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96
96
096화 공부(工夫) (4)
끼익-
준영이 차를 멈추고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ㅤㅊㅞㄱ···ㅤㅊㅞㄱ···”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임동훈의 모습이 보였다.
“······.”
입가에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준영의 차를 제 집 안방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새벽 5시 25분.
오늘의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시바삐 움직여야할 시간이었다.
“일어나! 몇 분이나 지났다고 또 자고 있어!”
준영이 크게 소리치자.
“으악!”
임동훈이 마치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에?”
잠에서 깬 임동훈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
녀석의 멍한 표정을 본 준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눈을 보니 여전히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다.
“정신 차려! 공부 안 할 거야?”
준영이 다시 한 번 소리치자 그제서야 임동훈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여기가 어디에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임동훈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숨을 내쉰 준영이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준영의 손을 따라간 임동훈의 눈에 낡은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잡혔다.
노량진 역.
1899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역이자, 일평균 이용객수 5만 명에 육박하는 알짜배기 역.
노량진 고시촌이라는 도시 안의 섬에 공시족들을 수송하는 부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노량진역의 간판을 본 임동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쌤, 여긴···.”
임동훈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준영에게 물었다.
준영이 짐을 챙기며 대답했다.
“그래 맞아. 노량진이야.”
“오늘 공부는 여기서 해요?”
임동훈이 기대어린 눈으로 묻자, 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임동훈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어렸다.
아무래도 어제처럼 육체노동에 시달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차라리 앉아서 하는 게 낫지.’
임동훈이 웃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휴, 다행이다. 전 또 어제처럼 이상한 데로 가는 줄 알았죠. 여기 컵밥이 맛있다는데, 먹고 가면 안돼요?”
그러면서 전부터 한 번쯤 와 보고 싶었다느니, 인터넷에서 보니 노량진에 맛집이 많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심한 소리였다.
준영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짐이나 챙겨. 늦으면 자리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곤 임동훈이 미처 뭐라 할 틈도 없이 차에서 내려버렸다.
임동훈이 잠시 멍하니 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뭐야.’
당황한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5시 30분.
그가 생각하기엔 넉넉하다 못해 이른 시간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는 임동훈에게 이 시간은 한밤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에이, 뭐야 아직 6시도 안 됐는데. 괜히 또 나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임동훈이 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준영이 하는 일들이 모두다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일인 것만 같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준영의 멱살을 잡고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으···어제 삽질하는 거 보니까 팔뚝 장난 아니던데.’
힘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에, 오늘도 그저 생각으로만 개겨 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임동훈이 준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 뒤.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임동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게···뭐야···.’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준영의 뒤를 따라 도착한 학원 앞에서 해괴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중얼중얼···한국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교착어로써···중얼중얼···.”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2018년 4월 27일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중얼중얼···.”
학원 입구에서부터 저 멀리까지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재수생들.
골목길 바닥에 우유박스 하나를 엎어두고, 덜덜 떨며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임동훈의 눈에 들어왔다.
“쌤, 저 사람들 왜 저래요?”
임동훈이 질린 표정으로 준영에게 물었다.
“뭐가?”
“저 사람들이요.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요?”
임동훈이 학원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준영이 임동훈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잠을 깨기 위해 자신의 뺨을 때리는 사람.
허옇게 곱아가는 손을 호호 불며 책장을 넘기는 사람.
발을 동동 구르며 단어를 외우는 사람까지.
각자의 방법으로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저게 왜?”
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 뿐이었다.
그러자 임동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상하잖아요. 왜 저러고들 있어요?”
임동훈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공부를 해야 하느냐 듯한 얼굴이었다.
준영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량진에서는 저게 정상이야.”
순간, 임동훈의 표정이 멍 해졌다.
그가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노량진의 모습은 저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미친, 저런 짓을 해야 한다고?’
준영에게서 특기자 전형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막연하게 재수를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저런 모습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었으니까.
그때.
불현듯 임동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누구 강의 길래 저렇게까지 해서 기다려?’
자연스러운 의문이었다.
