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02)
멋진 신세계 (4)
파리 중앙 육군조병창.
프랑스의 수많은 조병창 중에서 유일하게 중앙이라는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느 강과 생마르탱 운하가 접하는 곳에 위치한 중앙 조병창의 크기는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과장 좀 덧붙이면 웬만한 대학교 캠퍼스보다 조금 작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아무리 총동원령을 선포했다고는 하지만 지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한 달 여 만에 총 4만 정과 창 1만 자루, 대포 100여문을 찍어냈었으니, 그 수요를 다 감당하려면 이 정도 크기의 부지는 당연한 건가 싶다.
“하다못해 로봇이나 컨베이어벨트라도 있으면 몰라. 죄 대장장이들이 일일이 망치를 들어 땜질하고 풀무질해서 만드는 거니.”
으음. 쇠 냄새하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한참을 서 있더니 나도 많이 심심한가보다. 입 밖으로 자꾸 혼잣말이 나오네.
이럴 때는 나약해진 심신에 니코틴을 약간 첨가해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야한다. 곧 기술자들이 올 텐데 근엄하고 멋진 사장이 아니라 외로움에 혼잣말을 주워섬기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되지 않나.
품 안의 담뱃갑에서 여느 때와 같이 궐련을 뽑아 입에 물고 불을 댕기자 놀라우리만치 마음이 평온해진ㄷ···.
“헉, 헉, 각하! 명하신대로 기술자들을 데려왔습니다!”
“아.”
방금 불 붙였는데. 이거 장촌데.
그러나 사람을 불러놓고 앞에서 ‘저 잠깐 담배 좀 필게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제 막 타들어가는 궐련을 구두로 비벼 껐다.
흑흑, 주인님이 미안해. 부디 다음 생애에는 값싼 궐련보다 값비싼 시가로 태어나렴.
“기술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기욤 드 툴롱입니다.”
“각, 각하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큼큼. 전 엄연히 ‘전직’ 재무총감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어디까지나 이삭의 민족의 사장으로서 온 것이지, 공무를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하하, 거 너무 겸손하십니다!”
겸손이라. 그으을쎄.
이 감투라는 게 말이에요. 굉장히 짜증나는 거거든요? 양손에 ‘권력’이라는 타노스의 건틀렛을 끼고서 막대기 위에 접시를 돌려야 하고 두 다리로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곡예를 하는 그런 기분이란 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와 개쩐다’하면서 박수를 짝짝 칠 수도 있겠지만 타는 사람은 죽을 맛이고, 타노스의 건틀렛을 끼고는 있지만 그걸 함부로 휘두르면 세상이 활활 불길에 휩싸일 테니 눈물을 머금고 예쁜 쓰레기로 놔두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요. 아무튼 선생님들께선 제철 쪽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예. 용광로 운용을 맡고 있습니다.”
“전 블루머리(수로, Bloomery)를 운용합니다. 강철 생산이지요.”
방금 전까지 일하다 왔다는 걸 증명하듯, 얼굴이 숯검댕이로 검게 그을린 두 중년 기술자는 내게 말했다.
“제가 돈 쪽 일만 하다 보니까, 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용광로와 블루머리가 다른 겁니까?”
“어유 당연히 다르지요. 각, 아니. 사장님.”
“그렇습니다. 과장 좀 보태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장님.”
“그래요?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용광로를 담당한다는 기술자가 먼저 손가락을 피며 말했다.
“용광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제철’입니다. 철광석의 불순물을 정제하고 적당히 쓰기 쉽게 철괴 형태로 가공을 하는 게 용광로의 일이지요.”
“흠, 그렇다면 용광로에서 뽑아낸 철괴는 가공 전에는 상품가치가 없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용광로에서 뽑아낸 철은 ‘주철(무쇠, cast iron)’이라고 해서 그 자체로도 상품으로 팔린답니다. 다만···.”
“다만?”
