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89
89
089화 그녀의 조건 (2)
“쌤! 호랑이에요 호랑이! 으아아 완전 귀여워!”
김연아가 난리를 치면서 창문 옆으로 다가가자 사람들이 시선이 김연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백호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김연아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버스 안에 있어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네다섯 배는 더 큰 맹수에게 귀엽다니···녀석의 신경 굵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듯, 김연아 옆에 있던 김자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연아야 안 무서워?”
그녀의 말에 주변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250kg은 넘어 보이는 호랑이가 얇은 유리창 바로 앞에 와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연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응? 언닌 무서워? 이렇게 귀여운 데? 굼실굼실 고양이 같잖아?”
그리곤 자신의 앞에 멈춰선 호랑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호랑아! 너 진짜 귀엽다. 언니랑 하이파이브 한 번 할까?”
그러자 주변사람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음 연아야. 아무리 봐도 귀엽다기보단 압도적이다, 위협적이다, 무섭다 같은 어휘가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걔 남자야.’
그녀는 자신이 다 큰 호랑이를 강제로 성전환 시켜버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창 옆에 붙어 홀린 눈으로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푸르릉- 푸르릉-
한참동안 김연아를 바라보던 호랑이가 잇몸을 씨익 들어 올린 채 푸르릉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위협적인 송곳니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 서슬에 창문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혹시라도 호랑이가 다가와 창문을 후려칠까 두려운 표정들이었다.
“연아야 그러지마. 그 호랑이 화난 거 같은데?”
김자영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김연아의 팔을 잡았다.
“응? 왜? 기분 좋다고 그러는 건데? 고양이들도 기분 좋을 때 골골거리잖아?”
김연아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 우리 ‘가칸’이 기분이 좋은가 보내요. 다들 가칸이 푸르릉거리는 소리 들리시죠? 저 소리를 캣펄이라고 하는데 ‘널 해칠 생각이 없다.’라는 의미의 소립니다. 그러니까 저 여학생은 지금 가칸이랑 친구가 된 거죠.]세상에.
버스 앞자리에 있던 직원이 그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김연아가 거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벙 찐 표정으로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직원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했다.
그가 꺼내든 것은 바로.
[닭고기 육포]사파리 사육사들이 한 점 한 점 정성들여 만든, 호랑이 전용 육포였다.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이 시점에 꺼낼 만한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직원이 웃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중에서 자기가 ‘던지는 거 하나는 자신이 있다’ 하시는 분 있나요? 지금부터 딱 세 분만 가칸에게 직접 간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나름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막상 호랑이에게 간식을 던져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놀이기구를 타고 온 사람들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만한 사람이라곤···
“집에서 키우고 싶다···.”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김연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저 잘생긴 백색 호랑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 같았다.
약간 당황한 직원이 ‘아’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아차 이거 ‘상품’이 있다는 걸 깜빡했네요. 간식을 던지실 때 저희가 사진을 찍어드릴 텐데요? 매월, 가장 멋진 사진을 찍은 분께 저희가 ‘고급 레스토랑 식사권 2매’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그때서야 사람들의 표정에 의욕이라는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한 달에 한 명, 당첨자를 뽑는 것이었으니 당첨확률은 희박했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었으니까.
[자 그럼 도전하실 분 있나요?]직원이 말하자.
이번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어 올릴 기세로 어깨를 움찔 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눈 깜빡할 사이에 손을 들어 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역시 던지는 거라면 역시 저 아니겠어요? 에헴, 제가 다트 걸만 10개월 차라고요.”
어느새 호랑이와의 아이컨택을 끝내고 팔을 풀고 있는 김연아와.
“경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 중요한 건 실력이니까.”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은솔.
그리고.
“어···저, 저도 잘 던져요.”
당황한 표정으로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는 이아린이었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은 팔을 들 생각도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이거 어쩌다 보니 미인 세 분이 대결하게 됐네요? 혹시 다른 분들 중에 한 번 쯤 도전하고 싶으신 분 없나요? 한 분쯤 더 하셔도 될 것 같은데?]직원이 화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어···그럼 저도···.”
박수한이 은근 슬쩍 손을 들었다.
얼굴을 붉히며 김자영을 바라보는 폼이 뭔가 잔망스러운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찌릿-
연아, 은솔, 아린의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박수한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자영이 혀를 차며 박수한의 팔을 내렸다
* * *
결국, 사파리에서의 승자는···
없었다.
‘호랑아 제발···한 입만 먹어라 응?’
친구까지 먹었던 김연아가 애원해 봤지만.
호랑이는 그녀들이 던지는 육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치 ‘그런 것 따위’는 먹지 않겠다는 듯 도도한 태도였다.
결국 ‘고급 레스토랑 식사 이용권 2매’는 다른 운 좋은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아깝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놀이동산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뒤.
