방송 광고도 되고 좋잖아요.”
김연아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사실 인터넷 방송과 학원의 연계만 생각한다면 ‘저격학원’이라는 이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인터넷 방송에 묶여 있을 수는 없지.’
분명 내가 인지도를 쌓은 것은 인터넷 방송이지만, 그렇다고 평생 동안 인터넷 방송과 학원을 병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언젠간 그만둬야만 하는 방송의 이름을 내 학원 이름으로 쓸 수는 없었다.
“방송이랑 학원은 또 다르니까. 아깝지만 이번에도 탈락.”
내가 말하자.
“그럼 뭘로 할 건데요?”
김연아가 이젠 생각도 안 난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약간 미안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학원 이름이라는 것이 한번 지으면 거의 끝까지 가는 것이니만큼 충분히 생각하고 지어야만 하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김연아와 나만 주구장창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좋은 이름 말씀해 주시는 분 소원하나 들어드릴게요.”
나는 교무실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학원이라는 곳이 나 혼자만의 공간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으로 일궈 나가는 곳이니만큼,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싶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나와 김연아의 만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점차 흥미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지성 형님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약간 불안해졌다.
원래 소원권이라는 게 백지수표랑 똑같은 거니까.
작정하고 이상한 걸 바라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게 소원권이니 만큼, 너무 쉽게 소원권을 입에 올린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됐다.
하지만.
‘설마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뭐 이상한 걸 바라겠어?’
이미 뱉은 말이니 만큼 지켜야만 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21세기 학원’이나 ‘밀레니엄 학원’ 어떨까요? 아니면 ‘신세대 학원’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은솔의 바알간 입술 사이에서 아재스러운 이름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교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벙 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언제 적 밀레니엄이야···
마음 같아서야 아까 김연아에게 했듯이 바로 ‘기각’을 외쳐 버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차마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녀의 기대어린 시선이 바늘처럼 쿡쿡 나를 찔렀다.
나는 슬쩍 지성형님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지성 형님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무래도 우리는 입시 학원이니까. 좀 직관적인 이름이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일등급 학원’ 같은 거”
지성 형님이 입을 열자 은솔의 얼굴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그럴 듯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계속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면 야수의 심정으로 거절했을 테니까.
‘밀레니엄은 진짜 아니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성형님이 던진 이름도 급조한 것 치곤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적당히 입에 붙으면서 학원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육점도 아니고 일등급이 뭐냐 일등급이.”
원장님이 지성 형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 삼촌은 꼭 제가 말할 때만 그러신다니까?”
지성 형님이 웃는 표정으로 원장님에게 툴툴거렸다.
그리곤 슬쩍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 쌤은 생각해 둔 거 없어?”
그러자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음.
사실 생각해 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내가 막 학원 일을 시작할 때부터 생각했던 이름.
하루하루 힘겨운 와중에서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내가 학원을 차렸을 때 꼭 붙이고 싶었던 이름이 하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뜻도 좋고 어감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이름이니만큼, 이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있긴 하죠.”
내가 말하자 사람들이 기대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가 생각한 이름이 뭔가 특별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 부담됐지만 나름 괜찮은 반응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저는 이카···”
그런데.
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설마, 이카루스나 뭐 이런 건 아니겠죠.”
김연아가 말을 가로챘다.
그녀의 말에 지성 형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에이, 설마 그거겠어?”
“그쵸? 너무 흔하기도 하고, 걔 날아가다가 떨어지기도 했잖아요.”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들의 추측이 맞았으니까.
“그래도 이미지는 좋지 않아?”
내가 떨떠름한 어조로 말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뭔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들이었다.
“진짜예요? 헐 쌤 나한테 뭐라 그럴게 아니네. 에이 차라리 ‘저격학원’이 낫겠다.”
김연아가 말했다.
내가 설마 싶어 지성 형님과 은솔을 바라보자.
그들이 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충격이었다.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별로였다고 해도 설마 은솔이나 김연아에게까지 무시 받을 줄은 몰랐다.
“이거 어렵네.”
지성 형님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여러 이름들이 나왔지만 딱히 ‘이거다’하는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이건 어때요?”
가만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원장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네. 아무래도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요.”
내가 말하자.
“허허 이거 뿌듯하네요.”
원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학원 이름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학원의 이름은 바로.
‘소라게 입시전문 학원’
원장님이 말씀하셨던 ‘소라게 학원’에 약간 변형을 가한 이름이었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고.
나름 뜻도 괜찮았다.
제 몸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여행을 하는 학생들에게, 단단하고 안락한 안식처가 되어 주겠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카톡-
[손나윤 : 선생님! 저 합격 했어요 ㅠㅠ 오늘 바로 찾아 뵐 테니까 저녁 먹지 말고 계세요! 으앙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손나윤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순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행운은 준비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라고 세네카가 말했던 것처럼.
그 동안 준비했었던 것들이 반가운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학원의 인수와 손나윤의 합격.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능과 출판까지.
누군가에겐 잔인한 계절일지 모르는 10월이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풍요로운 계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카톡-
또다시 누군가에서 카톡이 도착했다.
손나윤인가 싶어 카톡을 확인하자.
[은솔 : 선생님. 계속 생각해봤는데 ‘뉴밀레니엄 학원’도 괜찮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