“이 주철이라는 녀석은 성질이 굉장히 억세서, 외부의 충격에 상당히 취약하답니다. 강도는 강하지만, 유연성이 없는 나머지 다른 철들은 조금 휘는 정도에 불과한 압력에 뒤틀리고 부러지기 일쑤입니다.”
아. 태풍 속의 아름드리나무와 갈대 이야기 비슷하네.
어느 날 어마무시한 태풍이 불어 닥쳤는데, 튼튼한 아름드리나무는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부러져서 바닥에 뒹굴었으나 바람가는 대로 휘날리던 갈대는 멀쩡했다고.
“그러면 주철은 어느 곳에 쓰입니까?”
“건축물이라 던지, 무기라 던지. 일단 단단해야하고, 부러지는 게 휘는 것만 못한 곳에 주로 쓰이지요.”
“건축물에 쓰인다, 라.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 예. 당연하지요. 사장님.”
우리 철도 레일도 어떻게 보면 건축물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나는 서둘러 내가 타고 온 ‘라부아지에 증기마차 1호’ 뒷좌석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머독과 트레비식이 조사를 위해 잘라낸 레일의 일부분이 놓여있었다.
크. 아까 혹시 몰라서 하나 챙겨놓은 덕이 있구만.
나는 군데군데 금이 쩍쩍 가버린 레일을 기술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게 무슨 재질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디보자···. 주철 같군요. 꽤 육중한 게 위에 올라갔던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유연성이 약한 주철은 깨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려면 주철을 쓰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지요. 아니면 연철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연철이요?”
“주철을 다시 단조하여 만드는 쇠입니다. 주철을 제련하면 연철(시우쇠, 저탄소강. wrought iron)이나 강철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강철은… 들어봤는데. 연철은 또 뭐야?
거기까지 이야기가 나가자, 이번에는 블루머리를 담당한다던 기술자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큼큼. 블루머리에 용광로에서 제련한 주철을 때려 넣은 뒤 코크스로 점화시키고 뽑아내면 연철이라는 게 나옵니다. 주철보다 단단함은 덜하나 훨씬 유연하고 쓰임새가 많지요. 예를 들자면, 철사나 스프링 같은 정밀부품 제조에 많이 씁니다.”
“음.”
설명대로라면 연철은 말 그대로 유연한 철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강철은요?”
“강철이야 가장 귀한 철이지요. 연철이던 주철이던 그게 뭐든 강철을 따라갈 철은 없습니다. 사장님.”
“그렇군요. 그러면 강철은 어떻게 제조합니까?”
얼굴색 또한 별 생각 없이 물은 나와 달리 두 사람의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강철은 왜 찾으십니까?””
“최고로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좋은 원재료를 찾는 게 사업가지요.”
“으음.”
“혹시 강철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게 강철이라서 말입니다.”
“얼마나 어려운데요?”
“일단 뽑아낸 주철이나 연철을 코크스, 그리고 숯과 함께 점화시킨 후 작게는 수 주 부터 수백 일까지 계속 코크스와 숯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원료가 되는 주철이나 연철도 보통 철광석이면 안 되고, 스웨덴 산 최고급 철광석이어야 그나마 만들 수 있습니다.”
“왜 굳이 스웨덴 산을 써야하죠?”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적어야하는데 일반적으로 쓰는 철광석으론 최대가 연철 생산입니다. 스웨덴 산 철광석은 다른 산지보다 불순물이 배 이상 적어 강철로 제련하기가 쉽지요.”
“쓰읍. 그렇군요.”
듣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구만.
일단 수백 일 동안 계속 값비싼 코크스와 숯을 아낌없이 밀어 넣어 줘야한다는 거에서 감점. 아무리 좋고 훌륭한 제품이라도 제조비용이 너무나 높다면 상품가치가 없어지고 만다.
