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8
8
008화 All 마스터의 길 (3)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흔들거린다.
내일이 오기까지 3시간 정도 남아 있다.
시험을 준비할 마지막 기회이기에 학생들은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에도 쉽게 인상을 찌푸리며 문제를 푼다.
후우-
한 문제를 풀 때마다 한숨 하나씩을 내뱉으며, 속절없이 돌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는 학생들.
그들의 앞에 문제집을 들고 있는 지성이 있다.
“30분 남았다. 한숨 쉬지 말고 풀어.”
지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책상에 닿을 듯 머리를 숙이고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든다.
“…….”
학생들은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배신감을 담은 눈빛을 지성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때마다 지성은 흔들리려는 표정을 억지로 다잡으며, 얼굴을 장승처럼 굳혔다.
‘그래 오늘만은 어쩔 수 없어.’
지성은 스스로 변명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꾸 손에 들고 있는 예상 문제집이 예리한 칼날로 변해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사실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이후에 스스로의 힘으로 응용문제를 풀게 만드는 게 평소 지성의 수업 스타일.
하지만 오늘은 그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의 교수법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른 방향의 교습법이란 원장의 위협이 없는 상황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않을.
학생들의 이해 따위는 집어치우고, 유형별 문제들을 미친 듯이 풀게 만들어 오차 범주를 좁혀 나가는 비겁한 방식이었으니까.
이 방식을 사용하면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은 엄청나게 커지지만, 단기적인 성적은 올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가르치는 입장에선 이것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었기에 많은 강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방식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가성비 좋아 보이는 방식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다.
‘이 방식은 학생들이 수학을 증오하게 만드니까.’
학생들을 문제 푸는 가축으로 만들고, 선생을 조련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OO중학교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문제, 수학] [박지성]지성은 손에 들고 있는 문제집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개의 문제들 중 빨간색으로 체크되어 있는 문제 몇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같이 엮여 있는 문제들과 비교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뭔가 특별해 보였다.
‘형님 제가 체크해 드린 문제들은 꼭 강의하세요. 무조건 하셔야 됩니다. 나가시더라도 원장한테 한 방 먹이고 나가셔야죠.’
지성은 자신에게 문제집을 건네던 김준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3년간 제2교무실에서 같이 지내 온, 원장의 강압 속에서 고생해 온 전우이자 친한 동생.
언제나 깊이 고민하고 그만큼 더 노력하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던 친구였다.
때문에 그동안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었다.
자신이야 젊었을 때 어느 정도 재산도 벌어 놓았고 경력도 쌓을 수 있었지만, 준영이 학원가에 뛰어든 시기는 백이 들어와 하나만 승리하는 죽음의 시기였으니까.
그래서 처음 준영이 건넨 문제집을 보았을 때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지금이야 퇴물 취급받으며 원장에게 수모를 당하는 처지지만 어찌 됐든 자신은 15년차 수학 강사고, 준영은 5년차 국어 강사였으니까.
일주일 전이었다면 고마움을 느낌과 동시에 자괴감에 빠져 버렸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 지성은 준영에게 문제집을 건네받는 그 순간, 오히려 기대감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준영이 뽑아 준 문제들, 그중에서도 준영이 중요하다고 체크해 둔 문제의 경우 자신이 보아도 OO중학교의 내신 스타일을 정확하게 꿰뚫지 않고서는 정리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지금까지 국어만 강의하던 사람의 안목이라고 보기엔 소름끼칠 정도의 정확도였다.
사실 요 며칠 사이 김준영의 성격이나 능력이 그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준영이 원장의 횡포와 박훈의 조롱을 잠재우고, 그들을 물먹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긴 했지만, 그것이 온전히 준형의 능력이라는 것에는 약간의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있다는 사실만을 파악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문제집을 펼쳐 본 이후엔 그 의심이 거의 다 사라졌다.
게다가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도박을 하겠다면 아직 열리지 않은 패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뭔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지성이 준영을 믿게 만들었다.
지성은 준영이 준 문제집과 자신의 강의가 더해진다면 원장의 간섭 때문에 어그러진 학생들의 성취도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탁탁탁.
지성은 교탁을 쳤다.
시험지에 코를 박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자, 시간 됐다. 중요 문제들 체크하고 풀이할 테니까 집중해. 먼저 5번 문제.”
준영이 빨간색으로 체크한 문제들 중 하나다.
지성은 칠판으로 다가가 문제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 없으니까 한 번씩만 풀이하고 바로바로 넘어갈 거야. 그러니까 질문은 다 끝난 다음에 받을게.”
5. 두 자연수 m, n에 대하여
√1.03 × n/m = 0.3 일 때, m-n 의 값을 구하여라. [3점]
(m, n은 서로소)
바로 풀이가 이어진다.
1.03 = 103-10/90 = 93/90 = 31/30, 0.3 = 3/9 = 1/3
이므로 주어진 식은
√31/30 × n/m = 1/3 양변을 제곱하면
31/30 × n/m = ∴ n/m = 1/9 × 30/31 = 10/93
따라서 m = 93, n = 10
m-n = 83 이다.
학생들이 정신없이 풀이를 받아 적는다.
사각거리는 소리, 학생들의 눈동자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풀려 간다.