저 사람들의 절박한, 처절한 표정을 보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기다리고 있기에 저럴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임동훈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구 수업이기에 사람들이 저렇게 줄을 서서 들어요?”
그러자.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 수업.”
* * *
“자! 집중. 이제 1년 남았으니까. 내년에 또 내 얼굴 보기 싫으면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해 알았지?”
강의실 스피커에서 준영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자 수강생들이 불타는 눈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다들 칼집을 버린 칼잡이 같은 표정으로 준영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강의실 맨 뒤쪽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동훈 만은 예외였다.
‘이게 뭐야?’
벌써 한 시간 째.
준영의 아침 특강을 듣고 있던 임동훈은 도무지 강의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처럼 준영의 강의를 듣고 준영의 말을 필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마치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나만 그런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동훈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분위기.
생사대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눈빛들이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준영의 강의에 온 정신을 집중한 채, 다른 것에는 일체의 관심도 두지 않고 있었다.
‘뭐가 다른 거야.’
임동훈은 혼란스러웠다.
같은 공간, 같은 수업, 같은 처지에 있는 데도 그와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가 달랐다.
그런데 그때.
‘내가 지금까지 뭘 했던 거지?’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19년 동안 그가 해 왔던 모든 노력을 다 합친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하루치 노력에 비할 수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임동훈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점.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준영의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치열한 적이 없었구나.’
* * *
수업을 마치고 난 뒤.
준영이 운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갑자기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임동훈이 준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왜?”
준영이 대답하자 임동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1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될까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임동훈의 눈치를 보니 아마 재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분명 아까 강의를 진행할 때 1년 동안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으니까.
준영이 핸들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대학?”
임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간절한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네. 가능할까요?”
아침에만 해도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분명 처음 노량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임동훈의 표정에선 피곤과 짜증만이 덕지덕지 묻어있었으니까.
준영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충분히 가능하지. 단, 네가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전제하에.”
그러자 임동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한 번 해 볼게요.
그리곤 준영을 바라보았다.
“내일부터 수업 시작할까요? 교재는 어떤 걸로 준비해요?”
당장에라도 수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준영은 뜻 모를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순간, 임동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제 수업 안 해주실 거예요?”
그는 마치 배신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준영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준영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업을 할 필요가 없는데 무슨 교재를 사.”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리야. 올해 너 대학 보내 준다는 소리지.”
준영의 말을 들은 임동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아버지 성격 상···어지간한 명문대로는 성에 안 차 하실 텐데···그런데서 저를 받아 줄지···당연히 안 받아주지 않을까요? 저는 노력도 안 했고···.”
“받아 줄 수밖에 없을 거다.”
“···? 건물이라도 기부하시게요?”
“요즘 누가 기여 입학 받냐? 정시로 당당하게 넣을 거다. 명문대.”
“쌤···저 놀리시는 거예요? 저 수능 7777등급 등급이라고요.”
살짝 불만이 깃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임동훈의 얼굴을 본 준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다.”
준영이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원서 쓸 거야. 내일이 원서 접수일 마감이니까.”
준영의 단호한 표정을 본 임동훈의 얼굴에 일말의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비록 1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할 생각을 굳히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에 갈 방법이 있다는 데 그걸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디로 쓸 건데요?”
임동훈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준영이 차를 주차하며 입을 열었다.
“경휘대 국어국문학과.”
순간, 임동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준영을 바라보았다.
‘경휘대학교.’
서울에 소재한 대학 중 제법 괜찮은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학.
서율대나 한룡대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제법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학생들이 주로 가는 학교였다.
“네에? 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제 성적으로 거길 어떻게 간다고!”
임동훈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펄쩍 뛰며 말했다.
그러나.
“붙는 건 걱정 하지 말고 오늘부터 빡세게 공부나 해. 괜히 나중에 가서 동기들 수준 못 따라가겠다고 질질 짜지나 말고.”
주차를 마친 준영은 임동훈이 펄쩍 뛰던 말던 상관하지 않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헐···.”
혼자 남은 임동훈이 멍한 표정으로 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짜 어떻게 붙여준다는 거지? 혹시 대학 총장 아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