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92
92
092화 폭식 준비 (3)
치익-
빨갛게 달아오른 숯 위에 번들거리는 막창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구슬이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름 연기가 눈앞에 피어올랐다.
고소한 막창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자 입속에 침이 고인다.
나는 잘 익은 막창 하나를 집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표 앞에 놓았다.
“이집 막창이 진짜 맛있거든요. 음 간장 소스에 찍어 드셔도 좋고 콩고물을 묻혀 드셔도 괜찮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대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내가 구워 준 막창을 집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설마 처음 드시는 거예요?”
“아···아닙니다. 북경에서 루주(滷煮)로도 먹어봤고, 동경에서 나베(なべ)나 야끼니꾸(やきにく)도 즐겨 먹었으니까요.”
음, 그러니까 한국씩 막창은 처음이란 이야기잖아?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루주나 나베 같은 건 못 먹어 봤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않을 겁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내가 재차 권하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대표가 눈을 질끈 감고 막창을 입에 넣는다.
그리곤 바퀴벌레를 씹는 빠삐용 같은 표정으로 막창을 씹어 나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
막창을 삼킨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괜찮죠?”
내가 묻자.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조한 표정으로 석쇠 위에 있는 막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 익었으니까 드셔도 됩니다.”
그러자 화색이 돋은 표정으로 막창을 집어 제 입에 넣는다.
잠시 뒤.
“맛있군요···”
눈시울을 붉힌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음, 막창 하나에도 이런 리액션이 나온다니···약간 충격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런 리액션은 처음 몇 번뿐인 듯, 곧 아무 말 없이 막창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콩고물과 간장소스, 소금을 넘나드는 그의 젓가락질이 제법 현란했다.
“아, 이런 좀 드시죠? 제가 굽겠습니다.”
뭐 먹을 게 남아있어야 집어 먹지.
내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집게를 집는다.
그리곤 어색한 모습으로 막창을 굽기 시작했다.
“회식 같은 거 하면 이런데 오지 않나요?”
내가 묻자.
“아···회식은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요.”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왜?”
“제가 가면 사람들이 불편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식사나 간단하게 하고 빨리 집에 가는 편이죠.”
“아······.”
그가 약간 측은해졌다.
그 동안 회식이라 하면 말단 직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대표도 대표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 같았다.
대표가 어색한 몸짓으로 막창을 굽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은 이미 만석.
왁자한 웃음소리,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빠지직- 빠지직-
막창이 익어 가는 소리에 웬만한 목소리는 묻혀 들리지 않았다.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오히려 최적의 장소였다.
그리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지.
“이모, 여기 소주 하나 주세요.”
내가 술을 시키자, 밝은 인상의 사장님이 술을 가져다주었다.
“소주 드시나요?”
내가 술잔을 건네며 묻자.
“물론이죠. 귀국하고 나서 몇 번 먹어 봤는데 도수가 낮아서 그런지 취하지도 않고 괜찮더라고요.”
대표가 술잔을 받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소주가 도수가 낮다고? 음 그렇다면 취해서 진상은 안 부릴 테니 나름 다행이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누려고 마시는 거지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었으니까.
짠-
대표와 잔을 마주쳤다.
그렇게 술잔이 몇 번 돌고 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를 때 쯤.
“이젠 얘기가 좀 가능할까요?”
대표에게 물었다.
그러자 막창을 집으려던 그의 손이 멈칫한다.
“휴······.”
잠시 갈등하던 그가 막창을 집어 들고 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그것을 꿀꺽 삼킨 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뭘 감추겠습니까? 다 선생님이 생각하신 데롭니다. 저희 출판사에 계시는 교수님들 몇 분이 선생님 자리를 요구한 것도, 그리고 제가 그걸 받아들인 것도요.”
이젠 숨기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듯 담담하게 말한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분들은 문제집 시장에서 십 수 년 이상 있으신 베테랑들이라서, 아! 물론 선생님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아무래도 조금, 뭐랄까? 노장의 자존심이랄까요?”
“······흐음. 제게는 텃세로밖에는 안 들리는데.”
“···예, 뭐. 맞습니다. 포장을 벗겨내면 사실 그거죠. 물론 제가 비즈니스 적으로 딱 끊어서 이야기한다면야 그분들도 물러나시겠지만, 솔직히 저로선 아버지와 그분들의 인연을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곤 미리 따라놓은 술 한 잔을 단번에 마셔 버린다.
“크, 쓰군요. 선생님···이제 와서 이런 말하기 좀 면구스럽지만 딱 한 번만 모르는 척하시고 공동 저자로 일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일이 없게 처리할 테니···.”
“······.”
“이걸 제외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선생님께서 비율적으로 이득이 되게끔 잘 조치하겠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침중한 안색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처음 그가 내게 ‘양보’ 운운했을 때의 감정이 거의 가라앉았다.
‘뭐, 어차피 안 된다고 할 거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저한테 이렇게 목을 매시는 거죠? 아까 식사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어서요.”
내가 묻자.
그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러더니 잠시 고개를 돌려 마른기침을 내뱉는다.
그리곤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왠지 선생님이라면 저와 평생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예상치 못한 던 말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도 자기가 한 말이 무척이나 오글거리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지 괜히 잘 익고 있는 막창을 들었다 놨다 하기 시작했다.