“자, 여기까지. 내가 풀이한 문제들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나머지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도 수록해 놨으니까 다 풀어 봐. 오답 체크하는 건 당연한 거 알지? 질문 있는 사람?”
아까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학생들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든다. 지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은 눈을 빛내며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정말 그만두는 거예요?”
지성의 입이 턱 막혀 버렸다.
학생들에게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왜요? 우리 졸업할 때까지 봐준다더니. 가지 마세요!”
“맞아요! 가지 마요! 이번에 성적 꼭 올릴 테니까.”
학생들이 알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성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았는지 묻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그때.
창문 밖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지나가는 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지성의 입이 다시 굳게 닫혔다.
몇 분 뒤, 강의가 끝나고.
찰칵-
지성이 교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 선생님. 이제야 좀 각성하셨군요?”
비웃음을 띄고 있는 원장의 모습을 보니 아마 좋은 소리가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지성의 표정도 자연히 퉁명스럽게 변했다.
“뭘 말입니까?”
지성의 목소리가 서늘하다. 그러자 원장은 바로 말을 덧붙였다.
“아니, 박 선생님이 이제야 제 말을 듣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이죠. 송충이들한테 솔잎을 먹여야지 고기를 먹이면 쓰겠습니까? 진즉 이렇게 하셨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숫제 시비를 거는 투다.
심지어 자기 원생들을 송충이에 비교하는 인성이라니. 지성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 학생들이 워낙 선생님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급여 협상만 다시 하시면 얼마든지 수업 하실 수 있게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법만 오늘처럼 하신다면 말이죠. 그래도 오늘은 아주 좋았어요.”
지성은 웃고 있는 원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곤 원장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등을 돌려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원장이 뭐라 뭐라 지껄이는 것 같았으나. 그에게 닿지는 않았다.
* * *
다음날.
지성은 교무실에서 짐을 챙겼다.
3년간 머물렀던 곳이라선지 쓸모없는 것을 다 버렸는데도 제법 짐이 많이 나왔다.
다음에 누가 쓰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책상을 털고 닦았지만, 워낙에 오래된 것이라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준영.’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바로 옆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준영의 자리. 자신의 것보다 더 오래되고 낡은 책상과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컴퓨터.
갑작스러운 준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었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르지.’
지성은 준영의 자리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조만간 준영이 이 자리를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
“박 쌤 떠나신다면서요? 갑자기 이렇게…”
지성이 짐 정리를 거반 끝내 놨을 때.
교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학생들 수업이 시작된 이후라 교무실 안에 있는 사람은 적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 지성에게 인사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순간만큼은 지성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박 쌤! 그 동안 고생하셨어요. 다음에 술 한 잔 하는 거죠?”
사적인 교류가 없던 사람들도, 기분 좋게 악수를 하며 말을 건넸다.
“그럼요. 날짜만 잡으세요. 제 연락처 아시죠?”
그때마다 지성은 아쉬움을 남기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음을 기약했다.
좋은 일로 떠나는 것이었다면, 회식이라도 하면서 3년간의 회포를 풀었을 테지만, 원장과의 대립 때문에 떠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성은 좋은 기분으로 이 학원에서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찰칵-
그가 문을 닫고 나오기 전까지만.
문을 닫고 나와 입구로 향하던 도중 이 학원에서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쳐야만 했다.
“박 쌤 뭐하는 짓이에요. 아니 지금 애들 성적을 떨어뜨려 놓고 야반도주라도 하려는 거예요? 어제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 책임지겠다는 말이 아니라, 알아서 튀겠다는 말이었어요? 허참 황당하네.”
원장이었다.
두꺼비 같은 얼굴에 당황과 분노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
지성은 대꾸하지 않고, 짐이 들어 있는 박스를 든 상태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원장은 구둣발을 뻗어 지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허 박 쌤, 제가 말했었죠? 떨어진 애들 성적 못 올리면 못 나간다고. 진짜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해요. 이 바닥 그리 넓지 않은 거 알 만한 나이 아닙니까?”
칠판을 긁는 듯한 원장의 목소리. 지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키시죠.”
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러자 원장은 한층 더 목소리를 깔았다.
“아니 억지가 아니라.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죠.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도와 줬는데.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으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제발 박 쌤 탓에 떨어진 애들 성적만 좀 돌려놓고 가라고요. 자기가 싼 똥만 잘 치우고 가면 누가 뭐라 합니까?”
그러자,
지성은 차게 웃었다.
그리곤 턱짓으로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 교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성적 한번 확인해 보시고 말씀하세요.”
황당함에 물든 원장의 얼굴.
그가 창문 너머로 교실을 바라보자.
그곳에선 지성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시험지를 뽑아들고 창문을 향해 흔들고 있었다.
86점, 90점, 95점, 97점, 98점.
‘꼴반’이라 불리는 아이들의 혁명.
“…….”
원장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반쯤 벌렸다.
그 옆으로, 지성은 박스를 든 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다.
* * *
“…….”
나는 지성 형님의 퇴장을 끝까지 지켜본 뒤 돌아섰다.
이쯤 확인했으면 됐다.
이 USB는 진짜고 충분히 모든 과목에서 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꾸욱-
나는 백업해 놓은 자료들을 떠올리며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우선 내 앞길을 향해 일로매진해야 할 순간.
모든 것이 확연해졌다.
이제부터는 가차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