매해 뉴스로 ‘OO대학교 연구팀, 드디어 탈모치료제 발견!’, ‘XX대학교 연구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 발명! 환경오염, 게 섯거라!’, ‘ㅁㅁ기업이 암을 치료하는 신기술을 발명했대! 전 재산 올인 가즈아아아!’이라고 뜨는 게 부지기수지만, 대부분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그 찌라시를 믿고 전 재산을 투자한 사람들은 모니터를 부수게 되는 이유가 바로 만들고 나니 투입비용 대비 상품가치가 너무나도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크스는 석탄을 한 번 정제한 거고, 숯도 나무를 한 번 태워 만드는 거 아닌가. 1차 생산물이여도 원가가 높을 텐데, 그걸 한 번 정제한 2차 생산물이라면 말 다했지.
거기에 딱 잘라서 ‘스웨덴 산 철광석 아니면 강철을 못 만듬’이라. 원료도 조오오올라게 비싸고, 들어가는 생산비용도 조오오올라게 비싸면 이걸 어떻게 만들어? 못 만들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21세기 현대문명을 일컬어 사람들은 강철문명이라고 했다. 아파트나 건물을 쌓을 때도 강철 철근을 쓰고, 가로등도 강철을 쓰고, 유투브에서 나오는 대장장이 아저씨들도 강철을 쓰고, 아무튼 눈에 보이는 것 중 십 분지 팔에는 강철이 들어갔을 텐데, 그렇게 재료값이 더럽게 비싸다면 어떻게 강철을 썼을까.
가설은 세 가지다.
첫 번째 가설.
국제무역의 증가와 개발로 인해 원료 수급이 원활해졌다.
두 번째 가설.
내가 들은 18세기의 ‘강철’과 21세기 현대문명으로 만들어낸 ‘강철’은 사실 다른 것이다.
세 번째 가설.
제조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 원료 대비 생산성이 증가했다.
일단 첫 번째는 기각. 아무리 무역량이 증가하고 개발이 되더라도 근본적인 비용을 현격하게 줄일 수는 없다.
당장 5천만이 사는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몇 채인가. 그 아파트를 지으려면 철근이 말도 안 되게 필요할 텐데, 도라에몽의 사차원 주머니에서 쇳덩어리를 뽑아내지 않는 이상엔 공급이 아무리 원활하다 하더라도 수요를 못 따라 잡을 거다.
두 번째는… 일단 보류.
저건 내가 다시 21세기로 돌아가서 포항이나 광양에 가서 물어보지 않는 한 모를 테니.
마지막 남은 세 번째 가설.
제조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 원료 대비 생산성이 증가했다- 이게 제일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산업혁명은 경영학에서도 짚고 넘어갈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였으니.
그 산업혁명 기간 동안 강철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무언가가 탄생했다고 보는 게 제일 이치에 맞다.
그러러면 일단 현장을 봐야겠지.
“···제가 한 번 강철 제조과정을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아유,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나는 기술자를 따라 조병창에 자리한 제철소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인데도 제철소 안은 30도를 우습게 넘어가는 듯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후우. 꽤나 덥군요.”
“하하, 조심하십쇼. 난생 처음 겪는 열기에 훅-하고 혼이 빠지는 신입도 간간이 있습니다.”
까-앙! 까-앙!
시뻘건 쇳물이 곳곳에서 부어지고, 어디론가 날라지고, 두 손을 다 써야 다룰 정도로 큰 망치를 쥔 대장장이들이 물을 뿌려 식힌 쇠에 담금질을 한다.
이러니까 대장장이가 3D업종이고 마초직업이지.
“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프랑스의 강철 제조를 전담하는 블루머리입니다!”
“오오!”
오오…오?
잠깐만 이게 뭐지.
“저기, 선생님?”
“예, 하명하실 게 있으십니까?”
“그, 강철을 만들려면 어마무시하게 큰 통 같은 게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거 있잖나, 공기업이랑 포스코 취업박람회 가면 어마무시하게 큰 솥단지? 아니면 통? 아무튼 시뻘건 쇳물을 끓이는 그거.
그런데 그 통은 어디가고 왜 두더지 굴 같이 생긴 게 있어?