설마 대형 출판사의 대표씩이나 되는 인물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제가 다른 건 내세울 게 없어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제법 정확하다는 소리를 좀 듣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어른의 사정’ 방송에서 선생님을 보고 딱 ‘이 사람이다.’라는 촉이 왔었거든요. 그래서···”
설마···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막 안면을 트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이 양반 과연 제대로 회사를 꾸려 나갈 수 있을까?
그때.
쿵-
어느 순간 대표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비교적 멀쩡해 보였던 터라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소주병의 개수는 다섯 병 정도.
학원에서 회식을 할 때에 비하면 워밍업도 안 되는 양이라 약간 방심했었다.
“아이고, 이 총각 완전히 갔네? 이거 어떡하나?”
제법 요란한 소리였었는지 옆 테이블을 치우고 있던 사장님이 대표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술을 마시다 쓰러지는 사람이 있는 만큼, 사장님이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으···막창···.”
뭐 그리 걱정한 필요는 없어보였지만.
나는 대표를 바라보았다.
“···난 더 마실 수 있어···막창 더 시켜···”
쓰러져 있던 대표가 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하지만 금세 잠잠해 졌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표를 바라보았다.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그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나는 완전히 술에 취한 대표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술에 완전히 취한 사람을 내버려 둔 채 갈 수는 없었으니까.
* * *
이튿날.
“···저희 집 냉장고 열어 보시면 문 쪽 칸에 꿀물이랑 식혜 같은 거 있어요. 네네 그거요. 그리고 아침에 죽 사다 놨으니까 그것도 챙겨 드세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아···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뭐 실수한 거라도?]수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어젯밤 우리 집에서 재운 글로비언 대표의 목소리다.
아침에 나올 때만해도 곯아떨어진 상태라 깨우지 않고 나왔었는데, 이제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런데 실수?
술에 취해서 제 몸 하나 못 가눈 게 실수라면 실수랄 수 있었다.
“실수요? 물론 있었죠.”
내가 말하자.
[허억, 정말 입니까?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학원으로 찾아가겠습니다!]깜짝 놀란 대표가 지금이라도 당장 오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를 보니 옷을 입느라 허둥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농담이에요. 별일 없었으니까 그냥 푹 쉬세요. 끊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슬쩍 웃으며 끊어 버렸다.
뚝-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남아있던 술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약간 후회가 됐다.
대표야 출판사가 쉬는 주말이니 괜찮겠지만, 나야 그런 구분 없이 필요하다면 출근해야 하는 학원 강사였으니까.
뭐 그래도 어제 예상외로 대표가 빨리 죽는 덕분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학원에서 회식하듯이 마셨다면···
‘지금도 골골대면서 누워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마신 술이라선지 속이 안 좋긴 했다.
때문에 물이라도 마실 요량으로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김 선생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돌아보니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솔이 보였다.
뭔가 평소랑은 다른 표정인데? 기분 탓인가?
“네?”
내가 대답하자.
“교재 때문에요. 이번에 ㅇㅇ출판사 꺼 방학교재 교사용이 안 온 것 같더라고요.”
은솔이 딱딱한 표정으로 내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서류를 확인하자, 원래 들어와야 하는 교재 중 몇 개가 안 들어온 것으로 체크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ㅇㅇ출판사요? 이번에 또 그랬어요?”
서류에 체크를 하고 은솔에게 물었다.
그러자 은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번에도요. 일단 제가 재량껏 처리하기는 했는데, 나중에 한번 검토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더니 서류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나를 바라본다.
약간 망설이던 그녀.
천천히 그녀의 입이 열린다.
“그런데···어제 약속 있으셨나 봐요?”
눈을 가늘게 뜬 그녀의 모습을 보니 죄가 없는데도 왠지 찔렸다.
“아, 네 어제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술을 좀 했습니다.”
“아 중요한 약속이요?”
그런데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이 왠지 초조해 보였다.
내가 술을 좀 마신 게 걱정되는 건가?
“네. 출판사 대표님을 좀 만났었거든요.”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래요? 음 그런 제 카톡도 못 보셨겠네요?”
“네 뭐.”
뭐지?
어제 그녀가 카톡을 보냈었나?
뭔가 이상한 마음에 막 카톡를 확인하려는 순간.
링딩동- 링딩동- 디기딕딕딕디딕-
갑자기 요란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수능송···
이젠 누가 범인인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휴.”
나는 휴대폰을 들고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런데?
[010-6369-XXXX]처음 보는 번호였다.
내게 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학부모나, 학생들의 전화.
그들의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이미 다 저장되어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김준영 선생님 휴대폰 맞나요?]중후한 목소리. 모르는 번호, 모르는 목소리다. 하지만 어쩐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목소리였다.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그러자, 전혀 뜻밖의 정체가 들려왔다.
[아, 선생님 저는 스텔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용석이라고 합니다.]임용석?
설마 내가 아는 그 임용석?
국내 최고 엔터테인먼트 ‘스텔라리스’의 대표이자 총괄프로듀서. 참고로 손나윤 역시도 여기 소속이다.
연예계 재벌로서 뉴스에도 종종 이름이 오르내리곤 하는 그가 어쩐 일로 내게 전화를?
[아, 다름이 아니고···]이윽고.
임용석의 용건이 이어진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성격답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가 혹시 가능할까요?]흠.
나는 잠시 고민했다.
턱을 짚고 어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한번 쭉 떠올려 보았다.
이거, 잘 하면 아귀가 맞을 것도 같은데.
어쩌면 문제집 출판과 대표저자 건에 관한 문제를 이참에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국내 최대 연예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임용석이 내게 건넨 뜻밖의 퀘스트 역시도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