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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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화 공부(工夫) (5)
1월 하순, 가나다군 전형기간이 끝나고.
2월 초순, 합격자 발표를 지나.
2월 중순. 미등록 충원등록까지 모두 다 마무리된 시점.
축제가 벌어졌다.
[경축! 이아린 서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최종합격! 소라게 입시전문학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국회의원 이OO] [자랑스런 아들 박일한! 한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합격! 선생님들 정말 감사드려요!] [충성충성충성! 대한의 건아 피OO. 육군사관학교 정시 합격···].
.
화려한 화환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홀의 입구.
화환에 써진 축하 문구들을 읽으며 홀 안으로 향하던 내게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슬쩍 보니 작년 고3 학생들의 학부모들이다.
“선생님! 정말 감사 드려요!”
“저도요 선생님! 그 동안 저희 애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었는지···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러니까요. 이번에 선생님 만나지 못했으면 정말···큰일 날 뻔 했다니까요.”
학부모들이 내 손을 덥석덥석 잡으며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모두 털어버린 것 같은 그들의 얼굴을 보니, 새삼 올해 입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닙니다. 다 애들이 열심히 해서 그런 거죠.”
내가 말을 받자, 학부모들이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 우리 선생님 너무 겸손하시다. 이번에 소라게 학원 고3들 입시 대박난거 저희가 다 아는데···그게 어디 애들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겠어요?”
“맞아요. 선생님이 실력이 뛰어나니까 가능했던 거죠. 저희 애들도 얼마나 선생님 칭찬을 하던지···아주 질투가 날 정도라니까요.”
학부모들의 말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번에 수능을 치른 3학년 대부분이 자신이 지원한 대학에 합격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적당히 그들과 인사를 하고나자, 이번엔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내게 다가왔다.
“쌤! 오랜만이에요!”
“으아! 여전히 잘생겼어!”
“준영 쌤! 아니 이제 선배님인가?”
한 달 만에 마주한 그들의 모습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겨워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들 각자의 색으로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들 그 동안 고생했어. 대학 들어가서도 너무 마음 놓고 놀지 말고 알았지?”
내가 말하자 그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난 뒤, 그들과 함께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감사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학생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일한이나.
식장 한쪽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지성형님과 원장님.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 은솔과 이아린, 연아까지.
학원에 남은 사람들과 학원을 떠난 사람들이 정답게 어울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
사실 오늘 모임은 작년 고3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의 대학 입학을 감사하는 의미로 개최한 것이었다.
‘선생님 저희가 너무 감사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날 꼭 참석해 주세요.’
내가 학원 일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학원에서 강사와 학부모의 관계란, 일정 기간 동안은 그 누구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 필요가 다 했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더 냉정하게 끊어지는 관계였으니까.
그래서 처음 이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떨떠름했다.
하지만 오늘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학부모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가 지난 1년간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가슴이 꽉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홀 안에 마련되어 있는 무대 위로 화려한 정장을 입은 사내가 올라섰다.
그러자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홀 안에 제법 넓은 무대가 세워져 있긴 했지만, 오늘 뭔가 특별한 행사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으니까.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선 사람의 능숙한 행동을 보니, 분명 전문적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늘 행사를 추진한 학부모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학부모들이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까지 준비했을지는 몰랐던지라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행사가 끝나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네. 다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소라게 학원의 입시 감사회를 시작하도록 할까요?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들도 그냥 가만히 계시면 재미없으니까. 자유롭게 행사에 참여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사이 준비를 다 마쳤는지 사회자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무대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는···어마어마한 분들의 축하공연입니다. 여러분 모두 깜짝 놀라실 텐데요. 이거 기대가 됩니다.”
사회자의 입에서 축하공연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학원 행사에서 축하공연까지 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사람들의 표정을 본 사회자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자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말하자.
홀 쪽에 있는 조명이 한순간에 모두 다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런데 그때.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 ‘퍼플벨벳’입니다! 박수로 맞아 주세요!”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무대 위 쪽으로 밝은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그 밑으로.