그런 슬픔 따윈 단숨에 사라질 정도의 즐거운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경축! 소라게 학원 이아린. 서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시 합격!]갑작스럽게 울린 핸드폰, 이아린의 합격 소식을 알리는 문자였다.
‘아린아 축하해!’
‘언니 정말 축하드려요!’
‘난 될 줄 알았다니까?’
‘어? 나도 그랬는데? 역시.’
처음 그녀가 서율대학교에 입시 원서를 접수 했을 때, 그녀의 대기번호는 9번이었다.
일반적인 대학에서 한 자릿수 대기번호가 나왔다고 하면, 합격이라는 말과 진배없는 것이었지만, 국내 최고 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서율대 같은 경우에는 안심할 수 없는 숫자였다.
왜냐하면 서율대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 수험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과의 적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합격하기만 하면 서율대에 등록하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제발 아이비리그 같은 곳으로 빠져나가길 빌 수밖에!’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빌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마치 매국노가 된 듯한 기분이다.
뭐 어쨌든.
비록 추가 합격이지만 이아린이 이번에 서율대학교에 입학한 것 자체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천운이었다.
‘뭐 내 입장에서도 좋은 거지만.’
사실 지난 4년간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합격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일단 이번에 그녀가 서율대학교에 합격함으로써 재수 기간 내내 그녀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합격을 확인한 뒤 울먹거리던 이아린의 얼굴이 생각났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
그간의 아픔을 모두 벗어던진 듯 개운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를 생각하자, 새삼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후배님.’
‘넵. 맡겨만 주세요. 선배님.’
웃는 얼굴로 대답하던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후로는 전에 이야기 했던 데로, 그녀는 학원에서 입시 상담이나 데스크 업무들을 맞아 처리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학교 입학 한 후에도 할게요!’
‘응? 바쁘지 않겠어?’
‘괜찮아요. 어차피 술 같은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조만간 독립도 해야 하니까요.’
처음엔 학교 입학 전까지만 맡아줘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먼저 학교 입학 이후에도 학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무래도 서율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껄끄러운 관계일 게 분명했으니까.
‘사실은···자취가 해 보고 싶었어요.’
음, 아무리 그래도 자취는 위험한 것 같았지만.
사실 나야 그녀가 오랫동안 일해 줄 수 있다고 하면 ‘땡큐’다.
그녀가 다른 학원의 데스크나 입시 상담원들보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그래도 근 4년간 입시 시장의 최전선에서 생활했던 만큼, 웬만한 보습학원 강사들보다 대학 입시에 ‘빠삭’했으니까.
그리고 얼마 뒤.
[경축! 소라게 학원 박일한. 한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수시 합격!] [경축! 소라게 학원 임OO. 육군사관학교 정시 합격!] [경축! 소라게 학원 우OO. 경찰대학교 정시 합격!] [경축! 소라게 학원 라OO. 중양대학교 심리학과 합격!] [경축! 소라게 학원 ···]작년 고3 학생들의 명문대학교 합격 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그때마다 현수막을 하나씩 만들어서 학원 외벽에 걸기 시작했다.
굳이 이런 걸 해야 하나 싶었지만.
‘보이는 걸 더 중요시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지성형님과 원장님의 조언에 따라 적당한 시기까지 걸어놓기로 했다. 생각보다 현수막 단가도 쌌고.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1월 중순쯤 되자 이미 학원 외벽에 더 이상 현수막을 걸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다 걸기엔 합격자 수가 너무 많다.
물론 억지로 건다면 걸 수야 있었지만 그러다간 주변 상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나중에 연락이 온 합격자들은 사진을 찍어 학원 안쪽 정리해 놓았다.
현수막의 효과는 제법 긍정적이었다.
일단 학원 원생들의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그저 나의 이름을 믿고 공부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간다! 나도 간다! 서율대 간다!’
‘1년 빡세게 해서 나도 가즈아!’
‘할 수 있다. 그래 할 수 있어.’
학생 스스로 기묘한 열기에 휩싸인 채 미친 듯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뭐 그 후로는 다들 예상하다시피, 전보다 더 폭발적으로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과 다른 점은 내 업무량이 폭주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아, 네 어머님. 오늘 내방 가능하시다고요? 그럼요. 저흰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 오실 때 연락 주시면···”
데스크에 앉아 전화를 받으며 스케줄을 정리하고 있는 이아린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전화를 받고 있던 그녀가 말없이 웃어보였다.
그런데 그때.
따르릉- 따르릉- 내가 니 오빠야- 부힝- 빵빵-
요란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연아···
이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슬쩍 보니 데스크에서 전화를 받던 이아린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휴.”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 액정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안녕하십니까. 김준영 작가님. 저는 출판사 글로비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어진이라고 합니다 ···(중략)··· 다름이 아니오라 ‘문제집’ 출판 건으로 꼭 여쭙고 싶은 안건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