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82
82
082화 마지막 수능 (1)
탁-
택시 문이 닫혔다.
“어서 오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운전석에 앉아있던 택시기사가 이아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반백의 머리칼, 곱게 휜 눈가 주름이 돋보이는 초로의 사내였다.
‘소라게 학원’의 원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를 바라보며, 아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우리 고등학교로 가 주세요.”
아침이라 그런지 아이린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서 나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하지만 반백의 기사는 슬쩍 웃으며 운전을 시작할 뿐이다.
“아 가우리 고요? 네 알겠습니다.”
택시가 천천히 도로를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차창에 뿌연 김이 서리고, 깜박거리는 신호등 불빛이 흐리게 보였다.
몇 번의 정지와 몇 번의 출발.
관성에 밀린 아린의 몸이 카시트 깊이 묻혔다.
[···오늘,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치러지는 지역의 관공서와 기업체의 출근시간과 학교의 등교시간이 오전 10시로 한 시간 가량 늦춰집니다. 또···]그녀의 귀에 오늘이 수능임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들렸다.
벌써 4번째 맞는 수능의 아침.
아린은 ‘이대로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벌써 4번째 보는 것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데다가.
아침에 들었던 말이 그녀의 컨디션을 폭삭 주저앉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명심해라. 올해까지야.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이번에 떨어지면 더 이상 헛짓거리하지 말고 아버지 말대로 해.’
감람석처럼 차가운 목소리.
단단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자 또다시 그녀의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딴에는 격려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저런 식의 격려는 오히려 독이라는 것을 아버지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학생이에요?”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택시기사가 말을 건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떨림이 멎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의 손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택시기사의 질문을 떠올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학생은 아니에요.”
씁쓸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학생시절은 이미 4년 전에 끝났으니까.
이제는 학생도 아니면서 학생인 척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아린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 미안해요. 너무 어려 보여서 난 또 학생인 줄 알았지. 왜 오늘 수능이라서 학생들이 이 시간에 시험 보러 가니까.”
그녀의 표정을 오해한 택시 기사가 당황한 낯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수능이라 착각했나보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 나이를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택시 안의 공기가 어색해졌다.
그런데 잠시 뒤.
“···시험 보러가는 거 맞아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아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택시기사가 눈에 이채를 띠며 입을 열었다.
“아···그래요? 아이고 이거 그럼 빨리 가야하는 거 아니야? 늦진 않았죠?”
그리곤 시간을 보며 늦지는 않았는지, 혹시 늦었으면 속도를 더 내겠다는 말을 그녀에게 던졌다.
근래에 보기 드문 친절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7시.
8시 10분까지가 입실 시간이었으니, 여기서 더 속도를 낼 필요는 없었다.
이아린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 넉넉해요. 천천히 가주셔도 돼요.”
그녀의 말을 들은 택시기사가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운전대를 움직였다.
이아린은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그녀가 시험을 볼 고등학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우리 고등학교.’
공교롭게도 그곳은 이아린이 고3 때 수능을 봤던 곳이었다.
‘4년 만이네···’
지난 4년간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처음 수능을 봤을 때의 설렘과 두 번째 수능을 봤을 때의 기대.
세 번째 수능을 봤을 때의 희망과 좌절이 순식간에 그녀를 찾아왔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의 모습이 아버지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차마 저 안으로 다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기···”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세게 떨리던 그녀의 몸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네?”
이아린이 멍한 표정으로 묻자, 택시기사가 인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착했는데요?”
택시기사의 말을 들은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곧 허둥지둥 지갑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 안 주셔도 돼요. 오늘 같은 날에 무슨.”
택시기사가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만류했다.
지갑에서 막 카드를 꺼내든 이아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택시기사를 바라보았다.
“네? 아니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택시기사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냥 초콜릿 대신이라고 생각하시고, 시험 잘 보세요.”
그러면서 어서 가 보라는 듯 시계를 가리켰다.
7시 30분.
학교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있으니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갑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시험 잘 볼게요.”
그리곤 택시기사에게 인사하며 차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때.
“힘내요. 올 해는 꼭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예요. 파이팅!”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응원이었기에 더 따뜻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격려가 가족의 격려보다 더 힘이 되다니.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그녀는 잠시, 떠나간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리곤 천천히 교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꽹과리나 장구를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나.
이따금 터지는 박수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같은 것들이 그녀가 교문 근처로 다가갈수록 점점 크게 들려왔다.
“휴.”
그녀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기사의 응원 덕분에 약간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지금 교문 앞 펼쳐져 있을 풍경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사람들로 꽉 차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교문 근처로 다가가자.
기다란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는 남학생들.
초콜릿이나 나눠주는 여학생들.
보온병을 들고 사람들에게 커피를 권하고 있는 선생님들까지.
수험생들을 응원하러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왠지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앞을 지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들처럼 그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아린의 재수가 한 해 두 해 길어질수록 점점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았다.
‘가만히 있었던 내가 잘못한 거겠지.’
그녀가 제자리걸음도 힘겨워 할 동안 그들은 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버렸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있는 것은 곧 죄인 시대. 지난 4년간 줄곧 죄인의 옷을 입고 있었던 그녀는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교문에 몰린 수험생들이 어느 정도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이아린이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우고 있는 준영과.
“아린 언니 파이팅!”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연아.
“아침은 먹었니?”
따뜻한 코코아를 내밀고 있는 은솔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선생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아린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준영이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오긴. 제자가 중요한 시험을 본다니까. 아침 일찍 차타고 왔지.”
그리곤 아린에게 크고 작은 상자 두 개를 내밀었다.
아린은 준영이 내민 상자들을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도시락이랑 초콜릿이니까. 긴장된다고 굶지 말고 꼭 챙겨서 먹어. 시험은 체력싸움이야 알았지?”
준영이 말했다.
뭉클-
순간, 그녀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약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준영을 믿고 따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해 줄줄은 몰랐다.
아린은 새삼스러운, 그리고 복잡한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두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내.
그런 아린을 바라보던 준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떨지 말고 잘 보고 와.”
“아린 언니 파이팅!”
“아린아 잘 보고와!”
이아린은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 *
“다들 부정행위 하시다가 걸리면 바로 퇴실조치 되는 거 아시죠? 5분 뒤 부터는 아무데도 못가니까. 화장실 가실 분 있으면 지금 빨리 다녀오세요.”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다섯 명의 수험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던 교실의 분위기가 살짝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화장실에 갔던 수험생들이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 순간.
띵동댕동-
[그럼 지금부터 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실에 계신 감독관 여러분들은···]스피커에서 시험 준비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약간 풀어져있던 수험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교실에 들어와 있던 감독관들이 교실 문들 닫고, 시험지를 배부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험지 나눠드리겠습니다. 방송 나오기 전에 먼저 펴보는 사람 있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해서 바로 퇴실 조치할 테니까. 조심해주세요.”
시험지 정리를 끝낸 감독관이 교탁에 서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긴장한 낯빛으로 감독관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손 머리 위로 올려주세요.”
감독관이 말하자, 수험생들이 자신들의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곧 감독관들이 교실을 오가며 시험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착-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손가락을 주무르고 있던 이아린의 앞에도 시험지가 놓였다.
이아린은 천천히 자신 앞에 놓인 시험지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네 번째 보는 수능이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익숙해지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긴장감은 더해가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해 주십시오.]스피커에서 시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러자 교실 안이 곧 시험지 넘기는 소리와 수험생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이아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험지를 받아 넘겼다.
긴장으로 인해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지경.
그런데.
“어라?”
시험 문제를 본 그녀의 입에서 짤막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 시험지···어딘가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