손나윤과 퍼플벨벳 멤버들이 나타났다.
순간, 퍼플벨벳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꺄악! 대박이야!”
“오늘 계타는 날인가?”
“와 진짜 퍼플벨벳이야···.”
그리고···공연이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목소리, 현란한 댄스에 사람들이 홀린 듯 무대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아니 무슨 학원 행사에 정상급 아이돌이 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퍼플벨벳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설명해줄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무대 근처에서 퍼플벨벳을 바라보고 있는 김종호 매니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종호씨.”
그러자 김종호 매니저가 밝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했다.
“네.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전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
내가 묻자, 그가 약간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제 아들이 무려 ‘경휘대’에 합격했는데!”
김종호의 뒤쪽에서 예상지 못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사람은 바로.
손나윤이 소속되어 있는 스텔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임동훈의 아버지 임용석이었다.
보아하니 그가 이 갑작스러운 사건의 주연인 것 같았다.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임용석이 내 손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의 붉어진 두 눈을 보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워낙 체급차가 나는 터라 그가 살짝만 손을 흔들어도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세우고 그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제 아들 녀석이 말해줘서 알았습니다.”
“동훈이가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대표가 손을 뻗어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동훈이 보였다.
“동훈이가 선생님 학원에서 입시 감사회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선생님이 저희 애도 이번에 ‘경휘대’에 합격 시켜 주셨으니까. 비록 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축하드리는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요.”
임 대표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략적으로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임 대표는 내가 임동훈을 경휘대 국어국문과에 합격 시켜준 것이 고마운 것 같았다.
내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내가 일주일 만에 성공시킨 것일 테니까.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퍼플벨벳의 노래에 맞춰 떼창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음, 예상외로 행사가 좀 길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진 않아보였다.
저렇게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저한테는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까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내가 살짝 푸념을 내뱉자, 임 대표가 씨익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게 더 재미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일부러 다른 분들한테도 신신당부를 해놨었거든요. 특히 김준영 선생님은 모르게 해 달라고.”
이제 보니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가 가득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선생님 정말 어떻게 아신 겁니까?”
임 대표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던 터라 그가 뭘 물어보는 것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되묻자, 그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경휘대 국어국문학과가 올해 미달 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아신 건지 궁금해서요.”
임 대표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 방법이 있죠.”
그러자 임 대표가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을 잡고 탈탈 털어서 라도 듣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사실 이번에 경휘대 국문과가 미달이 날 것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서였다.
한창 박일한의 논술 준비로 바빴던 시절.
USB 안에 있는 논술 시험지들을 한 번씩 훑어보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지문 하나를 발견했다.
[문제 3-2] 주어진 지문을 기본으로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하시오. (20점, 750±50자) [지문] 2019학년도 경휘대 국어국문학과의 인원 미달 사태의 경우···]지문을 나온 정보를 보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크게 맞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USB를 단순한 문제 모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내 편협한 사고가 단번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설마 지문에 나온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 줄이야.’
지금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잠시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임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 방법까지는 몰라도 될 것 같네요. 어차피 저야 저희 동훈이가 경휘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것만 해도 만족하니까요. 그나저나 선생님 생각은 해 보셨나요?”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저번에 선생님 처음 뵀을 때 말씀 드렸잖습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 다 말씀하시라고. 그런데 그때 하나도 사용하시지 않으셨으니까. 지금이라도 원하시는 게 있나 해서요.”
그러고 보니 임 대표와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땐 굳이 임 대표의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에 거절했었는데, 임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그때의 제안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요구할 만한게 있나? 음···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임대표에게 제안할 만한 것이 있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러면···.”
그런데 그때.
“선생님 그리고 아버지. 말씀 드릴 게 있어요.”
임동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 다시없을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내게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던 임 대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임동훈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 중요한 거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 하자.”
“아니요 지금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동안 임동훈에게선 볼 수 없었던 단호한 태도였다.
나와 임 대표가 그를 바라보자.
임동훈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자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